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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극장의 임무를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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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및 아르코미술관 운영체계 개편을 위한 공청회’(이하 공청회)가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이 공청회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및 아르코미술관 운영체계 개편을 위한 폭넓은 현장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었고, 블랙리스트 사태 속에서 왜곡된 극장·미술관의 개혁 문제를 다루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참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공연예술 현장에 그 소식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참석 인원은 매우 적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운영체계 개편 과정은 작년(2018년) 6월에 아르코혁신TF에서 내놓은 조직혁신 제안에 의해 시작되었다. 공청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예술위는 운영자문위원회를 3차례, 이해관계자 그룹별 현장 의견 수렴 과정(연극·무용 분야 차세대·중진, 극장 관계자, 일반 관객)을 6회 거쳤고 극장 운영방향 진단을 위한 운영체계 검토 내부 토론(예술위인지 사무처인지는 분명치 않다)을 진행했으며 예술위 예술정책·지원 소위원회 및 현장소통 소위원회 보고를 거쳤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TF의 조직혁신 제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예술위와 예술위 사무처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며 이 개편안도 긴 노고 끝에 나온 것이다.
(사진출처: 아르코예술극장 홈페이지)
그러나 공청회에서 발표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운영방향 분석 및 운영체계 개편(안)’은 의외로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과연 그 많은 사람의 여망이 이 ‘개편안’ 속에 진짜로 담겨 있는 것일까? 혹시 예술위는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은 것은 아닐까? 실망을 넘어 맥이 빠지는 이유는 긴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이 ‘개편안’에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역사도, 극장의 미래도 전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조직, 어떤 기구를 개혁한다고 하면 최소한 이 기구가 십 년 후, 이십 년 후 어떤 모습이 되는 것이 좋을지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현재의 조건을 고려하여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이후에 순차적으로 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개편안’은 오롯이 현재적 조건만을 제시하고 그것에 맞는 조직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개편안’에서 적시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현재적 존재 조건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이 극장들이 예술위 소속 극장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 극장의 주 기능이 대관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문예진흥기금으로 운영되는 극장의 가용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편안’에서 극장의 미션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①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관료, 홍보 및 무대기술 등 시설지원, ②문예기금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한 극장 지원(창작산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봄작가 겨울무대, 아르코 파트너, 스파프 등), ③연극과 무용 협·단체들의 축제 무대로 활용 등이다. 그리고 논의는 어떤 직제로 누가 극장장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다인가?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은가? 미션 제시는 현재 상황 진단과는 달라야 하지 않는가? 현재 조건과 미션이 이렇게 밀착되어 있는 개편안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우선 조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극장들이 예술위 소속이라는 것은 이 극장들을 예술위(혹은 그 전신인 문예진흥원)가 주도하여 지었다는 뜻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1975년 폐관된 명동예술극장 외엔 국공립 공공극장이 하나도 없던 1981년, 연극인들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문예회관’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문예진흥원이 설립했다. 이전에는 1974년 충무로5가의 정음사(正音社) 5층 건물을 임대, 개조하여 극장을 포함한 ‘연극인회관’으로 사용했고, 1977년부터는 중구의 성공회 부속극장(세실극장)을 임대해 사용했었다. ‘종합문화예술회관’으로서 문예회관 건립은 연극계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서울대 문리대 터였던 대학로에 이 국공립극장이 건립되면서 한국연극의 대학로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한편 대학로예술극장은 2009년 아르코시티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며 이로써 대학로에는 두 개의 국공립극장이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위가 설립 주체였다는 이 역사적 사실이 예술위가 계속해서 운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극장의 운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전제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운영 주체의 문제는 극장의 존재 조건의 상당 부분을 결정하는 것인 까닭이다.

예술위에서 이 극장들을 운영한다는 것은 예술위와 극장이 명령계통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예술위 입장에서는 예술위 지원 체계의 일환으로 극장을 활용할 수 있고 자체 예산 속에 극장 예산을 포함할 수 있으므로 극장을 운영하는 것이 조직적·재정적인 권력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극장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극장의 관료주의적 운영을 낳는 요인이 된다. 여러 기구가 협력할 때, 의사 결정 구조가 다원화할수록 각각의 기구는 독립적이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이 된다. 현재의 조직 체계 내에서 극장의 의사결정은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극장의 미션을 규정한 현 ‘개편안’이 이미 이것을 방증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예술위는 지원기구로서 예술계 바깥의 조직이다. 이에 반해 극장은 연극 제도를 움직이는 동력의 중심이 되어야 할 기구다. 현재 체계대로라면 예술계 바깥이 예술계 안을 결정하는 그림이 된다. 달리 말해 예술위가 극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예술위가 지원 기구가 아니라 예술 실행 주체가 된다는 뜻이 된다. 세 번째 문제는 이런 조직 체계에서는 극장 업무가 전문성 있는 공연예술 기획 행정 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위 사무처 직원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능력 정도와는 관계가 없다. 극장은 극장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열정을 가지고 들어오는 전문 인력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극장장만이 아니라 기획, 홍보, 마케팅 담당 등 극장 스태프 전체가 마찬가지다. 이것은 미래의 공연 기획 전문 인력의 취업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어떤 극장장이 있더라도 한국 공연예술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필요한 교육을 받은 스태프들이 없다면 극장의 적극적인 활동은 불가능하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을 ‘영원한’ 대관 극장으로 못 박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관료”로 공연예술계에 기여한다는 태도도 큰 문제다.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이 처음 건립된 1981년의 조건과 현재 조건은 완전히 다르다. 많은 것이 미비했던 초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4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대관 극장’ 정책을 고수하려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40년이 되어가도록 변하지 않는 이 관료주의는 우리 국공립극장들을 관제극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대관 극장이 필요한 경우는 극장들이 기획/초청/제작 기능을 하지 않을 때다.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대관 위주의 극장 정책을 고수하는 우리 예술 정책이 극장으로부터 예술가들을 소외시키고 예술가들을 영원히 ‘지원금’의 수레바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대관 극장은 단기 임대사업자 노릇을 하면서 공연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관 심의’라는 이름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창작자들을 걸러낸다. 예술가들은 언제까지나 공간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예술지원금 제도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대학로 부동산 시장에 기여하는 제도’라고 자조되고 한국 연극이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도 예술가들이 국공립극장으로부터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은 예술가들을 줄 세우고 시혜를 주는 곳이 아니다. 예술가들이 주인이 되어 관객에게 봉사하는 장이다. 상주극단이 있든 없든 극장은 책임 있는 기획/초청/제작을 실행하여 당대에 필요한 예술을 시민/관객과 만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극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란 뜻이다. 오히려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의 국립극장처럼 극장 건물이 없으면서도 극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극장도 있다. 이런 극장에서 작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들은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이들 중에서 극장장이 나와야 한다. 극장장(이든 예술감독이든)의 임무는 행정 업무를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극장에서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결정하고 극장의 예술적 색깔과 방향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각 극장의 특성은 위로부터(어디가 위인지는 알 수 없어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계 구성원들이 느끼는 필요와 의지의 반영이 된다. 국공립극장이 이런 역동적 기능을 방기할 때 극장 책임자는 결국 ‘원만한 성과를 내고 다음 자리로 영전해 갈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

외국 도시들을 방문하여 연극이 보고 싶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러이러한 연극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실험적 에너지로 가득 찬 연극, 어떤 예술적 경향을 보여주는 연극, 대중적이면서도 그 나라의 특성을 보여주는 공연, 동시대 세계 연극의 초청 공연, 혹은 그 사회의 논쟁적 문제들을 담아내는 연극 등등, 이런 작품들을 공연하는 국공립극장/비영리극장이 어디냐. 돌아오는 답변들에는 대체로 사회적 동의가 담겨있을 것이다. 베를린이라면 샤우뷔네, 폴크스뷔네, 하우(HAU), 도이체스 테아터 등1), 파리라면 테아트르 드 라 빌과 아베스 극장, 오데옹, 콜린, 주느빌리에, 샤이오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 등등, 그리고 뉴욕이라면 뱀(BAM, Brooklyn Academy of Music), 링컨센터, 퍼블릭시어터, 아모리홀, 라마마, 뉴욕 라이브아트 등등등. 이런 식으로 추천할 수 있는 극장이 더 많고 더 다양할 수 있는 도시가 예술적으로 더 풍요로운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 누군가가 서울에서 어떤 연극을 보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정확하게 추천할 수 없다, 최소한 현재의 국공립극장들 중에서는. 번듯한 국공립극장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느 극장도 명확한 지향이나 작품의 범위를 밝히고 있지 않고 실제로도 공연되는 작품들로 구별되지 않는 까닭이다. 존재하지만 존재감 없는 극장,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가 없는 서울의 국공립극장들은 한국 공연예술의 장에서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 아르코와 대학로예술극장을 비롯하여 예술의전당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도 마찬가지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또 어떤가. 심한 경우 놀고 있는 것 같은 이 아까운 극장들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극장들을 예술가에게 돌려주어 관객의 것으로 되살려내어야 한다.

국공립극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담론이 활발해진 것은 국공립극장이 대거 지어지거나 복원된 2009년을 전후해서의 일이다.2) 그러나 지난 9년간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속에서 그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논의도 방어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극장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통해 연극 문화의 활력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개편 논의를 출발점으로 하여 국공립극장이 우리 연극 문화와 관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예술위가 지금까지 긴 기간 의견을 수렴해 왔겠지만 좀 더 적극적이고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1. 김재엽, 「베를린 공공극장에 대한 사소한 질투」 연극평론 2016 봄 158~162 참조.
  2. 2009년 이후 쓰인 국공립극장의 임무에 관한 담론으로 아래와 같은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허순자, 「공공극장의 기능과 과제: 아르코예술극장과 예술의 전당」 연극평론 2009 봄
    노이정, 「도시와 극장: 공공극장 담론의 발전을 위하여」 연극평론 2009 봄
    허순자, 「제작극장의 운영과 과제에 대한 사례 연구: 명동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연극교육연구 16권, 2010
    김나볏, 「국공립극장의 공공성과 논의의 생산성, 한팩 ≪한강의 기적≫ 대관 논란」 연극평론 2013 여름
    조만수, 「공공서비스 기관으로서의 극장의 임무」 연극평론 2015 여름
    이진아, 「공공극장의 대중화, 상업화」 연극평론 2016 겨울
    이양구, 「광장극장 블랙텐트와 새로운 공공성의 모색」 연극평론 2017 봄
    노이정, 「연극 예술 지원 정책의 개혁 방향-예술가와 향유자가 존중받는 제도를 위하여」 연극평론 2017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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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정

노이정
연극평론가. 공저로 『고함』, 『박정자와 한국 연극 오십년』, 『한국 현대 연출가 연구 1』, 『세월호 이후의 한국연극』,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친일과 냉전의 유산』 등이 있다. 도시와 연극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현대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제165호   2019-08-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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