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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우리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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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여름
이건 우리가 이전에 본 적 없는 일이다. 이건 지도자가 없는 민주화 운동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SNS 토론을 통해 행동을 취한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데서 시작한다. 때로는 돌파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자주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우리는 ‘링크 홍콩(LinkHK)’이라는 인터넷 포럼과 우리가 ‘공해(公海)’라고 부르는 여러 텔레그램 공개 그룹에서 대부분의 최신 소식을 얻는다. 대개의 경우, 시위에 참가하거나 시위에서 뭔가를 한다고 언급할 때, 우리는 우리가 꿈꾸고 있거나 뭔가를 꿈꾼다고 말한다. 예로 나는 몽콕(旺角, Mong Kok) 지구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을 꿈꾼다. 우리는 홍콩 정부가 우리를 체포하고 기소할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기는 것을 피한다. 올여름은 꿈으로 가득하다. 몇 백만의 홍콩인의 꿈 말이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규모가 작든 크든 여러 시위에 참가해왔다. 아, 맞다. 내 말은 내가 그걸 꿈꿔왔다는 뜻이다. 의도가 부당한 입법을 막는 것인 경우, 시위의 목표는 회의를 막는 것이다. 예로 나는 2005년에 WTO 반대 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시위자들은 홍콩 컨벤션 센터(香港 會議 展覽 中心, Hong Kong Convention Centre)에서 열리는 부당한 각료 회의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활용했다. 우리는 한국 농민들(활동가들)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들은 용감하고, 투쟁에 능숙했으며, 또한 동시에 부드러웠다(삼보일배). 하지만 홍콩 시위자들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6월 12일 오전, 나는 중앙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金鐘, Admiralty) 지구에 도착했다. 대개 10대와 아이들로 이뤄진 몇 만 명의 시위자는 이미 거리를 점령한 상태였다. 우리는 회의를 성공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그 뒤로 홍콩 경찰의 과도한 폭력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오후에 어느 상가 건물 정문에서 그들은 몇 천 명이나 되는 시위자들을 가두고는 계속해서 최루탄을 쏘아댔다. 다행히 군중이 도망치려는 중에 누가 깔리거나 다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같은 날에 어느 경찰관은 평화롭게 시위 중이던 시민의 머리에 고무탄을 발사해, 그를 실명하게 했다. 경찰은 기자들에게도 발포했다. 경찰은 어느 시위자에게 발포했고, 그는 피에 질식했다. 경찰은 다친 시위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병원들을 습격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한 번은 친구가 물었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지금의 역사를 어떻게 쓸까?” 나는 대답했다. “이건 중국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던져지는 불가피한 질문이지.” 내가 뭔가를 읽고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됐는지, 이게 그저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잊어버렸다. 아무튼.
중국 역사를 2백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아직도 근대화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은 그 어떤 만족스러운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1979년으로 돌아가도, 중국은 문화 혁명으로부터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참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시장을 세계에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산업화는 시작됐지만, 그는 시민들이 던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데는 실패했다. 덩샤오핑은 1989년에 일어난 텐안먼(天安門) 광장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시장은 번창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갈수록 부자가 됐다. 중국은 잘 사는 것 같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미루고 있다. 식민화라는 독특한 역사 때문에 홍콩은 중국 정부 통치 아래 가장 높은 수준의 법치와 인권을 누리는 유일한 도시이다. 그래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홍콩에서 자신의 탄압 정책을 되풀이하고 싶다면,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홍콩인들은 독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즉 중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똑같은 장애물을 다시 맞닥뜨리는 것이다.

한 번은 런던에 있는 친구가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중인데 왜 우리는 아직도 그걸 위해 싸우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너네는 너무나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당연시해왔어. 우리한테 그건 인권을 지키는 데 제일 좋은 방어책이거든.” 민주주의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빈 손으로 자신을 지키게 된다. 바로 우리처럼 말이다.
합리성의 실패
홍콩 경찰의 과도한 폭력에 대한 증거가 엄청나지만, 일부 홍콩인은 그래도 시위자들이 사회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심지어 시위자들이 얻어맞고 크게 다쳐도 싸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인간의 합리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들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을 토대로 논쟁하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더 이상 반박 못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 모든 곳에 있다는 게 놀랍다. 이들은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다(이들은 자기네가 유럽연합에 남으면 7천만의 터키인이 영국으로 이주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보리스 존슨에게 표를 던진다(그가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했든 상관없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다(그러나 그가 중국 정부에 맞설 때, 나는 그의 편이다. 용서를 빈다). 몇 명의 한국인은 박근혜의 복귀를 바란다. 합리성이 그 기능을 못할 때, 인류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아마도 국제 정치는, 제일 적절하게는 그게 우리 세상 불의의 징후라고 설명할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뒤, 인간들은 갈등에 평화롭게 대처하는 장치를 만들게 돼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고 식민화하며 중국 정부가 신장(新疆)과 티베트에 수용소를 설치한다- 이런 소식을 읽을 때마다 나는 세상에는 그저 정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이 고통 받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모두 방관자다. 역시나 여기에는 합리성이 설 자리가 없거나 우리에게는 도구적 합리성만 남은 세상이 주어질 뿐이다.
더 많은 꿈,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는 계속해서 최전선에 서는 내 학생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난 너희가 존경스러워. 너희는 저항하는 한 세대 전체와 함께 하잖아.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학생이던 때 우리는 다 해봐야 백 명밖에 안 됐거든.” 이건 밝은 면이지만, 이들은 동시에 절망의 세대이기도 하다. 약 일곱 명의 젊은이가 절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9월 2일부터 홍콩연예예술대학교(香港演藝學院, Hong Kong Academy for Performing Arts)에서 초빙 강사로 일하고 있는데, 여기는 내 분야와 관련 있는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이다. 이건 내게 꿈의 직업 중 하나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행복감도 없다. 나는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 내 행복이 어디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홍콩인 대다수는 이 감정을 나와 공유한다. 내게 보이는 유일한 희망이란 젊은 세대가 아주 용감하고, 똑똑하며, 창의적이고, 인정이 많다는 것이다. 홍콩은 미래에 언젠가 황금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전투 경찰, 깡패 경찰
언어란 흥미로운 것이다. ‘TG’는 ‘전보(telegram)’뿐 아니라 ‘최루탄(tear gas)’의 약자이기도 하다. 전투 경찰(riot police)은 소요(riot)를 진압하게 돼 있다. 하지만 영문법에서 명사 두 개를 합치면 첫 번째 것은 자동으로 형용사로 치게 된다. 즉 우리는 ‘전투 경찰(riot police)’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요를 일으키는 경찰이라고 말이다.

이런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서 홍콩 경찰로 위장한 중국 경찰관들이 있었다. 우리는 전투 경찰, 깡패, 또는 중국 경찰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희망이 거의 없다.
[원문(영어) 번역: 김유석]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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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팟투

얀팟투
홍콩 작가, 연출가, 강사.

희곡 <A concise history of future China>가 중국계 희곡 최초로 베를리너 페스트슈필레 극장(Berliner Festspiele)이 주최하는 테아트 트레펜(Theatertreffen)에서 선정되었다. 최근 뮌헨의 레지던스 극장(Residenztheater)으로부터 의뢰받은 <Happily ever after nuclear explosion>은 홍콩의 타이쿤(Tai Kwun Theatre)과 인천과 부천에서 열린 아시아 극작가 페스티벌에서 공연되었다.

제170호   2019-10-2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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