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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를 알까?
<데모크라시>

이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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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바람이 매섭던 1970년 12월 7일,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 위령탑 앞에 헌화한 뒤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의 숙연한 행동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무언의 침묵에서 전해져 오는 진심어린 사죄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라는 빌리 브란트의 말과 함께,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폴란드 유태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독일을 대표해 참회의 눈물은 흘린 사진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된 지도자 빌린 브란트.

    연극 <데모크라시>는 소위 동방정책으로 독일 통일의 근간을 놓은 지도자였던 빌리 브란트의 정치역정을 토대로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특히 ‘육천 만 개의 갈라진 목소리’라는 부제처럼, 하나의 통일된 결론 없이 저마다 소신의 이름이든, 정당의 이름이든, 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궤변이든, 중구난방의 의견으로 충돌을 빚을 때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옷에 가장 걸 맞는 방식인 지 묻고 또 묻는다. 형태 또한 무대에 오르는 10명의 남자배우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정치적 언어 이면의 가려진 민주적 속살을 파헤친다. 빌리 브란트를 위시해 그의 오른팔이었던 호르스트 엠케Horst Ehmke, 추후 브란트 뒤를 이어 총리가 된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동독 비밀경찰 권터 기욤Gunther Guillaume 등 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높이 쳐든 동반자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명백히 토해낸다. 즉, 실화가 가미된 그 엇갈린 시선과 목소리로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함수관계를 그린다.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현실의 희극과 비극의 갈레길 역시도.

    데모크라시

    무려 40년 만에 독일 진보정당 사회민주당의 당수 빌리 브란트가 수상으로 선출된 시점인 1968년 10월 21일 오전 11시 22분으로부터 연극은 문을 연다. 그 뒤 독일 통일의 밀알로 평가 받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이어지고, 그것이 못마땅한 보수 야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며 반기를 든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독의 수상 빌리 브란트는 의회 해산이라는 강력한 맞불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다. 빌리 브란트는 연합 정부로 수상이 되었기에 결코 쉽지 않은 정치적 도박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빌리 브란트의 편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권력을 잡으며 더욱 진보적 색깔의 사회정책을 내놓는다. 또 앞서 거론되었듯 폴란드 유태인 게토 위령탑 앞에서 진심 어린 추모 행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 빌리 브란트는 더욱 팔을 걷어붙이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밀어 붙인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정치적 신념과 권력도 점차 내부의 분열과 이견으로 힘을 서서히 잃어간다. 급기야 빌리 브란트가 총애했던 수행비서 권터 기욤이 동독의 간첩으로 밝혀지면서 수상 직에서 전격 자진사퇴한다는 것이 극의 주요 내용이다.
데모크라시
숨 가쁘게 독일 현대사를 무대에 수놓으며, 정치적 이상과 현실 속의 간극에서 오는 고뇌와 갈등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때론 전진하고 때론 후퇴하는 역사의 발걸음을 마주하게 되는 연극 <데모크라시>. 특히 ‘간첩 스캔들’로 불리며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빌리 브란트와 권터 기욤의 관계가 가장 흥미진진하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동독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기욤은 간첩 활동을 중단한 지 오래되었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서독의 정계 개편과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진력했다. 뿐만 아니라 마르쿠스 볼프Markus Johannes Wolf동독 국가보안상 역시 “기욤 사건으로 브란트가 사임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동방 정책으로 인해 동독은 이익을 얻고 있었기에 그의 사임은 국가보안성 정책에 큰 혼란을 불러왔다”고 회고했다고. 더 재미있는 것은, 세월이 흐른 뒤 연극배우였던 빌리 브란트 아들 마티아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사회 최대의 스캔들로 회자되었던 ‘기욤 사건’을 다룬 독일과 프랑스의 합작 TV 드라마 ‘권력의 그늘에서’에 간첩 기욤 역으로 출연했다는 사실도 있다는 것. 한 인터뷰에서 마티아스는 “사람들은 기욤에 대해 이름과 사진 한 장외엔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면서 “선친과 동독에 이중으로 충성하고 아버지를 파멸시킨 인물의 내면을 만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는 물론 연극에 나오지는 않는다. 허나 마티아스 말마따나, 2차 대전 후 독일 사회 최대의 스캔들로 회자되었던 기욤 사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자꾸만 갈라지는 목소리들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적일 수 있다. 연극 <데모크라시>는 그 양날의 칼에 대해 진중한 자세로 심사숙고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란 요체인지, 그리고 절대 절명의 순간에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이름에 걸 맞는 행동인 지. 연극 속의 세상을 나와 연극 밖에서 행해야 할 우리의 미완의 숙제, 민주주의,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빌리 브란트가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행했던 연설에서 다시금 민주주의 단초를 되새겨 본다.

데모크라시

“젊은이들은 자주 제가 무조건적인 ‘예’나 ‘아니오’로 답변하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의 진리를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 저로부터 그런 답을 듣기 원하는 그 밖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다른 모든 진리를 배제하는 오직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무수한 진리가 존재한다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저는 다양성의 가치를 신뢰합니다.”

[사진제공 : 극단 몽씨어터, 바나나문 프로젝트]

태그 데모크라시, 극단 몽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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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규

이영규 연극 게릴라
셰익스피어가 그랬던가. "인간은 자기의 역할도 모르면서 무대에서 한바탕 연극을 하고 떠나가는 존재"라고. 한 바탕 멋진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나그네로 인생의 봄을 기다리는 중. 이따금씩 [씬플레이빌]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옷에 꼭 맞는 역할을 위해 이리저리 연극무대를 배회 중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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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8호   2013-07-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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