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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설정과 해학으로 푼 짬뽕같은 한국현대사
짬뽕

김연희_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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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느 때처럼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우연찮게 한국현대사를 정리해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펼친 페이지에는 발가벗은 채 무릎을 꿇고 있거나 총에 맞아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5월 18일. 광주의 모습이었다.

    사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들은 상당히 많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7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주도했고, 이어서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 웹툰 <26년>은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1년 초연되었던 연극 <푸르른 날에>는 전석매진의 신화를 새로 쓰며 2012년 올해 재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5월 18일 그날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어떻게 죽었고, 군인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줄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 상황이 워낙 잔인하고 비극적이었기에 보는 내내 마음 한쪽이 많이 아프고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 극 소개만 봐서는 그 진중한 사건이 웃음을 통해 의미가 퇴색되진 않을지 많이 걱정했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교과서에서 몇 줄짜리로 스치듯 배운 것이 전부. 그 시대, 그 지역에 살지 않았던 나는 오히려 1980년 2월에 광주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셨던 아버지를 통해 군인들의 입장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처럼 관객들의 대부분이 이 사건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웃음에 초점을 맞추어 정작 연극의 의미가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건 희생당하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공연 포스터

연극 <짬뽕>의 가장 큰 장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짬뽕”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다는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의 일상과 관객과의 소통 속에서 연극은 끝까지 웃음과 진지함의 경계를 잘 넘어든다.

공연 포스터
  • 극은 초반 노동자, 스님, 동네 바보 등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해준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유쾌하면서 소소한 일상은 영업시간이 끝난 뒤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늦은 시간 배달을 하던 배달부의 앞을 가로막은 배고픈 군인들. 그들이 요구한 짬뽕을 줄 수 없다고 싸우다가 철가방으로 군인 하나를 상처 입히게 된다. 처음엔 그저 재수 없는 일로 여기던 중국집 춘래원 식구들은 뉴스에서 불순분자들이 중국집 배달원 등으로 분장해서 군인들을 폭행한다는 통제당한 언론 보도를 접하고 혼란에 빠진다. 경찰과 군인들이 시민들을 패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이 중국집에 피신을 오면서, 고작 짬뽕 한 그릇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오해에 그들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한다. 참 재밌게도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오해라는 점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은 이런 오해조차 사실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통제와 억압이 자행된 시기였다. 그러한 군부독재 시절의 강압을 위트와 상황극으로 극에 녹여내서 전혀 어색함이 없게 느껴졌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서로 물으며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분노하게 된 것은 내 옆, 내 주위의 평범했던 사람들을 향한 독재자의 폭력을 겪었기 때문이다.

    5월 18일, 그 날을 어떻게 겪었는가는 나오지 않는다. 배우들이 모두 총을 들고 뛰쳐나간 뒤 빈 무대에 어둠이 내리고, 다시 밝아진 무대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들이 떠났던 행복한 소풍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찍은 단체사진 위로 영정사진의 조명이 뜨고 죽은 사람들을 향한 살아남은 자의 독백이 이어진다.

    속이 답답해지면 시원한 짬뽕 한 그릇으로 속을 푼다고 하지만, 5월의 그날 뛰어나가던 신작로가 외친 “빌어먹을 짬뽕 같은 세상!”은 권력에 눈이 먼 독재, 눈치를 보며 입을 닫은 언론, 그 모든 진실을 외면한 우리 모두가 뒤섞인... 잘못 만들어져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짬뽕이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춘래원. 그러나 이제, 춘래원 식구들은 없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린 봄이 오면, 광주의 곳곳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눈물로 가득 차오른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5월은 봄이 아니라 시리고 추운 겨울이다.
짬뽕
짬뽕

[사진출처] 극단 산

태그 짬뽕, 윤정환, 극단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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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연희씨

달콤한 연희씨 책보다 공연과 여행을 좋아하는 도서관 사서
아직 서툴고 모자란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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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호   2012-07-05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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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기
글 잘 읽었습니다. 짬뽕이 이런 연극이군요. 꼭 보고 싶네요.^^

2012-07-20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영윤
김원해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였습니다. 깔깔깔 웃다가 또 분노도하고 ,, 저도 왕추천하고 싶습니다!

2012-07-24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