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TOP

연극인

검색하기

고추의 Ethics Vs, 고추의 Morals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윤리와 도덕의 차이는 무엇일까?

‘윤리는 집단내의 약속에 의한 규범’, ‘도덕은 개인의 양심에 비춘 규범’이라고 수업시간에 배웠던가? 비슷한 듯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다고 생각하는 두 단어 ‘윤리’와 ‘도덕’ <옥상 밭 고추는 왜>의 부제 는 무대가 밝아지기 전까지 관객을 적잖이 당황시킨다.
20년 된 낡은 빌라의 재건축을 추진하는 60대 현자는 재건축에 동의해 주지 않는 광자의 옥상 밭 고추를 모조리 따 버린다. 광자는 이에 항의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고, 이웃 주민 동교와 현태는 광자를 쓰러뜨린 책임을 물어 현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현자는 사과를 거부하며 버티고 급기야 광자는 병원에서 사망하고 마는데......
변두리 빌라에 살고 있는 인간군상의 이야기, <옥상 밭 고추는 왜>는 그 앙상한 무대만큼이나 우리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얇은 벽하나 사이에 두고 제각각의 고민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객들은 한눈에 시원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교수, 예술가, 건물주를 꿈꾸는 대학 강사, 무명배우, 퇴직한 노인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은 빈곤과 소외를 탈출하고자 하는 회피동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바로 여기에서 온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난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 그것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낡은 빌라 앞마당의 풍경은 냉랭하고 적대적이다. TV드라마에서 보는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은 온데간데없고, 연출은 스물 세 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고립되어 보이게 한다. 특히 한 무리로 몰려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두드러진다. 그들은 함께하고 있는 것 같지만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당에 나와 앉아있는 노인들도, 늘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택시기사들도,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도 다 속마음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갈라놓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풋고추 몇 개, 불고기 백반과 제육볶음, ‘너 몇 살이냐?’며 붙는 시비 따위가 그들을 분열시킨다.

이 극에서 유일하게 다른 방식의 꿈을 꾸는 인물은 바로 광자다. 그는 옥상의 남는 흙(현자의 흙)에다 고추를 심는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진딧물을 일일이 손으로 잡으며 정성스레 고추를 키우고, 이웃에 나눠주며 기쁨을 느낀다. 낡은 집이지만 북한산 보이는 것에 만족하며, 밭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광자. 그래서 그녀는 이 빌라에서 매우 이질적인 존재다. 노후에 대한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현자에게는 재건축을 방해하는 눈엣가시이고, 기계적인 세상에서 밀려난 백수 동교에게는 잃어버린, 그러나 되찾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동교는 광자를 쓰러뜨린 현자의 사과를 그렇게 받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빌라 재건축을 성사시켜 집값을 올리려는 현자는 악의 축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6,70년대를 살아 낸 우리 부모세대의 모습이자, 노후 대책 없는 현세대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모든 것은 돈이고, 곧 생존이다. 그녀가 나라위해 일했다고 국가를 들먹이는 것은 그 시절엔 국가와 개인이 하나라는 관념이 지배했기 때문일 테지만, 현자는 직업윤리에 따라 산업역군으로 열심히 살았고, 집을 마련했고, 빌라 재건축도 저 혼자 좋자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이다. 협조를 안 하는 개인주의자들이 미울 만도 하다. 우리는 늘 하나여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세입자와 집주인을 나누는 그녀의 행동은 이해관계로 집단을 나누는 모든 집주인들의 윤리에 정확히 부합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고, 그래서 더 낯 뜨겁다. 그녀는 비윤리적인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녀가 욕을 먹어야 하는가?
한편 정교수가 된 부인과 이혼을 앞 둔 동교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도덕을 실현하고자 한다. 광자의 고추를 따는 것은 현자에게는 주인의 윤리로 보아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흙은 현자의 것이 아닌가 말이다.) 동교에게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용납할 수 없는 부도덕한 행동이다. 한 가지 행동에서 윤리와 도덕이 충돌할 때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을’의 분노에 차있는 무명배우 현태는 갑질하는 현자에 대한 도덕적 응징을 꾀하지만 그를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윤리이다. 그가 인터넷상의 정보윤리를 어길 때 사회는 그를 강하게 비난하고 제재한다. 어쩌면 동교가 인터넷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윤리의 덫에 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도덕을 실현하기 위해서일 지도 모른다. 결국 풀이 죽은 현태는 광자의 죽음 앞에 목표를 잃고 망연자실한다. 사과의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교는 포기하지 않고 광자의 복수를 위해 현자가 했던 짓을 똑같이 저지른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잡혀간다. 고추를 따는 것은 도덕의 문제이고, 개를 유괴하는 것은 윤리의 문제이다. 그는 법이 결코 도덕의 편에 있지 않고 윤리의 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윤리를 어기면 처벌받지만 도덕을 어긴다고 처벌받지는 않는다. 거지가 부잣집 마당에 떨어진 감을 주워 먹으면 처벌받지만,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긴다고 처벌받지는 않는다.
현자는 윤리의 선을 넘지 않게 부도덕하고, 동교는 도덕의 실현을 위해 비윤리를 택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현태다. 도덕을 따라 윤리를 저버리기에는 무언가 확신이 부족하고, 도덕을 무시하고 냉정한 윤리만을 지키기에는 아직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는, 그래서 옥상 밭 고추는 시들어가면서도 그렇게 맵고, 현태를 그토록 눈물 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있어야 할 곳에 놓인 대사와 상황이 희곡의 힘을 보여주는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배우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에 힘입어 ‘고추 하나 때문에도 사람이 이럴 수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얼얼하게 매운 연극이다.

[사진: 서울시극단 제공]

태그 서울시극단, 옥상 밭 고추는 왜, 고수진

목록보기

고수진

고수진
무대 아래서 늘 무대를 향하는 사서.
학창시절 전부를 극장에서 지냈고, 지금도 시선은 늘 무대로 향해 있는,
텅 빈 극장 냄새와 책 냄새에서 안식을 찾는 도서관 사서.
koveronica@hanmail.net
제126호   2017-10-26   덧글 1
댓글쓰기
덧글쓰기

이선민
남의 흙으로 고추를 키우며 북한산을 바라보는 소박한 삶이 좋아 집주인의 재건축을 반대하다 쓰러진다는 설정이 광자 또한 대상이 다를 뿐 자기 욕심, 자기 꿈을 위해 타인의 정당한 욕구를 제한시키려는 이기적 행동이라 줄거리만으로는 설득이 잘 안되는 전제인 듯 싶네요...

2017-11-26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