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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여, 제목에 현혹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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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가면 형형색색의 잠바를 입고 명함을 돌리며 자신의 이름과 숫자를 알리기에 바쁜 선거철인 요즘, 이 공연의 제목을 보면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시사적이고 사회적인 내용을 다룰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제목에도 썼다시피 공연의 제목과 내용은 사실상 크게 상관이 없다. 재밌는 건 제목이 이러한데 작가는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 그렇다면 프랑스 작가는 딱히 통일에 대해 관심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제목으로 작품을 썼을까. 공연관계자와의 술자리에서 슬쩍 흘려들은 말로는 작가가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말도 조금은 할 줄 안다고 한다. 제목도 ‘코리아’라는 말 대신 ‘한국’이라는 제목을 더 넣고 싶었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남한의 공식명칭은 ‘대한민국’이고, 북한의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니까 두 개의 한국이 나올 수 없기도 하다. 어쨌든 이 공연은 제목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

이 공연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건 <올모스트, 메인>이라는 작품이었다. <올모스트, 메인>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사랑에 관한 주제로 글을 썼다면 <두 코리아의 통일>은 사랑을 포함한 좀 더 넓은 범위의 소재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형식. 20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들마다 다채로운 색깔을 뽐낸다.
어찌 보면 굉장히 연극적이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정말로 일어날 법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각 장면마다 상징성들이 명료하게 있지만 작가는 스스로 해답을 내리지 않고 관객들에게 생각할만한 여지들을 충분히 던져놓는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자가 짐을 싼다. 남자는 여자에게 어딜 가냐고 묻는다. 여자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게 있다면 남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길을 떠난다. 앞뒤전후좌우 사정은 관객도, 배우도, 아마 작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잠깐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관객들은 각양각색의 생각들을 하게끔 만든다.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 살면서 언제가 한 번은 벌어질 것 같은, 단순히 남의 얘기로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를 던진다. 관객들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야기들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극장 문을 나서며 자신의 마음에 더 깊게 날아와 꽂혔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나이가 마흔 다섯인데 키스할 수도 있다고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는 신랑, 학생을 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의를 베푼 것이라고 목놓아 외치는 선생,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되지만 오히려 그 행위 때문에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사장을 추궁하는 직원, 매춘부에게 일종의 피해보상이라며 순수한 의도로 돈을 건네는 신부, 의사가 보기에 남편은 맨날 술에 취해있고 망나니 같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임산부 등 명확한 답을 내려주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각각의 상징성을 갖고 이야기를 펼친다. 그 상징성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프랑스 연극 작품을 볼 기회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는 극단 프랑코포니의 노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이 극단의 창단 공연인 <유리알 눈>부터 시작해서 몇 편의 공연을 봤지만 아직까지 실망했던 공연이 없을 정도로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능력부터 뛰어나다.
배우들의 호흡들도 좋다. 6명의 배우가 중견으로써 각자의 역할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자신의 몫을 단단히 잘 버텨주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목과 포스터, 그리고 조금은 길게 느껴지는 듯한 공연시간 정도.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을 뚫고 극장을 찾아간다면 분명 후회하지 않는 작품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억을 잃어버린 아내에게 매일 같이 찾아와 이야기를 해주는 남편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설레며 안기는 모습의 장면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진: 극단 프랑코포니 제공]

태그 프랑코포니, 두 코리아의 통일, 김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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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김호준 연극배우
낮에는 연습을, 밤에는 공연을, 새벽에는 글을 쓰고 가끔 사진도 찍는 연극배우.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몰아서 쓰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조금은 게으른 블로거로도 활동 중.
http://namba01.blog.me
제90호   2016-04-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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