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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에 대하여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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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2013.08.22 ~ 09.01
윤성호 작, 전진모 연출
  • <슬라이딩 도어즈>라는 기네스 펠트로가 나온 영화와 “그래 결심했어!”를 유행시킨 코미디 코너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떠올랐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해 가끔 안타깝게 상상해보곤 한다. 가령 내가 대학을 안 갔더라면, 다시 성당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뭐 이런 따위 가정법 놀이 말이다.

    중간 휴식을 포함해 2시간 40분이나 되는 긴 공연을 보면서 젊은 연극인들이 느끼는 무기력과 쓸쓸함이 마구 다가왔다. 우리는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로 갈지 몰라 좌표를 잃고 방황하며, 무수한 우연 위에 흩어진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연극은 어느 정도 유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많은 선택을 강요하는지….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미국의 시인 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린 반드시 둘 중 하나의 길만을 선택하게 되어있기에 포기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기도 쉬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지나버린 선택을 5년 뒤, 10년 뒤 계속 아쉬워한다는 것은 너무 청승맞아 보인다.

    신자유주의가 만개한 지구에서 사람들은 나날이 더 오래 일하고, '고객님' 대접을 받으며 소비의 유혹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잘 나야 하고, 더 빠르게 달려야 하고, 더 젊고 아름답고 건강해야 한다. 심지어 노는 시간마저도 계획적으로 효율적인 여가를 보내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만 같은 시대가 아닌가.

    그런 어떤 때의 한물간 인문사회과학 계간지 [시대비평] 사무실 사람들이 보내는 절망스러운 일상을 그린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이 연극을 보면서 90년대에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한 나와 지금 2~3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슬쩍 견주어 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하여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실종된 말을 누린 마지막 세대일 수도 있는 나는 실패와 도전, 좌절과 재기의 기회마저 차단당한 20대들에게 막연한 죄의식마저 느낀다. 학생이니까 치기 어린 실수를 하고도 큰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물정 모르고 덤비다 폭삭 무너지는 느낌 속을 허우적거리며 술에 빠져 지낼 수도 있었던 나의 20대에 비하면 삭막하기만 한 오늘을 버텨야 하는 그들이 느낄 압박감은 얼마나 클까? 그 답답함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시대비평]을 지켜온 김남건 같은 선배들의 투덜거림을 보자면 참 한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타인의 일상에 대해, 타인의 삶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쓸데없는 일, 소용없는 일 하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 어떤 일이 쓸데없고 소용없는 일인가?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늘 감탄하고 만다. 요즘이야 광고성 게시물이 더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한 가지 단어만 검색해도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보석 같은 정보들을 찾기가 훨씬 쉬웠다. 자료를 정리해 놓은 그들의 잉여짓, 허튼짓, 쓸데없는 짓으로 나는 필요한 지식을 여러 책 읽지 않아도 가뿐히 수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힘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자기의 명예를 높이는 일도 아닌데 희망버스를 타고, 대한문 분향소에서 시민 상주단을 자처하며, 소외와 차별이 자행되는 현장 곳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돈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는 세상에서 모두 함께 느리게 살자고 말하기는 참 어렵고 또 부질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지난 선택지를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며 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당장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남들 눈에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도 썩 괜찮은 인생살이 방법인데 말이다. 그리 살다 보면 내가 선택한 인생의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애틋한 만큼 타인의 인생, 타인의 일상에 대한 넓은 오지랖과 판단도 조금은 덜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사진제공 : 제12언어 연극 스튜디오]

태그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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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 장래희망 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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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1호   2013-09-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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