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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子, 햇빛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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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극단 이와삼 <햇빛샤워>

광자, 살아도 살아도 그녀가 딛는 곳은 씽크홀, 그녀가 앉는 곳은 절망이 되었다. 백화점에서 웃음을 팔아야 했고, 그렇게 해서라도 살 수 있다면 남자에게 몸도 팔아야 했다. 그녀라고 왜 치욕스럽지 않았겠는가. 그녀는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광자, 미친년, 어쩌면 그 이름이 그녀를 이 구렁텅이로 내모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월세에 생활비에 백화점 점원 월급으로는 그 돈 700만원도 쉬운 게 아니었다.

광자는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주는 헤픈년이었고, 배운 것도 빽도 없지만 살려고, 그래도 발버둥 쳤다. 하지만 주위 시선은 곱지 않다. 바로 그 억세고 드센 그녀의 모습이 그녀를 미친년으로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게다가 고아.

반지하에 살다가 그녀는 결국 병이 들었다. 비타민 D가 부족한 질병. 그녀는 햇빛이 필요하다. 햇빛, 그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내어 준다. 햇빛에게도 부모는 없는 것 같다, 고아처럼, 도시 어느 곳엔가 작은 햇살은 그렇게 그저 혼자 있다, 가장 무력하게. 하지만 햇빛은 가장 강력하다, 그것은 혼자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든 빛을 비출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이 가 닿는 곳은 제 숨결로 따뜻해진다. 광자는 그런 여인이다. 그녀는 햇빛을 닮았다.

삶은 힘들고 또 힘들지만, 고아이고 미친년이지만 그녀는 음악이 나오면 음악에 몸을 내어줄 줄 안다. 동교에게도, 동교는 동네 바보다. 그는 자기가 일해 번 연탄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부 나누어 준다. 동교의 순진함이 애처롭고 가소롭고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아이도 고아란 사실에, 엄마 냄새를 모른다는 사실에, 아니면 그만이 그녀에게 던진 말, 누나는 햇빛을 닮았어요, 라는 말 때문인지 그녀는 마치 몸이라도 줄듯이, 선뜻 제 속옷을 내어준다.

남산예술센터, 극단 이와삼 <햇빛샤워>

광자는 그런 여인이다. 사람들은 손가락질 한다. 광자요, 그녀는 똘아이였어요, 그녀는 썅년이에요.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광자는 그냥 미친년일 뿐이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마치 ‘사이’ 존재,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선과 악 사이 어디쯤엔가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지상의 인물이 아닌 것도 같았다.

그녀는 돈이라면 몸도 팔았고 매니저가 되기 위해 영혼도 팔았다. 하지만 모든 걸 상품으로 만든 건 자본주의 아닌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 아니었던가. 몸도 웃음도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광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왜 광자는 미친년이고 그런 사회를 만든 우리는 미치지 않았단 말인가. 광자는 악이고 비정상인가? 하지만 동교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어루만져 준 사람은 제일 처음, 광자였다. 광자는 그에게 제 가슴을, 몸을, 주었다. 그녀는 제 빤쓰 하나 간수 못하는 미친년이 아니었다. 그깟 빤쓰가 뭐라고, 체면? 문명? 그게 뭐라고, 그게 만들어 낸 건, 동교와 광자라는 고아와 썅년 뿐 아닌가. 고아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하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광자는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니다. 그녀는 가난했지만 햇빛처럼 자신을 내어주곤 했다. 그녀는 선을 믿지 않았다. 자본의 시대에 선이 있는가. 기부? 그것은 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특권이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그녀가 냉소적이기만 하고 비정상적이고 악하기만 했던가.

남산예술센터, 극단 이와삼 <햇빛샤워>

그녀는 동교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이나 하려 했던 마을 사람들 앞에서 보기 좋게 자신의 브래지어를 벗어서 마을을 흔든다. 누가 비정상적이란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왜 단 한번도 동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들은 햇빛이 두려웠다. 햇빛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런 가치들은 우리가 만들어 낸 관념일 뿐, 선한 것이 또 정상적이라고 하는 것이 ‘너는 악해, 비정상이야, 너는 루저야’ 라고 말할 때의 그 폭력을, 그 악행을 햇빛은 모른다. 광자도 모른다. 그녀는 지배 체제가 만들어낸 선악도, 성공/실패 같은 이분법도 모른다. 그것은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악하다고 실패한자들이라고 낙인찍는 논리에 불과하다. 동네 사람들은 동교를 선하다면서 선의 이름으로 그를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동교를 그런 이데올로기로 보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차라리 하나의 가슴이 되었다. 그녀는 선도 모르고 악도 모른다. 그 사이 어디쯤엔가 서서.

그녀는 한줄기 빛처럼 존재하는 동교를 더 따듯하게 감싸주지 못해 미안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비루한 사람들, 남루한 사람들, 우리가 루저라고 부랑아라고 멸시했던 바로 그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는 한줄기 빛이 되었고 한줄기 웃음이 되었다.

[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태그 남산예술센터, 극단 이와삼, 햇빛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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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희

엄진희 대학원생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특히 문학, 예술, 사랑, 위험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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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호   2015-07-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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