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일본과 한국,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는 외로운 섬
두산아트센터 <배수의 고도>

이두리_회사원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리뷰공모전 참여안내

두산아트센터<배수의 고도> 포스터
두산아트센터 <배수의 고도>
2014.06.10~07.05


  • 6월 중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와 원전업계의 비리를 다루었다. 2012년 고리원전 1호기를 점검하다가 정전사고가 일어났다는 내용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고리원전에 사소한 결함이 있다는 보도를 종종 접하긴 했다. 하지만 잠깐 관심을 가졌다가 금세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리원전에서 자칫하면 후쿠시마 원전처럼 원자로 온도가 올라가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 다운’이 일어날 뻔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방송을 보고 난 뒤 슬쩍 겁이 났다. 고리원전이 터지면 어떡하나. 문득 그곳 가까이 살고 있는 기장군민과 20Km 거리에 있는 해운대 주민들이 걱정되었다.
    나는 고리원전이 무서워서 연극 <배수의 고도>를 보았다. 열을 열로 다스리는 요법처럼 원전 때문에 생긴 두려움을 원전사고 이야기로 없애고 싶었다. 연극을 보면 내 두려움의 원인인 무지, 정보부족이 조금은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배수의 고도>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루었다. 1, 2막을 합치면 분량이 170분인 긴 연극이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중간휴식을 기점으로 극의 시간적 배경이 바뀌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12년이 지난 때, 곧 2011년에서 2023년으로. 1막의 등장인물이 나이를 더 먹고 2막에 등장하여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쳤다. 물론 1막에서 있었던 원전사고의 영향은 2막까지 따라왔다.

    일본과 한국,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는 외로운 섬

    1막에서는 사고 뒤 모든 것을 잃고 피난 생활을 하는 ‘타이요’의 네 가족과 그들을 둘러싼 다큐멘터리 기자, 자원봉사자, 학교 선생님, 공무원, 통조림공장 사장 등 다양한 인물이 나왔다. 대재앙이 있고 나서 타이요 네는 물론 사고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등장인물 사이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상태, 아노미가 계속되었다.
    지진이 났던 밤,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공포를 잊고자 공무원과 유우는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잉태한 아기를 지우려고 ‘유우’는 공무원에게 돈을 요구했다. ‘타이요’는 누나인 ‘유우’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 공장 근처에 굴러다니던 통조림을 모아 팔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타이요’를 추궁하자 왜 자신이 도둑놈 취급을 받아야하느냐고 울부짖었다. 지진이 날 때 물자조달을 위해 통조림을 모은 학교 선생님은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우’에게 청혼하려 했던 학교 선생님은 공무원과 ‘유우’의 비밀을 듣고 말았다. 파산 직전인 통조림공장 사장은 ‘타이요’에게서 남은 통조림과 타이요가 번 돈을 받으려고 애원했다. 마을에는 파리가 들끓었고 ‘타이요’는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고 했다. 사고 뒤 시체를 치웠지만 산 사람 마음에서 썩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며.
    ‘타이요’를 맡은 배우 김시유의 강렬한 연기가 인상 깊었다. 그가 무대에서 응축된 분노와 슬픔을 터뜨릴 때 극장 안의 공기가 떨렸다. 타이요가 눈물을 흘릴 때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일본과 한국,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는 외로운 섬

    2막은 1막에서 12년이 지나 원전철폐 정책이 힘을 잃고 원전건설 찬성파가 득세하는 일본이 배경이었다. 찬성파의 중심인물이자 건설을 위해 국채를 남발하려는 재무성 장관, 그리고 그를 둘러싼 1막의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방사능 물질을 이용한 테러의 위험과 맞닥뜨린다. 1막의 인물들이 잘 성장하여 다시 만났다는 설정은 어색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극에서 곧 이어지는 테러의 위험, 인질극과 함께 버무려졌다. 관객에게는 조금 과장스러운, 장르적 요소처럼 다가왔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무대 정면 벽에는 한국의 원전상황을 알려주는 자막이 나왔다. 총23기가 돌아가고 있으며 삼척과 영덕이 원전건설 예정부지로 선정되었다고 했다. 이 나라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종말을 등지고 있는 외로운 섬인지 모른다. 일본과 다름없다. 그 위기는 바로 안전하지 않은 원전이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무대 정면 벽에 마지막으로 이런 자막이 떴다. ‘대한민국 원전 밀집도는 세계 1위다.’ 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라 믿는다.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일본과 한국,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는 외로운 섬

태그 일본과 한국,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는 외로운 섬

목록보기

이두리

이두리 회사원
법학을 전공했다.
퇴근하고 소설, 칼럼, 리뷰를 쓴다.
두 살짜리 아들이 있다. 아이가 크면 가족이 함께 연극 보러가길 꿈꾸는 아빠.
blog.naver.com/leedr83

리뷰공모전 바로가기

제47호   2014-07-03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