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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가족의 제삿날은 어떤가요?
멧밥 묵고 가소

이연호_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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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는 감정을 갖고도, 우리는 ‘식사는 하셨어요?’ 식의 인사말을 습관적으로 주고받는다. 옆 집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었다던 가난한 시절의 공동체 문화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이 있다면 ‘밥의 신성함’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밥의 신성함’이 빛을 발하는 날이 바로 제삿날이고. 어렸을 때는 쉬쉬했던, 부끄럽고 창피스런 제삿날 가족 간의 싸움이 사실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 여기, 형준과 정준의 집안도 마찬가지다. 소품 하나하나가 마치 우리 집의 거실을 보는 듯한 무대하며, TV 축구경기에 추임새를 넣으며 거실에 떡 하니 누워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가장의 모습하며, 친척들이 모일 때면 꼭 한 명씩 끼어있는 술 취한 삼촌의 모습, 티타임에 늘 등장하는 가족사의 레퍼토리는 물론이다. 게다가 살갑게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흐르는 친척들 간의 이면기류라니! 연극 <멧밥 묵고 가소>는 형인 형준과 동생 정준이 주먹다짐을 하며 갈등의 최고조에 이르기까지 ‘일상’으로 이루어져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의 일상, 곧 식사시간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죽은 자와 산 자는 ‘밥상머리’ 앞에서 만난다.

    왜 제삿날일까? 제삿날 혹은 명절은 내가 누군가와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날이다. 아버지를 싫어하지만 그와 꼭 닮아있는 아들, 종교적 신념은 다르지만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부모님과 며느리, 형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는 동생, 떡 하니 성공해 금의환향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는 장남.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한 가족임을 확인시켜 주는 날이 바로 제삿날인 것이다. 그래서 미워하기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다가도 금방 깔깔거릴 수 있는 사이가 ‘가족’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이 날은 우리에게 다소간 감상적인 회상이나 슬픔을 허용하는 날이기도 하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다들 뭔가 억울하다. 고향에 방문하려다가 한 차에서 죽음을 당한 귀신들도 억울하고, 인생이 맘대로 풀리지 않는 두 가장들의 삶도 고단하기만 하다. 기독교인으로서 일 년에 몇 번씩이나 죽은 자들을 위한 의식에 참여해야 하는 큰 며느리의 부담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제사상을 혼자 차려야 하는 임산부 둘째 며느리는 또 어떻고!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던 한마디 한마디의 사투리는 점점 불안함을 조성하더니 마침내 꾹꾹 눌러둔 억울함을 표출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급기야 형제는 서로 주먹질을 하기에 이른다. 조상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밥상머리’ 앞에서 말이다. 이쯤 되니 앉아서 듣고 있던 귀신이 된 부모들에게 원망이 돌아가고, 얌전히 있던 둘째 며느리는 밥상을 엎기에 이른다. 아마도 제삿날은 모든 이들의 한을 토로하는 살풀이의 자리인 것 같다.

    연극은 한참 동안이나 서로 욕을 퍼부어 대던 가족들이 ‘멧밥 묵고 가소’라는 정준의 말에 정지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순간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나뿐이었을까? 그리고 잠시 후, 모두 다 귀신이 되어 제삿날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렇게라도 일 년에 몇 번씩 모이는 게 어디예요.”하며 즐거워한다. 여기저기 훌쩍이던 관객들도 비로소 함께 웃는다.

    <멧밥 묵고 가소>는 익숙한 소재와 캐릭터로 공감을 이끌어 낼 뿐 아니라, 마냥 긍정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지으려고 애쓰지도 않는 미덕을 보여준다. 자연스런 대사와 배우들의 앙상블, 죽은 자와 산 자들 간의 연결과 단절을 표현해 내는 신선한 연출 등은 소극장 공연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질적인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나에게도 부담스럽기만 했던 제삿날의 북적임이 다음번엔 더 친근하게 다가올 것 같다.

[사진제공] 극단 청맥

태그 멧밥묵고가소, 극단청맥, 최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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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

이연호 연구보조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좋아하는 관객
이메일 lyh912@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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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12호   2012-11-1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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