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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소통을 갈구하는, 초월지향 쇼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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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관계 이미지

무대라는 바탕에 당근과 호박이 자라고 있었다. 당근은 호박을 애써 타일러 울타리에 함께 두었고, 삐침을 반복하던 호박은 당근에게 히스테리로 반기를 들었다가, 당근이 울적해 하자 이내 그 자리에 순응하며 분노를 거둔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불꽃 쇼를 보다 잠이 든다.

연극 <완벽한 관계>에는 주홍색 상·하의에 볼에 연지를 찍은 한 인물과, 연둣빛 상·하의를 착용하고 비니에 도끼 빗을 꽂은 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딱 60분 동안 주거니 받거니 말과 몸짓을 교환하다 무대에서 사라진다. 한 명의 붉은빛, 또 한 명의 초록빛을 무어라 딱히 규정할 수 없어 나는 임의로 ‘당근’과 ‘호박’이라 명명하려 한다.

당근과 호박은 시종일관 서로를 어르고 달래며 말 같잖은, 말장난과 말다툼을 이어나간다. 하나하나 묵직한 단어들로 결합한 문장이지만, 이를 내뱉는 그들의 몸은 꾸부정하고 불안한 기색이다. ‘일탈에서 시작된 이탈’은 본궤도를 벗어나면 돌아올 수 있을까? 없을까? 이러한 화두를 던져놓고, 둘은 서로를 같은 공간에 묶어둔다. 호박이 빠져나가려 하면, 당근은 ‘전체의 일부가 되려는 것이냐’며 ‘여기보다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불확실하게 장담한다. 다른 배경은 스스로 배제해가며 호박을 어르고 달랜다. 호박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괴감에 휩싸여 당근조차 본인을 깔본다 대든다. 당근은 여유로이 타인의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자로서의 경외심을 갈구하지만, ‘미안해’를 남발하며 미리 ‘비굴함’마저 포석으로 깔아둔다.

선한 독재자 ‘당근’이랑 유약한 강박신경증 ‘호박’은 언젠가 순수한 소년합창단에서 관객으로 만난 인연을 첫 발로 두고, 그냥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에 유폐된 채 ‘잘’ 살고 있었다. 묘하게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호박과 당근은 그 누구도 관계의 우위를 선점하진 못한다.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며 둘만의 시간에 저당 잡혀 쿵짝쿵짝 살고 있던 것이다.

완벽한 관계 이미지

무대에 잘 짜인 비좁은 평상 위에서, 두 인물은 추상적이지만 또 한편 구체적으로 상상 가능한 대화들을 요리조리 토스해가며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냈다. 단문 위주의 대사, 톱니바퀴와 웃는 소리 등이 뒤섞인 음악, 노란색과 주홍색의 신경질적 조명, 정교히 제작된 목재의자와 평상들, 연극 ‘완벽한 관계’는 여러 장치와 대사에 인간(혹은 동물) 간의 관계망에서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을 섞어두고, 저마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라고 다량의 생각거리를 던져댔다. 그러나 그 방식이 매우 친절해서, 장면 장면을 그림처럼 떼어놓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예쁘게 집을 지어놓았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가 해체되면 지극히 아쉬울 정도로, 공연 전후로 많은 이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특히 대사는 매우 서정적인 동시에 현실적이었다.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한 순간을 묘사할 때는 “시간이 민들레한테 그러면 안 되잖아”라며 ‘누군가 주먹으로 때리듯 시간은 흐름으로 우리를 때려’, 관계에서 존재를 좌절케 하는 시간을 설명했다. “잘 해주면 지랄이고, 지랄하면 잘 해주는구나”라며 균형점을 찾기 어려운 관계의 속성도 드러냈고, 예시나 비유를 쓸 때 비교하는 대상(보조관념)과 비교 받는 대상(원관념)의 거리가 멀어 결국은 쉽게 “무의미성”에 천착한다며, 언어로 가둬두기 힘든 세상도 건드렸다. 사람들을 닳게 만드는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한계를 인정하면 초월이 가능할지, 추상적인 물음들을 툭툭 가볍게 내던지고 있었다.

“살면서 증명하는 수밖에 없는” 답들을 향해, 이 둘은 무던히도 근면히 떠들고 충분히 아름답게 덜컥거렸다.

예술 하는 자들의 일상적 넋두리로 보아도 무방하고,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계급 사회의 갈등을 고려해도 괜찮고, 의식하지 못했으나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생명체의 속풀이, 우정과 사랑의 본질 등 그 어떤 색으로 봐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찌어찌 감상해도 그냥 저마다의 삶에 비추어 볼 수 있으니 다행인 작품이었다.

연극 <완벽한 관계>, 한 번이 아닌 여러 차례 롱런하는 작품으로 남길 바랐다. 내 옆에 무리 지어 보던 중년 아줌마 부대 스타일의 관객들이 ‘대사가 좀 어렵다’고 속삭이더니 시종일관 깔깔거림을 포기하지 않는 걸 보고, 이 작품은 그냥 설명 없이도 이해 없이도 재미있는 ‘불완전이 완전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완벽한 관계 이미지

[사진: 창작집단 빛과돌 제공]

완벽한 관계 포스터

일시
10월 4일~30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작·연출
진용석
출연
손용환, 김형민

태그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작,창작집단 빛과돌,완벽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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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인숙

변인숙 프리한 저널리스트
‘연남동대저택’(작업실명)에서 ‘레아프레스’(공연예술 및 매체예술 출판사)를 열고 이것저것 쓰는 사람.
baram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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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호   2014-11-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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