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가득 채운 배는 침몰을 예고하듯 기울어져 있고 배 위에 올라탄 등장인물들의 삶 역시 쉴 새 없이 요동친다. 파국을 향해 치닫듯 배는 거침없이 질주하고 운명의 절정에 내몰린 등장인물들의 삶은 불가항력처럼 걷잡을 수 없다.
천승세 작가가 1964년 발표한 <만선>은 한국 근대 리얼리즘 연극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약 5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무대 위에 오른 <만선>의 이야기는 2013년의 현재에도 여전한 호소력을 발휘하여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주인공 곰치의 눈은 불을 내뿜듯 시종일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평생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부답게 꾸밈없이 거친 말투와 산전수전을 모두 겪어 본 사람으로서의 끈기도 지녔다. 하지만 그의 포기할 줄 모르는 도전정신은 되려 그와 그의 가족의 목을 조르는 족쇄가 된다. 욕망을 쫓지만 종국에는 비극을 맞고 파멸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곰치의 배는 또 다시 그의 아들을 앗아간다. 이미 세 명의 아들을 데려간 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절규하는 구포댁을 바라보며 남은 아들마저도 나이가 차면 배에 태울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곰치의 눈빛은 광기의 그것과 닮아있다.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만선의 꿈을 놓지 못하는 곰치의 모습은 미련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하지만 소시민으로서의 삶에서 유일하게 꿈꾸는 희망이 처연하게 꺾이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오히려 곰치의 선택을, 곰치의 속내를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곰치에게 만선의 꿈은 스스로의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인 까닭이다.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희망일지라도 그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삶은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곰치도 오늘날의 현대인들도 신기루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내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