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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 진실’과의 황홀한 만남
다정도 병인 양하여 vs 주머니 속의 연기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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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과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다정도 병인 양하여>와 게릴라극장과 연희단거리패의 <주머니 속의 연기>는 모두 각 단체가 젊은 연출가를 위해 마련한 무대다. 공교롭게도 두 젊은 연출가는 비슷한 전략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틱한 연극 대신 메타 연극(연극에 대한 연극)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이다. 이윤주 연출과 일본의 극작가 호키모토 게이코가 ‘역할극’이라는 알레고리로 ‘가족’과 ‘삶’ 그리고 ‘연극’에 대한 묵직한 사색을 보여준다면, 성기웅 연출은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도입, ‘나’와 ‘나의 연애’ 그리고 ‘연극’에 대한 내밀한 고백을 들려준다.

주머니 속의 연기
다정도 병인 양하여
공연 포스터 주머니 속의 연기
  • <주머니 속의 연기>는 어릴 적 오래 간직하고 싶어 주머니 속에 담아 둔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홀연히 사라졌던 것처럼, 우리의 삶과 기억 역시 종내에는 죽음이라는 허무로 귀결되지 않을까 질문한다. 연극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계’와 ‘가면’, ‘책’으로 대표되는 상징물(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에겐 유한한 ‘시간’이 주어지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가면’을 쓰고, 계속해서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는 비유처럼 보인다)을 꺼내며 시작된다. 이어서 사후(afterlife)가 궁금한 ‘연기’와 ‘여배우’의 연극(극중극)과, ‘책벌레’를 포함한 세 캐릭터가 세상 만물과 자신의 의미를 규명하는 장면을 거쳐, 인간을 구성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실험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일생에 대한 ‘연극’을 보여주며 결국 ‘허망한 인생’, 혹은 ‘증명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끝을 맺는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주머니 속의 연기>와 다르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극은 작·연출을 맡은 성기웅이 직접 무대로 나와 이것은 본인의 연애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역할을 대신 연기해줄 배우 이화룡을 소개하고 때때로 극에 성기웅 자신으로서 개입한다. 극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배우 본연의 모습으로서 출연해 연극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성기웅의 연애담) 속 특정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특히 극 중 ‘기웅’의 애인 ‘다정’ 역할은 각기 다른 두 명의 여배우가 함께 연기한다. 처음부터 연출가 성기웅은 이 연극이 실제 자신의 연애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연극을 보는 관객은 어디까지가 팩트일지 궁금해 하며(이는 마두영 역할의 배우 마두영이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일 뿐”이라고 외칠 때 극대화 된다) 관음증적흥미와 함께 극을 관람하게 된다.
공연 포스터 다정도 병인 양하여
  • 앞서 말했듯이 두 연극은 모두 ‘메타 연극’이라는 전략을 통해 다가간다. <주머니 속의 연기>가 장식과 과장이 없는 단순한 형식으로 ‘삶의 본질’을 묻는다면,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발표, 재연, 낭독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와 ‘나의 연애’에 대해 탐구한다. <주머니 속의 연기>의 극중극(연극 속의 연극)은 우리 삶 역시 한 번 공연되고 사라지는 연극처럼 유한하며 소멸 앞에 무방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더 가치 있다. 리얼한 언어(실제 우리 언어와 같은 도치된 대사, 말실수 등)를 사용하되 동시에 이건 연극일 뿐이라며 관객과 거리를 두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의 페이크 다큐(연극 하는 연극)는 우리는 나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지, 나아가 연애와 연극의 교집합은 무엇인지를 묻는 극의 내용과 묘하게 연결되기에 더욱 흥미롭다.

    <주머니 속의 연기>가 역설하듯 우리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다양한 역할의 가면을 쓰고 버거운 연기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극장은 이 갑갑한 세속의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가면을 벗고 들어선 깜깜한 극장에서 ‘실제의 나’와 ‘우리의 현실’보다 더 리얼한 ‘연극적 진실’을 마주할 때의 황홀한 기쁨, 그것이 내가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다. 나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를 보면서 한 순간, 그 황홀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아- 레알 좋았다.


    [사진출처] 연희단거리패, 국립극단

태그 이윤주, 성기웅, 국립극단, 연희단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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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김지원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했고, 현재 국립극단 학술출판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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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호   2012-06-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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