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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인가, 변명인가
<더 게임 - 죄와 벌>

박현정 _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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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임 - 죄와 벌
  •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사건 담당 검사 뽀르피리는 한 청년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은 대학생인 라스꼴리니꼬프다. 그러나 라스꼴리니꼬프는 완강히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 뽀르피리의 직감은 이미 라스꼴리니꼬프를 향해 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설전이 시작된다.

    연극 <더 게임 - 죄와 벌>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검사와 용의자 청년의 심리 게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등한 비중으로 하는 심리 게임이라기보다는 청년의 심리에 더 치우쳐진 것으로 보인다. 뽀르피리가 라스꼴리니꼬프의 논리에 존재하는 허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라스꼴리니꼬프의 심리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 연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라스꼴리니꼬프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또한 그는 누구이기에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뽀르피리가 라스꼴리니꼬프를 심문할 때 사용했던 그의 논문은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의 모든 생각은 논문 안에 집약되어 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죄와 정의에 대해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고 있다. 그가 주창한 범죄 이론에 따르면 비범인은 범인과 달리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한계도 없다. 그의 범죄이론이 담긴 논문을 알고 있는 뽀르피리,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논문에 대해 알게 된 관객은 라스꼴리니꼬프가 가지고 있던 비범인에 대한 열망이 그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하였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비범인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살인을 저질렀거나, 혹은 자신이 비범인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이 비범인인지 확인하고 싶은 경우에도 분명히 그 자신이 비범인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인다. 단지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살인을 한 것이다. 어떤 이유이든지 그는 비범인은 범죄에 자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 그렇다면 살인의 결과에 대해서 그는 자유로운지, 악독한 전당포 주인 알료나를 죽이면서 그는 무엇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그의 말처럼 동네 사람들의 행복, 혹은 더 나아가 사회의 정의 실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솔직히 보자면 라스꼴리니꼬프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의 비범함을 확인하기 위해 알료나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에게 진 빚과 그녀가 가진 돈 때문이었다. 뽀르피리가 지적하듯 라스꼴리니꼬프가 알료나를 죽이면서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따를 죽인 것은 절대로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말처럼 큰일을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희생도 아니다. 그 말들은 그저 그의 변명일 뿐이다.
더 게임 - 죄와 벌

무대와 객석에는 거대한 거미줄이 설치되어 있다. 거미줄은 단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논리도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거미줄은 마치 그의 논리와도 같다. 오랜 시간동안 쌓이고 쌓여서 완성된 것. 그의 논리는 곧 그의 생각이고, 신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거미줄이 되어 스스로를 압박하고 옭아맨다. 거미줄을 만든 것도 라스꼴리니꼬프이고 그 거미줄에 갇히는 것도 라스꼴리니꼬프다.

연극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라스꼴리니꼬프의 생각은 주제를 표현하고자 하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그의 생각이 주제 자체는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가 말하는 철학적인 대사들을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지만, 동의와 함께 의문을 가지게 한다. <더 게임 - 죄와 벌>은 19세기 러시아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죄와 그 죄를 처단하는 정의에 대하여 한 평범해 보이는 대학생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펼쳤고, 그대로 행했다. 아마도 그는 그가 생각한 정의로 인해 벌을 받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범인과 비범인을 떠나 한 명의 인간으로,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대다수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 세계는 진정한 정의를 펼치고 있기는 한 것일까? 과연 ‘정의’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사실은 가장 쉬운 방법들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진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과연 라스꼴리니꼬프 단 한 명뿐일까?

어쩌면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19세기에도, 지금도 여전히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답 없는 질문이라 하여 답을 찾기 위한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연극은 최소한 우리가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 출입구의 방향은 제시해준다. 파고들고 있다.

사진제공 [명품극단]

태그 더 게임, 죄와벌, 도스토예프스키, 명품극단, 김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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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박현정 대학생
1992년생. 문예창작과에 다니고 있으나, 문학보다는 공연을 더 사랑하는 한 사람.
언젠가 창작자와 관객을 잇는 제대로 된 공연 평론가가 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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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19호   2013-03-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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