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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만난다면 다시 ‘무언가’를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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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결혼한 후 가끔 혼자 갑자기 친정을 찾는다. 주인을 잃고 먼지가 쌓인 방에 들어가 예전 물건들을 뒤져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허전하고 오래된 친구가 필요할 때면 가끔 나도 모르게 친정으로 간다. 유치원 때 그렸던 그림, 초등학교 때 자의 반 타의 반 매일 썼던 일기장 그리고 중 고등학교 때 긁적였던 글들, 중학교 2학년 때 즈음부터 시작된 특유의 글 색깔은 고등학교 때 더 심해졌고 대학교 때는 절정을 이루었다. 그 글 색깔의 기초는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다짐’에 따른 ‘목표’였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 다가올 것에 대한 다짐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에 대한 글은 대부분 투정과 불만족이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기다렸던 것이다. 졸업을 기다리고 입학을 기다리고 고백을 기다리고 연락을 기다리고 내일을 기다리고 내년을 기다리고 그리고 또 그것들을 기다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헤어짐을 기다리고 고통과 회한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연극은 희곡의 토대에 연출의 색깔을 입은 배우의 표현예술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개인적으로 논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 작품을 1년 사이 여러 차례 읽은 까닭에 ‘고도’의 기다림은 더 절실해진 상태이다. 2013년 가을, 이 곳에서 다른 배우들의 ‘고도’를 보았다. 그 때의 공연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배우가 다르고 극단의 공연을 올리는 상징적 의미가 다르고 내가 다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항상 변하고 있다. 변한 것을 기뻐하기도 하지만 거부하고 싶기도 하다. 무엇이든 익숙한 것은 편안함을 주고 새로운 것은 두려움을 주곤 하기 때문일까.

소극장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고고’의 망각과 능청스러움은 작품 전에도 존재했고 작품 후에도 존재한다. 그 말은 연극 무대 밖에서도 그의 관성적인 습관은 유효하다는 말이다. 과연 ‘고고’는 ‘고도’를 계속 잊고 ‘디디’는 ‘고도’를 계속 기억해 내고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한 번 ‘고고’가 ‘고도’를 기다림을 기억해 냈다. 그 장면은 진지한 ‘디디’의 물음에서가 아니라 서로 유희를 즐기다가 가지 못하는 이유를 ‘고고’가 짜증내듯이 말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다. 누군가 잊어버리면 다른 누군가를 무엇이든 기억해낸다. 누군가 화를 내면 다른 누군가는 참아야 한다. 마치 조각 맞추기처럼 말이다. ‘고고’와 ‘디디’, ‘포조’와 ‘럭키’가 그렇다. ‘나’와 ‘그’도 그럴까. 왜 다른 것들은 확신하면서 나에 관한 것은 확신하지 못할까.

‘디디’가 유별났다. 나에게 이 공연에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대사와 행동은 많은 부분이 ‘디디’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대사를 정확하게 전하려는 배우의 수고스러움이 이미 자신만의 ‘디디’가 되어버린 배우의 몸짓에서 묻어나온다. 슬펐다. 그렇게 수차례 작품을 읽었고 공연도 몇 차례 봤지만 이번 공연의 ‘디디’는 내게 ‘노동자’들을 생각하게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아야 하는 그들. 많은 말을 쏟아 낸다 해도 그것이 무효한 것임을 알고 있는 듯 보이는 그들. 자신도 힘들지만 가족들을 챙겨야 하고 ‘고고’를 보호해야 하는. ‘디디’는 ‘고고’만큼 우스꽝스럽지 않다. 자신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현실과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다. 나는 ‘노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 삶은 흔한 사람들의 삶과 같이 항상 돈 걱정을 하며 부족한 돈을 채워가려 하며 돈을 벌고 쓰고 돈을 주고받는 삶이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는 많은 ‘노동자’들은 돈을 벌 수 없고 돈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모여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말을 소리 높이는 것 뿐이더라. 그들의 눈은 빛나고 몸은 건강하지만 현실속의 그들의 존재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디디’는 그들과 같아 보였다.

소극장 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린다는 자체가 무모하다. 온 적이 없었고 본 적이 없었다. 약속도 확실하지 않고 내 기억도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작품에서도 ‘소년’은 ‘고도’의 존재를 알려줬고 내 삶에서도 ‘내 남자’는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고고’와 ‘디디’는 서로 화를 내면서도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기억을 맞춰가며 포옹하며 함께하는 순간을 기뻐한다. 사실 ‘고도’는 그들이 둘의 삶에서 가끔 기억하는 존재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우위에 있다. 살고 있지 않으면 ‘고도’도 무의미하며 ‘고도’를 기억해내며 망연자실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함께 있어주지 않으면 ‘고도’의 ‘기다림’보다 존재의 ‘그리움’이 더 크게 감정의 한계치에 자리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을 하면 이전의 삶은 싹 다 사라지고 영롱하게 빛나는 아름답기만 한 삶이 시작 될 줄 알았다. 내게 ‘결혼’은 ‘고도’ 같았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주위에서 들리는 결혼해도 똑같은 삶은 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결혼’이라는 크나큰 행사를 치르는 동시에 동반자를 ‘기다리는 일’은 끝이 났다. 동반자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손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내가 삶을 중요하게 다루고 살아가는 무게와 그가 삶을 다뤄온 조심스러움의 깊이가 정확히 어우러져 아름다운 생활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나의 삶은 나의 것. 그의 삶은 그의 것. 결혼하고 나니 예전의 내 생각은 환상과 같은 생각이었다. ‘고도’를 만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후의 일은 함께 해나가는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두 사람의 공통된 삶에서 이전과 다른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숙명과 같은 일이었다.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계속 기다릴지 ‘고도’를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두 사람이 ‘고도’를 만나더라도 이들은 다시 기다려야할 무엇인가를 찾게 되고 그것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연극은 내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희망’이고 삶은 버틸만하다는 인내의 ‘기다림’이다. 산울림 소극장의 개관 30주년과 국내 초연 이후 <고도를 기다리며> 45주년을 축하하며, 산울림의 ‘고도’ 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사진: 소극장산울림 제공]

태그 소극장 산울림,고도를 기다리며,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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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하

강은하 대학원생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표현하고, 표현하기 위해 타인과 멀리 있는.
연극은 ‘나’를 잘 볼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
http://blog.naver.com/snug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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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호   2015-05-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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