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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회의로 잠 못 들며 현실에서 발을 떼지 못한 이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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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페르튜토 스튜디오

해가 바뀌었지만 늘 죽음에 관한 꿈을 꾸곤 한다.

문득 새벽에 깨어 공포인지 연민인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굳이 말하고 싶진 않은, 어떤 눈물이 꿈밖을 벗어나서도 멎지 않았다. 언젠가는 꿈 안에서 손이 찬 이들이 내 팔목을 잡았다. 너무 차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핏기 없는 흙빛의 얼굴들이 눈을 맞추며 살려 달라 했다. 늘 그런 꿈을 꾼다. 아픈 친구나 떠난 벗이 과거에 멈춘 채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자살한 배우를 취재한 날이면 그 배우가 꿈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너무 많은 꿈은 정서가 불안정한 증거일 테지만, 그렇게 불연속적인 꿈을 꾸며 나는 산다.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흐른다. 생활과 환영. 두 편의 인생을 사니까 덤으로 얻은 시간들이 있다. 실제 맞닥뜨리는 장면들이 일그러지든 부풀어 오르든 똑바로이든, 갖가지로 혼합돼 나타나니, 극단의 감정이 요동친다. 딱히 불편할 건 없지만, 생각의 용량이 물리적 시간을 쫓아가지 못한다.

감정이입이 독하면 잠드는 것도 어렵다. 그게 현실 뉴스에 퍽 매몰된 탓인가 싶어 뉴스를 끊어보려 했지만, 담배 못 끊는 이처럼 뇌에 뉴스 인이 박혀 있다. 특히 요사이에는, 아니 오래 전부터 죽음에 관한 뉴스들이 마음을 짓누른다. 나는 매달 몇 편의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인데, 그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국내외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다. 달마다 ‘죽었다’, ‘세상을 떠났다’,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삶을 마감했다’, ‘살처분했다’, ‘자살했다’ 이런 말들로 첫 문장의 서술어를 연다. 아이다워야 할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진실을 알려줘야 할지 매번 혼란스럽다. 글을 읽을 어린이들을 애늙은이로 만들까 걱정도 한다. 그러곤 상식적인 사고 과정으론 도저히 이해 불가한 처참한 상황을 묘사한다. 게다가 그 원인을 알려줄 때는 덤덤해지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객관이란 없다는, 독한 회의에 잠긴 탓인지 어떤 시스템과 특정인들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어느 신문에서는 어린이 뉴스난이 편향됐다며, 아이들이 한데 고개를 왼쪽으로 갸우뚱하는 일러스트를 실어 지적해주기도 했다. 그 자체로 고귀한 목숨을 두고도, 살아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의 주변 자리를 더 황폐하게 만든다.

이렇게 쓸데없는 개인적 경험으로 리뷰 분량을 잡아먹은 이유는, 늘 보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작품들이 늘 바로 ‘날’ 돌아보게(혹은 돌보게)하는 작품이라서다. 두산아트랩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만나러 가는 날에도 어김없이 꿈을 꿨고, 지하철에서 설핏 잠들어 내릴 곳을 놓쳤다. 다시 갈아타고 종로 극장에 도착했을 땐, 친절한 어셔는 이미 4시 3분에 극이 시작됐다 전했고, 이후에 간이 의자를 내주었다. 난 7분부터 공연장 밖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기계가 고장 나 ‘음소거’ 인 채로. 초반 장면은, 어느 스태프가 녹화 카메라를 친 바람에 기울어져서 어둔 화면으로 대체됐다. 누군가 카메라를 세워준 덕분에 양들이 연달아 줄을 지어 쓰러지고 구르며 무대 위를 반복해 사라져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사적 관람은 시작되었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도시인들이 동물을 만나는 방법은 식탁 위 죽은 고기를 통해서이다’, ‘멕베스, 숲에서 길을 잃다’, ‘하늘과 땅과 아프니까 사람이다’, ‘야생염소’ 등 5개의 옴니버스 연극이자 컴템포러리 무용을 죽 그림책 읽듯 감상했다.

무용수로 완벽히 분한 배우들(김정화, 박한결, 박형범)과, 또 한 명의 무용수(밝넝쿨)로 인해 현시대 가장 패셔너블한 영웅, 버려진 짐승들, 목숨을 끊은 사람들, 사고로 죽은 사람들, 살처분 당한 구제역, 조류독감 동물들… 어딘가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또 한편으로는 책임감 강한 수많은 생물, 무생물들이 무대 위를 오갔고 그 환영의 넋이 분연히 빛났다.

눈은 무대 화면을 향했고, 손으로는 TV를 녹화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 메모리 용량이 꽉 차서 마음을 울린 장면을 죄다 간직하진 못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머릿속에 박혔다. 꿈틀대던 인조 살점들, 뼈, 팔 다리, 숨 쉬는 대지, 하늘 등. 현실에서는 너무나 초라하게 밟힌 형상들이 무대라서, 무대이기 때문에 사람이 쉽사리 소유할 수 없는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과거가 돼버린 (죽은) 뉴스들의 잔혹하고 처참한 장면들을 어루만지는 고요한 목소리가 들렸다. 극장 안의 즐거운 웃음이나 박수 소리조차도 바깥으로 새어 나올 땐 침묵의 에너지로 넘쳤다. 카메라 렌즈로 걸러진 춤을 정제된 형태로 보아서였는지, 특히 공연자들의 움직임은 퍽이나 절제되고 절도 있었다.

그들의 몸을 빌려 대신 꿈 속 존재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극은 담쟁이 덩굴손으로 현실의 벽에 맞닿아 뻗어있되, 매순간 그 벽 밖으로 영혼을 불러낸다. 그래서 늘 뿌옇게 멜랑콜리해진다. 각 작품마다 너무 많은 말들이 숨어 있기에 보는 동시에 읽을 수밖에 없다. 그 많은 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극장 TV 화면 속은 반은 관객이고 반은 무용수였고, 어느 틈새인가는 적막이었다.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뒤통수, 그리고 그들이 한데 뭉쳤다 웃고 즐기고 극장 문을 나서는 그 광경 안에서 나는 절실한 힘을 얻었다. 삶은 시끌벅적 계속되어야 하고, 죽음은 기억되어야 하는 단순한 진리.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어떤 죽음들의 사연을 섣불리 한 줄로 전달하기 어려운 것처럼,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연극을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마음자리에 따라, 배우들이 건네는 몸짓언어와 음성들이 시시때때로 달리 들리기 때문이다.

일단 봐야 한다. 관객 리뷰의 양이 A4 한 장이므로(이미 A4 한 장 반을 넘었다), 송구스레 글을 마치며 누군가들에게 당부하는 말! 아직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공연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세계 최고(보다는), 최선(에 걸맞은)의 연극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생활에 해가 되진 않을 것이나, 가질 수 있는 득 하나를 잃은 것이다.

무질서로 위장한 질서의 작품. 이들의 공연을 본다면, 어느 날 현실인 듯 꿈인 듯 어디선가 우연히 불쑥 이들을 또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이 눈 밖으로 사라진다 해도 그 에너지가 당신에게 쌓인 채로, 살아가는 이유나 삶의 질서를 부여해줄 것이라고, 함부로 자신 있게 예단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에 지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권한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포스터

일시
1월 22일~1월 24일
장소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작·연출
적극
출연
김정화, 박한결, 박형범
노래·특별출연
밝넝쿨
무대미술
김혜림

태그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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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인숙

변인숙 프리한 저널리스트
‘연남동대저택’(작업실명)에서 ‘레아프레스’(공연예술 및 매체예술 출판사)를 열고 이것저것 쓰는 사람.
baram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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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호   2015-02-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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