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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세상의 가장 더러운 곳이 어떤지 말해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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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고연옥

전화로 인터뷰 요청 드렸을 때 좀 주저하셨잖아요. 이유가 있으세요?
연옥
좀 싫어해요. 아마 내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기자들이 인터뷰이의 기분이나 의도랑 상관없이 기사에 뭔가 임팩트를 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이 기사로 나오고 그러면 한동안 정말 기분이 안좋죠. 그리고 프러덕션에 따라서 안 좋아하는 매체랑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땐 정말 도살장 끌려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 인터뷰 하고 엉엉 운 적도 있어요.
기자 출신이신지 몰랐어요.
연옥
원래 사회부 기자를 하고 싶었는데 기자 시험이 어렵잖아요. 부산에 있는 월간지 기자로 들어갔는데 저한테는 정말 좋았어요. 자유롭게 취재꺼리를 정해서 길게 쓸 수 있었어요. 군 의문사 문제, 간첩조작 사건, 그런 억울하게 당하는 일들에 대해 몇 달을 취재해서 글을 썼어요. 방송국에서 피디수첩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 구성작가도 했어요. 그걸 9개월 정도 했더니 너무 무리를 해서 결핵에 걸리고 그래서 그만뒀어요.
그때 경험이 극작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연옥
길게 작품을 쓰는 것,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구조를 만드는 것. (에 도움이 돼요) 그리고 많이들 쓰는 연애, 가족, 이런 소재들은 탐탁치가 않아요. 그 정도를 가지고는 무대라고 하는 곳을 채울 수 없다, 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요. 사건, 사고 전문작가죠. (웃음)
극작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처음 쓴 희곡이 바로 공연이 됐나요?
연옥
95년인가,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이윤택 선생님이 TV 드라마, 시나리오, 희곡을 아우르는 ‘드라마 창작교실’을 열었는데, 차범석, 이강백 선생님, 박광수, 박철수 영화감독, 김운경 드라마작가, 쟁쟁하신 분들이 수업을 하셨어요. 그때 처음 쓴 게 <백중사 이야기>였어요. 이윤택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수업 시간에 나를 앞에 세우시더니 “이 사람은 작가가 될 겁니다.” 그러시더라고요. 되게 행복했죠. 공연은 나중에 2006년에 올라갔고요. 그러고서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 ‘신춘문예를 내볼까, TV드라마를 쓰면 돈을 많이 벌 텐데, 시나리오를 써볼까, 희곡은 돈이 안 돼.’ 이런 갈등을 하는 시기가 왔어요. 신춘문예 마감을 얼마 안 남기고, 한 일주일 만에 쓴 작품이 96년도, 부산일보에 당선이 됐어요. 그 다음에 쓴 게 <인류 최초의 키스>고요.
금방 핫한 작가가 되셨겠어요.
연옥
기자 생활하면서 동시에 습작기간을 오래 거친 것 같아요. 제가 등단은 94년에 아동문학으로 했어요. 동화를 많이 썼어요. 일간지 지면에도 제법 실렸고. 동화 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소설도 좀 써보고, 또 TV드라마도 써보고 싶어서 공모에도 내보고, 94년부터 99년까지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극작가 고연옥

어릴 때부터 문학을 해야겠다, 그런 게 있으셨나 봐요.
연옥
문학에 대한 꿈은 별로 없었어요. 기자 생활을 하다가 어느 시점엔가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좀 생긴 것 같아요. 부산에 추리문학관 만드신 김성종 작가랑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나는 글 쓰는 걸 취미로 하고 싶지 않다, 직업으로 하고 싶다.” 건방진 말을 했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다 비웃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근데 그게 실현이 됐죠.
실례지만 몇 살 때쯤이었어요?
연옥
20대 중반이죠.
진짜 당찼네요. 드라마나 영화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드라마는 회당 고료가 엄청나기도 하다던데, 심각하게 드라마 작가를 고려해본 적 없으세요?
연옥
많이 했죠. 단가가 세니까. 근데 <인류 최초의 키스> 올리고, 그때쯤부터 연극이나 무대라고 하는 것이 더 좋더라고요. 뭔가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또 현장성이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좀 남루하기도 한데, 뭔가 이것마저도 떠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어요. 다른 매체는 경험을 못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김광보 연출이랑 잘 만나서 <인류 최초의 키스> 공연을 하고 쫑파티를 하는데 ‘내 희곡이 배우를 통해서 관객을 만나는,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게 끝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마지막이 아니더라고. 그게 너무 좋고 고마웠어요. 나를 환영해주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글을 쓰면 돈을 훨씬 많이 벌 수도 있잖아요. 어느 순간 자본이랑 나의 가치가 치환된다는 느낌 때문에 되게 초라해지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 없으셨어요?
연옥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로 운이 좋았어요. 내가 연극을 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때그때 오는 보상들이 감사하고, 갖고 있는 역량에 비해서 더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해요. 한 십 몇 년 하면서 연극이 나를 너무 잘 먹여 살리고 있어요. 워커홀릭이에요. 나에게 어떤 여유를 안줘요.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어요. 작가는 완성될 수가 없잖아요. 성실할 수밖에 없고,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각색, 윤색 이런 작업도 많이 했어요. 완전 노가다예요. 붙들고 있을 수록 잘 나오니까요.
마감을 어기신 적이 없다고요?!
연옥
김광보 연출이랑 작업을 많이 했잖아요. 요즘은 안 그런데 예전에 윤색, 각색 이런 거 할 때는 휴대폰을 옆에 두고 자야 돼요. 이분이 밤에 잠이 없으니까 새벽에 전화 와서 1주일, 어떤 경우에는 3일 안에 이런 작업 해야 한다, 그랬어요. 그러면 그걸 하는 거예요.
거절하실 수도 있잖아요.
연옥
에이, 해야죠. 어떻게 거절해요. 요즘은 젊은 축에서 좀 멀어져서 그런지 일이 없어요. 심사 보고 멘토 하고 그런 일은 많은데, 윤색 각색 작업은 거의 안 들어오더라고요.
선배님한테 그런 작업 제안하기가 좀 어렵긴 할 것 같아요. 창작에 매진하셔야 할 분한테...
연옥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창작 작품을 하고, 윤색, 각색 작업은 언어에 대한 공력이 좀 있어야 하니까 경험 있는 작가가 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아, 소설 각색은 너무 힘들어요. 안하는 걸로 법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사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예요. 윤색이 작가한테 도움이 되냐, 묻는 경우가 있는데, 도움이 되는 건 언어의 조탁 능력 정도? 사실 그건 작가 능력의 10프로도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서사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러니까 그건 생계용.
번역극이 재미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말이 어색해서 그런 거잖아요. 번역이 불가능한 말도 있고,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극작가 고연옥

기자 생활 하시기 전에 연극에 특별히 관심 있거나 그러진 않으셨던 것 같아요.
연옥
고등학교 3년 동안 교회에서 무언극을 했는데, 제가 쓰고 연출하고, 배우 두 명이랑 음악 하는 친구랑 작업을 했어요.
무언극을요? 뭔가 되게 실험적인 작품을 하셨나봐요?
연옥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아마 대사 전달이 잘 안 되니까 무언극을 하자, 그랬던 것 같아요. 거기서 나도 모르게 연극을 해봤던 거죠. 공연 때 관객 반응 좋으면 기분 좋잖아요. 그게 기억에 남았죠. 대학 때도 기독교 동아리에서 연극을 했던 적이 있고요.
그러면 연출을 하셨던 건데, 작/연출 겸하는 분들 많잖아요. 연출을 해보실 생각은 안하셨어요?
연옥
일단은 애를 키워야 되니까. 이제 많이 커서 중 3, 초 5 예요. 애 키우면서 글을 많이 썼어요. 젖 주면서 생각해뒀다가 잠들면 쓰고, 그렇게 글을 썼으니까 연출에 대한 생각은 거의 안 해봤어요. 그리고 김광보 연출이 워낙 잘 하시니까. 난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김광보 연출을 만나서 콤비로 할 수 있었으니까.
지겨우신 적 없으셨어요?
연옥
늘 그렇죠. (웃음) 지금은 동반자 같은 느낌이에요. 농담으로 그런 말해요. 남편 같은데, 같이 안 사는 남편, 얼마나 좋아요. (웃음) 사적으로는 잘 안 만나요. 요즘은 시극단에서 <나는 형제다> 연습 중이니까 자주 만나죠.
많이 싸우지 않으셨어요?
연옥
작품 하면서 의견 충돌은 전혀 없어요. 진짜, 아주 사소한 그런 거, 기억도 잘 안 나는 그런 거에서 살짝 삐지는 정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연옥
제 대본을 거의 그대로 해주시고, 배우들한테 “토씨 하나 고치지 마라, 뉘앙스가 중요하니까” 그렇게도 하시고. 수정을 요구하면 또 저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고 수정하고.
되게 신기하네요. 대본 고치는 것도 고치는 거지만 연출 해석이 작가 의도랑 너무 달라서 부딪히기도 하잖아요. 연출이랑 작가가 싸우기도 많이 하고.
연옥
감히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김광보 연출님은 이미 혜화동 동인으로 잘 하고 있었고, 작품도 너무 좋았고, 저는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같이 했죠).
작품을 구상하시면 먼저 얘기를 나누세요?
연옥
전혀 안 그래요. 어떤 거 쓸 꺼다, 라고 얘기 한 적도 없고. <나는 형제다> 같은 경우도 어느 날 그냥 제가 줬어요. 제가 먼저 쓰고 작품 있냐고 물으면 주는 거고, 그래요.

극작가 고연옥

이런 이야기 써야겠다, 라는 발상은 어떻게 하시게 되나요?
연옥
여러 가지가 결합이 되는 것 같아요. <주인이 오셨다> 경우는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중요한 모티브였어요. 여기에 재일교포 3세 여자의 수기 같은 걸 봤던 게 결합이 돼서 나온 작품이에요. 어떤 소재가 날 매혹시키면 오래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나는 형제다> 경우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가 모티브가 됐죠. 테러리즘에 대해서 쓰고 싶었거든요. 폭탄 테러 같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사건이 터졌어요. 그게 폭력성에 대해서 가장 현재성 있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재가 있으면 벼락치기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현장 취재나 이런 것보다도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지, 철학적인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을 어떤 식으로 던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를 좀 많이 해요.
기자 출신이니까 초창기에는 현장취재를 시도하기도 했어요. <인류 최초의 키스> 때, 청송보호감호소(이하 청송)를 나온 사람 얘기니까, 거기 갔다 온 사람을 만나려고 수를 썼어요. 기자 할 때였거든요. 무슨 보궐선거였는데 무소속 출마자 중에 아마 조폭 출신이 있을 꺼다, 생각을 했죠. 전과를 보면 아니까. 그런 출마자를 만나서 내가 취재를 해줄 테니까 청송 나온 사람을 소개를 해달라고 했죠.
영원히 잊히지 않는 장면이에요. 엄청나게 큰 사무실에 그 사람이 혼자 앉아있었어요. 그 분을 딱 보는 순간 내가 너무 심했구나, 내가 뭐라고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청송 출신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여기 앉혀놨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요. 어쨌든 제가 찾았던 걸 확인하는 차원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왜 청송에 들어갔는지 묻고 싶더라고요. 사실은 그건 물을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그냥 안 묻고 나왔어요. 아, 나는 이런 작품 못쓰겠구나, 하고 그 작품을 놓고 있었어요. 나중에 좀 더 구상을 하다가 임신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썼어요. 이상하게 태교로 그걸 쓰게 된 거죠. 우리 애가 태어나게 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어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가장 더러운 곳이 어떻다는 걸 애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태교라면 하면 예쁘고 좋은 거만 생각하는데... 그런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네요.
실제 대면하셨을 때 무섭지 않으셨어요?
연옥
아뇨. 내 자신이 무섭고 실망스러웠어요.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나, 이 사람을 만나려고 작전을 펴온 내가 너무 끔찍했어요. 현장 취재 같은 거 별로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어요.
(인터뷰 정리를 하면서 빠졌지만) 아까 희곡을 쓸 때가 더 좋다, 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연옥
쓸 때 힘들죠. 힘든데 ‘더 깊이 들어가자,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그렇게 돼요. 인간의 원형이나 내면은 답이 없잖아요. 답이 없는 그 세계 속으로 계속 더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게 행복한 것 같아요. 겨우 1밀리를 간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원형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희곡의 매력인 것 같아요.
공연 올라가려면 너무 힘들어요. 이런저런 자료나 글도 줘야 되고, 배우들도 만나야 되고, 그리고 작품이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한 것처럼 해야 할 때가 많잖아요. 그게 너무 쪽팔려요.
작품을 쓸 때 머릿속에 그려놓은 세계나 그림이 실제화 되면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어떠세요?
연옥
(그 간극이) 좋아요. 물론 아쉬운 것도 있죠. <주인이 오셨다> 초연 때는, 대본에도 문제가 많지만, 저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정말 위대해 보이더라고요. 내가 이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희곡이 실재화 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10회 공연이었는데 매일 가서 다 봤어요.
배우들은 좀 무서웠겠어요. 작가가 왜 저러지? 그러면서. (웃음)
하루 일상은 어떠세요? 연출이나 배우는 연습실에 가고 이런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좀 다르시잖아요.
연옥
지금은 방학이니까 늦잠을 좀 자요. 학기 중에는, 애들 아침 꼭 먹이거든요, 일찍 일어나서 애들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일하고 책도 보고 집안일도 하고. 남이 해준 밥 먹으면서 글 쓰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요. 레지던스 집필실 같은 데 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 천복을 타고 난 거 같아. (웃음) 나는 밥 해주면서 글 쓰고, 아직 둘째는 공부도 좀 봐줘야 되고요. 강의도 나가고.
요즘에 연극 말고, 자연인으로서 관심 많이 갖고 있는 거 있으세요?
연옥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죠. 애들 데리고 세월호 집회도 많이 갔어요. 어느 시점부터 우리 사회가 그 아픔에 동감을 좀 하다가, 그런 일이 우리한테 닥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 오히려 멀리 도망가는 것 같아요. 그냥 사는 동안에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도피하고 외면하는 거 같아요. 그게 나쁘다고는 못하겠어요. 인간이 어떤 고통을, 특히나 남의 고통을 오래 견딜 수가 없잖아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해요.
많은 창작자들한테 무언가를 남겨놓은 거 같아요. 지금 당장 무엇으로 만들어내고 이런 게 아니라.
연옥
맞아요. 더 오래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꿈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연옥
희곡을 끝까지 쓰고 싶어요. 갈수록 조금 더 나은 걸 쓰고 싶어요. 작가도 운동선수처럼 한때가 있고, 전성기가 있다고 하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갈수록 세계관도 넓어지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이 시대를 조금만 더 통찰할 수 있다면... 조금씩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끝까지. 너무 멋부리고 얘기한 것 같네.
꿈이니까요. (웃음) 연극 말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요?
연옥
저는 취미 생활이 거의 없어요. 밥하고 공부하고 희곡 쓰고 연극 보는 거 말고는, 요즘은 TV도 너무 복잡해져서 잘 조작을 못 해요. 유일한 낙은 어쩌다가 서넛이 모여서 술 한 잔 할 때, 그 때가 너무 좋아요. 다른 건 요즘 작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오페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요. 연극이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다른 분들도 오페라에 관심을 좀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극작가 고연옥

이제 마지막 질문 드릴 텐데 그 전에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연옥
요즘 제일 걱정되는 게 있어요. 김광보 연출이 팬이 되게 많아요. 근데 내 작품이 좀 어렵고 어둡다고 인식이 돼서 <나는 형제다>에 관객들이 많이 안 올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김광보 연출이랑 시극단에.
작품 얘기를 좀 하면, 보통 테러리스트들이 혼자거든요. 계속 소외되고 소외돼서 혼자인 시간이 오래인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니까. 근데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는 범인이 형제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두 형제가 오랫동안 소외를 당했던 만큼 한 사회가 이들을 몰아냈다는 것이고, 또 두 사람이 서로를 구해주지 못했다는 거죠. 이게 더 비극이죠. 드라마의 법칙 같은 걸로 보면 두 명이 어떤 범행을 할 때 한 명은 반드시 죽어요. 여기서 ‘카인과 아벨’ 신화를 가져왔어요.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았어, 반드시 성공해야 해,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혼자 남는 것 같아요. (작품에 이런 걸 담았는데) 그렇게 어둡거나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어두운데요, 선배님. (웃음) 근데 세상에 가볍고 쉽고 재밌는 얘기는 많으니까, 연극이라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나 공공성의 측면에서도 시극단 같은 곳에서 이런 걸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고연옥에게 연극이란?
연옥
쫑파티하고 그러면 아쉽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아쉽지 않게 되더라고요. 왜냐면 이 사람들 계속 만날 테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연극이 재밌는 이유가 현실에서 절대로 안 되는 일이 연극을 잘 만들면 가능할 것처럼 보여요. 현실에서는 소외된 사람이나 악한을 피하게 되지 소통하고 연민하고 위로를 못 하잖아요. 이게 인간의 한계일 수 있는데, 연극 속에서는 그게 가능한 거예요. 현실에서는 안 되는 어떤 세계가 연극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그게 환상일 수 있는데 연극을 잘 만들면 그 환상이 가까이 있는 것 같죠.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극작가 고연옥

고연옥(작가)
주요작품
<꿈이라면 좋았겠지>, <인류 최초의 키스>, <웃어라 무덤아>, <일주일>, <백중사 이야기>, <발자국 안에서> 외 다수

태그 극작가 고연옥,부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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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74호   2015-08-20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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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깊고 잔잔한 인터뷰네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모두의 내공이 느껴지는... 오래 써오면서 힘든 일도 많으셨을텐데, 이 일을 여전히 많이 좋아하시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멋져요..!

2015-08-20댓글쓰기 댓글삭제

아~ 좋아
작가님 작품을 좋아합니다. 천천히 꼼꼼하게 인터뷰 내용을 읽었어요~^^

2015-08-2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