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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에 맞서는 그녀들만의 유쾌한 무기
<데스데모나>

백요선_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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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량하고 음란한 코미디’라는 신선한 장르(?)에 이끌려 보게 된 연극 <데스데모나>. 실험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낯선 정체의 연극은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새로운 버전이다. 질투의 화신 오셀로 이야기라고 하니 뭐 새로울 게 있겠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오셀로를 생각하고 극장에 들어선다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데스데모나>는 <오셀로>를 요리조리 비틀고, 뒤집고, 한 마디로 말해 <오셀로>를 완전히 새롭게 읽은 연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데스데모나>에는 ‘오셀로’가 아예 나오지 조차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나오느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선 억울하게 목 졸려 죽거나 칼 맞아 죽었던 여자들인 데스데모나와 비앙카, 에밀리아‘만’ 등장한다. 그녀들이 나와 도대체 뭘 하냐고?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그녀들은, 우리가 알던 사랑에 울고 웃고 죽고 사는 그녀들이 아니라는 것.
데스데모나
<데스데모나> 2013.09.06~09.29
폴라보겔 작, 박상현 번역/연출
데스데모나

이를테면 <오셀로>에서 데스데모나는 억울한 모함을 받아 어이없게 죽어버린 순결의 화신이었다면 <데스데모나>에선 좀 많이 다르다. 샤넬과 구찌를 온 몸으로 부르짖는 소유욕의 화신이며 단지 쾌락과 재미를 위해 매음굴 체험도 마다하지 않는 센(?) 여자로 등장한다. 창녀인 비앙카와 스스럼없이 친구를 하고 동성애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다가 화끈하게 온 몸으로 혈투를 벌이는 데스데모나로 나온다 이 말이다.

데스데모나 뿐만이 아니다.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그녀들이 우리가 알던 그녀들과는 다르게 나온다. 이 낯선 캐릭터들 앞에서 당황한 관객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능청스레 시종일관 ‘말’로 무대를 채우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나오게 된다. <오셀로>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보고 죽었던 분풀이를 하려는 건지 작정하고 떠들어대는 3인방 앞에서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그녀들은 무대 밖에서 남자들이 권력투쟁을 빙자한 찌질 한 음모 꾸미기를 하든, 손수건 하나에 온 몸을 들썩거리며 화를 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그들을 있는 힘껏 조롱하고, 은밀한 자신들의 성생활까지 거침없이 내뱉고, 웃고 떠들고 취하고 뒹굴고 싸울 뿐이다.
데스데모나
데스데모나

기존의 <오셀로>를 목적 있는 캐시오의 ‘말’의 독무대이자, 말 한마디가 불러일으키는 파국으로 본다면, 정말이지 <데스데모나>는 그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이 작품은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 비앙카가 쉴 새 없이 내뱉는 ‘말’들의 복수 무대이자,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쾌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이 처한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하나는 파국이고 하나는 유쾌한 현장이라고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녀들이 처한 상황을 부닥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셀로>에서 그녀들은 순진무구하게 아무 것도 모른 채 어이없이 죽었다면, <데스데모나>에서는 연대라고까지 할 수 있는 우정을 나누며 상황을 ‘함께’ 맞이할 준비를 한다.

물론 이 작품이 주류적 척도로는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여성주의를 보여줬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데스데모나가 보여주는 욕망이 소유욕과 수많은 남자들과의 성관계에서 오는 자유뿐이라면 특히나 이 작품이 페미니즘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미심쩍다. 하지만 웃고 떠들기, 실컷 조롱하기, 결말이 어떻게 나든 간에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기존의 가부장적인 관습체계를 허무는 ‘놀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제공: 극단 그린피그]

태그 데스데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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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요선

백요선 대학생
연극을 좋아하는,
엄밀히 말하자면 연극적인 순간을 꿈꾸는 22살 여대생.
블로그_blog.naver.com/yococo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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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2호   2013-09-2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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