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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겨울의 끝,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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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수십 년 동안 한국 연극계를 병들게 했던 위계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 문제가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누군가는 철장 뒤 수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몇 달째 행방이 묘연하며, 누군가는 역고소를, 누군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 선 이들은 미디어의 먹잇감이 되었고, 꽃뱀이라 손가락질 당하고, 때론 정권을 흔들려는 음모의 주체가 되었다. 양극단의 경계선에 서 있던 이들은 수 년 혹은 수십 년 전의 희미해진 기억들을 복기하며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혼돈과 질서, 절망과 희망이 끊임없이 교차한 혹독한 겨울이었다. 봄의 기운이 광장의 냉기를 녹여 줄 무렵, 수백 명의 관객들은 연극인들을 대신해 피해자에게는 연대와 지지를,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연극은 관객에 의해 완성된다’는 말을 마로니에 광장 한복판에서 목격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그들의 힘찬 구호는 따뜻한 포옹이 되어 나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 봄이었다.
2018년 초여름
‘미투’ 이후, 우울증과 불안 장애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던 내게 어머니는, 당신 대신 막내동생의 산후조리를 돕고 오라며 스웨덴행 비행기 표를 쥐어 주셨다. 나는 그 길로 한 달 치 가방을 싸 스웨덴으로 향했다. 아마추어 산후조리사와 유모 역할은 연습이나 공연만큼 고된 일이었지만, 부서진 마음을 추스르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연극을 핑계로 늘 길 위의 유목민으로 사느라, 언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세월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쟁통 같은 연극 밖 세상은 시시하다 느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평범하여 더욱 비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목 뒷덜미를 매섭게 스치던 봄밤의 찬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나는, 그렇게 천천히 정신적 전쟁터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2018년 여름 한복판

지난 7월 스웨덴 배우 겸 연출 바하르 파스와 만난 기념사진

귀국을 2주 앞둔 7월 중순의 어느 날, 스웨덴 예술계의 미투 운동에 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양성평등 개념이 사회 전반에 뿌리 내려 인종과 직업, 젠더에 의한 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에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 중 최초로 미투 운동이 촉발한 나라였다. 연극배우, 영화배우, TV 연기자에 이르는 500여 명의 여배우들이 한 날 한시에 공동 성명을 내고, 미투 운동을 벌였다고 했다. 스웨덴을 넘어 북유럽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주류 여배우들이 선두에 있었다는 점은 더욱 놀라웠다. 그들은 장르를 아우르는 여배우들의 연대를 통하여 미투의 폭발력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영민한 방법을 택했고,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의 담대한 집단 미투는 스웨덴 사회를 뒤흔들고 이웃 나라 덴마크, 핀란드, 스위스까지 미투 운동을 퍼트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질문의 답을 들어야 했다. 나는 스웨덴 배우 조합의 의장이며, 미투 운동을 이끈 배우이자 작가인 수잔나 딜버(Suzanna Dilber)와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바하르 파스(Bahar Pars)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일면식도 없는 무명의 한국 배우 이메일에 과연 답을 해줄까 반신반의했는데, 하루 만에 바하르 파스로부터 답이 왔다. 며칠 뒤 스톡홀름 시내에서 바하르를 만났다. 그녀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팔 벌려 부둥켜안았다. 우리 사이에는 이미 끈끈한 동지애와 연대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하르는 개개인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용기를 냈고, 그 용기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한국의 미투 운동 양상에 놀라움과 경의를, 나는 500여 명이 넘는 여성 예술가들이 연대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용기와 결단에 찬사를 보냈다. 바하르 말에 따르면 미투 이후 대중의 반응, 미디어의 2차 가해, 가해자들의 대응에 있어 스웨덴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스웨덴의 극장, 극단의 90% 이상이 자발적으로 예술 현장에 맞는 행동 규약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연습 첫날, 모든 참여자들이 모여 건강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할 구체적인 규범들을 함께 읽고, 동의하고, 서명함으로써 연습이 시작된다고 했다. 또한, 프로덕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 성폭력뿐 아니라 인종과 젠더에 의한 차별, 위력에 따른 부당행위 등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조정하는 창구를 일원화하여 별도로 두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가해자들의 행위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 망가진 예술 생태계에서 생겨난 ‘현상’ 임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또한, 미투 운동의 핵심 구성원들이 익명성을 보장하는 여러 단위의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마치 비밀 결사와 같이 피해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내가 막 미투를 했을 때, 나의 멘토께서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지’라고 하신 말씀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헤어지기 전 바하르는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너의 과거를 지옥으로 만든 그가 더는 네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 설령 연극판에 돌아온다 해도 그는 더이상 거장이 아닐 테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상 고온 현상으로 타는 듯한 초여름 공기조차도 내 심장을 조이지는 못했다.
2018년 8월 여름의 끝
한국으로 돌아온 몇 주 후, 스웨덴의 수잔나 딜버에게서 늦은 답장이 왔다. 내가 만남을 청한 당시 해외 촬영이 있었다며,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녀와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라 밖 공연 예술계 미투 운동에 더욱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과 호주를 포함한 영어권 150여 개 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는 시카고 스탠다드를 알게 되었다. 시카고 스탠다드는 오디션 과정부터 연습, 공연 종료 시점까지 제작 환경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반영한 현장 백서로, 시카고 극단의 공동 대표인 로라 피셔(Laura T.Fisher)에 의해 만들어진 자율성을 전제로 한 실제적 규약집이다.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은 없으며 각 지역, 문화, 작업 현장의 현실에 맞게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단어 하나하나에 현장 전문가이기에 가능한 통찰과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로라 피셔와 어떻게든 연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국 연극계의 친한 동료에게 주선을 부탁했다. 며칠 뒤 이루어진 전화 회의에서 로라와 나는 시카고 스탠다드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한국 미투 운동의 현재에 이르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후 지난 몇 달간 내가 만나고 전해 들은 경험을 한국의 동료들과 공유하였고, 이것을 더 많은 현장 예술가들과 나누기 위해 국제 포럼을 진행해보자는 것으로 의기투합하였다. 이에 스웨덴의 수잔나 딜버와 미국의 로라 피셔가 즉시로 기꺼이 응해 주었다. 올해 10월 초에는 수잔나 딜버를 초청한 국제 포럼 ‘연대의 힘’을 개최하고, 내년 2월 로라 피셔를 초청하여 한국 현실에 맞는 미래의 코리아 스탠다드를 만들기 위해 그녀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포럼을 갖기로 합의하여 구체적인 준비가 한창이다. 무모하게 시작된 행동이 한국뿐 아니라 나라 밖 훌륭한 동료들과의 네트워킹으로 이어지면서,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 나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도 공연 예술 생태계 자정을 위한 자발적 약속을 만들고, 실천하고, 서로를 돌보고 존중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천천히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분투 중인 수많은 예술가와 연대하여 예술가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위력이나 불의 앞에 당당히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아직은 세계 그 어느 곳에도, 여성,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가 완벽히 보호받고 존중받는 안전지대는 없어 보이지만, 안전하고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싸우고 있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희망은 있다.

태그 박영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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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박영희

예고, 예대 연극과 졸업 후 극단 목화에서 배우 생활을 하였고, 이후 라트 어린이극장에서 호주 예술가들과 작업하면서 예상치 않게 배우에서 연출가와 극작가로, 연극교육과 퍼실리테이너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지난 10년 간 주로 호주와 한국에서 배우와 초청 교수, 공동 창작자, 한호 예술가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 하였고, 현재는 극단 잼박스의 연출가이자 한호 공동 창작 집단 컴퍼니 배드의 멤버로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토록 원하는 연기는 주로 해외에서, 한국에서는 연출과 극작, 희곡과 영화 번역을 하며 기이한 독립예술가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제148호   2018-09-20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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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10월 포럼 아주 기대됩니다. 흥미로운 발견 성찰하는 시간 모두 갖게 되길 기대할께요. 고맙습니다.

2018-09-22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