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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이지 않은 모범생들의 모범일리 없는 이야기
모범생들

임금님_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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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 너 모범생이니?

    이만하면 나 모범생인가? 아니지, 고리타분한 범생이라니!
    사람은 참 희한한 생명체다. 실로 이것이 옳은 선택임이 분명할 지라도 갈등의 언저리를 맴돌던 또 다른 선택, 다시 말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결과에 대해 늘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 '그래, 결심했어'의 마음으로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다 가보는 것도 좋지 아니 한가.

    먼저, 나는 모범생이다. 일단 모범생으로 나를 만들어 놓는다. 그래, 모범생 이거 좋잖아.
    쓸 줄은 모르는 사자성어 몇 개 섞어 가며, 미쿡인 앞에선 절대 말할 수 없는 영단어 몇 개 섞어 대며 조악한 입으로 세상을 논할 수 있으니 공부는 적잖이 한 거라 치고. 공부보다 중요한 인성? 사기 친 적 없고, 맞으면 맞았지 사람 때린 적 없고, 유난히 작은 가슴으로 하루에 수백 번 사소한 고민을 하다 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착하디착한 심성을 지녔으니.
    이만하면 모범생 축에 끼지 않나 싶은데 손끝에 느껴지는 이 오글한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범생이 같은 게? 라고 내던진 말에, 꾸물꾸물 올라오는 이 비릿하고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면.
    그렇다면 나는 모범생이 아니다. 모태 범생이도, 엄친아도 아닌 그저 그냥 모범생의 안위를 걱정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모범생의 변두리일 뿐이다.

    맞다. 나는 모범생이 아니다. 요즘 지나가는 학생들의 꿈이 뭔 줄 아는가? 판·검사도 의사· 변호사도 아니다. 연예인. 그야말로 주목받는 스타가 대세인 자기 표출의 시대에 모범생은 그다지 가지고 싶지도, 불리고 싶지도, 어쩌면 사양하고 싶은 타이틀일 지도 모른다. 놀 줄 모르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센스 없고, 책만 파고, 공부는 잘 하는데 할 줄 아는 건 공부 밖에 없는. 그래서 그것마저도 못하면 존재감을 확인 받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부르는 모범생의 아주 모범적인 이미지일 지도 모른다.

    모범생을 규정하는데 정답은 없다. 근데 분명 보기 좋은 답은 있다.
    연극 속 모범생들은 누가 봐도 모범생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자라나 주입식 교육을 받고 100점 인생을 강요받는 교육의 현장에 버젓이 서있으며 성적으로 분류된, 다시 말해 한번 걸러진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의 상위 3% 특목고 모범생들'로 헉 소리 나는 진짜 모범생의 명찰을 달고 있으니 이런 객관적 테두리에 갇혀본 적이 없는 자, 모범생 자체를 논하지 말라.

    그런데 이 잘난 모범생들, 너무 모범적이지 아니 하다?
    여기 모범생들은 그저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그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것은 일단 기본 전제이다. 공부도 잘 하는데 컨닝도 잘 해야 한다. 공부벌레들의 치열한 두뇌 경쟁이 아닌, 0.3%를 향한 치사한 생존 경쟁의 연속이다. 이들의 인생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모든 것은 숫자로 좌지우지.
    뭐든 게 성적순이요, 행복도 성적순이 된 작은 세상에서 미적분에 갇혀버린 숫자인생을 살고 있다. 수학점수 하나에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고,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뭔가 불쌍하긴 한데 조금 재수도 없는 범생이들의 무대 위 향연에, 어떠한 집단에 속한 이상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러니깐 너는 이해해야 한다고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모범생의 치사하고 치밀한 자기변명에 심심한 위로와 동정을 전하고 싶어진다.

    결국은 제 밥그릇은 지키고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넣으려다 실패한 똑똑한 비겁자들.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이 다를 뿐, 결국은 지금 내 이야기.
공연 포스터
  • 이 연극은 지독한 풍자극이다. 사회 상류층 언저리를 맴도는 주류 속 비주류들의 생존 본능 을 향한 그 추악하고 토악질 나오는 불편한 진실을 잘도 드러내고 있다. 경쟁사회가 지닌 대부분의 거북한 문제를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벌 지상주의, 빈부 격차, 학교 폭력, 종교 문제 등등 갈등의 소재는 모두 스치고 간다고 볼 수 있다. 잘 못 건드리면 진부하고 구태의연할 수 있음직한 소재들을 적당히 던지고 휙휙 감아올리는 것이 기존의 주제 강요의 연극에 비해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다시 말해 이 연극 치고 빠지는 것을 참 잘 한다. 깊이 파고들지는 않되, ‘아, 그거구나’라며 되새김질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여러 곳에 심어 놓았다. 관객의 머리 굴리기를 충분히 유도시키니, 자칭 웰 메이드라고 내거는 타이틀에 딴죽을 걸 필요는 전혀 없다.
    게다가 여심을 울릴만한 외형적 요소를 양껏 갖춘 비주얼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력에 내용과는 별개로 사심의 눈빛을 담은 관객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볼거리 위주의 연극은 아닌데 볼거리도 제공되는 것에 눈 호강시킬 마음이 충분히 돋는 연극이다. 종태역의 수트발 아니, 교복발 비주얼엔 나도 저절로 눈길이 가더라.
    대사 없이 행동과 절제된 움직임만으로 시작되는 배우들의 연기는 극의 전반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무대 연출의 묘미이니 놓치면 다시 보는 게 현명할지어다.

    운동을 잘 하면 운동가가 되고 음악을 잘 하면 음악가가 되는데, 공부를 잘 하면 뭐가 되죠?
    공부를 잘 하면 뭐가 되죠???
    이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을 원한다면, 자칭 모범생 명준이를 만나 보는 게 어떨까.

[사진제공] (주)이다엔터테인먼트

태그 모범생들, 풍자극,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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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임금님 회사원
서툰 글쟁이.
최근 관심사는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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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4호   2012-05-3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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