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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숨겨 둔 이야기
그와 그녀의 옷장

이연호_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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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된 지는 이미 너무 오래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옷을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이나, 몸을 보호하는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이 시대의 옷은 자신을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한 패션수단으로, 입은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거나 과시하는 도구로, 잠깐 입고 버릴 유행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옷에는 여전히 세월과 땀, 추억과 슬픔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그런 옷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옷’니버스 극이다.
공연 포스터
  • 무대에는 투박한 옷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연극의 줄거리만을 들으면, 그 동안 많이도 들어보았던 노동극 류로 식상하게 비추어 질지도 모르겠다. 노동자 가족이 나와서 각각의 히스토리를 보여주고 어떤 노동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언뜻 현장르포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펼쳐 놓는 이야기는 걸쭉한 마당놀이 한 편 같다. 자그마한 공간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불편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시종일관 해학과 위트로 그려내고, 노래와 춤으로 장면을 전환시키며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극단의 이름마저 ‘걸판’이라니, 아마 이들도 관객과 함께 춤추며 걸쭉한 판을 벌이고 싶었나 보다. 양반전의 한 자락 같기도 하고, 채플린의 영화 한 장면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지금도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많은 해고 노동자들 혹은 파업 노동자들을 담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뉴스와 신문을 장식할 수 조차 없다.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3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강호남의 가족 구성원들을 보여준다. 산업화 시절의 노동자로 출발하여 지금은 중년기 이후를 보내는 서민들의 전형은 강호남의 옷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 경비원인 강호남과 김영광은 ‘청카바’를 입고 동네를 주름잡던 40여 년 전부터 둘도 없는 친구이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둘은 ‘공장의 작업복’을 입고, 마치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기계와 혼연일체가 되어서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은 커녕,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여전히 한 벌 밖에 없는 ‘경비옷’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싸움이 호남과 영광의 싸움이 아닌 이 둘과 관리실장 간의 싸움이 되어야 함을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리실장에게 담배를 사다 바칠 때, 고급 와이셔츠를 사다 주려 할 때 안타깝고 속상함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마침내 화해하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함께 눈물을 훔치게 되는 것이다.
공연 포스터

식당 노동자인 오순심은 평생 ‘작업복’만 입었고, 지금은 비록 이마저 입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아들인 수일이 오늘 아침부터 ‘양복’을 입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일의 양복은 회사원의 당당한 양복이 아니라 용역깡패의 양복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엄마를 때리고 몰아내야 하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 불편한 만남은 적막으로 표현되고, 순심은 자신의 적이 되어버린 아들에게 “얼른 집에 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말한다. 이렇게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직장인이 된 수일이 노조에 참석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조끼’를 입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연설을 늘어놓는 순애 때문이다. 호남과 순심의 세대와는 달리, 수일에게 투쟁은 더이상 생존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그에게 투쟁은 사랑을 위한 것이고 다른 이들을 도우려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어떠랴, 수일을 통해 여전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순애들’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수일을 통해 이 극은 더 넓은 보편성을 획득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투박하게만 보였던 그 옷장이 참 따뜻하게 보인다. 이 옷장 하나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있지만, 한 번도 곰곰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 말이다. 예리하지만 따뜻한, 슬프지만 폭소가 터지는 이야기가 옷장 안에 숨어 있었다.


[사진출처] 극단 걸판

태그 극단걸판, 오세혁, 그와 그녀의 옷장, 게릴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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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

이연호 연구보조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좋아하는 관객
이메일 lyh912@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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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호   2012-07-19   덧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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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광호
관람하고 왔습니다!감동후불제 공연인 부분이 좋았으며 우리사회의 비정규직 사원들의 애환과 실태를 그린 뭉클한 공연 이었습니다!

2012-07-20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좋아
명랑만화 같은 연극!! 관객으로 가득찬 공연장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네요. ^^

2012-07-25댓글쓰기 댓글삭제

걸판
극단 걸판입니다. 공연을 봐주신 것도 감사드리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후기를 써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연극은 평생 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7-26댓글쓰기 댓글삭제

이두리
저도 공연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세혁 작가님 작품 정말 재미있어요~~

2012-07-26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