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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희망과 비극이 흩날리는
벚꽃동산

최창희_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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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이 어떻게 무대에 그려질까 궁금했다. 하얀 벚꽃이 흩날리는 그 동산이 어두운 연극무대에 표현되는 것이 가능할지… 기대에 부응할까? 연극의 첫 장면은 인상 깊다. 하얀 벚꽃이 바닥에 가득했고 배우들이 등장한다. 사각 사각 시청각의 공감각을 가지고 1막이 시작된다. 배우들은 벚꽃 위에 눕기도, 벚꽃을 뿌리기도 한다. 움직임 속에 배우의 옷에 그리고 모자에 내려앉은 벚꽃은 정적인 연극무대를 동적으로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그게 이 연극의 백미다. 모자에 떨어지는 벚꽃이 다시 머리위로 내려앉고 다시 배우의 몸으로, 그리고 무대 바닥으로 시처럼 흩날린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그렇게 시와 같다.

공연 포스터
공연 포스터
  • 격동의 시대에 과거와 현재가 교란한다. 20세기 초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벚꽃동산>은 격변의 시대에 과거와 현재의 가치가 뒤섞이면서 극중 인물들은 과거에도 현실에도 존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갈등한다. 현재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과거를 추억하는 벚꽃동산의 여지주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 그리고 그 현재를 끊임없이 각인시키려하는 로빠힌, 그러나 그는 농노의 아들로서의 과거를 늘 등에 지고 있다. 그런 그를 사모하여 과거에도 머물 수 없고 현재에 안착할 수도 없어 늘 불안한 여지주의 딸 바랴, 현실을 비판하고 미래를 꿈꾸는 대안 없는 지식인 뜨로피모프, 역시 그런 그를 사모하는 지주의 딸 아샤는 미래를 따라 꿈꾼다. 과거 농노제 폐지에 동의하지 않아 여전히 농노로 머물러 있는, 오로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 피르스! 극은 각각의 배우에게 그가 서있는 위치를 부여한다.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모여 있지만 그들은 서있는 곳도, 지향하는 곳도 모두 다르다.

    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라네프스카냐의 붉게 충혈 된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것 같다. 그리고 “마님이 나를 잊으시고 떠나셨어.”하며 회한에 젖어 모두가 떠난 벚꽃동산에 남은 피르스의 울림은 오래도록 무대를 흔들어 놓는다. 배우 하나하나의 연기는 그렇게 잘 짜여 진 직물같이 극의 완성도를 더해 준다. 극 사이사이 감초역할로 웃음을 제공해주는 가정교사 샤를로따와 집사 예삐호도프는 사실 극 중에서 가장 우울한 존재들이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늘 외로워하는 샤를로따와 행동이 모두 실수이고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예삐호도프가 이 극의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그 때문에 체호프는 이 희곡을 “미안하지만 이건 희극”이라고 언급했는지도 모른다. 비극적 상황에서 웃음을 만들어 내는 그들처럼 연극은 완성도 있게 잘 구성되어 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공연 포스터
  • <벚꽃동산>은 막과 막사이의 이동이 ‘예술’이다. 최근 많은 연극과 공연에서는 막의 이동에서 많은 실험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는 다른 극과는 다르게 주목할 점은 바로 ‘경계의 불분명’이다. 연극의 막과 막 사이는 연극 바깥의 공간이다. 소등된 무대에서 조용히 무대장치를 변경하는 연극에 없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러나 <벚꽃동산>에서는 막과 막 사이에 장난을 건다. 방금 전까지 극중 인물이었던 배우들이 연기 아닌 연기처럼, 직접 소품을 가져가고 가져오고, 그렇게 장난을 걸면서 비극적 연극무대를 희극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게 막과 막 사이는 무대가 아니면서 무대로, 연극이 아니면서 연극으로 기능하게 한다. 특히 2막과 3막 사이의 휴식시간은 이 연극의 장난기가 극에 달한다. 이 부분을 못 본 관객들은 안타까워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연극무대는 갈수록 유쾌해진다. 체호프가 ‘희극’이라고 규정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벚꽃동산>은 곳곳에 희극적 요소를 삽입하고 있다. 모두가 현실에 살고 있으나 현실 이외의 시간과 공간을 기대하는 그들은 모두 비극적 삶을 살고 있다.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그 곳을 모두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바라보고 갈등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불운한 샤를로따와 예삐호도프를 가장 희극적 인물로 설정해놓은 연출은 이 극이 가진 비극과 희극을 교란시킨다. 과거와 현재가 교란되듯, 막과 막 사이가 교란되듯, 비극과 희극은 그 경계를 모두 흔들어 놓고 관객을 웃으면서 울게, 울면서 웃게 만든다. 이것이 안톤 체호프가 기대하는 ‘희극’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연극이 무엇보다 희극일 수 있는 것은 극의 마지막이다. 벚꽃동산이 팔리고 모두 어딘가로 떠나게 된 그들이 무엇보다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이 비극이 아닌 희극이리라! 다만, 온전히 과거에 살고 있던 피르스 만이 모두가 떠난 벚꽃동산에서 잠이 든다. 과거의 가치였던 그것과 함께 오로지 과거인 피르스 만이 쓸쓸하게…

    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맨씨어터

태그 벚꽃동산, 안톤체호프, 오경택, 극단맨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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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

최창희 미술평론가
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미학과 예술이론을 강의하고 있다.과거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예술행정기관에서 정부예술행사 평가와 미술시장 조사를 기획,추진하기도 하였다. 예술정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고 만나는지에 대하여 미학,예술학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changhee.choi.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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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11호   2012-10-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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