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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거지”
<히스토리 보이즈>

김연희 _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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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보이즈
  •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며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해 분노하고, 전인교육에 대한 열망을 외쳤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한 학생이 생기기라도 하면 언론은 교사의 모범적인 모델인 키팅 선생과 학생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새기며 이러한 교육을 우리도 실행해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일 뿐,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자, 수학능력시험 전국 1등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인터뷰를 보는 수많은 학생들은 오늘도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입시제도 속으로 걸어간다.

    1980년대 영국 북부의 낙후한 도시 셰필드의 한 공립 고등학교 영재반 학생들도 옥스브리지Oxbridge,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합쳐 세계 명문대학의 대명사 격으로 부름 를 향한 입시제도에 파묻혀있다. 시(詩)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해독제라고 믿는 감성적인 문학교사 헥터, 뻔한 답으로는 명문대에 갈 수 없으니 기존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보도록 아이들을 닦달하는 역사교사 어윈, 역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부분과 남성주의 역사관에 분노하는 역사교사 린톳. 그들 아래에서 학생들은 입학사정관들을 매료시킬 답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학교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야망에 가득 찬 교장은 이 영재반 아이들을 옥스브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시키고자 교사들을 다그친다.

    이 작품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어느 것도 구분 짓지 않고, 선과 악도 없이 모든 것을 관객의 판단에 맡긴 채 제3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헥터는 아이들에게 다가올 인생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도록 문학으로 보듬어준다. 심장으로 문학을 이해하라 말하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전인교육의 상징인 헥터는 학생을 오토바이에 태워 성추행을 일삼는 교사다. 오로지 대학 하나만을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듯한 어윈의 교육방식은 학생들이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더 크게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준다. 하지만 그는 학생을 사랑하는 동성애자에 학력 위조까지 한 비도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자신감 넘치고 똑똑하기 만한 우등생 데이킨은 ‘니체’를 ‘니쇼’로 잘 못 읽는 허술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유태인이라면 누구나 분노해야하는 홀로코스트 앞에서 유태인 소년 포스너는 “그저 역사적 사건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학생 스크립스는 “하나님은 엄청난 짝사랑 중이고 우린 하나님한테 빚진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히스토리 보이즈
  • 도저히 어느 편도 들 수 없게 만드는 교사들의 행동과 짧게 배운 세계사에 대해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공연을 보는 내내 다른 연극처럼 마음 둘 캐릭터 하나 찾지 못하고 극이 그렇듯 나도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호하고 복잡한 이 작품은 그래서 마음이 아닌 머리로 극을 이해하는 재미를 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관객일 뿐인데도 무대 위의 학생들이 토론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가 펼쳐질 때마다 나도 함께 그들과 생각하고 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넘겨줘라.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거지” 헥터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막이 내리고, 커튼콜은 책 한권이 헥터를 시작으로 학생들에게 넘겨지고, 학생들은 다시 그 책을 선생님들의 손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다시 헥터에게 돌아오게 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굳이 선생님이라는 직업과 학교라는 공간이 아니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느끼는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그것이 상대방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 또한 많은 것을 받고, 느끼고, 넘겨주게 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사진출처] 두산아트센터

태그 히스토리 보이즈, 김태형, 앨런 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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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연희씨

달콤한 연희씨 책보다 공연과 여행을 좋아하는 도서관 사서
아직 서툴고 모자란 관객
트위터 @sweet_kyh / 블로그 likekangt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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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1호   2013-04-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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