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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라오지앙후 최막심>

이선미_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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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그리스인 조르바』가 1940년대 연해주에서 한국성 ‘최’, 러시아에선 ‘철수’만큼이나 흔하디흔한 이름 ‘막심’으로 다시 태어났다. 떠돌이 혹은 자유인(라오지앙후)의 영혼을 가지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난 아직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지 못해 연극 <라오지앙후 최막심>과 원작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기사에서 본 것처럼 좀 더 사람들 간의 갈등과 그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이야기엔 전적으로 동의를 보낸다. 연극에서의 ‘자유인 최막심’(배우 남경읍)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지만, 나에겐 1940년대에 조선도 러시아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고 있는 인간 군상과 거기에서 서로 대조되는 남자와 여자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오지앙후 최막심

  • 최막심은 말 그대로의 ‘자연인’이다. 호탕함을 넘어 약간은 음흉하기까지 한, 거리낄 것이 전혀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정착하고 싶으면 정착하는, 발길 닫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최막심과 정 반대되는 인물 김이문이다. 김이문은 많은 것을 배웠고,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정해진 규범과 생활 속에서 살아간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체 극을 이끌어 간다. 하지만 나를 더욱 주목하게 한 것은 최막심과 김이문이 아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최막심과 김이문이 정착한 앵화촌은 러시아의 어디쯤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곳엔 베트남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오르땅스 여사와 말 못하는 과부 로사, 그녀를 짝사랑하는 이차만이 살고 있다. 이미 마을의 수많은 남자들은 전쟁으로(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마을을 떠났고, 여자들은 아편을 재배하며 겨우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전쟁으로 죽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아야하는 남자들과 그것을 끊임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여자들이 있다.


    말 못하는 과부 로사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이차만의 이야기도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진다. 이차만은 로사를 짝사랑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차만이 아닌 로사의 잘못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녀는 반발조차 할 수 없는,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 얽힌 운명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로사는 이차만과 밤을 보내야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반항도 거부도 아닌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온 몸을 축 늘어트린 모습으로 서 있는 것뿐이다. 가장 상처받은 사람은 로사일터인데, 이차만은 포효하며 뛰쳐나가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로사는 스스로 죽음조차 선택하지 못하고 동네 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뿐만 아니다. 최막심의 연인 오르땅스 여사는 어떠한가? 그녀는 작품 속 여성 중에서는 가장 진취적인 인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자유로운 여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막심과 결혼을 하게 되는 순간 그의 발에 키스함으로써 또다시 종속적인 관계에 정점을 찍어 버린다. 김이문의 심부름을 떠나 있는 최막심이 어느 술집 여자와 살림을 차렸을 때에도 순진하게 기다리는 모습과 김이문의 가짜 청혼에 설레어하는 모습도 그렇다. 최막심과 김이문의 표현처럼 그녀는 <라오지앙후 최막심>에서 여왕과도 같은 존재인데 말이다.

  • 라오지앙후 최막심


    작품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며 오르땅스는 폐병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오르땅스의 죽음 앞에 작품 속의 여자들과 남자들은 잠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죽음이 마치 축제인양 춤을 추고, 그녀를 치장했던 물건들로 자신을 치장하며, 아편을 피워보는 일탈도 감행한다. 반면 최막심은 자유롭던 본인의 모습이 아닌 앵화촌의 탄광에 들어가 하염없이 땅만 판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도 잠시 김이문과 최막심은 남은 폭약으로 탄광을 폭파시킨다. 그리고 아코디언을 메고 다시 자유인의 모습으로 마을을 떠나지만, 여자들은 거기 남아 아편을 만들며 하염없이 떠난 남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자연 그대로의 자유인 최막심의 이야기이지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속 한 켠에 더욱 찌릿찌릿 남아있다. 심수봉의 노래가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 했던가.


    [사진제공] 명동예술극장

태그 최막심,남자는배여자는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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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이선미 회사원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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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24호   2013-05-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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