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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잘 이끌어줬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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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 읽고 계셨어요?
『생명이란 무엇인가』(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저) 인류가 여기까지 발전하게 된 근본에 대한 책이에요. 요즘 내 관심사는 인간이 긍정적으로 변해간다, 부정적으로 변해간다, 라고 했을 때 후자예요. 인간이 점점 더 폭력적으로 잔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광기에 대한 책을 좀 읽다가, 인류학 책을 좀 읽다가, 꼬리를 물고 가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어떤 책을 보면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부정적으로 보는 학파가 있고, 긍정적으로 보는 학파도 있고 그래요.
책 많이 읽으시나 봐요. 책 하나 추천해주신다면요?
『총, 균, 쇠』 읽고 조카들,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추천했어요.
조카들한테 미움 받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두꺼운 책을.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다 얘기해준 것 같아서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원래는 소설을 되게 좋아했어요. 일본 소설들, 눈물 짜내는 거, 그런 거 좋아했는데, 나는 누구인가, 인류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돼서 답을 좀 찾고자 인류학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처음 연극 시작하셨을 때 얘기 좀 해주세요.
전공을 했으니까 당연히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이랑 사정이 좀 달라서 그랬는지, 난 그때 TV나 영화에는 생각이 없었어요. 직업인으로서 연극을 충실히 해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연극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전공은 어떻게 하시게 되셨어요?
철학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성적이 안 됐어요. (웃음) 증학교 때 영어 촌극대회를 2년 한 적이 있었는데 좋은 성과를 거둬서 고등학교 축체에 초청을 받아서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 고등학생의 선배들이, 대학생들이었죠, “너 연기 잘한다”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 3년 하면서 시화전도 하고 신문도 만들고 그랬는데 문학보다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형제가 위로 7명이 있는데, 카톨릭 집안이고 작은 형이 수도사가 되려고 했어서 집에 철학 책 같은 게 좀 있었어요. 그런 책들을 어릴 때부터 한 두권 읽은 게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근데 성적은 안 되고. 맞어, 연기를 잘한다 그랬지. (웃음) 고3때 진학 상담을 하는데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했죠.
특별히 무슨 의지나 열정이 있었던 건 아니네요.
그건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인데 촌극 마치고 강당이 다 비었을 때, 앉아서 꺼져가는 수은등을 바라보면서 허탈감? 허무함? 그런 걸 느낀 적은 있죠. (웃음) 고등학교 때 문예반 선생님이 가끔 주시는 티켓으로 연극을 보러 다녔어요. 재밌다, 매력이 있다, 그 정도였고 진학하려고 연극영화과를 간 거죠.
배우들은 끼가 있다, 이런 말을 어릴 때부터 듣기도 하잖아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셨던 건가요?
그냥 놀기 좋아했고, 체육대회 같은 거 하면 응원하고, 뭐 가장행렬하면 앞장 섰고...
끼가 있으셨네요.
뭐, 그랬나 봐요. (웃음)
집에서 놀라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그러진 않았어요. 집에서는 내가 막내인데 너무 작고 약해가지고 “저게 언제 인간이 될까, 인간이 돼야 되는데” 그랬어요. 평범하게 성장해야 되는데 어른들의 고민이었죠. 엄마가 “너는 큰 애들 옆에 가지마라. 스쳐도 다치니까.” 그러시고. 그런 상황에서 연극영화과를 간대니까 집안에서 “니 좋은 거 해라” 그랬죠.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이 차분히 쌓였던 것 같아요.

졸업을 하고 자연스럽게 연극을 하게 되신 거네요. 데뷔가 언제예요?
88년 1월에 극단 현대에서 <레미제라블>을 했어요.
와,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이시네요. (웃음) 정말 긴 시간인데, 어떤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가 있으세요?
있죠. 어렸을 때니까 연극, 지금으로 치자면 가족 뮤지컬, 온갖 작품을 하다가 진짜 운이 좋게 91년도에 <동승>을 하게 됐죠. 좋은 성과가 있었는데, 너무 일찍 있어서 기고만장 했어요. 그때가 28살? 그 나이에 연기상 받고 막 이러니까, 세상이 다 내 아래 있다, 건방이 하늘을 찔렀어요. 그 기고만장함 때문이었는지, 대학로에서 버림을 받기 시작했어요. 버림이란 건 내 표현이고 (웃음), 그 즈음 대학로랑 나랑 인연이 안 맞아서 한 7년? 결혼하고서, 98년부터 2002~2003년까지 암흑기였어요. 작품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결혼을 했으니까 돈을 벌어야겠고, 돈을 좇다보니까 또 대학로하고는 멀어지고. 그때 작업을 많이 하던 극단이 ‘무천’이었는데 ‘무천’은 경기도로 가고. 그때가 염장의 시기예요.
염장이요?
소금물에 담궈져 있던 시기. 힘들었던 거 같아요. 심지어 대학로에 나가도 젊은 친구들이 나를 모르니까. 연기 워크숍 받으라고 전단도 받고. (웃음) 그리고 이제 내가 알던 선배들 보다 밑에 연출가들이 올라오는데, 그 친구들은 나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참 먼 사람이고. 그 때 어린, 아는 연출가들한테 출연료 안 받아도 되고 술값은 내가 낼 테니까 작품 좀 하자, 그래서 몸으로 하는 연극들, 실험극들, 소위 말해서 다원예술작품을 좀 했어요. 친한 친구 선종남(웃음)을 그 전에는 몰랐고 그 즈음 작품하면서 만났어요. 종남이는 여러 직업을 하던 때라,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공연을 봐라, 그래 가지고 한 1년 같이 공연 보러다니면서 대학로에 재진입을 하게 된 거죠.
어린 나이에 상도 받고 그랬는데, 그렇게 재진입하려고 노력하는 게 사실 자존심도 좀 상하고 어려웠을 거 같은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무대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그리고 인기인으로서가 아니라 재미난 작업하고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관객의 박수를 받고, 그런 걸 다시 해보고 싶었던 희망? (이 컸죠.) 삶의 모토인데 “미안은 잠깐이니까.” (웃음) 내가 지금 계속 작업하는 게 중요하니까.
굉장히 유연하신 것 같아요. 최근에 작업 많이 하고 있는 김재엽 연출 작품도 전통적인 드라마 구조를 가져가는 작업은 아니어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렵지가 않아요. 재엽이한테 제일 편했던 거는 열려있다는 거예요. 내가 연출한테 깊숙하게 개입하고 그러진 않는데, 정말 아닌 걸 너무 고집을 피우는 연출이 있어요. 나는 균형감각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열려 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러니까 좋죠. 그리고 이전에도 젊은 친구들하고 공동창작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고 ‘무천’의 김아라 연출 같은 경우도 짧은 대본으로 집단적으로 창작해간다는 건 비슷한 면이 있어요. 배우를 결코 자유롭게 하지는 않지만. 아주 교과서적인 연출을 만난 적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여러 연출들을 만나왔죠.

작품을 선택하실 때 뭘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일단은 ‘이 역할이 나랑 맞을까’, 그 다음에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잘 모르는 연출이 캐스팅 제안을 하면 “나를 왜 했어요, 뭘 보고 했어요?”라고 물어요. 어떤 작품을 봤다, 그러면 이 사람이 나를 봤으니까 나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죠.
작품에 들어가시면 접근은 어떻게 하세요?
접근 방법은 천천히, 이제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웃음) 역할이라는 건 연출가나 프로덕션하고 맞춰가야 되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되나, 나랑 연관되는 게 뭐가 있나, 생각하고. 그리고 물리적으로는 대본을 읽으면서 장단음을 먼저 찾고. (웃음) 어떻게 접근해볼까, 방법론을 어떻게 가져가야 되나, 차분히 생각해요.
어린 배우들이랑 작업하면 장단음을 잘 안 찾잖아요.
잘 모르니까.
답답하지 않으세요?
한 번씩 얘기는 하죠. 나는 이렇게 찾는데 너도 심심하면 찾아봐라. 니 인생이니까 니가 찾고 싶으면 찾아라. (웃음) 찾아라, 이거 안 찾으면 안 된다, 강요하지 않고. 강요하면 꼰대니까. 배우가 자기가 하는 말을 이해를 하려면, 말이 물리적으로 갖고 있는 음가를 알면 좋죠.
예전에도 아마 '연극데이트' 중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선배님이 말에 대한 말씀을 하셨어요. 저도 장단음 이런 거 아주 귀에 들어오게 틀리지 않으면 잘 모르고 열심히 찾아보지 않거든요. 말을 아름답게 하고 정확하게 하는 걸 예전보다 소홀히 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근래 나의 화두랑도 만나는 지점이 있는 얘기인 것 같아요. 우리는 말하면서 이미지를 다 갖고 있잖아요. 무대에서 배우가 말을 할 때 정확한 이미지를 갖지 않으면 사기 치게 돼요. 예를 들면 배우가 에펠탑에 대해 표현할 때, 그 에펠탑을 아주 디테일한 이미지로 그릴 생각을 안 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관객한테 신뢰가 안 가죠. 말을 정확하게 쓰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결국은 진정성이라는 것에까지 닿게 되죠. 결국은 내가 하는 연기인데 내가 책임을 져야지, 관객들이 믿음을 갖고 보니까,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정확한 말, 정확한 이미지, 이 얘기 되게 재밌는데요.
(연극 작업이라는 게) 우리가 숨은 그림을 찾아서 퍼즐을 완성해가는 거잖아요. 두 달간 숨은 그림을 찾아가는 건데, 적확한 카드를 찾아서 딱 내밀어야 되는 거죠. 카드 싸움에서 지면 관객한테 지는 거니까.
아무래도 이제 후배들하고 작업을 더 많이 하시잖아요. 후배들한테 이런 말씀 자주 해주세요?
사람에 따라서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선배 말을 잔소리처럼 들을 수도 있어서, 잘 받아들이는 친구 같으면 툭 한 번 던져요. 이 분위기가 해야 되는지, 안 해야 되는지도 보고, 안 해도 되는데 굳이 해봤자. (웃음)
그래도 자주 하시게 되는 말씀 있으세요?
죽도록 해라. 그렇다고 죽은 사람 없으니까 목숨 걸고 해라. 언제 목숨을 걸어? (웃음) 물론 물리적으로 못하지. 제일 큰게 아르바이트죠. (먹고 사는 게) 불안한데 어떻게 무대에서 편해요. 그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한 번 죽도록 해봐라, 그러죠. 내가 술을 안 먹으니까 술 먹는 시간에 연습해라. (웃음)
그건 연극판에서 너무 어려운 일인데요. 선배님은 원래 술을 못하세요?
12년 전에 의사가 죽는다 그래서 끊었어요. 나 역시도 관객을 만나거나 강의를 할 때 최선의, 최고의 컨디션을 가지고 만나야지, 여차하면 사기 치니까. 술 끊어라, 이런 걸로는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하지.
전 선배님한테 후배로서 정말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페스티벌에서 제가 먼저 공연 끝나고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리고 나왔는데, 나중에 먼저 문자 주셨잖아요. 공연 보고 못 뵙고 나왔을 때도요. 먼저 문자 주신 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했어요. 나도 나중에 선배 되면 저렇게 해야지, 멋있기도 했어요. (웃음)
인사를 못하는 경우도 있죠. 마침 전화번호도 알길래.
후배들하고 작업하실 때 모습이 궁금하더라고요.
재미들 있어 하니까, 최고의 선배라고 생각하지. (웃음) 친구들한테 늘 얘기하는 게 꼰대는 되지 마라. 후배들하고 같이 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였고. 내 경험을 좀 전해주는 거죠. 많이 힘들고 치열하지만 정말 행복한 작업인데, 그걸 알았으면 좋겠고, 나도 그랬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에요.

서울연극협회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사실은 창작자로서는 좀 귀찮은 일인데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회비를 그냥 꾸준히 내다보니까. (웃음) 나도 젊었을 땐 협회가 왜 필요한지 잘 몰랐어요. 그냥 회비를 꾸준히 내니까 그랬는지, 박장렬 전 회장이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나는 너무 바쁘고, 조직에 얽매이는 것도 싫다, 그랬는데 어렵지 않으니까 이름만 올리래요. 그게 벌써 8년전 얘긴데. 막상 뛰어 들어가 보니까 할 게 있더라고요. 내가 연기자니까 배우들이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복지 부분의 이사를 하게 됐어요. 생전 처음으로 봉사를 하게 된 거죠. (웃음) 그렇게 즐겁게 하게 됐어요. 지금에 와서 그게 ‘블랙리스트’ 문제로 불거졌는데, 대관 탈락 사태가 생기고 (2014년 11월 서울연극협회가 주관하는 서울연극제가 아르코예술극장 등 대관신청에서 탈락한 사건. -필자 주) 갑자기 학습과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웃음)
물론 ‘블랙리스트’ 문제는 정치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김재엽 연출 작업도 그렇고, 정치적인 거에 관심이 있으신 편이셨어요?
태생이 약자라, 늘 강자의 입장보다는 약자의 입장에 더 많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약간의 반항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도 약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이 있었던 거죠. 중학교 때 광주민주화항쟁을 성당 신부님이 알려줬어요. 그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알게 됐죠. 이후에 성당을 옮겨가면서 대학생 활동하면서 사회과학책을 접했고, 연극영화과 들어가서도 반골 선배들하고 더 친했고. 계속 그런 길로만 왔던 것 같아요. 거기에 재엽이를 만났으니 물을 만난 거지. (웃음)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아니요. 아무래도 화이트는 아닌 것 같고 블랙이 맞는 거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되니까. 나는 목숨 걸고 하는데 '왜 나의 밥그릇을 (정당치 못한 이유로) 뺏냐?' 이거죠.
좀 전에 늘 약자의 입장이었다, 그런 말씀 하셨잖아요. 이런 질문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좀 왜소하시고 그러니까, 컴플렉스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컴플렉스 덩어리였죠. 나의 연기의 원천은 컴플렉스였어요. 지금은 많이 극복이 돼서, 연기를 그만 둬야 되나, 라는 고민까지 들 정도로.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교 친구들이 상처가 많은 친구들이 많아요. 내가 이 친구들한테 연기를 가르치는 것보다 상처를 치유해주는 게 먼저다, 그런 생각을 해요. 나도 연기로 인해서 치유가 됐으니까. 난 지금은 거의 90%는 극복을 했다고 생각해요. 내 연기의 원천이 없어져버린 거죠. 이제 그 상상력이 다시 발동할까, 할 일 없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요. (웃음)
극복할 수 있었던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운? (웃음) 특별한 극복이 아니고, 세월과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잘 이끌어줬던 거 같아요. 내 와이프, 가족, 동료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애정 어리게 봐주고, 또 여러 작업하면서, 내가 여기까지 운이 좋게 왔구나, (지나온 시간이) 컴플렉스를 극복해온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연극데이트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춘성한테 연극이란?
지금은 딱 생각나는 건, 모르겠어요. 물음표?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지춘성(배우)
제15회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희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2014) 외
주요작품
<생각은 자유> <고래햄릿> <불량청년> <알리바이 연대기> <동승> <오구> 외 다수

태그 지춘성, 부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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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120호   2017-07-20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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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비
지춘성 배우 반갑습니다. 님의 대학시절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본 사람입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누구보다 돋보이던 님의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너무 멋진 모습으로 나이듦이 더더욱 반갑네요.

2017-07-21댓글쓰기 댓글삭제

조문경
춘성씨~~ 내면이 고급진 배우예요^^ 그 고급진것을 나도 배우고 싶소♡

2017-07-2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