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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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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 4월 7일 막을 내린 연극 <목란언니>의 포스터. 재미있는 포스터라고 생각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올라가는 작품들의 제목 폰트는 대개 반듯반듯한 편인데 이 작품의 포스터는 손글씨처럼 보인다. 작품의 제목도 촌스러운데 폰트마저 이러니..풋! 남북문제를 다루었다고 들었는데 포스터 전면도 한반도다. 참...성의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가지 궁금했던 것은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고 (그것도 벌려놓고) 양쪽에서 뭐라고 뭐라고 떠드는 글상자가 붙어있다는 점이었는데 포스터가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이 쓰여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극장에 가서 제일 먼저 대형 포스터에서 그것부터 찾아보았다. 무슨 말일까?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대형 포스터에서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도록 글이 쓰여 있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면 연극을 봐라..인가? 갑자기 호기심이 불타올랐다.


    시국이 수상(?)하다. 햇볕정책 이후 오랜만에 불어오는 남북문제에 대한 훈풍이다. 드라마 <한반도>에서는 남북합작 에너지 개발에 따른 '에너지강국 코리아'와 통일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더 킹 투하츠>에서는 남한 왕제와 북한 여장교의 사랑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촌스러운 장면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볼 수 있고, 다룰 수 있고, 거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통일을 위한 ‘문화적인 발구름’ 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 연극 역시 남북문제에 대한 깊은 족적을 남기는 중이다.
    두산아트센터 경계인시리즈 3번째 연극 <목란언니>는 평양 예술학교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한 엘리트 여성인 조목란이 밀수 사건에 휘말리면서 홀로 탈북, 남한에 내려오지만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고? 왜? 사는 건 어디나 다 힘들어.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을 날렸다고? 임대 아파트 보증금도 사기 당했다고? 그런 거 북한사람이라 당하는 거 아니다. 남한 사람들도 어리숙하면 다 당하는 일이다. 그래도 견디면서 산다. 얼마나 고생하고 탈북했는데 수 천 만원을 쓰면서까지 북한으로 돌아가려 해? 그 열정이면 남한에서 다시 돈 벌어서 자리 잡을 수 있다. 적어도 북한에서처럼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공연 포스터
  • 목란은, 왜?
    목란이 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다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브로커에게 찾아왔을 때 나 역시 브로커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목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본주의, 능력껏 잘 살 수 있어. 사회주의? 개인의 욕망과 야망이 통제되는 사회가 어떻게 행복을 보장해? 드라마 <한반도>에서 탈북한 주인공인 림진재 박사가 무력혁명은 반대하지만 '사회주의'와 '조국'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며 그렇다면 왜 탈북했는가 분개하는 장면이 있다. 우린 여전히 탈북자 문제를 이편과 저편, 옳은 쪽과 그른 쪽,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라는 어린아이의 일차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목란은 북한으로 돌아갈 자금을 벌기 위해, 룸살롱을 운영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들을 키운 조대자의 집에 도우미로 취직한다. 조대자에게는 옛 애인을 못 잊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태산, 술로 세상과 사회를 비판하는 태강, 남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며 연명하는 태양 등 세 자녀가 있다. 목란은 장남 태산을 보살피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대가로 5천만원을 받기로 조대자와 계약한다.
    특명! 태산을 웃게 하라.
목란언니
  • 병든 남한의 자녀에게 순수한 희망이 되다
    룸살롱 마담 조대자의 자녀들 직업이 재미있다.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장남 태산의 직업은 역사학자, 술에 찌들어 사는 패배주의자 차남의 직업은 철학자,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하는 막내의 직업은 작가다. 그렇다면 이런 병든 아이들은 누가 낳았나. 술 팔아, 몸 팔아, 사람도 팔아 억척스럽게 돈을 번 자본주의의 얼굴, 바로 조대자 마담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 전반이 썩을 대로 썩은 지점에서 드러난다. 조대자의 아이들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오게 했지만 연극은 자본주의가 나쁜 것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화신 조대자는 일제시대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희생된 시아버지와 박정희 시절 중동에서 산업역군으로 순직한 남편의 계보를 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역사의 도끼를 휘두르며 팔 거 못팔 거 다 팔아 가며 아이들을 건사하려고 사력을 다하는 중이다.

    자본주의는 영민하다.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목란을 보고 한 눈에 그녀의 비범함을 눈치 채고 자신의 아이들을 구원할 것을 어미의 본능으로 깨닫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화신 조대자다. 그녀는 목란을 두고 "유신정권 이래로 그런 가시내를 본적이 없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 이 재미있는 대사는 실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 유신정권 이래 우리의 순수함은 사라졌다. 조목란의 비범함이란 다름 아닌 자본주의에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다. 목란은 "왜 갑자기 바지는 빨라고 지랄입네까?" 하며 태산의 성적 요구를 무력화하고, 음악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것으로 태강의 열패감을 위로하며, 태양에게는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진실로 그 삶을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라는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목란의 긍정적이고 순수한 에너지는 조대자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연극과 이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그런 맑은 기운을 나누어준다. 하지만 같은 시간 동안 조대자와 그녀의 자녀들은 목란에게 자본주의의 속성과 부작용을 가르쳤다. 놀랍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늘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서 배운다.

    조대자의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자 목란은 망치를 휘두르며 억척스럽게 돈을 받아내고 북한행 비행기에 오른다. 목란은 소원대로 북한에 잘 도착했을까? 그리운 가족을 다시 만났을까? 답은 영원히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목란을 어느 ‘캬바레’로 이끈다. 그녀는 ‘조목란’이라는 이름의 ‘조대자’가 된 것이다!!!
목란언니
  • 알지 못하는 그 말이 궁금하다...
    웃을 일이 하나도 없는 태산을 웃기기 위해 목란은 '북한에서 전구를 뭐라 부르는지 아십네까?' 하고 묻는다. 답은 ‘불알’이다. 그럼 형광등은? 답은 ‘긴불알’이다. 그럼 샹들리에는? 답은 ‘떼불알’이란다. 남한과 북한의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터져 나오는 이 유머와 아이러니는 단지 연극의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세월이 점점 흐르면서 남과 북은 점점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소통하기가 자꾸 어려워진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조선족처럼, 아니 러시아의 고려인처럼 중간에 통역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목란이 사는 곳의 말을 궁금해 해야 한다. 우리의 말을 더 많이 들려줘야 한다. 서로 이야기할 때 어색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60년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어도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는 이 연극과 시간을 함께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들어보고 웃어보고 이해했다. 그런 시간들은 소중하다. 목란은 결국 조대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조대자가 아닌 조목란인 것이다. 태산, 태강, 태양 남매와 함께 남한의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버렸으나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울고, 노래했던 소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녀는 탈북하지 않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연극을 보기 전에 연극 포스터를 보고 궁금했던 것...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 한반도를 닮은 무대와 아코디언 연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은 양쪽에 큰 기둥이 자리하고 있어 관람하기 편한 극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대각선 방향에 객석을 두고 객석을 비껴서 무대를 마름모꼴로 형상화 했다. 가장 효과적으로 분할한 공간 구분이라 관람하기 편했다. 어느 객석에서 봐도 사건은 중앙에서 일어나고 한쪽은 북한을, 다른 한쪽은 남한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한반도의 지도와 3.8선 같다.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속도감 있고 재미있게 풀었다. 초반에 관람했는데 장면전환이 빠르고 대사량이 많아 후반에 다시 한 번 보려고 했으나 전석 매진이라 다시 관람할 기회가 없었다. 시각적 재미와, 코믹한 요소, 라이브 연주와 다양한 춤, 그리고 뮤지컬 배우 출신의 노래까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았던 작품이다.

    글의 소재가 된 인물이며 탈북음악인으로서 출연진을 위해 북한문화 및 언어지도를 맡았던 채수린 씨는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 직접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극 중에는 라이브 연주를 충분히 즐겼으나 극이 모두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칠 무렵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곡을 연주한 것은 몹시 아쉬운 점이었다. 연주는 훌륭했지만 이 곡이 연주되자 갑자기 모두 숙연해지면서 뭉클해 한다. 그 동안 연극이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희미해지면서 이 극의 주제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 뭐...'로 급하게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통일은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숙원이고, 이 연극이 그러한 대전제를 안고 무대 위에 올려진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과연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었을까. 사회나 체제, 이념 같은 문제 보다 그런 것을 양산해내는 인간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둔 연극이었다는 생각인데...
  • 두산아트센터 '경계인 시리즈' 그리고 '김은성 작가 3부작'
    자칫 고정된 문제의식이나 획일화된 스타일에 빠질 수 있는 작가에게 작가의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 던져지는 새로운 주제는 긍정적인 요소이다. 작가와 연극, 그리고 관객 모두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게 된다. “경계에 선 인간을 조망해 더욱 풍부한 특징과 사회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기획의도를 가진 두산아트센터의 '경계인 시리즈'는 2년째 순항 중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 시리즈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

    김은성 작가는 남북문제, 조선족 문제 등을 다룬 3부작의 희곡을 계획했다고 한다. <목란언니>는 <연변엄마>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어떤 연극이 될지 무척 궁금하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태그 경계인, 전인철, 김은성, 남북문제,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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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파워블로거 (네이버 ‘2009~2011 공연·전시’ 파워블로그 선정)
언제나 연극을 숭배하고 또 거역하고자 하는 관객
트위터 @athanor_
블로그 blog.naver.com/sun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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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1호   2012-04-1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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