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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되고픈 사람들
그게 아닌데

전민정_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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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소통의 편리함을 위해 생긴 도구가 때로는 오해를 낳는다. 듣고 싶은 내용만 취사선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한 결과다. 기술의 발달로 소통은 쉽고 편해졌지만 소통장애로 인한 소통불가 현상은 오히려 늘어난 세상. 옆에 사람을 두고도 기계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막상 현실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코끼리 이미지와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극 <그게 아닌데>는 바로 우리 사회의 모순,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막이 오르자 취조실을 무대로 주인공인 조련사와 의사의 대화가 시작된다. 코끼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건을 두고 의사, 형사, 엄마는 각각의 입장에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조련사를 제외한 등장인물은 그 누구도 상대방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말만 앞 다투어 쏟아낸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어느새 조련사의 입장이 되어 말도 안 되는 상황전개에 답답해하며 가슴을 치고,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극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대상은 막상 무대 위에서 실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의사, 형사, 엄마가 아닌 조련사와 관객들인 셈이다.

공연 포스터


공연 포스터
  • 등장인물 간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이유는 서로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로 신뢰를 잃어버린 사회, 솔직하면 오히려 손해 보는 세상을 코끼리를 통해 우화적으로 풍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통의 부재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고, 의자와 테이블뿐인 무대를 가득 채우는 대사는 정곡을 찌르고 마음을 건드린다. 신진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정도다. 문득 작가가 극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2005년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탈출사건의 진상이 궁금해졌다.

    중반부터 주목하게 된 것은 소통과 대화보다는 오히려 풀어주는 행위와 이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조련사는 어린 시절 집에서 기르던 개를 풀어주었고, 엄마에게서 아빠를 풀어주었고, 동물원의 코끼리를 풀어주었다. 코끼리가 되어 가족을 떠나야 했던 한가정의 가장은 동물원에서 풀려난 뒤 그리워하던 딸을 찾아가지만, 막상 그 딸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집을 떠나 동물원 쪽방에서 지내면서도 마음이 편해서 행복했다는 조련사의 조용한 독백은 그래서 더욱 뇌리에 남는다. 소통하기 어려웠던 엄마에게서 해방된 후에야 비로소 행복감을 느꼈다는 조련사도,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집을 떠나버린 채 홀로 남겨졌던 엄마도, 의대에 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했던 정신과 의사와 정치적 음모로 몰아가려는 윗선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형사까지도, 사실은 모두 불쌍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건, 과거에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었으리라.
공연 포스터

  • 극의 마지막, 코끼리가 되어버린 조련사와 동료 코끼리가 서로의 코를 감싸고 쓰다듬는 움직임은 가슴 한편을 뭉클하게 한다. 내내 서로 목청을 높이던 배우들이 사라지고 쉴 새 없이 이어지던 대사 끝에 찾아온 평화이자,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따스한 위로였다. 결국 우리가 기다리고 원한 건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코끼리였나 보다.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여러 방식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실 나도 그런데'하는 공감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말 못하는 코끼리도 서로 통하는데, 하물며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사실 말이 필요 없는데.


[사진제공] 극단청우




 

태그 그게 아닌데, 극단청우, 김광보,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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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정

전민정 상명대학교 근무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일하며, 문화정책 연구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이메일 minjung.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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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9호   2012-10-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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