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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된 사진 속에서 사라진 점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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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선언 등에 참여한 대가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피해 연극인들을 세월호 참사의 2차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주목하여 보려고 한다.1) 이러한 관점이 연극인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과정에 2차 당사자로서 지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한 가지 근거가 되었으면 한다.
박근혜 정부, 세월호 시국선언=반정부 투쟁으로 규정
2016년 10월 12일 한국일보가 보도한 9,473명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가장 중요한 카테고리 중 하나는 세월호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 참여자 명단이었다. 9,473명 명단 중에서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화예술인은 모두 1,302명(중복 제외)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월호 시국선언=반정부 투쟁’으로 규정하는 등 위법적인 강경정책을 추진했으며 블랙리스트를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관련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찰·검열·배제 등 탄압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2)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 담당자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A과장은 세월호 관련 작가는 안 된다는 기준을 저에게 말했다”, “세월호 서명 작가들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배제 작가로 선정하여 전달하였던 적도 있다. 이러한 지시가 반복되다 보니 소속 공공기관들도 자체적으로 (블랙리스트 배제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고 진술하여, 지원사업에서 세월호 시국선언 명단을 활용해 배제 대상을 선별하였음을 확인해주었다.3)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블랙리스트 배제 명분으로 활용
연극계에서 실행된 블랙리스트 사건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조사해야 했던 것은, 2015년 서울연극제 개막식 하루 전인 4월 3일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이 긴급 안전점검을 명분으로 폐쇄된 경위였다.
이 사건의 간단한 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 한국공연예술센터 정기대관공모가 마감된 후인 2014년 10월 23일 오전 10시경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 담당 사무관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공연예술센터로 전화를 걸어 서울연극협회 등 19개 단체의 접수 번호를 불러주며 대관 공모 사업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배제 지시는 청와대 → 문체부 → (예술위) 한국공연예술센터로 내려온 것이었다. 한국공연예술센터는 문체부의 배제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 단체별로 ‘사업계획서 미비’ 등 그럴듯한 배제 방법과 사유를 미리 마련한 후 심사과정에서 전부 배제하였다. 심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연극협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탄압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강렬하게 저항했고, 그 결과 2014년 12월 31일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등 일부 극장을 다시 대관하여주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등에 대한 재대관 합의 이후인 2015년 1월 8일경 서울연극협회가 한국공연예술센터를 상대로 제기한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시 아르코 대극장을 대관하여 주지 말라는 지시가 청와대 → 문체부 예술국 → 예술위로 내려왔다. 서울연극협회는 공연운영부장 인사조치 등을 요구하며 예술위와 지리멸렬한 줄다리기 끝에 2월 26일 고소취하를 접수하였고, 3월 16일 결국 고소가 각하되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서울연극협회가 고소를 취하한 후에도 당초 약속과는 달리 서울연극협회를 대관 배제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난감한 상황에 빠진 예술위는 결국 3월 10일 아르코 대극장에서 무대 구동부 모터 2대가 고장 난 적이 있던 사실을 떠올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 나머지 무대 구동부 장치 58개의 모터도 하필이면 서울연극제 기간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서울연극제 개막을 앞두고 서울연극협회를 배제할 방법을 찾지 못하던 중 아르코 대극장에서 있었던 모터 고장을 이유로 안전점검을 실시한 후, 그 점검 결과를 명분으로 아르코 대극장을 폐쇄하는 무리수라도 준비하긴 하였으나 예술위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워서 권영빈 위원장이 최종 결정 전인 4월 2일경 이 문제로 김종덕 장관을 면담하고, 청와대 교문수석실과도 협의한 것이다.4)
사실 이 사건은 김기춘 등에 대한 1·2심 판결에서조차 청와대의 서울연극협회 배제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침” 구동부 장치 고장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극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난 마당이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서 이 사건의 마지막 자물쇠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조사 보고서 마무리 직전 예술위가 증거자료를 자발적으로 제출하였기 때문이었다. 예술위가 증거자료를 자발적으로 제출한 이유는 이 사건이 연극계에 있었던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 중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므로 예술위가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한 (다른 어떤 사건 조사에 협조하더라도)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기관으로서의 ‘오점’을 벗을 수 없다는 설득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조사에 직원들 사이의 관계도 무척이나 파괴되어 서로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더 방치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정작 진상조사가 발표된 이후 피해자 단체인 서울연극협회는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를 받고도 연극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윤한솔 연출가가 이렇게 빈정거려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서울연극협회는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결과에) 적극 대응은커녕 아무것도 안 함. 놀라움도 금치 못하고 규명해줄 것을 요청도 하고 정의구현을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결과 공유도 5월 8일 결과 공개 후 몇 달이 지난 후 공유하지 않고 있다 페북에 박 모 선생의 항의 글 이후 서울연극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뒤늦게 공개. 딸랑 공유만 함. 이러니 공개 안 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꾸 이유 많은 소설을 쓰게 됨.5)
이 자리에서 서울연극협회가 진상조사 내용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배경까지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이 질문만은 공유하고 싶다. 문체부와 예술위 직원들이 수치스러움으로 끝끝내 숨기고자 했던 ‘오점’을 기어이 밝혀내고 해당 사건으로 문체부·예술위 (전·현직) 직원들을 형사처벌 의뢰, 중징계 등 조치한 것이 겨우 서울연극협회가 협회장을 예술위원으로 배출하고 아르코 대극장에서 다시 서울연극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정된 사진 속에서 사라진 <점들>
사실 내가 ‘오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 4월 6일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형제자매 사진전 <나와 우리의 시간> 전시에 찾아갔을 때였다. 참여 작가 중 한 명으로 해설까지 직접 해준 박보나 씨가 찍은 사진 중에서 제주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동생 성호의 증명사진을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내가 찍어준 동생의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 (…) 아무런 보정도 하지 않은 사진을 보며 나는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다시 깨닫는다. 성호를 찾아 헤맸을 때 내가 지워버린 그의 점들이 그를 알아보는데 아주 중요했다는 것을.6)
박보나 씨는 동생의 증명사진을 찍어주고 포토샵을 하면서 지웠던 점들이 사실은 참사 이후 동생을 찾을 때 그를 알아보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고 했다. 박보나의 ‘점들’에 대한 깨달음은 내게, 그동안 ‘서울연극제 대관 배제 사건’이라고 부르며 내가 지워버린 ‘점들’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령 그동안 내가 서울연극제 대관 배제 사건이 일어난 날이라고 기억하던 2014년 11월 14일을 이제는 극단 수수파보리(정안나 연출)가 배제된 날이라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정안나 연출가는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과정에서 서울연극협회가 배제된 그날 함께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전세금을 빼서 마련한 돈으로 제작한 연극 <처용 오딧세이>가 밀양연극제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고, 출연 배우 6명 중 2명이 연기상을 수상하였기에, 2015년 한국공연예술센터 정기대관 공모에 응모하면서 내심 이제는 서울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 → 문체부 → 예술위로 내려온 배제 대상자 명단 19개 단체에 속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서명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그가 ‘외부’로 드러난 계기는 2014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축하하는 마음이 너무나 비참하여 그날부터 연극인부모협동조합의 이름으로 마로니에 공원에 나와 책상 하나를 놓고 주말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같은 사건에서 자신이 블랙리스트로 배제된 당사자인 줄도 모르고, 서울연극협회의 대관 배제를 규탄하는 거리 시위에 함께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사라진 ‘점들’은 정안나 연출가만은 아닐 것이다.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공연 <이 아이>, 방해받은 무대 위에서 연기했던 배우들
최근 세월호 관련 최대 관심은 아마도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박근혜 7시간 기록 공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세월호 참사의 그 순간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은폐하며,) 블랙리스트를 실행하고 있던 동안 국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국가기관 소속 직원 중에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알린 사람이 존재했던 사건이 팝업씨어터 <이 아이> 사건이다.
연극인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 아이>는 극단수수파보리·서울연극협회를 대관 배제했던 바로 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가 자체 기획하였던 공연이었다. 2015년 10월 17일 첫날 공연에서 ‘수학여행’, ‘노스페이스’ 등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단어가 나오자 공연예술센터 간부들이 다음날 공연을 취소시키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현장에서 시작 직후 공연을 중단시키기도 하였고 이후 공연 진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였던 사건이다.
팝업씨어터 공연 방해 사건에서도 지워진 ‘점들’은 있었다. 시작 직후 일시 중단되었던 공연을 재개해야 했던 배우들의 고통도 그러하다. “공연을 하면서도 모욕감을 느꼈다. 관객 중 누가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인지, 누가 공연을 방해하는 직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했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 같은 모멸감을 느끼며 연기를 해야 했다.”는 배우의 말, “공연이 시작된 상황에서 공연을 의뢰하였던 주최 측이 우리 공연을 중단시켰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내가 잘못된 공연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현재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또 다른 배우의 목소리에 주목하게 될 때 팝업씨어터 공연 방해 사건은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저렇게 공연을 방해해도 되는 것일까? 저렇게 직원들을 망신 줘도 되는 것일까? ‘세월호’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공연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뒤에서 보고만 있는 것이 민망해 숨어버리고 싶었고 배우들과 연출가에게 미안해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습니다.”는 팝업씨어터 담당 직원 염한별의 말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사건 담당 또 다른 직원 김진이가 상급자의 취소 지시를 거부했던 공연 <이 아이>가 하필이면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공연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우연의 소산이었을까. 문체부가 정리한 블랙리스트 관련 현황 파악 문서에서 팝업씨어터 <이 아이>는 <그 아이>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 아이>와 <그 아이>의 거리는 팝업씨어터 공연 방해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마주 보고 있었던 거리와 문체부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두고 있었던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지면이 부족하여 여기에 자세히 다 적지 못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느낀 죄책감에서 비롯하여 진상규명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과 블랙리스트 실행을 막기 위해서 노력했던 일부 공공기관 직원들이 받은 고통과 상처는 사안에 따라서 생각보다 날카롭고 깊었다. 사라진 ‘점들’은 아직 많다.
  1. 지난 3월 21일 개최된 제1회 사회적참사 피해지원 포럼에서 유해정 연구위원은 재난의 피해자 범주의 확장을 제안하였다. 그의 제안에 따르면 재난의 1차 피해자 이외에도 재난 구조·지원·복구·치유 과정에서 발생한 인적, 신체적, 물질적, 심리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자는 재난의 2차 피해자로, △ 재난 발생 현장의 지역주민과 공동체 △ 재난 발생에 따라 인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과 친밀한 관계였던 사람 △ 재난의 직·간접적 목격자 등은 재난의 3차 피해자가 된다. 이러한 재난 피해자 범주의 확장은 재난의 피해자를 수동적인 위치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재난의 전 과정에서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인권의 실현을 요구하는 주체로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을 갖기 위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019. 「제1회 사회적참사 피해지원 포럼_사회적참사 피해자권리 관점의 변화_“피해지원! 시혜에서 권리로”」.)
  2.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진상조사및제도개선위원회. 2018. 4. 13. 보도자료. 1쪽.
  3. 위의 글, 3쪽.
  4. 이와 관련하여 권영빈 위원장은 2015년 4월 2일 김종덕 장관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르코 대극장 폐쇄 문제는 논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진상조사및제도개선위원회 백서』 부록 2-2, 80쪽.
  5. 윤한솔, 「제7차 대학로X포럼 자료집」, 14쪽.
  6. 전시 <나와 우리의 시간> 리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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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이양구 작가,연출가
희곡을 쓰거나 연극 연출을 하고 있다. 인터뷰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뷰집 "호모파베르의 인터뷰"(제철소)를 출간하기도 했다. 
제158호   2019-04-2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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