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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발견한 청춘과 희망
청춘예찬

한성옥 _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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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 거기 있는 줄도 몰랐지만, 돌아보면 누구나 다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시절. 눈물로 지새운 하얀 밤조차 애틋했다고 말하게 되는 시절. 청춘, 누구나 생에 한 번은 거쳐 가는, 그러나 모두에게 같은 무게는 아니었던 시간. 연극 <청춘예찬>은 그 ‘청춘’을 노래한다. 그러나 우리가 으레 생각하기 마련인 그런 빛나는 청춘은 아니다. 따뜻한 봄, 내리 쪼이는 햇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듯한 뜨거운 열정. 이런 청춘의 스테레오 타입은 이 연극에는 없다. 그런 것 없이도 청춘을 노래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청춘예찬’이라는 제목은 역설처럼 보인다.

    주인공 ‘동원’은 나이로 보면 분명 ‘청춘’이다. 고등학교에 4년이나 다니고 있지만 이제 겨우 2학년에 스물두 살 청년. 그러나 그는 순수하거나 열정으로 가득하기는커녕 학교는 몇 주 째 결석 중이고, 아빠에게는 노가다라도 좀 뛰라고 말하면서 친구라는 이들과 기껏 가는 곳은 싸구려 티켓다방이다.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따위를 생각해봤자 결론은 나지 않는다. 기껏 생각한다는 게 일본에 건너가 파칭코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과 허영으로 점철된, 가공된 희망에 지나지 않음은 알지만 그는 모른 척 한다. 그 헛된 꿈에 함께 속는 척 하는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하코방 같은 집에서 술을 마시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홧김에 뿌린 염산에 눈이 멀어 안마사로 일하며 다른 눈 먼 남자와 살고 있다.

    여느 청춘 드라마처럼, 동원에게도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 여자는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눈부시지만 내면에는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거나,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캔디처럼 밝고 씩씩하게 이겨 나가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여자가 아니다. 여자는 동원보다 나이도 많고,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 탓에 다리에 보조 기구를 찬 채로 뒤뚱뒤뚱 걷는다. 여차하면 간질로 눈을 까뒤집고 게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원은 천대받는 그녀를 자기도 모르게 감싸주고, 결국 하룻밤을 보낸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를 깔보고 욕하지만 결국은 허허 웃어버린다. 동원의 아빠는 그녀를 감싸주기는커녕 네 먹을 건 네가 알아서 벌어 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싫은 티를 낸다. 하지만 결국 세 사람은 관처럼 좁은 방에서 함께 살고, 밤이면 팔베개를 해준다. 셋 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사람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감싸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결핍’때문일 것이다. 어딘가 지나치게 모자라기에, 그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아니라, 세상 귀퉁이에서 ‘같이 미칠’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을 수 있다. 손바닥만 한 이불을 나눠 덮고 함께 누운 곳이 설령 관속일지라도 그들은 따뜻하다.
청춘예찬
  • 헛된 희망 같은 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동원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혹은 거기다 돈까지 많은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또 결실을 이룬다면? 그래서 신분상승을 하고 그 덕에 아빠는 참치를 잡는 대신 골프나 치러 다닐 수 있다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건 이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동원의 선생님은 말한다. ‘행복해라. 넌 그래야지. 젊으니까.’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찾고 찾아봐도 세월이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질 젊음뿐인 청춘에게 과연 젊다는 것이 희망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섣부른 희망은 결국 또 다른 절망만을 불러올 것이다. 청년(동원)이 마음을 고쳐먹고 학교에 열심히 나오려고 했을 때, 선생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며 나서서 매를 맞겠다고 했을 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독후감까지 써왔을 때, 선생이, 학교가, 사회가 그를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냉정하게 던져버렸다. 동원에게, 청춘들에게 희망은 낚시질 같은 것이다. 희망은 가능성과는 전혀 다른 말인 것이다.

    오히려 쓰레기 같은 청춘이 갈 곳 없는 간질병 환자를 만나고, 그들 사이에 죽음처럼 따뜻한 위안이 생기는 것이야말로 차라리 진실 된 일이다. 예찬해야하는 것은 ‘청춘’이 아니라 그러한 함께함, 혹은 누구도 손 잡아주지 않는 이에게 손 내밀 수 있음이 아니었을까. 서로에게 관심도 없는 척박한 땅 위에서 혼자가 아니라 같이 미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 판도라 상자 속에 남은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같이 미칠 수 있는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청춘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른다. 발작처럼 순간일 청춘도, 야광별 같은 희망도, 언젠가는 사그라질 따뜻한 온기도, 함께할 이가 있다면 눈앞에 염산이 뿌려지는 순간도 어쩌면 정말 함박눈이 내리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극단 골목길]

태그 청춘예찬, 박근형, 극단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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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옥

한성옥 회사원
대학에서 전공한 문학 혹은 연극,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자 함.
희곡을 읽다가 연극을 찾아다니게 된 관객.
creamblue_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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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0호   2013-03-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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