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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발견
극단 산울림 <2013 고도를 기다리며>

김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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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 제150회 정기공연 <2013 고도를 기다리며> 2013.10.8~11.24


  • 밥 익는 냄새가 제법 숭고하다 느껴지던 참이었다. 연극이 좋아 부산에서 서울로 혈혈단신 올라온 지 일곱 달이 지났고, 그 일곱 달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꿈꾸던 것들이 막상 생활이 되고 보니, 그렇게 고달플 수가 없었다. 연극을 보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다.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밥벌이의 고단함은 생경하기만 했다. 잘난 척은 혼자 다 해왔는데, 실은 여태껏 쌀 한번 사본 적 없는 헛똑똑이였던 거다. 그렇게 밥 익는 냄새가 숭고할 수밖에 없을 무렵,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개막한 것이다.

    오랜 습관이 있다. 산책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걸으며 주변의 나무를 관찰한다. 목매달기 좋은 나무를 찾는 것이다. 저 나무는 가지가 가늘어서, 저 나무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 나무는 퀴퀴한 냄새가 나서, 따위의 이유로 살아서 집에 돌아온 날이 숱하다. 물론, 정말 목을 맬 생각이 있었다면 대나무에도 밧줄을 걸었을 테지만. 적어도 무대 한가운데 선 비틀어진 나무는, 목을 매달기엔 너무 가냘팠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개막이 나에게 ‘사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고와 디디가 죽지 못하고 기다림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것, 그것의 발견.

    사실 뻔한 이야기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고도’가 있다느니,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구원이라는 식의 감상 말이다. 그렇게 치면 나의 고도는 ‘연극’이다. 서울에서 살 집을 알아볼 때, 관리비에 가스비가 포함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수천 갈래로 갈라지던 마음, 밥을 먹으려고 보니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었을 때의 곤혹스러움, 그래서 태어나 처음 숟가락 젓가락을 사던 날의 감상까지, 모두 ‘연극’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어오던 생활이 힘에 부칠 무렵, 이 ‘사건’이 전령사 소년처럼 나를 찾아왔다. 매일 밤 습관적인 산책을 하며, 연극을 공부해야한다는 사명을 전한 셈이다.

    2013 고도를 기다리며
    <2013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 임영웅 ⓒ극단 산울림 [출처] 시사코리아 2013년 12월 16일자

    기린에게도 뿔이 있다. 모두가 기린의 기다란 목에 대해 이야기할 뿐, 그 뿔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러나 진짜 고고와 진짜 디디는 거기에 있다. 캐릭터로서의 고고와 디디는 모두가 주목하는 기린의 목이지만, 극장 밖을 나서면 우리는 수많은 고고와 디디, 럭키와 포조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기린의 머리 위에 돋아 난 뿔로서, 나무 사이를 산책하거나, 상자를 줍거나, 전봇대 아래서 토악질을 하며 저마다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나 또한 거기에 있으며, 아마도 고도는 내일쯤 올 것이다.
 

태그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럭키, 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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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희

김향희 극작 전공자
목이 긴 기린은 갈증도 오래 느낄까요
열심히 우물을 파고 있는 하얀 손의 극작 전공자
E-mail. hh23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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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호   2013-12-1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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