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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라는 것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굴레방다리의 소극>

최솔비_NGO 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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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방다리의소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2014.03.11~04.06


  • 옛말에도 과부는 쌀이 서 말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라고 그랬다. 그런데 그런 홀아비가 셋이다. 남자 셋이 모여 사는 집이 그렇지. 우중충한 지하방에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놓인 살림살이들과 그 안에 나름의 질서대로 놓여있는 사람들까지. 바람 통할 구멍 하나 제대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집. 문에 잠금장치만 몇 개인지 최후의 안전장치로 숟가락까지 걸어 놓았다. 평상시에 절대로 마주칠 일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나오고 연극은 시작되었다.

    소극이 시작되는 순간 흘러나오는 연변 노래에 알 수 없는 묘한 공포가 느껴졌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노래에서 느끼는 왠지 모를 불쾌함. 속사포처럼 대사들을 쏟아내며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되었고 짙은 연변 사투리 억양으로 그려내는 서울의 그림은 잿빛 그 자체였다. 먼지로 그득해 숨 쉴 구멍 하나 없는 오히려 숨통을 조여 오는 듯한 서울과 그 서울에 발붙이고 살아가면서 좁은 지하방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고향 땅만 그리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함께 끝나지 않는 연극을 해야만 하는 두 아들.

    현실이라는 것
    <굴레방다리의 소극> ⓒ학전 [출처] 한겨레 2014년 3월 11일자

    낮인지 밤인지 알 수도 없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아버지와 두 아들은 허접스러운 ‘련기상’ 트로피를 두고 매일매일 소극으로 하루를 때워 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무서운 극이었다. 비좁은 집에서 매일 가학적으로 행해지는 연극을 하는 가족의 이야기인데 단순히 포스터의 노란색을 보고 ‘음 밝고 재미있는 극이겠다.’ 생각한 나의 단순함을 다시금 반성한다. 다시 돌아가 혼자서 연극을 지켜보는 내내 전달되는 팽팽한 긴장감과 공포에 숨죽이고 지켜봤다. 어쩌면 그 집안에서의 연극은 놀이의 가면을 쓴 잔인한 고문일지 모르겠다. 우연히 그 공간으로 들어온 작은 세상 ‘김리’. 마트 직원 아가씨 ‘김리’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연극을 보고 ‘와 이렇게 하고 노는 거야?’ 라고 해맑게 웃으며 물어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놀이 같지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무대 위에서 그 누구 또렷하게 답을 해주지 않았다.

    연극 안에서 순식간에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너에서 나로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연기하는 인물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극 안에 극이 진행될수록 무언가 뒤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우리는 현실이라는 거울 앞에 서게 된다.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을 잊기 위해 왜곡한 장면을 연극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하루살이의 삶. 하지만 잊기 위해 끊임없이 극으로 재현하는 모순적인 공간 안에서 현실이라는 잔인한 배경은 더욱더 가학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엔 내가 서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이미 왜곡되어 있는지 모르는 기억들과 잊고 싶어 잊으려고 할수록 선명해지는 기억들 사이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을 그저 무대에 올린 것일 뿐. 그렇기에 그 어느 누구도 단순히 그들의 삶을 그저 단순히 무대 위에 가공된 삶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말이 참혹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현실은 언제나 잔인하다고. 타고난 내 얼굴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수술로 왜곡하는 이 시대에 누가 그들의 삶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민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힘든 일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은 방금 씻고 나온 듯한 말간 얼굴로 웃기 어렵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시선을 똑바로 응시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일까.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현실을 왜곡하는 것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모두 내 안에 현실을 집어넣어 들이는 방법들이 아닐까. 옳고 그름의 판단은 잠시 접어두고 싶다. 결국엔 나도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 같기에.
 

태그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굴레방다리의소극, 현실,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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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솔비

최솔비 NGO 재단 간사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만 관심이 있다.
근래에는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대학로를 사랑하는 관객.
E-mail. choisb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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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   2014-04-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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