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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그을린 삶 속에서 완성된 진정한 사랑
그을린 사랑

박현정_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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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 한 여자, 그녀의 이름은 나왈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나왈. 나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낳은 아이를 빼앗기고 나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고부터, 세상의 모든 불의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탄생이 고통이었던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면서. 나왈은 반드시 강해져야만 했다. 나왈에게 나약함은 곧 죽음이었을 것이다. 노년의 나왈 앞에 놓인 과거는 세상에 대항하다 감옥에 갔고, 그 곳에서 고문과 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로 인해 쌍둥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을 키웠다. 자의에 의한 사랑이 아닌, 타의에 의한 강간으로 인해 또 다른 자신인 자식을 낳은 여자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혹은 분노였을까?
    하지만 나왈이 그런 절망과 분노만을 느꼈다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녀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대신 나왈은 강한 여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나왈 앞에는 지금까지의 고통보다 훨씬 더 깊고, 견딜 수 없는 사실이 고통이 되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 앞에서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하면서 나왈은 비로소 한 여성이 아닌, 한 ‘인간’이 된다.
공연 포스터
  • 이오카스테의 슬픔을 넘어서
    나왈 앞에 놓인, 나왈을 고통으로 밀어 넣는 사실은 그녀를 고문하고 강간하던 남자가 바로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을 아들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면, <그을린 사랑>은 <오이디푸스 왕>보다도 훨씬 더 비극적인 상황에서의 근친상간을 어머니를 통해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오카스테보다 오이디푸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 역시 이오카스테의 슬픔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을린 사랑>에서는 나왈을 통해 이오카스테의 슬픔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왕>의 이오카스테가 진실 앞에서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도망간 것과 달리 나왈은 도망가지 않는다. 그저 침묵할 뿐이다. 이것이 나왈과 이오카스테의 차이점이다. 또한 이는 나왈을 이오카스테이면서, 이오카스테가 아니게 만든다. 나왈과 이오카스테는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오카스테는 여성으로만 남았고, 나왈은 인간으로 남았다. 이들은 어머니가 겪어서는 안 될 극한의 상황에 마주했다. 그 상황에 더해 나왈은 여성으로 절대 겪을 수 없는 상황까지 겪었다. 그러나 이오카스테는 진실을 피하므로 여성은 될 수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간은 될 수 없었다. 그와 달리 나왈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포기하지 않으므로 여성을 뛰어넘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근친상간을 하거나, 강간을 당해야 여성이 되고,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또한 남성은 그 자체로 온전한 인간이고, 여성은 그 자체로 온전한 인간일 수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불완전하고, 그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만나는데 누군가는 그 사건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되고, 누군가는 여전히 여성 혹은 남성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나왈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숨기지 않았다. 진실을 쌍둥이와 아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본다면 굉장히 가혹한 행동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할 수 있다. 진실과 마주하거나, 진실을 회피하거나. 나왈과 나왈의 쌍둥이 자식인 잔느와 시몽은 고통스럽지만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나왈을 강간한 나왈의 아들의 선택만이 남는다.

    그을린 삶 그리고 완전한 사랑
    인간 나왈의 삶은 그을렸다. 견딜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그녀는 견뎌냈다. 그녀의 삶은 그을렸지만, 그녀의 사랑은 그을리지 않았다. 자신을 강간한 아들에게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사랑. 그 사랑은 결코 그을린 사랑이 아니다. 숭고하고, 완전한 사랑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운명에도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오 년 간의 침묵의 시간을 지나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 죽음 앞에서도 그녀는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항한다. 세상에 대항하고, 운명에 대항하던, 단순한 여자를 넘어선 인간이었던 나왈. 세계에 대항하던 그녀는 인식을 통해 고통에 이르렀지만, 그로 인해 그녀의 사랑은 진정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진출처] 명동예술극장

태그 그을린사랑, 와즈디 무아와드, 김동현,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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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박현정 대학생
1992년생. 문예창작과에 다니고 있으나, 문학보다는 공연을 더 사랑하는 한 사람.
언젠가 창작자와 관객을 잇는 제대로 된 공연 평론가가 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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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호   2012-07-19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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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전 공연을 보고 나서..ㅡㅡ 나왈의 행동에 대해서 갈등이 많았더랍니다. 진실이란 게 참....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 같아요....

2012-07-19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좋아
최근 감정이 매말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었는데, 이 연극을 보고 정말 실컷 울었습니다. 감정을 추스렸는데도 커튼콜 배우의 모습을 보는 순간 한번 더 울컥~! 올해 최고의 연극인거 같아요.

2012-07-2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