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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고 명징하게, 성폭력가해자의 여정을 돕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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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처음 방문하는 곳에 갈 때 종이에 약도를 그려 집을 나서곤 한다. 핸드폰 화면 속 지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직접 그린 약도를 보는 것이 더 쉬운 이유는, 꼭 표시해야 할 방향과 지점들을 골라 손으로 그리면서 머릿속에 이미 길을 담아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 지도검색이 흔하지 않았던 때에는 새롭게 가보는 장소로 전화를 걸어 길을 묻곤 했는데, 가끔은 상대방이 내가 걷는 길을 따라 간판이나 골목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보이지 않지만 같이 걷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과 반가움이 배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전화상담을 받다 보면, 간혹 수화기 너머로 성폭력 가해자를 만난다. 통화는 대부분 짧게 마무리된다. 내가 안내할 수 있는 정보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성폭력을 재해석하는 길을 그린 나의 지도는 당연하게도 그가 원하는 길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 ‘어째서 내가 한 일이 성폭력이냐’는 분노 섞인 질문에 종종 질문으로 답하곤 한다. 피해자가, 또는 이 절차를 처리하는 담당자나 동료가 당신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이미 그의 손에는 약도가 쥐어졌고, 아마 목적지가 다르다고 생각하여 그 약도를 던져버렸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을 잘 마무리하고 일상의 회복을 원하는 것은 피해자, 가해자, 주변인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각자 선 위치가 다르고 환경과 역량이 달라서, 각자의 갈 길을 그려내는 지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향한 지도에는 ‘지지의 경험’, ‘사회경제적 지원’, ‘진심 어린 사과’의 지점이 표시될 수 있고, 그럴수록 목적지로 가는 길은 지름길이 된다. 가해자 역시 자신의 지도가 필요하다. 피해자의 상처에 대한 공감, 가부장적 남성으로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내면화된 여성혐오에 대한 발견,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직면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절차 등이 그 지도 위에 그려질 때 성찰과 회복을 향해 걸을 수 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비난하는 것이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부풀리는 독(毒)이 되듯, 가해자의 회피와 부인을 방치하는 것 또한 가해의 거짓을 부풀리는 독이 된다. 가해자가 중요한 인물이고 많은 일을 해왔다,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주변 사람들을 도왔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일 리가 없다, 등등의 말은 무책임하다. 살펴보면, 조직에서 쉽게 배제될 수 있는 인물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가해하는 것이 더 쉽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에게 선량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자의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은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너무 가벼이 여겨진다. 두 상황 모두 개입을 꺼리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조직과 공동체가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피해자에게 상황 설명과 대안 제시까지 요구하면서도, 가해자의 움켜쥔 손의 권력과 꾹 다문 입에 머금은 거짓을 어찌하지 못한다. 가해자의 성폭력 행위는 좀처럼 주목받지 않고, 피해자의 고발과 폭로에만 관심이 쏠려 가해자 보다는 피해자의 신상을 찾는 이가 많다. 가해자의 성폭력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발이 사건인 양 ‘미투 사건’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작년 하반기 재출간된 이윤택의 희곡이 독자들의 항의와 이를 수용한 출판사의 조치로 곧바로 절판처리 되었다.
(사진출처 : 온라인 교보문고)
조직과 공동체가 가해자를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면, 가해자가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직위를 내려놓고 공연에서 하차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공동체가 재범(再犯)을 막는 울타리가 되고자 한다면, 충동, 낭만, 남성성의 허울을 벗기고 성폭력 가해를 재구성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에 대해 충실히 답을 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하였나? 성폭력을 하기 위해 무엇을 이용하였나? 물리적 힘과 신체조건, 고용과 평판의 권력, 피해자 및 주변인의 애정과 신뢰 등등. 가해는 얼마나 반복되었는가? 가해 의도와 가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어떤 거짓말을 했는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일, 돈, 관계, 돌봄을 착취하여 피해를 가중시켰는가? 피해자를 고립시켰는가? 가해를 미화하거나 과시하였는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하였는가?
성폭력은 과시적이고 일방적인 남성중심적 성담론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인정받는 남성으로 만들어줄 것만 같던 지난 시절의 믿음은 폭력을 양산하고 관계를 빈약하게 만드는 위험한 그물이다. 이를 깨달아야만 가해를 멈출 수 있다. 자신의 지위와 경력을 위한 착취,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위한 성적 공격을 낭만적 연애 각본으로 포장하는 언행의 누추함을 직시할 때,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가능하다. 그가 손에 쥔 지도가 경력을 과시한 면책 주장과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피해자 비난의 지점을 향해 가도록 그려진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성폭력 가해사실이 알려진 인물의 귀환 - 구체적으로 작품발표나 강의, 심의 등 작업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다시 서는 것 - 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것은 단순히 작업 복귀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가해한 상황을 용인한 공동체가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공동체에서 중요했던 사람이라면, 그가 속한 현장은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성폭력 사건을 해석하고, 가해자의 반성을 촉구함으로써 진정한 회복과 복귀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 가해를 돌아보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조직이야말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진정한 안전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해자가 자신의 동기를 납득하고 스스로의 불완전한 면을 수용하면서 사건을 둘러싼 경험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혐오와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성과 공감과 배움의 힘으로, 가해자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 단호함과 명징함을 갖고, 가해자가 책임과 반성을 다 할 수 있도록, 그 성찰의 여정에 함께 하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태그 이산, 배우, 상담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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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이산 배우,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활동가
마임과 연극 공연을 한다. 솔로마임옴니버스 <구름텃밭> <스턴트맘>을 공연했고 지금도 꾸준히 마임작품을 만든다. 일주일 중 3일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전화를 받는다.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성폭력피해여성들의 이야기가 귀, 머리, 가슴에 머물고 통과하는 감각이 자신의 이야기와 교차하여 공연에 담기고 있음을 느낀다.

sanlee.mime@gmail.com 

제175호   2020-01-2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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