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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나에게 문 혹은 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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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고려대학교 서양화과에 다녔어요. 아직도 졸업을 못했어요.(웃음)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랑 싸웠어요.(웃음) 학과 통폐합 문제 때문에 좀 크게 싸웠는데,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미술계에 발 못들이게 하겠다고.’ 그 말에 쫄았죠.
어차피 우리나라 미술도 자생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가르쳐 먹고 사는 구조라 환멸을 느끼던 차였고,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은 힘들겠다 싶어 동아리활동만을 열심히 하게 되었죠.
근데 동아리에 나가면서도 계속 눈치가 보이더라구요. 학생이긴 한데 학과 수업도 안 나가고 맨날 동아리에서 사니까. 그러다가 여기서 계속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대학로에 나가서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죠. 여러 극단들의 공연들을 찾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백수광부의 <야매의사>라는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공연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공연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일을 하고 싶다 하면서 찾아 갔어요. 스스로.
배우를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동아리에서는 늘 스태프를 했어요. 무대를 만들던지, 조명을 하던지 했었는데. 배우는 잘 안 시켜주더라구요.(웃음)
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는데?(웃음)
네. 하지만 그런데 그걸 말을 못했죠. 말은 못하고 혼자만 앓고 있었죠. 제대로 공연 해 본 적은 없었어요. 백수광부를 찾아 갔던 시기에 극단에서도 배우를 뽑는 시기는 아니었고. 그때 극단에 안면이 있던 형이 ‘차라리 무대(디자인)쪽을 배워서 백수광부에 들어오면 어떠냐.’ 하고 제안을 해서 아르코 아카데미를 다녔었죠. 근데 무대에 큰 욕심은 없었나 봐요. 자꾸 다른 것들이 보이고 별로 찾는 사람도 없으니 또 방황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연희단거리패에서 배우 워크숍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갔죠.
배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들어가서 배우는데... 제가 잘 못하니까 욕도 먹고...(웃음)
정말 연기를 못했거든요.
워크숍 참여하면서 어떤 경험들을 하셨어요?

워크숍 내내 배우의 자세, 태도에 대해 많이 말씀을 해주셨어요.
대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이랑 얘기하면 얘기가 잘 안 들어왔거든요.
‘저런 말을 왜 할까? 정말 알고 하는 말일까?’ 하는 의구심들만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교수님이 하는 말을 그렇게 귀담아 듣는 편이 아니기도 했구요.(웃음)
대학에 들어와서 물성이나 질감표현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들의 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연극으로 예를 들자면 ‘연기를 어떻게 하면 잘해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제3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한다라는 피상적인 답을 듣는 기분이었어요. 별로 와 닿지가 않더라구요.
저희 아버지가 미장공이셨는데.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들을 아버지한테 많이 배웠어요. 그런 기억이 있어선지 오랫동안 직접 그 일을 해 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고 듣고 싶었는데, 답이 맘이 안 드는 거예요. 워크숍을 들으면서 선생님께서 연극 얘기만 쉬지 않고 5시간을 쭉 얘기하시더라구요. 근데 그게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었어요.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었어요. ‘이 사람은 진짜다. 배울 것이 있겠다.’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더 워크숍에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워크숍을 함께 하는 동기들 중에 배우를 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보통은 연극을 하던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죠. 제가 생각했던 워크숍은 하루에 한, 두 시간 연습하고 공연올리고 하는 건줄 알았는데 되게 빡세게 하더라구요.(웃음) 진짜 하루 종일 연습하는 거예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이요. 지금은 없어진 게릴라극장 2층에서 먹고 자면서 지냈었거든요. 매순간에 연극얘기만 하는 거예요. 밥 먹으면서도 연극얘기, 모든 순간이 연극 이야기들로 채워졌어요. 너무 좋으면서도 약간 무섭더라구요. 이렇게 까지 해야 되는 건가.(웃음) 그냥 막연하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내가 과연 50대 60대가 되어서도 저 선배들, 선생님들처럼 열정적일 수 있을까. 저렇게 훌륭한 사람들도 저기까지 도달하기가 정말로 힘들었을 텐데. 약간 기가 죽은 것 같아요. 동아리에서는 늘 더 해보고 싶어 목이 말랐는데, 실제로 와보니까 겁먹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워크숍이 끝났고. 더 못 하겠더라구요.(웃음) 다시 방황의 시간을 가졌죠. 방황하면서 누가 무대해달라면 가서 무대 같이 만들고 조명해달라면 가서 같이하고. 그랬죠. 그러다가 제가 미대나왔다고 하면 왠지 포토샵 같은 것도 잘할 것 같으니까 백수광부에서 ‘포스터 한번 만들어 볼래?’하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때 저는 포스터 만들 줄 몰랐거든요 (웃음) 할 줄 아는 거는 싸이월드 할 때 제 얼굴 좀 괜찮게 고치는 정도가 다였는데.(웃음)
하하. 오랜만에 듣네요, ‘싸이월드’. 그래도 고려대 서양학과 나왔다 하면 뭔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네. 어쨌든. 그때 제가 했던 포스터 작업이라는 게 네이버에서 포토샵하는 방법을 검색 해 가면서 만들어가는 정도였어요. 근데 그때 대학로 다니면서 봐왔던 포스터들이 그렇게 예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저 정도는 나도 하겠다 싶은 것들도 있었구요.(웃음) 그러면서 몇몇 작품들의 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었죠.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도 나는 배우를 하거나 다른 일들을 하고 싶은데 하는 생각으로 맘이 편치 않았는데 생각보다 포스터 들이 반응이 좋은 거예요.(웃음)
그게 몇 년도였어요? 처음 포스터 작업을 했던 것이?
그게 백수광부의 창작극이었는데 <백수광부들>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아는 선배한테 들었는데 제가 만든 포스터가 올해의 좋은 포스터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확실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웃음) 아무튼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가끔씩 포스터 의뢰 들어오는 것들 작업하면서 제작소에서 무대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죠. 파주에 제작소에 일을 다니고 있었는데 파주까지 일하러 다니는데 하루에 2500원정도 교통비가 들더라구요. 하루는 그 차비가 없는 순간이 왔어요. 차비가 없어서 제작소에 못나간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더라구요. 일주일 중 평일에 제작소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주말에는 아는 팀들 공연 만드는 곳에 가서 무대를 만들고. 공연 제작비가 없으니까 제 돈으로 무대를 제작하고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무대를 좀 더 잘 만들고 싶으니까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쓰고. 그러다보니 잔고가 텅 비어서 차비가 없는 순간이 온 거죠.(웃음)
결국 제작소를 그만 두게 되었죠. 그러다가 포스터 작업을 알음알음 하다보니까 더 많이 하게 된 거예요. 사실 그때는 좀 싫었어요. 배우도 하고 싶고, 공연도 하고 싶은데 포스터를 만드는 게 쪽팔리기도 하고 너무 싫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깨어있는 시간 중에 포스터 만드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어느 순간 ‘내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랬는지 포스터에 제 이름을 넣고 싶더라구요. 작업을 할 때 부탁을 드려서 제 이름을 포스터에 넣기 시작했죠. 공연포스터를 만들면서 공연스텝으로 이름을 넣는 사람이 없었고 들어가더라도 인쇄홍보물 디자인으로 표기되는데, 그 때는 그게 창피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뭔가 다른 게 없을까 하다가 그래픽디자인이라는 말을 생각해서 그렇게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이름이 들어갔죠. 그 때부터 그래픽디자인 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 한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바쁘게 멋지게 작업하고 있지만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망은 왠지 사라지지 않고 더 뜨거워질 것 같은데 어떤가요?(웃음)
늘 하죠.(사이) 늘 하고 있어요. 좋은 연극이 만들어지고 그 좋은 공연이 관객에게 잘 보여져야 하는데... 내가 무대에 서는 게 과연 좋은 공연을 위한 일일까?(웃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하하
그리고 저는 지금이 제 전성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포스터를 참 많이 만들었고, 그래서 잘하는 것도 있고, 저처럼 기회가 많았던 포스터 디자이너가 드물 거예요. 그 만큼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작업을 잘하고 있고 지금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할 수 있을 때 좋은 포스터 많이 만들고 좋은 작업들 많이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알리는 일이 지금 제가 해야 할 소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그래서... (배우) 욕심은 나지만 지금은...(웃음)

작업을 하시는데 있어 철칙 같은 게 있다면요?
아름다운 포스터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버려지지 않는. 만들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덜 버려졌으면 좋겠어요. 음... 좀 더 멋있게 포장하자면 ‘나는 변호사다. 나는 일반대중에게 이 연극이 보러 올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변호사처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호사들 보면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검토하잖아요. 그것으로 논리를 만들고, 물론 우리는 논리가 아닌 보편적 직관으로 풀어내지만요. 인간이 살아오면서 당연히 느끼는 감정들이 있잖아요. 포스터 역시 시각을 통해 인간에게 보여 지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규칙이 있어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 봤을 때 일반적으로 감지되는 느낌들이 있잖아요. 볼펜과 연필이 주는 느낌이 다른 것처럼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에는 고유의 느낌이 있어요. 그런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처럼 대본에서 주어진 느낌을 다시 시각적인 이미지로 찾아가는 것. 그리고 대본에서 보여 지는 인물들 간의 관계 등을 한 장의 포스터에서 구도 혹은 오브제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체험하고 겪어온 사회와 문화 안에서 작품과의 연결점 그것을 찾아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잘 되진 않아요. (웃음)
혹시 포스터에 낚였다 이런 이야기 들으신 적은 없으신가요?
많이 듣죠. (웃음) 그래도 낙관해요. 하하. 변호를 할 때,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데요. 판결이 나기 전까지 죄를 단정할 수 없고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죠. 모든 공연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려는 목표를 가지고 준비되고, 그럴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해요. 그래서 이 공연은 무조건 잘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맡아야 해요.(웃음) 공연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먼저 이 공연은 별로일 것이다 생각할 수는 없어요. 할 수 있는 최대한 이 공연을 최대한 홍보를 해야 하는 거죠.
낚였다고 얘기하는 작품들... 종종 있어요. 제가 보고나서도 낚인 분들한테 좀 미안한 적이...(웃음) 그렇게 되면 다음에 다시 작업하기는 좀 힘들죠.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요. 그 공연을 만든 사람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다. 공연 전에 작품에 대해 단정 짓거나 선택하고 싶지 않아요. 대부분 선택을 받는 입장이기도 하구요. (웃음) 그래도 일 년에 한번 연극 보는 분이 제 포스터에 낚여서 공연을 보러 왔는데 그 공연에 실망을 해서 다시는 연극을 보게 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슬프고 죄송한 일이죠.(웃음)
그래도 대학로에서 보게 되는 포스터들의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뭔가 뿌듯하더라구요.
저는 더 예뻤으면 좋겠어요. 영화나 드라마 포스터들 워낙에 좋잖아요. 사실 자본으로 따지면 상대가 안 되지만... 지고 싶지 않아요. 더 나가서 작품성으로도 그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진 않아요. 죽을 때 쯤 돼서는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요. 가치 있었던 일로. 내가 평생을 바쳤던 일이.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고 느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 얘기해주신다면? 연극이야기도 좋고 인생이야기도 좋구요.
막연하게는 미래에 배우로 서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좋은 공연을 제작하고 싶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것들은 좀 막연한 것 같고요. 구체적인 목표들이 생겼어요.
제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했던 얘기들이 있거든요. ‘굶지 않게 하고 싶다.’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고, 어디 가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걸 해결해주고 싶어요.
포스터 디자이너가 공연스텝으로 밀접하게 들어올 수 없는 이유가. 그 일만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근데 이 일만해서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포스터를 만드는 일에 대한 합당한 비용을 책정하는 것 부터해서. 공연 팀에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도 작업이 가능한 비용으로. 그리고 너무 무리한 작업시간에서 벗어나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던가 하는 일들. 수입이 될 만한 다른 사업에 대한 생각들도 하고 있구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공연홍보물들이 정말 많이 남아요. 그것들을 소비했으면 좋겠어요. 대학로에 MD샵을 만들고 싶어요. 공연포스터 라던가 공연 홍보물을 체계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겨서 그로인해 생긴 수익을 디자이너나 작가에게 돌아 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열어서. 사진작가나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전시해서 교류도 하고 자신의 작업들도 홍보하고 작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교 실기시험 보고 나서 화장실을 찾고 있었는데 허름한 단층건물이 있길래 화장실인줄알고 문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나무를 썰고 있더라고요. 뭐지 하고 보고 있는데. 어떤 선배가 ‘신입생이니?’ 해서 ‘네’ 하니까 이리오라더니 톱이랑 망치를 주더라구요. 다짜고짜 각목을 자르라는 거예요. 그래서 잘랐죠. 그렇게 연극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어요.(웃음) 그때는 거절을 못해서. 내일 나오라고 하면 또 나가고 또 나가고 그랬는데. 그렇게 다니다 보니까. 사람들도 너무 좋고.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무언가 만들고 함께 밥 먹고 그러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연극을 접하면서 제가 해왔던 작업이랑 가장 많이 달랐던 점은 공동 작업이라는 것이었어요. 미술을 할 때는 되게 이기적이었어요. 나 혼자 내 고민만 풀어내면 되니까. 남의 판단도 거의 신경 안 써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니까.
맨날 혼자 작업하다가 그런 경험을 하니까 그게 너무 특별한 거예요. 혼자 작업실 가있으면 왠지 사람들이 보고 싶고.
혼자 그림을 그려온 시간이 얼마나 됐던 거예요?
오래 됐죠. 유치원 때부터 혼자 낙서하는 거 좋아하고. 왜 수업시간에 구석에서 혼자 그림그리기 좋아하는 애들 꼭 있잖아요. 그게 저였어요.
맞어. 꼭 한 명씩 있어요.(웃음)
그러다가 사람들이랑 함께 하는 작업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 맘 때쯤에 제가 싸이월드에 쓴 글이 있는데. 섬에서 라디오만 듣던 애가 어느 날 도시에 나가서 컬러티비 보고 온 느낌이라고.(웃음) 다시 섬에 돌아가서 라디오 듣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거죠. 너무 행복했거든요. 그 때. 사실 교수님이랑 싸우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내가 20년 가까이 해왔던 일을 그만 둔다는 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연극 동아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고 반가워해 주니까. 또 좋더라구요. 힘들어서 죽고 싶은데 내가 뭔가 하고 죽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웃음)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몇 개 적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배우로 무대에 서 보기’였어요. 동아리 공연에서 배우나 한 번 해보고 죽자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진짜 죽고 싶었는지는 지금은 모르겠지만.(웃음) 근데 후배들이 엄청 반대하는 거예요. 선배 연기 못하니까 배우하면 안된다고. 연출도 캐스팅 안 해주고.(웃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계속 동아리에서 작업을 했죠. 배우로는 안 써주니까. 내가 글도 쓰고. 연출도 하고.
결국엔 아무도 배우로 안 써 줬지만.(웃음) 그래도 연극을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너무 재밌더라구요.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어요. 종강파티였는데, 아무도 배우를 안 시켜 주니까, 연기를 잘해서 늘 주인공만 하던 후배에게 종강파티에서 사람들 앞에서 연기배틀을 붙어보자고 제안을 했죠. 후배가 자기가 나랑 그걸 왜 하냐고 하더라구요.(웃음) 그래도 나는 꼭 해야겠으니, 나는 <오이디푸스>에서 예언자 테레시아스의 독백을 준비해오고 너도 독백 하나를 준비해 오라고 얘기했죠. 멋지게 사람들 앞에서 독백을 하고 죽으리라 하고 그날을 기다렸죠. 종강파티 당일 날 그 후배한테 문자가 왔어요. ‘선배 저 약속 있어서 종강파티 못가요.’ 하고요.(웃음)
혼자라도 하시지 그러셨어요?(웃음)
남들 앞에서 나도 잘 할 수 있다고 인정받고 싶긴 했었는데... 혼자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연기배틀이라고 모은 건데...(웃음) 어떻게 보면 연극이 저를 살렸다라고 볼 수 있죠.(웃음)
그 허름한 문(동아리방)을 여는 순간 인생이 엄청 액티브 해진 거네요.(웃음) 그게 연극 같아요.
잠깐 홍보를 해도 될까요?
넵.
‘보통현상’은 디자인 회사예요. 공연 포스터를 예쁘게 만드는 게 목표고, ‘보통사진관’이라고 해서 수유에 공연사진작가를 위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일 년에 한 번씩 공연사진 전시도 하구요. 공연사진작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대여를 하고 있고 연습실로도 사용하고 있구요. 스튜디오는 공간도 크고 비어있는 시간도 많으니까... 공연 영상 쪽 같은 경우는 <활동사진기>라고 공연홍보영상을 집중적으로 만드는 팀이 있습니다. 모두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고 지금 하는 일을 보다 예술적으로 해내기 위해 많이 고민하는 친구들입니다. 많이 관심 가져주세요!!

좋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연극인데이트 공식 질문 입니다!
김솔에게 연극이란?
문. 출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교를 나오게 만들었고,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고,
포스터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세상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입 밖으로, 사람들에게 말하게 만들었거든요.
이 문이 제가 열렸던 것처럼.
제가 다음 사람의 열린 문. 그런 출구가 되면 좋겠어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김 솔(그래픽디자이너, 보통현상 대표)

주요활동
<고도를 기다리며> <보이체크> <주먹쥐고 치삼> <햇빛샤워> <보물섬> <위대한 생활의 모험> <만리향> 외

태그 그래픽디자이너, 김솔,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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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제119호   2017-07-06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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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그림
좋네요.. 진솔하십니다.

2017-07-07댓글쓰기 댓글삭제

오호
항상 포스터 예쁘다, 생각하면 보통현상 작품이더라고요. 대학로 소극장 연극 홍보 디자인의 퀄리티를 확 높인 장본인이십니다^^

2017-07-07댓글쓰기 댓글삭제

오뚜기
공연을 보고 싶게 만드는 디자이너님~
인터뷰 보고 많은 생각이 드네요~홧팅!

2017-07-0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