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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왕눈이 스파게티 먹으러 손잡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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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 인정과 사랑 안에서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처를 받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때론 행복을 느끼고, 때론 상처 받으며 살아가지만, 거듭된 거절에 노출된 사람들은 더 이상 집 밖에 나갈 용기를 잃고 만다.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토미오는 과거에 10년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던 히키코모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히키코모리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출장 상담원’이 되어, 다른 히키코모리들을 방문하고 있다. 토미오는 동료인 쿠로키와 함께 8년차 히키코모리 타로와, 무려 20년 동안 집 안에 있는 카즈오를 만나게 된다.
엄마의 과잉보호 안에서 제멋대로 살았던 타로는, 그를 찾아온 토미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쿠로키는 카나코를 설득해 집을 나오게 하고, 타로가 배가 고파 스스로 기숙사로 올 때까지 버티는 작전을 실행한다. 한편 카즈오는 말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대화가 서툴다. 처음 쿠로키가 찾아갔을 때,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있었던 카즈오는 자기를 꾸준히 찾아오는 쿠로키에게 마음을 연 상태다. 그러나 아직 현관문을 나서지는 못하고, 밖으로 나갔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대처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보다 모자라 보이는 토미오가 집 밖으로 나와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카즈오는 용기를 얻어 기숙사로 온다.

연극은 이처럼 타로와 카즈오의 집을 왔다갔다 할뿐만 아니라, 히키코모리였던 토미오의 과거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무대에 설치된 미닫이문을 이용하여 장소 변화를 보여주고,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시공간이 변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토미오는 레슬링의 광팬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기 위해 집에서 동생 아야와 레슬링을 연습하며 지내던 히키코모리였다.

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토미오는 출장 상담원 쿠로키의 도움으로 집 밖으로 나왔으나, 지하철에서 불량배에게 얻어맞고 엉망진창이 되어 겨우 집에 돌아온다. 쿠로키는 토미오가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토미오는 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한다. 검은 무대 위에서, 토미오가 집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마다 반대 방향에서 빛이 비추며 전철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토미오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마치 달려드는 전철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큼의 용기를 필요로 함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몇 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토미오는 두려움을 뚫고 빛을 향해,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한다.

한편 기숙사에 온 타로와 카즈오는 취직에 성공해 기숙사를 나가게 된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파티를 열어 이들의 세상 밖으로의 첫걸음을 축하해주지만, 타로의 아버지 키요시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얼마 전, 회사 구조조정 때 회사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결국 축하 파티는 타로와 키요시의 다툼으로 엉망이 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을 하러 가던 카즈오가 지하철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전해 온다.

카즈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쿠로키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품는다. 그리고 히키코모리들을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진정 이들을 위한 일인지, 절박한 목소리로 토미오에게 묻는다. 그러자 대답 대신, 무대 뒤편으로 죽은 카즈오가 걸어 나온다. 카즈오는 집에 처박히기 전에, 개구리 왕눈이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구리 왕눈이 스파게티 주세요.’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릴까봐, 카즈오는 차마 주문하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토미오는 조심스레 카즈오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는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위험도 크지만, 행복해질 가능성도 그만큼 더 커지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개구리 왕눈이 스파게티를 꼭 먹어보고 싶었다고. 둘의 마주잡은 두 손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두산아트센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이 연극은 일본의 사회 문제로 자리 잡은 ‘히키코모리’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청년실업자가 날로 늘어나 거듭된 좌절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고, 노인들은 몇 십년동안 충성을 바쳤던 일자리에서 쫓겨나 할 일 없이 배회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 타로와 같은 젊은이들은 분노하고, 그 분노를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으로 표출한다. 카즈오에게 세상은 너무나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엄격한 곳이며, 토미오에게는 자기에게 적대적인, 싸워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어눌한 개인을 받아줄 줄 모르는 적대적인 세상. 그곳에서 무언가 조금 모자라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다. 심지어 타로의 아버지 키요시처럼, 성실하게 회사를 잘 다녔는데도 쫓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개인이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밖으로 나와도, 바깥에는 더욱 높은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세상에 나와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상대방의 이해와 용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히키코모리 시절의 토미오가 동생 아야와 레슬링을 하다가 주고받는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아야
근데 역시 오빠가 잘하는 거더라. 기술, 받아주는 거.
보통은 기술을 거는 쪽만 생각하잖아.
사실은 받는 쪽 기술도 진짜 필요한 거라는 걸
아는 사람 잘 없어.
토미오
그렇지,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 모두 혼자 사는 게 아니기에,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받아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 것이다. 누군가 개구리 왕눈이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이를 비웃지 말고 함께 먹으러 가자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도 개구리 왕눈이 스파게티가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태그 두산아트센터,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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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김연수 대학원생
세계를 읽고, 의미를 밝히는 일을 사랑하는 글순이.
현재 대학원에서 연극을 공부하며 드라마터그와 평론을 배우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dustn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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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호   2015-07-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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