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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전명출 평전

한성옥_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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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한국의 격동기. 그리고 그 세월을 살아낸 소시민. 소시민은 둘 중 하나다. 순진하거나, 비겁하거나. 하지만 종이의 양면처럼 순진한 것은 어쩌면 더럽혀지기 가장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대가 그 역할을 했다. 격동의 시대는 순진한 영농 후계자였던 전명출을 비겁한 인간으로 변모시켰다.

공연 포스터
  • 이 극은 세 번의 매달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전명출의 딸인 내레이터에 의해 진행된다. 내레이터의 역할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맨 처음 내레이터가 등장하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극의 시작, 조명이 켜지면서 전명출이 나타난다. 그는 철골 구조물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친다. 그 외침을 듣는 것은 그의 딸이다. 그녀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전명출은 매달려 있다. 살려달라고 딸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녀는 구해줄 수 없다. 왜냐하면 전명출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는 계속 매달려있다. 목청껏 살려달라고 외치며, 팔에 힘을 주어 매달리며, 남은 근력을 모두 짜내며, 안간힘을 쓰며.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극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전명출의 생은 매달림이었다.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을 모르는 이의 안타까운 혹은 헛된 매달림.

    극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내 주변의 관객들은 눈물을 보였다. 나 또한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전명출이 그토록 외면해온 오래된 청춘의 한 조각이다. 아내 순님에게 고무신을 팔아 하드를 사주던 시절의 반짝이는 전명출. 그 반짝임은 관객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극 중 전명출의 생은 이 따뜻한 빛남, 환함을 모두 잃어버린 이후의 이야기이다. 영농후계자이지만 어려운 생계를 메우기 위해서 마늘건조장에서 마늘을 훔치다 친구인 이장에게 걸려 동네매를 맞은 이후로, 술로 세월을 보내다 아내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것을 목도한 이후로, 그리고 자신의 빛나던 시절을 품은 고향을 야반도주하여 떠난 이후로 전명출의 생은 이미 죽어버린 것과 진배없었다. 반짝임도 환함도 모두 잃어버린 생. 그러나 그것이 죽은 것임을, 이미 생명을 잃은 것임을 자신은 알지 못한 채 계속 안간힘을 쓰며 살겠다고 매달렸던 것이 전명출의 반생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짬뽕
짬뽕
  • 이것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연극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상실을 만들었는가. 아무래도 이 연극은 역사를 그 배후로 지목하는 듯하다. 부정부패가 횡행했던 시대. 정의롭게 살아서는 기껏해야 삼청교육대밖에 못 가던 시대. 그 의견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극에서 조금 불편했던 것이 있다면 그 점을 너무나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신문기사에 조명을 비추는 것까지는 그럴듯했으나 지나친 내레이터의 극중 개입과 설명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브레히트의 소외효과 친숙한 환경과 대상을 낯설게 보이게 함으로써 일련의 효과를 노리는 미학 전략 를 노린 것일까. 하나의 갈등을 집약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희극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주제를 전달하는 극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방법은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극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관객들의 가슴에 어느 정도의 파동을 일으켰을 것 같다. 녹아버린 하드를 보고 주저앉아 우는 전명출의 모습은 내 가슴 속에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순님이 수몰된 마을을 밤마다 내려다보듯 우리에게도 자신의 수몰된 시간들을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연 나는 아직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내 생도 이미 전명출의 그것과 같은 매달림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하는 연극만큼 좋은 연극이 있을까? 첫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우산은 없었지만 비를 맞으며 걸어도 행복했다. 이 연극이 내게 준 작은 행복이었다.


    [사진출처] 남산예술센터




  • 태그 백하룡, 박근형,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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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옥

    한성옥 회사원
    대학에서 전공한 문학 혹은 연극,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자 함.
    희곡을 읽다가 연극을 찾아다니게 된 관객.
    creamblue_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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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5호   2012-08-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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