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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불만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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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는 (내 인생 베스트 연극3 중 하나인) <주인이 오셨다>에서 주인공 자루 역할을 하고 나서 형이 작업도 많이 하고 큰 역할들도 계속 해온 것 같은데 맞나?
기돈
사실 그 공연이 끝나고 친한 형이랑 같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갔어. 그 때 같이 일하게 된 매니저가 ‘연극을 하면서 영화도 할 수 있다. 근데 내가 방송 일을 만들어 오겠으니 2년만 연극작업을 중단하고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고. 나 같은 경우는 사실 연극은 대학 와서 처음 본 거지만, 영화는 전공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접해왔고 동경 해 왔던 거니까. 그 약속만 믿고 공연 활동을 중단 했었어. 그런데 영화 쪽 일이 쉽게 성사되진 않으니까. 시간이 걸리나 보다 그러면서 기다리고 있었지. 근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아동극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원 경비일도 하면서 지냈지. 종로에 있는 파고다 어학원에서 경비원 일을 10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
하루는 새벽에 일하다가 배고파서 잠깐 문 걸고 나와서 학원 근처 버거킹에 햄버거 사먹으러 갔는데, 우연히 영민이 형(김영민 배우)을 만났어. 영민 선배가 근처에 약속이 있었는지 잠깐 햄버거 먹으러 들어왔더라구. 그때는, 서로 얼굴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얼굴을 알아보시고 ‘오, 어쩐 일이야.’ 하셔서 ‘아, 선배님 저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경비원일이요.’ 했더니 ‘아, 그래.’ 하시면서 딱 한마디 하고 가시더라고. ‘연극 참 많이 하고 싶겠다.’ 그러고 가셨는데. 혼자 햄버거를 사들고 먹고 있는데 눈물이 엄청 나는 거야.
아. 눈물 나겠다.(눈물 찔끔)
기돈
어. 눈물 나지.(눈물 그렁그렁)
10개월 동안 공연도 못하고 경비원 일만 했는데. 경비원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주.당.비라고 하는데.
주.당.비?
기돈
주간근무, 그 다음날 24시간 당직근무, 그 다음날 비번. 그래서 주.당.비.(웃음)
이걸 계속 반복하다보니까 생활패턴이 계속 망가지는 거야. 와, 못하겠더라. 그런 생활을 하다가 연극하는 선배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눈물이 엄청나더라고. 어쨌든 그 일 하다가 김광보 연출께서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에 불러주셔서 공연하게 됐어. 2년 쉬는 동안 일 년에 한 작품 밖에 못 했는데 그해에는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을 했었지.
그렇게 고생하면서 공연하고 싶은 것도 꾹 참고 일 년에 한 작품만 해야 했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쪽 사람 말만 믿고 버틸 수 있었어?
기돈
그러니까...(웃음) 2년 동안 기다리라는 말에 덜컥 약속을 하고서는 약속을 깰 수 없어서...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어렸으니까. 조금 알려진 배우가 되면 연극이든 뭘 하든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데 그 매니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돌아가신 이유는 알 수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그렇게 되셔서 자연히 그쪽과의 관계도 끊어졌어. 너무 허탈하더라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참 모든 게 허무해지더라고. ‘아 내 길은 배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그 때 귀농을 준비 했지.(웃음) 귀농준비하면서 돈이 필요하니까 또 일을 해야 했고. 발렛 파킹도 하고 대리운전도 하고, 그러다가 공연 캐스팅 제의가 왔었는데 나는 귀농준비중이라서 못한다고 한 적도 있었고. 그러는 중에 이윤택 선생님이 하시는 작업(<길 떠나는 가족>)에 오디션 제의를 받게 됐어. 작업을 같이 한 적도 없고 제대로 인사드린 적도 없는데 전화로 거절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찾아뵙고 인사나 드리고 와야겠다.’ 하고 갔는데 그냥 시키시더라고. 그냥 하라고.(웃음)
귀농해야 해서 못한다고 했는데도?
기돈
응응. 하라고 하시니까 또 거절을 못하겠더라고. 연극계 어른이시라 말도 못하고 어물쩡거리다가, 그냥 하게 된 것 같아. (웃음) 그렇게 첫 연습을 하러 갔는데 연습하기 전에 서로 인사하는 시간에 내가 연출 선생님께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아서 사실 선생님이랑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거야.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웃음) 첫 모임 전체 리딩 때 배우들 다 있는데서.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웃음) 연극을 내려놔 버린 때였으니까. 큰 선생님이시기도 하시지만 그냥 보통 아저씨 같이 생각이 돼서 그랬나? (웃음)
아니야. 형. 그럴 때 있어. 나도 가끔 형 보면. ‘아! 저건 머릿속으로 생각한 건데 밖으로 튀어 나온 거구나!’ 이럴 때가 있다니까.(웃음) 형이 그러니까 뭐라셨어?
기돈
웃으시면서 ‘저 녀석은 생각이 많네. 저 녀석 바쁘게 만들어 줘야겠다.’ 그러시더니. 연습하는데 진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는 거야. 일인다역. 의상도 엄청 많이 갈아입고.
재밌었겠네!(웃음)
기돈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연출스타일. 그리고 작업환경이었던 것 같아. 막 밀어 붙이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밀어 붙이시더라고.(웃음) 젤 마지막에 이중섭이 죽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소가 등장해서 지나가다가 이중섭을 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 엄청 감동적인 장면이거든. 근데 소머리가 조금밖에 안 돌아 가는 거야.(웃음) 그 때 객석에서 선생님께서 소리를 지르시더라고. ‘이중섭을 봐야 된다니까! 소머리를 돌려!’ 그러니까 소안에 있던 선배가 ‘선생님 머리가 더 이상 안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더 큰소리로 ‘왜 안 돼!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고개를 돌려! 고개를 돌려!’ 하셨어. 근데 그래도 안 되니까 ‘안 되면 소대가리를 찢어!’ 하시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한 선배가 소대에서 칼 들고 뛰어와서 소머리를 진짜 찢더라고.
그 모습을 보고 나중에 친한 형이랑 같이 얘기를 하는데. ‘내가 3년간 저런 모습을 봐 왔는데... 안 될 것 같은데 끝까지 밀어 붙이면 되는 거야. 그 모습을 3년 간 봐오다 보니까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게 나한테는 아주 재밌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 근데... 한편으로 재미는 있었는데. 내 역할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좀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쉬지 않고 계속 나오긴 하는데 티는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귀농하기 전에 뭐하나 제대로 하고 내려가야겠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차피 귀농하려면 준비하는 시간도 걸리고.(웃음)
뭐가 됐던. 무대에서 나를 소진 시켜보고 싶었어. <주인이 오셨다> 때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잘 못 느꼈던 것 같아. 그런 연극을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거야. 어쨌든 공연을 마치고 조금 허무해져 있었던 것 같아. 그러던 차에 이윤택 선생님 <혜경궁 홍씨>를 하게 되었고. 그 작업도 만만치 않았었지. 정조역할에 잘 어울리지 않을 거란 우려도 있었고. 참 열심히 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한 열흘 이상 흘렀나.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조 대사를 해보고 있는 거야. 마음에 안 든거지. ‘내가 왕이 못 됐구나... 여기서 왜 내가 그렇게 화를 냈지? 왜 그렇게 표현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되는 거야. 내 욕구가 더 커지더라고.

어쨌든. 귀농은 이제 빠이빠이 되고 있네.(웃음)
기돈
응.(웃음) 그러다가 만난 작품이 <리어왕>이었어. 윤광진 연출님께서 광대역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하셔서 나는 ‘무조건 하겠습니다.’ 하고 시작했지.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만족할 만한 공연을 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한 때라 연출선생님이랑 의견충돌도 많았었어(웃음)
형. 잘 싸우네.(웃음) 그래서 만족할 만한 접근들을 한 것 같아?
기돈
가장 만족스러웠어. 지금까지 했던 연극 중에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걸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느껴 본 느낌인거야?
기돈
처음 느낀 건 아니지. 이전에도 큰 만족감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연출자가 불만족스러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배우 본인도 뭔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거지.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
기돈
응. 근데 리어왕 때는 아주 썩 잘했다는 느낌은 안 드는데 이상하게 개운하더라고. 왜냐하면 보신 분들이 너무 많이 좋아해 주셨고. 주변동료들도 격려해주고 좋아해주니까. 그리고 아주 무대가 아주 멋졌던 것 같아.(웃음) 아무튼 스스로 꽤 만족스러운 공연을 하게 된 것 같아. 그렇게 리어왕을 마치고 국립극단에 들어가서 공연을 해왔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하루는 내가 지난 2년간 했던 작품들의 대사를 한번 쭉 나열 해 봤거든. 한 5작품 한 것 같은데. 그 대사가 두세 페이지 밖에 안 되는 거야. <리어왕> 이후로 한 2년간은 큰 역할을 맡은 적이 없었거든. 근데 희한하게 그걸 보고 있으니까 그 시간이 참 재밌게 흘러간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좋게 얘기하자면 한 2년 편하게 연극한 거지 뭐.(웃음) 그 시간 동안 배우로서 큰 만족감을 느끼진 못한 건 사실 이지만, 뭐 연극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큰 역할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좋은 환경에서 연극하면서 2년 정도를 보냈지. 그리고 또 어떤 욕구를 내 안에 담고 있다가, 올해 초에 문새미 연출이랑 만나서 <리차드 3세>를 하게 된 거야. 그때 한 번 확 폭발이 되었던 것 같아.
갑자기 오이디푸스 때 생각이 나네. 형이 ‘(알몸의) 새’ 역할을 혼자 연습하고 있는데 내가 그걸 가만히 오래 지켜본 적이 있었거든. 형은 모를 거야.(웃음) 그걸 보고 있는데 순간 소름이 쫙 돋는 거야. 그러면서 혼자 생각했지. ‘언젠간 저 형이랑 다 잡아 째는 공연을 한 번 해야겠다.’(웃음) 배우를 아무 말 없이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혼자 온갖 상상하는 거. 그거 병이지.(웃음) 나도 뜬금없이. 요즘 형의 인지도가 확실히 많이 올라 간 것 같아. 그거 형도 느끼지?
기돈
응. 느끼지.
어때? 좀 더 자만하게 된다던가. 그런 건 없어?(웃음)
기돈
아~ 지금은 되게. 불안해. 이 다음 작품에 내가 좀 못해서. ‘에이.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중압감이 생기더라고. 그런 거 못 느끼면서 연극해왔는데 이번에 <가족> 공연 끝나고 그런 게 생긴 것 같아.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공연도 큰 역할도 아니고 눈에 띄는 캐릭터도 아닌데. ‘뭔가 내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내야하나?’, ‘눈에 좀 띄는 것을 만들어야하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그걸 좀 떨쳐내려고 하고 있어. 근데, 뭐. 이러다가 다시 또 반복 되겠지. 배우의 삶을 살다보면.
다음 작업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
기돈
내가 사실 1년 전부터 몸이 좀 힘들더라고. 내가 담배는 펴도 술은 잘 안마셨는데. 작년부터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어. 요즘 술을 많이 먹어. 근데 이거를 끊을 수가 없는 거야. 좋더라고.(웃음) 공연 때는 많이 안 마시지만. 여튼 나이가 먹으면서 몸이 예전같이 움직이지 않는구나 하고 요즘 느끼거든. 그래서 마지막으로 좀 뜨거운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오히려 더 생기더라고.
아직 한 창 이지 뭘. 얼마나 드셨다고?(웃음)
기돈
아이. 이제 더 들면 못하지. 짐승이나. 새. 이런 것들. 못하지.(웃음)
내가 처음 했던 연극이 한태숙 선생님께서 연출하신 <이아고와 오셀로> 작업이었어.(서포트하나만 입고 온몸에 까만 칠을 하고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검둥개 역할.) 선생님께서 커튼콜 때 짐승역할을 젤 마지막에 인사시켜 주시잖아. 되게 멋진 경험이었어. 진짜. 나 무대에서 오줌 쌌어. 실제로.
...왜죠?(당혹)
기돈
커튼콜 때. 내가 무대 맨 뒤에 2층 무대 끝에 웅크리고 있어. 그러면 다른 배우들 다 인사하고 마지막에 박지일 선생님께서 뒤돌아서 나를 향해 걸어와서 박수를 쳐 주셔. 그럼 내가 천천히 일어나서 객석을 바라봐. 그 순간.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기립박수 하는 게 보이는 거야.
엘지아트센터에서? 와!
기돈
내 삶에 가장 멋진 경험이었어. 정말 소름 돋는 경험이었지. 공연은 짧았어. 한 열흘 했나?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원래 하던 노점에서 청바지 파는 일을 하고 있었어. 청바지를 깔아 놓고 멍하게 앉아있는데. 그 때 기억이 얼마나 나던지.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가, 한태숙 선생님께서 <네바다로 간다> 공연할 때 다시 불러주셨지. 그 다음에는 <짐>에서 또 다른 역할을 주셨고. 아마 <짐> 할 때였던 것 같아. 내가 이 길을 가야겠다고 결정한 게. 코러스 중에 한명으로 무대에 섰는데. ‘아 이거 계속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해 볼 가치가 아주 충분한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때부터 내가 찾아다니면서 오디션을 봤던 것 같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오게 된 거고.(웃음)

지금 현재. 배우로서 이기돈의 고민은 뭐야?
기돈
말을 잘하고 싶은데 아직 참 어려워. 하면 할수록 어려워.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도 겁이 나서 한동안 안 보러 다닌 적도 있고. 말을 잘하는 배우들을 보면. ‘아 쒸. (나도 더 잘할 수 있는데) 이런 느낌이 안 들고, 주눅이 드는 것 같아.’(웃음) 대사를 잘한다는 건. 정말 그 인물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서 그 인물로서 소리를 내는 것 같아. 아직 내가 거기까지는 못 간 거겠지.
형이 제일 좋아하는, 동경하는 배우는 누구야?
기돈
연규 선배님.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잠시 침묵

나는 그날 밤에 술자리에 있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바로 한태숙 선생님께 울면서 전화 드렸는데...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 선생님 목소리가 많이 떨렸던 것 같애...

잠시 침묵

기돈
<그을린 사랑> 보고나서는 분장실가서 끌어안고 엄청 울었어.
나 기억나.
기돈
기억난다고?
내가 조연출 했잖아. <그을린 사랑> (웃음) 나는 제일 뒷줄에서 공연을 매일 봤는데, 볼 때마다 찔끔 거리면서 울었어. 그날도 훌쩍거리면서 나오는데 형이 펑펑 울면서 나오더라.(웃음) 내가 ‘형, 왜 그래?’ 하면서 연규 선배님한테 데려다 줬었잖아.(웃음)
기돈
나한테 연규 선배님은 배우 이상의 느낌이야. 작년 <한국인의 초상>할 때. 초반에 같이 연습을 하다가 몸이 안 좋으셔서 중간에 함께 못하게 됐지. 지금도 기억나는 게 첫 연습 때, 돌아가면서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보통은 자기가 살아오면서 있었던 ‘큰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 같아. 근데 연규 선배님이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는데 동생이랑 같이 가기 싫어서 동생한테 거짓말을 하고 혼자 갔다 왔다.’ 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정말 덤덤하게. ‘지금 생각하면 동생에게 참 미안하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와... 그 이야기가 정말 내 마음을 크게 울렸어. 저 선배님은 정말 좋은 배우이구나. 정말 좋은 인간이구나.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선배님이 아프시고 나서 많이 비워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참...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었을 때는 내가 지방에 있어서... 소식 듣고 참 많이 슬펐어.
많이 울었어.
나는 첫날 빈소 가서 펑펑 울었어... 내가 홍제동 살았을 땐데. 선배님께서 평창동 사시니까. 집에 가는 길에 자주 태워주셨어. 내가 일부러 따라 다니기도 했고. 선배님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웃음) 가끔 연습 때 적어두었던 노트도 하고.(웃음) <대학살의 신> 할 때도 <그을린 사랑> 할 때도. <그을린 사랑>할 때는 선배님 역할이 참 어렵기도 했었고. 나도 그 작품을 참 사랑해서 많이도 읽었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괜히 따라가서 밤늦게 까지 대본 이야기 하고, 선배님 댁 근처 화단에 앉아서 새벽 4시까지 모기한테 뜯기면서 밤새 이야기하고 그랬어... 공연 때도 한 회도 빠짐없이 공연 끝나자마자 그날 공연에 대해서 같이 모니터 하고. 그 때 정말 행복했었는데... 선배님 웃는 모습 생각나네. 참 예뻤는데.(웃음)
기돈
근데... 선배님 웃는 모습이 예전이랑은 좀 달라졌어. 내가 처음 만났을 때랑.(웃음) 그때는 배삼식 작가님이랑 연애초반이라 그랬는지 좀 꾸미셨던 것 같아.(웃음)
하하. 별 걸 다 알어.(웃음)
기돈
좀 푼수기질도 있으시고.(웃음) 내가 몸 좀 쓴다고 과시하면서 점프해서 책상위로 올라가면 그걸 굳이 따라 하겠다고 하시다가 책상 모서리에 찧어서 다리에 시퍼렇게 멍들고.(웃음) 그러고는 나한테 와서 귓속말로 ‘한태숙선생님한테 절대로 이야기하면 안돼.’(웃음) 배우가 장난치다가 다쳤다고 하면 선생님한테 야단맞을까봐.(웃음) 푼수같이 귀엽고, 참 따뜻했어. 따뜻한 사람. 보고싶지...
연규선배님 이야기해서 좋다. 형.
기돈
응...

침묵

형한테 연극이란 뭐야?
기돈
나에게 연극이란...

이젠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고
이젠 좀 편하다 생각했는데 불편하고

잊고 살려 해도 계속 떠오르고
막상 만나면 불편했던 일이 떠오르고
박차고 일어나면 또 생각나고

분명 잘해준 적도 있을 텐데
못해준 일만 생각나고

웃었던 기억을 떠올리다가도
싸웠던 기억에 이불차고

이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술 마시면 생각나는

헤어진 여자친구 같다.
시 같네. 좋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이기돈(배우)

대표작
<이아고와 오셀로> <주인이 오셨다> <아워타운> <길 떠나는 가족> <리어왕> <리처드 3세>

태그 이기돈,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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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제117호   2017-06-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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