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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계속 꿈꿔 나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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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0주년을 맞은 ‘연우무대’의 유인수 대표를 만났다. 어제 막 해외에서 돌아왔다고 한다.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에딘버러페스티벌(이하 에딘버러). 가보니까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이던데.
왜요?
유럽권에 살거나 영미권이면 괜찮은데, 넌버벌 작품 아니면 굳이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아비뇽 페스티벌’이 연극 중심이라고 하니, 거기 가도 괜찮을 것 같고.
아, 에딘버러는 연극 중심이 아니에요?
연극도 많은데, 한국어로 언어극을 한다는 게 맞지 않겠더라고. 언어극이더라도 연출적인 컨셉이 강한 작품이어야 할 것 같아. 우리한테 마켓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러가신 게 아니라, 작품을 가져가셨어요?
내년에 작품 갖고 가려고 가본 건데, 런던 쪽 피디들하고 만나봤는데 웨스트 엔드에서 바로 워크샵을 하자고 얘기가 됐어. 영국 연극 시장도 우리가 보기엔 대단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거지.
무슨 작품으로요?
<인디아 블로그>. 여행포맷에 청춘들 얘기라 다들 관심은 있어하는데, 그 작품이 소위 예술적 철학을 갖고 들어가는 작품은 아니라서,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한국에서 팀을 꾸려서 가는 건가요? 아님 작품만?
그게 고민인데, 런던에서는 영국 배우들로 하자고 하고, 한국 배우들은 자기들이 가고 싶어하지. 언어 문제가 있지, 대사가 주는 재미가 있는데 자막으로는 그게 전달이 안되니까. 여러 가지 방법, 컨셉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보다 간다고 해도 런던 시장을 뜷고 갈만큼 그 시장이 되는 건지, 그게 고민이야.
(독자들한테 세계 연극 시장 얘기는 너무 낯설 것 같아 간략하게 줄였지만) 세계 시장 얘기를 동네 너무 가깝게 하시니까 신기하네요. (웃음)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시장엔 관심이 없으니까.
왜 관심이 없으세요?
공연 시장이 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2005년에 대표가 된 후에, 아 그 전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왜 관심이 없는지 답을 하기 위해 ‘연우무대’의 긴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90년대 정도까지는 연극을 좀 아는 사람은 ‘연우무대’에 대해서 알 거고. (‘연우무대’는 번역극 중심의 기성 연극계에 반기를 들고 1977년 창단되어, 창작극 공연을 고집해왔다. -필자 주) 90년대 넘어오면서 창작극도 꽤나 일반적이 됐고, 연우가 ‘학전’이나 ‘차이무’로 분화됐지. 연우가 90년대 들어서 힘들었다고 해도, <날 보러와요>, <김치국씨 환장하다>처럼 잘 된 작품도 많았어. 2000년대 들어서니까 나도 그렇고 다들 연우에 머물러있기 답답하니까 각자 길을 가기 시작했어. 나는 개인적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그래도 연극하는 게 제일 좋겠다, 싶어서 프로듀서가 돼야겠다 마음먹고 연우로 돌아왔고, 2005년도에 공식적으로 대표가 됐어. 그때 연우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첫 작품을 뮤지컬을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이하 <오당신>)을 했어. 반대가 심했지. 네가 대표니까 하고 싶은 거 알아서 해라, 라고 하는 선생님도 계셨고, 나간 단원들이, 그 당시에 단원들이 다 나갔었으니까, 네가 뭔데 갑자기 들어와서 뮤지컬을 하냐, 뮤지컬을 굳이 연우가 해야 되냐, 불만이 많았지. 신문에도 연우가 돈 벌려고 상업적으로 뮤지컬을 한다, 기사도 났어. 주변의 시선은 그랬는데 공연은 다행히 잘 됐어. 뮤지컬 대상 후보에 올랐는데 자리가 없어서 심사위원들이 공연을 못 볼 정도였으니까. 결국 대상도 받았고.
그 작품이랑 같이 준비했던 게 <해무>. 근데 대본 작업만 한 2년 반이 걸리는 바람에 2007년에 30주년 기념 작업으로 하자, 이렇게 된 거야. 30주년 기념 공연이니까 선배들도 다들 하고 싶다 그래서 좀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대본을 드리니까 다들 바쁘다고 하시더라고. 화가 나서 신인들 데리고 연우에서 초연을 했어. (웃음) 또 다행히 평도 좋았고 상도 받았고. 나중에 선배들이 술 한 잔 먹고 꼭 하고 싶다고. (웃음) 지금까지 <해무>는 단역 한, 두 역할 빼고는 원년 멤버 그대로 왔어. 송새벽이 스타가 된 이후에도 같이 했으니까. 그래서 다른 배우들이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지. (웃음) <해무>는 그때부터 영화로 하고 싶었고 처음부터 작가한테 내가 영화까지 프로듀싱하겠다 약속 했던 건데 영화로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어.
영화 프로듀싱도 직접 하셨어요?
그럼, 공동제작이었으니까. 그게 연우가 영화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고.
<해무>하고 그럴 때까지는 나도 연극을 위주로 했던 사람이니까, <해무>처럼 메시지가 강한 연극을 계속 하고 싶었지. 그런데 김민정 작가 차기작 <길상봉뎐>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큰 변화가 있었어. 배우, 코러스, 연주자 다 해서 한 3, 40명 나오는 대형사극이었는데, 기존의 극단 시스템이 아니고, 개런티가 제대로 지불되는 프러덕션 시스템으로 공연을 만들었어. 제작비는 1, 2억 들어가는데, 3일 공연해가지고 수익이 돈 천이나 날라나? 그러면서 ‘아, 이게 개인이 책임져야 될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든 거지. 나는 나대로 개런티를 주는데, 배우들은 또 부족하다고 하고, 이럴 거라면 이런 작업을 계속 하는 게 맞는지, 그런 고민이 2008, 9년도쯤부터 들기 시작한 거야.
연우가 예전에는 연출이나 작가 중심의 동인제 극단 형태의 작업으로 돌아갔는데, 내가 대표가 되면서부터는 프로듀서 중심으로 바뀌니까 극단 구조에 대한 고민, 연우의 방향에 대해서도 그때쯤 같이 고민한 거지. 프로듀서로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작업, 큰 규모 말고, 큰 규모 작업은 국공립에서 해야 되는 거고, 작은 규모의 좋은 작품, 대중들하고 좀더 만날 수 있는 작품, 연우소극장 같은 데서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해서 만든 게 <극적인 하룻밤>이랑 <인디아 블로그>야.
연우가 계속 새로운 것들을 향해서 넓혀 간다고 좋게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연우가 왜 이러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 내가 했던 작품들은 잘 보면 대부분이 다 좋은 평을 받고, 상을 받고, 그러면서 대중들하고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아. <오당신>도 지금은 상업극이라고 하겠지만 처음엔 상도 받고 좋은 평을 받은 거야. 연우에서 뮤지컬 한다고 우려가 많았지만 공연이 올라가고 나서는 연우가 하면 다르다, 창작뮤지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어.
연극도 계속 했어. <해무> 말고도 <그리고 또 하루>, <일곱집매>, <노란봉투>. 그리고 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이런 것도 있는 것 같아. 장우재나 김은성, 다른 창작자들도 그렇고 연우소극장에 와서 편하게 작업하고 인큐베이팅 할 수 있게 해주는 거? 그렇게 와서 작업하고 다들 남산이나 두산 같은 데 가서 작업하고 잘 돼서 좋지. 다들 그렇게 잘 가는데 이양구만 안 그래서 “양구 네 것은 내가 그냥 할게” 그랬어.(웃음) 양구가 나랑 잘 맞기도 하고. <노란봉투>는 2014년에 혜화동1번지에서 초연하고 다시 공연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2015년도에 연우에서 내가 하게 됐지. 그때 주변에서 괜찮겠냐고 그래서 괜찮겠지, 그랬는데…
안 괜찮았죠?
그거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된 건지는 모르겠어. 문서에는 이유가 ‘문재인지지’라고 나와있더라고. 블랙리스트 때문에 2년간 지원을 못 받아서 힘들었지.
저는 그 조합이 신기했어요. 대학로 대표 좌파(?)인 이양구랑 대중적인 작품을 많이 하시는 대표님이 친하다는 거. <일곱집매>, <노란봉투>같은 작품을 제작하시고.
연극 쪽에서 잘 몰라서 그런 거지. 꾸준히 그런 작업을 했어. 근데 그런 건 있지. 내가 프로듀싱을 직접 하게 되면 작품의 규모도 달라지고, 개런티부터 바라는 게 많아지는 거야. 지원금 이천만 원 받고 연우소극장에서 아무리 해봐야 몇 천씩 적자를 보는 게 뻔한데, 내가 그걸 모르고 하는 게 아니잖아. 어떻게든 하는 건데, (무리한 요구 때문에) 내가 이걸 왜 해야 되는 지도 모르겠고, 화가 나고 서운할 때가 있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직원들도 상처를 너무 많이 받고 힘들어하니까. 국공립 극장이면 모를까, 개인이 감당할 수가 없어. 나도 작업하는 게 즐거워야 되는데 그런 상황이 자꾸 생기니까 즐겁지가 않은 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연우가 상업적이다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작업도 같이 하고 있고, 뮤지컬도 엄청난 수익이 되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가 커지는 거거든. 그래서 해외진출을 하려고 하는 거지. 돈 벌려면 그나마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을 해야지.

국내 시장에 왜 관심이 없는지 연우의 90년대 이후 역사와 유대표의 작업 과정이 버무려진 긴 답변을 들었다.
잠깐 쉬는 시간.

가끔 선배들한테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어. 그 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연극을 해왔고 대학로를 봐왔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이 시장에서 연우는 대학로의 극단들처럼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고, 계속 새롭게 뭔가를 해가고 있다는 면에서 좋아하시고, 연우라도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성공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돌파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지 않겠냐,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사실 5년전쯤부터 한국 시장은 답이 없어서 공연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 얘길 들으면 연극을 더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
공연을 안 하려고 했다, 하셨잖아요. 그럼 연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 맘에 드는 공연이 없어서 그런 거지. 내가 원하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그런걸 보니까, 나는 새로운걸 찾고 있는 것 같아. 그런 작업이 왔을 때 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건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지. 해외에 가서 공연을 봐도 재밌는 게 별로 없는데, 확실히 연출적으로는 볼만한 게 좀 있는 거 같아. 우리 나라 연출들이 해외에 가서 좀 많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연극에 대한 주제나 이런 부분도 좀더 넓은 생각들이 있을 것 같은데, 좀 아쉽지. 나는 창작자가 아니니까 아티스틱한 접근을 할 수는 없고 프로듀서로서 기획적인 접근을 하는 거지. 지금은 좀 큰 작품이나 영화 쪽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럼 연우소극장은요?
연우소극장은 이미 가고 있으니까. 지금은 <권리장전2017_국가본색> 하고 있고. 단지 내가 거기서 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맞지 않아서 그런 거지, 연우소극장에서 공연은 1년 내내 올라가고 있어. 창작자들한테 극장을 오픈 해놓고 편하게 와서 작업하라고 하고.
저랑 김은성 작가한테도 너희가 낼 수 있는 만큼 내고 써라, 그러셨잖아요. 그렇게 해서 저희가 연우에서 창단 공연도 하고 여러 번 작품을 했고, 무슨 큰 회사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민간 극장인데, 왜 그러시는 건가요? (웃음)
그게 연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지. 향후에 조금 더 여력이 있으면 외국에서 하는 것처럼 연우소극장을 중심으로 좀더 기획적으로 작업을 하고 싶어, 그게 내가 연극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인 거 같고. 예전에는 거의 무료로 대관해줬는데 지금은 전기세 정도 받아. 임대료 지원 좀 받는 게 있고. 지금 극장장 하고 있는 친구가 사정을 알더니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거냐고 묻더라고. (웃음) 사정 다 뻔한데 제대로 대관료 다 받기도 뭐하고. 연우는 좋은 작업 하는 사람들 있으면 조금이라도 부담 없이 해주려는 거지. 용기 내서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어, 낼 수 있는 만큼 내라고 하기도 하고, 시파티 할 때 쓰라고 돌려주기도 하고, 공연이 좋고 극장 사정이 되면 연장해서 공연하라고 하기도 하고.
숨어있는 연극인복지재단 (웃음)
지금까지 했던 인터뷰랑 흐름이 너무 달라서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어요.

연극 쪽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낯설겠지만 프로듀서의 시각이 있는 거니까.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는 너무 아마추어 식의 극단으로만 돼있어. 우리나라는 극단 수가 너무 많은 데다가 시스템이 좀 독특해. 지원 제도도 많은 편인데 지원금을 극단 중심으로 흩뿌리듯이 다 나눠주니까 그냥 이번 해에 한 작품 올리고 마는 경우가 많은 거지. 외국에서는 조그만 극장이어도, 극장 중심으로 지원금이 가고 거기서 프러덕션을 꾸려서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가 많고, 극단의 작품에 극장, 프로듀서가 결합이 돼서 작품을 키우고 더 큰 시장을 개척해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돼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아마추어 단계인 거지. 나는 프로듀서니까 그런 작업을 하고 싶은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뮤지컬에서도 그렇게 작업이 잘 안 돼.
극단이 지원금을 받는 데서 좀더 커지면, 국공립에 가서 작업을 하는데, 극단이 전체가 가는 게 아니라 연출이나 작가 개인이 가게 되니까 균열이 생기는 거지. 다른 면으로는 외국의 극단은 연극 정신이든 작품 색깔이든 그런 걸로 아티스트로서 결합이 돼있는데, 우리나라 배우들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가기 위한 단계로 연극을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니까 극단도 약하고, 그걸 키워내기에는 국공립도 약한 면이 있어. 외국의 국공립은 명확하게 단체는 단체대로 키워주기도 하고 철저하게 기획적으로 접근해서 국공립의 레퍼토리를 만들기도 해. 그렇게 잘 만들어진 공연들이 웨스트엔드의 주요 작품이 되는 거고.
국공립 쪽에서 콜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응하지 않았던 건, 만약 내가 저기에 가서 <워호스>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과 같은 작품을 똑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브랜드로 만들 수 있을까,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아닐 것 같더라고.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그 나라가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거지. 그리고 우리나라 국공립은 그런 걸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니까. 장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안 돼있고. 또 기획 쪽에서는 그런 역량의 창작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
연출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네요.
연출이면 돈 좀 모아서 에딘버러 같은 데 가서 하루에 공연 한두 개씩 만 보고 다녀도 정말 공부 많이 될 꺼 같아. 대단히 새로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이나 영미권에서 괜찮은 작업들을 하는 팀이 오니까. 그들이 하고 있는 연극적인 고민을 볼 수 있는 거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문제인 건지, 우리나라가 협소해서 그런 건지, 역량이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키워내지를 못하는 환경이 문제인 건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지금 구조에서는 연우가 연극의 어떤 저변이 될 수 있게끔 하고, 나는 프로듀서로서 시장을 확대해 가는 것, 그리고 이게 됐을 때 연우를 어떻게 탄탄하게 할 수 있는지가 다음의 고민이지. 나 개인으로는 향후에 국공립의 프로듀서나 뭐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대표님이 국공립의 프로듀서가 되면 어떻게 하실지 되게 궁금해지네요.
아직까지는 아니야. 내 욕심이 많아서, 내 콘텐츠 를 만들고 싶으니까.
몇 가지 질문 안 드렸는데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일반 관객들한테는 조금 낯설 수 있겠는데 한국연극계의 문제라고 할까, 아픈 점을 짚어주신 거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유인수한테 연극이란?
원래는 배우로 출발을 했고, 너무 외로워서 연극을 시작했고 그래서 연극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딱 1년 연극을 떠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돌아와서 선택한 게 프로듀서였어. 지금도 사람들이 배우하고 싶냐고 묻는데, 프로듀서가 해서는 안 되는 거고 (웃음) 언제가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 하고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지. 프로듀서도 너무 재밌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계속 꿈꿔 나갈 수 있으니까. 연극이 어떻다라고 얘기할 순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외로울 때 나와 함께 해줬던 게 연극이었고, 앞으로도 함께 갈 수 있는 좋은 파트너.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유인수(극단 연우무대 대표·배우)

주요작품
<여신님이 보고 계셔>(프로듀서), <노란봉투>(프로듀서), <해무>(출연),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출연) 외

태그 연우무대, 유인수, 부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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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122호   2017-08-17   덧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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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뿅
인터뷰어 분이 존대어 쓰면 나이불문하고 인터뷰이분도 존대어 썼으면 해요.. 연극계만 유독 인터뷰이분들이 반말로 하시는 점. 무례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2017-08-17댓글쓰기 댓글삭제

저도
현장에선 인터뷰이가 반말을 했어도 글로 옮길 때엔 존대어로 고쳐주심이.. 당신들만의 대화를 엿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서 독자로서 온 것입니다. 이건 연극인 웹진 전반의 필진들에게 하고싶은 말이고요.

2017-08-17댓글쓰기 댓글삭제

웹진 연극in
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귀담아 듣고 개선점을 찾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8-18댓글쓰기 댓글삭제

아침맛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연우무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반말을 그대로 쓰는 지금 형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2017-08-19댓글쓰기 댓글삭제

꽃물
인터뷰 중간에 인터뷰어님과 대표님이 창작자와 대표로서 아는 사이였다는게 나와서 딱히 존대어가 필요하다 생각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초면이던 구면이던 배경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읽어도 읽히게끔 다 존대어 처리를 해주신다면, 읽기가 더 수월할거 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더불어 저는 극단에서 직함을 맡고 있는 분의 인터뷰라면,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극단 관련 정보도 (간략하게라도) 함께 기재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내용이였으나 극단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실린 인터뷰였어요. 잘 봤습니다.^^

2017-08-19댓글쓰기 댓글삭제

프란치
극단이 키우는 작가들, 연출가들, 이 연결 고리가 딱히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극단 소속 연출가 극작가들이 유독 연극계에서 오래 살아남는 이유가 실력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친분으로 이루어진 인터뷰가 아니라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다소 불편한 질문도 나눴으면 좋겠네요.

2017-08-20댓글쓰기 댓글삭제

웹진 연극in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분 한분의 소중한 의견 반영하여 웹진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2017-08-23댓글쓰기 댓글삭제

뿅뿅같은꼰대녀극혐
진짜 우리나라 인간들 피해의식 대박이다..... 진짜 안티아줌마들 별것도 아닌걸로 시비걸어 사디즘 카타르시스 느끼는 악마들. 인터뷰 하는 분과 아는 사인데 반말이던 아니던 어떤대? 니들이 무슨 신이야? 돈도 안내면서.... 니들같은 꼰대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물이고여썪는거야. 이 악마같은 년들아. 그냥 닥치고 가서 수다나 떨려무나 악플러들아

2019-03-1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