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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세상에서 뛰어보자, 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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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라는 대재앙으로 인해 예술계는 앞으로 나아갈 연료를 빼앗겼고, 2020년의 세상은 그렇게 멈췄다.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예술에 발을 들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주저앉은 채로 상황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예술에 있어서 저마다의 목표가 있었기에 우리에게 남은 열정과 의지를 마지막 연료로 삼아 전진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과연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예술(영화, 연극)을 해야 하는가? 여기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내야 우리의 예술이 될까.

사태가 심각해진 지도 반년이 지났고, 우리는 이제 인터넷 세상에서 비대면 화상 수업을 통해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우리는 이제 서로 마주할 필요가 없어지는 걸까. 기술이 더 발전하고 이에 적응하다 보면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공부’라고 믿을 것이다. 사람이 직접 마주하고 소통할 때 생겨나는 의미들을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 전원만 켜면 들을 수 있는 전공 수업의 편리함에 현혹되어, 학생들은 다른 의미들을 잊어간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어디까지나 차선책. 이를 통한 수업은 아무리 쌍방향을 강요해도 일방향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자신의 카메라 뒤에 숨었다. 카메라를 끄고 음소거를 한 채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술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일방적인 지식 습득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함께 토론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예술이라고 배웠거늘, 이는 독서실에서 <연극의 이해>와 같은 전공 서적을 펴놓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가며 공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실습 위주의 전공 수업은 일방적인 지식 습득의 관점에서도 한계가 있었다. 일례로 무대 조명을 배우는 수업에서는 아무리 조명을 켜서 보여주셔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한번 왜곡된 후 내용이 전달되었다. 수업마다 있었던 발표회는 모두 사라졌다. 발표회를 하는 사람도, 보러 가는 사람도 사라지고 오직 ‘시험’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영화 제작 수업의 상영회는 각자 집에서 동시에 유튜브 링크를 보는 형식으로 간신히 진행되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수업환경은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이러다가 예술하는 사람이 제일 경계하는, 예술하는 사람끼리의 예술이 되어버릴까 두렵고 슬펐다. 예술은 절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며 의미가 창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조건조차 충족되기에 20년도 1학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지금까지는 기본적인 이론 공부를 했으니, 이제 영화와 연극을 직접 만들 차례. 영화 촬영은 비교적 어려움이 없었다. 모이는 게 어려웠지만 웬만하면 화상 통화 프로그램을 이용했고 전체 회의는 각자 마스크를 낀 채로 카페 혹은 연습실에서 모였다. 힘들었던 건 예민한 시기를 지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공공기관의 장소 대관이 어려웠고, 돈을 내고 대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려고 해도 ‘학생 영화’, ‘촬영’ 등의 단어만 언급해도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에 대해 세상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제 56회 정기공연,
<바보들의 행진 2020 리메이크 버전> 포스터

연극 제작 실습은 서로를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못한 채 각자 컴퓨터 앞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대면 수업이 이루어진 날,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쓴 채로 눈인사만 나누었다. 모두의 첫인상은 '마스크'였다. 그 이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만 연습실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탁 트인 야외, 금잔디 광장을 연습실로 정했다. 우리는 교내 모든 공간에서 통과할 때마다 열 체크와 동시에 문진표를 작성했으며, 포스터 촬영을 위해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날이면 미리 관련 부서에 가서 출입증을 신청해 받아와야 했다. 이렇듯 공연은 연습에서부터 공연이 올라갈 때까지 ‘접촉과 대면’이 필연적이었다. 특히 연극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하며 의미가 생겨나고, 이에 관객이라는 외부인의 시선까지 더해져 완성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살고 있는 2020년 세상에서는 ‘연극’과 ‘비대면’이라는 단어가 공존해야만 했기에, 여러 공연이 '취소'되거나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송출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공연의 현장성을 포기한 형태임으로 한계가 있다. 다행히 학교 공연은 외부와 달리 수익성과는 한 발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예술대학 학생들은 젊음과 패기를 무기 삼아 변해가는 시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실험적인 공연 방식을 새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캠퍼스 내 금잔디 광장 위에 일명 ‘포장마차 의자’ 44개가 2m 간격을 유지하고 원 모양을 만들었다. 연기예술학과 제56회 정기공연, <바보들의 행진 2020 리메이크 버전>을 위해 펼쳐진 무대이자 객석이었다. 주된 무대로 사용한 탁 트인 금잔디 광장은 실제로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점은 물론이고, 관람하는 과정에서 관객 스스로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관객 간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이용하여 음성과 영상 파일이 송출되었고,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드럼의 라이브 연주가 더해졌다. 관객들은 각자 핸드폰으로 미리 만들어진 과거의 것을 확인하며, 눈앞에 펼쳐진 생생한 현장의 것을 확인했다. 이는 곧 과거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2020년에 성균관대학교 금잔디 광장에서 다시금 되살아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왜 1975년 과거의 이야기를 2020년의 코로나 시대에 가져와서 리메이크해야만 했을까. 극 속의 인물 병태, 영자, 영철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조차 검열로 인해 억압받는 시대를 살아가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꿈과 현실을 구분 짓지 못하는 바보입니다. 꿈은 꾸기만 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도 다 잊어버린 채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는 바보입니다. 그러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헤벌레 웃고 있는 바보입니다.” 억압된 현실에서 아무도 그들을 봐주지 않았기에, 그들은 꿈을 위해 바보가 되었다. 그들은 주머니 속에 꿈을 가득 넣어둔 채로, 누가 주인공이랄 것 없이 바보처럼 원의 안과 밖을 계속 뛴다. 잔디밭 위 관객과 배우 모두는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함께이기도 하다. 잔디밭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잔디밭에 내려와 의자에 앉아서 공연의 일부가 된 상태로 끝나는 작품의 형식을 통해 관객은 병태, 영자, 영철을 관조하는 동시에 그 인물 자신이 된다. 그렇게 과거의 텍스트는 ‘지속과 연결’의 원을 돌고 돌아서 현재의 우리에게 도착했다.

억압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로 분명히 존재한다. 당장 코로나만 하더라도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술대 학생으로서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우리만의 방법으로 예술을 하며 계속 전진해야 한다. 이 전진이 이어져 언젠가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일 년에 한 두 번 행사를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공간인 금잔디 광장에서, 이런 시기에 관객들을 직접 마주하고 공연을 올리며 우리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게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택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연극의 방식과 내용이다.

이 글은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문장구조로 요약된다. 그만큼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던 한 학기였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예술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우리의 연대는 함께하기에 소중하다. 그런 사실을 충분히 알았다면, 이제는 단순히 예술을 넘어 무엇을 향해 달릴지 고민하자. 우리의 걸음은 결국 어디에 도착할 것인가. 그 종착지를 인식하고 나아간다면 멀리는 물론이고 높이 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내어 우리만의 예술을 할지 고민하며 도움닫기의 시간을 갖고, 2학기에도 우리만의 길을 가자. 도움닫기 후 폴짝, 높이 그리고 더 멀리.

태그 바보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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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빈

한사빈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재학중이며 연극과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alice000524@gmail.com (인스타그램 mid__spring)
제183호   2020-07-2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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