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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스탠다드 창시자 로라 피셔(Laura T.Fisher)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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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올리어리의 소’
애틀랜타에서 1시간 반 남짓 비행 끝에 도착한 시카고의 11월 주말 아침엔 눈발이 날렸다. 로라와 나는 만나자마자 이산가족 상봉하듯 얼싸안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시카고 전체를 따라 유유히 흐르는 미시간 호의 규모에 압도되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엄청난 위용의 고층 건물 숲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놀랍도록 현대적인 건축 양식이었다. “건물이 모두 새 것처럼 보여요.” 로라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19세기 말에 시카고 도심 대부분을 다 태워버린 ‘대(大)화재’가 있었어. 워터 타워(Water Tower) 하나만을 남기고 전부 다 태워 버렸지.” “화재 원인이 뭐였어요?” 이어지는 질문에 그녀 얼굴에 짖궂은 미소가 스친다. “정확한 원인은 미스터리고, 미스 올리어리의 소가 헛간의 램프를 떨어트려서 불이 난 거라고 해. 노래도 있어.” 로라가 노래를 흥얼거리자 우리 둘은 박장대소했다. 전해지는 민담처럼 미스 올리어리의 소 때문인지는 알 길 없지만, 10만 명 이상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300여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는 이후 재건 과정을 통해 시카고를 미국의 가장 큰 경제 중심지로 새로 일으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사건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사뭇 의미심장하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집어삼킨 화재 뒤 모든 걸 잃어버린 완전한 ‘무(無)’ 위에서, 비로고 그들은 오늘날의 새로운 시카고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시카고 스탠다드는 두더지 잡기 용도가 아니야.’
늦은 점심 식사 후 우리는 곧바로 회의 테이블에 앉아 본격적으로 시카고 스탠다드(약칭 CTS)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로라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것은 CTS가 작업 환경 속에서 ‘ 나쁜 놈(사람)’을 잡아내고 처벌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락실에 가면 두더지 잡기 게임 있지. 여기저기서 두더지가 머리를 내밀면 망치로 때려잡는 거. CTS는 조직 안의 ‘악당(두더지)’를 때려잡기 위한 수단이 아니야. CTS의 핵심은 사실상 배우 조합에 가입되 있지 않은 취약한 위치의 신진 예술가 그룹이나 그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예술가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데 있어. CTS는 이들에게 안전하고 존중받는 작업 환경을 자율적으로 만들어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종의 ‘코드’라고 생각하면 돼.”
‘우리의 타깃은 바로 시스템이야.’
미국에는 강력한 배우조합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정 기간의 경력과 조건을 충족해야만 조합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배우 조합 규약집에는 사실상 성추행이나 성폭력 관련 조항이 매우 짧고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고, 문제 해결의 책임을 결국 개인이(생존자) 안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대학을 갓 졸업한 신진 예술가나 소규모 단체들은 조합의 보호망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미국의 연극, 공연계는 정부 지원금이 아닌 개인 혹은 사기업이나 민간재단으로부터의 ‘후원금’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미국 공연계 특히 상업 공연 시장에 흘러들어오는 자본의 규모는 한국 공연계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실로 엄청나다. 미국 공연계를 지탱하는 거대 자본은 역설적으로 공연계 내 빈부격차를 넓히는 악 영향으로 작용하고, 신진 독립 예술가의 존립을 위협하며, 유명 연출가의 유명 극장에서 제작되는 유명한 상업극 프로덕션에 참여할수록 개개인의 인권이나, 평등권, 복지 등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는 결과적으로 예술과 예술가를 상품화하는 부작용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CTS가 이러한 미국 공연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를 갖고있는 현역 ‘베테랑 여배우들’로부터 탄생되었다는 점은 그 사실 만으로 한국 공연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장 동료 선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아 온 로라와 로리 두 여배우는 동료 배우들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안위를 염려하기 전에 ‘문제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 처절한 고민의 산물이 바로 예술가들 스스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코드 ‘시카고 스탠다드’인 것이다. 로라는 대화 도중 수차례 “우리의 최종 타깃은 결국 시스템이야. 이걸 변화시켜야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어!” 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한 문장을 보탰다. “그 시스템을 바꾸는 건 결국 로라와 같은 ‘사람’ 이고요!”
‘CTS, 잠재적 가해자에게 존재만으로도 위협적.’
“CTS 작업을 시작하면서 어쩌면 다시는 배우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CTS가 공개된 후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얻었지만, 동시에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거든.”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던 장난기가 사라졌다. “내가 공연을 보러 가거나 연습실을 놀러 가면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로라, 경찰도 달고 온 거야?’ 하고 농담을 하곤 해. 그건 두려움의 표현이지. CTS는 아무런 강제성도 법적 효력도 없지만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코드니까.” 듣고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안전하고 행복한 작업 환경을 만들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도구지만,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CTS는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위협’이 될 수 있겠구나. “사실 잠재적 가해자들이 CTS가 불편해서 제 발로 나가주면, 그거야말로 고마운 일 아니겠어?.” 로라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 영 내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경험이 올 한해 내가 겪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리라. “로라...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 로라가 빙그레 웃었다. “일이 줄어 드는 건 내 나이 또래 여배우들은 피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CTS 덕분에 영희를 만나게 되고 이제 곧 한국에도 가게 되었잖아. 얼마나 멋진 일이야!” 소녀처럼 들떠 환호하는 로라를 보며 나도 함께 팔을 치켜올려 흔들며 환호했다. 커다란 산을 넘어선 한국과 미국의 두 여배우는 그렇게 두 사람만의 언어로 서로의 지나온 시간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축복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Not In Our House’
CTS는 시카고 연극계에서 20년 넘게 수많은 여성 연극인들에게 성적, 정신적인 학대와 폭력을 일삼은 배우이자 프로파일 극장의 공동 대표인 다렐 콕스(Darrell W. Cox)에 대한 폭로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도적으로 젊은 여배우들을 타깃으로 삼아 연기 지도를 목적으로 온갖 성희롱을 자행해 왔으며, ‘진실한연기’를 빙자하며 이미 짜여진 무술 안무, 성적인 장면의 안무 등을 깡그리 무시하여 시카고 연극계에서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모두가 그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를 막지 않았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다 2010년 콕스와 프로파일 극단을 유명하게 만든 작품 ‘킬러 조 Killer Joe’ 에서 콕스는 공연 중에 여배우의 목을 실제로 조르고, 상대 여배우를 냉장고에 집어 던져 냉장고를 박살 내는가 하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실제 강간을 일삼는 등 차마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성적, 물리적 범죄를 반복적으로 자행하기에 이른다. 평단은 콕스의 광기 어린 사실적(?) 연기에 환호 했지만 몇 달 후 벤슨과 웰린, 두 젊은 여배우의 폭로로, 객석이 열광했던 모든 순간이 진짜 ‘폭력’과 ‘성폭행’ 이었음이 드러났다. 두 여배우의 폭로는 곧 7백여 명의 현장 예술가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 내었고 그 결과 ‘Not In Our House(NIOH)’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 로라와 로리 두 여배우가 서게 되었다. 로리는 생존자들의 상담 연결 및 법적 지원 연결, 멘토링 등을 전담하고, 로라는 배우 조합 위원회 예술가들, 법률 자문단,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시카고 연극계 선배 예술가들을 한데 모아 시카고 스탠다드 작업을 전담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용기 있게 폭로한 두 여배우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에 대한 로라의 대답이 매우 뜻밖이었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사실 난 전혀 몰라. 생존자들에 대한 지원은 전적으로 로리가 책임을 지고 지역의 심리 상담가, 정신치료사들과 협업해 진행하는데, 거기 참여하는 생존자들에 대한 정보를 나는 접근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아. 그건 오로지 생존자 보호를 위해서야. NIOH 초기에 강연을 다닐 때, 사람들이 생존자들의 근황을 많이 물었는데, 그건 호기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그때 깨달았지. 생존자들에 대한 정보를 미디어나 대중에게 차단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나 자신부터 그 정보로부터 차단 시키는 것 이라는 것을.”
‘흩어진 예술가들에게 손을 뻗어.’
로라는 지난 10월 스웨덴의 수잔나를 초청하여 한국에서 진행한 국제 포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국제 연대라는 화두에 로라는 대화 시작부터 깊이 공감하였다. CTS는 특히 작년에 헐리웃을 휩쓴 유명 여배우들의 미투로 미국 전역에서 더욱 큰 관심을 받았지만, 실제 공연 현장에서 이러한 자율 규약을 실천하는데 소극적이거나 거부감을 갖는 개인과 단체가 여전히 상당하다고 고백하였다. 그런 면에서, 안에서 방법을 다 찾을 수 없다면 이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세계 곳곳 예술가들의 연대는 필연적이라는 데 동감하였다. “로라, 나, 그리고 수잔나. 벌써 세 명은 모인 셈이에요. 앞으로 천천히 우리 주변의 동료들을 아름아름 모아 보자구요.” 나는 호기롭게 운을 띄웠다. 로라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네 말이 맞아. 더 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흩어진 예술가들에게 손을 뻗어 잡아야 해.” 내년 2월, 로라 피셔와 한국의 동료 예술가, 예술 행정가들이 함께 만나, 서로가 기꺼이 손을 뻗어 맞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사진: 필자 제공]

태그 박영희,시카고극단,로라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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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박영희

예고, 예대 연극과 졸업 후 극단 목화에서 배우 생활을 하였고, 이후 라트 어린이극장에서 호주 예술가들과 작업하면서 예상치 않게 배우에서 연출가와 극작가로, 연극교육과 퍼실리테이너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지난 10년 간 주로 호주와 한국에서 배우와 초청 교수, 공동 창작자, 한호 예술가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 하였고, 현재는 극단 잼박스의 연출가이자 한호 공동 창작 집단 컴퍼니 배드의 멤버로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토록 원하는 연기는 주로 해외에서, 한국에서는 연출과 극작, 희곡과 영화 번역을 하며 기이한 독립예술가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제153호   2018-12-06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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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5
연극협회장 송형종 문제에 대한 칼럼이나 쓰지 그러냐? 너네 왜 그러고 사냐? 예술가인척 해봤자 국내외로 통하지도 않는 인간들이 앞에서는 동정심이나 유발하고 뒤에서는 깡패로 군림하고. 송형종이나 그런 송형종을 회장으로 뽑은 너네나.....

2019-01-26댓글쓰기 댓글삭제

678910
12345님께.
1. 위에는 시카고 스탠다드를 만들게 된 계기와 목적에 대한 칼럼입니다. 위에 내용과 관련없는 이야기는 그에 맞는 자리에 가서 하세요. 똥을 변기에 싸야 적절하지 길 가다 아무대나 싸면 부적절하잖아요.
2. 송형종 문제에 칼럼이 보고 싶으면 직접 쓰세요.
3. '너네 왜 그러고 사냐?'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네요. 적절한 주어 사용을 권합니다.
4. '...송형종을 회장으로 뽑은...' 전 서울연극협회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극인이 곧 협회원은 아닙니다. 협회원은 연극인의 아주 일부이죠. 송형종이 회장이었던 것에 불만이면 협회에 가서 따지세요.

2019-02-1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