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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뷰티풀’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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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그때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는 평범한 소녀였지.(하하) 고1때 우연히 대학로에서 하는 소극장연극 티켓이 생겨서… 소극장 공연을 보러갔는데 그 때가 겨울이었어. 무대나 음악 같은 게 겨울 분위기와 너무 잘 맞고. 보고 있는데 너무 좋은 거야.(웃음) 대학로 소극장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진 거지.
그러고 나서 다음 카페에 연극이라고 치니까 ‘연극사랑 사람사랑’이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 가입해서 글도 보고 공연정보도 보고 그러다가 여름 방학 땐가? 청소년 극단 뮤지컬 배우 모집공고가 떴어. 그걸 보고 지원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는데 카페 공지 글에 다 알려준다고 써있어서.(웃음) 무작정 가서 문을 두드렸지. 그 때가 시작이었어.
그래서 찾아갔더니 시켜줘? 배우로 출연했어?
연주
응. 근데 내가 성격이 내성적이잖아. 그러다보니까 이게 너무 어려운거야.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생각해도 그냥 일반 고등학생이다가 공연 한 편 보고 너무 좋아서 무작정 갔다는 게 참 신기한 것 같아. 나 같은 경우만 해도 그러지 못했을 것 같은데. 게다가 내가 너를 봐도 너가 의외로 그런 성격이… 너 B형이지?
연주
응. 맞어.

동시에 푸하하

맞어, 맞어. 기억난다. 저번 인터뷰에도 혈액형 토크 잠깐 했었는데 인터뷰 할 때마다 혈액형 토크 꼭지를 이어나가 볼까?(웃음)
연주
남자 B형이 좀 그렇지 여자 B형 괜찮아. 하하.
무대에 서 보니까 어땠어? 아니 친구들이 너가 무대에 선다니까 뭐래?
연주
놀라지 반 친구들도 되게 놀랐고. ‘연주 너가?’ 이런 반응들이었지.(웃음) 그때 같은 반 친구들이 보러왔어. 선물사서. 잘 봤다고 격려도 해주고. 그런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 나도 뭔가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근데 내가 원래 꿈이 많은 아이 이긴 했어. 어릴 때는 보통, 꿈이 선생님이었으니까. 선생님도 하고 싶었고. 그리고 초등학교 때… 이거 얘기해도 되나 (머뭇) 내가 H.O.T를 좋아했어.(수줍) H.O.T 때문에 잡지도 많이 사서 보다보니 잡지사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고. 나는 하나가 좋으면 확 빠지는 스타일인 것 같아. 한 번은 만화가 좋아져서 김충원 선생님인가 그분이 만드신 ‘만화그리기 책’사서 한참 따라 그리기도하고. 역시나 잘은 못 그렸지만.(웃음) 방송국에서도 일하고 싶기도 했어. 방송국에 무슨 직업이 있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H.O.T 보려고 그런 거 아니야?
연주
응. 맞어. 하하하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보는 스타일이었구나. 생각보다 추진력이 꽤 있네.
연주
처음 시작할 때는 추진력이 있는 것 같아. 그게 가장 길게 가고 있는 게 연극이고. 연극을 시작하게 된 것도. 무작정 청소년극단에 찾아갔기 때문인 것 같아. 처음 배우는 노래랑 춤은 나랑 안 맞았지만.(웃음) 근데 무작정 찾아간 곳에서 내 또래 친구들 만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가지면서 연극얘기 나누는 게 참 좋았던 것 같아. 오직 연극하나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
그런 게 정말 건강한 것 같아. 고등학교 때가 제일 에너지가 넘치잖아. 근데 나는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거든. 죽어라 축구만 하고 그랬지. 나도 너처럼 그 나이 때 좋은 공연 한 편 봤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해.
연주
맞어. 요즘엔 건강한 마음상태를 유지 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 옛날에 나는 사람들이랑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랑 안 맞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아.(웃음) 안 맞다고 생각이 들면 작업에서 만나고 싶지 않더라고. 그런 거 있잖아. 안 좋은 연극 관행들. 쓸데없는 이야기만 많이 하고. 작업할 때 열심히 하고 집중해서 하면 모르겠는데. 그냥 자기의 센스만 믿고 준비 없이 와서 시간 보내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든 것 같아.
연극하면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드니까 그럴수록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아.
연주
맞어. 휘둘리기 쉬워지면 더 힘들어지니까. 각자가.
이야기를 좀 이어가볼까.(웃음)
연주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청소년 극단 생활을 했지. 방학 때 마다 공연을 했어. 처음 뮤지컬 <가스펠>이라는 작업을 하고. 그 다음엔 연극도 하고. 그러면서 고3이 됐지.
부모님한테 안 들켰어?(웃음)
연주
그… 정도는 괜찮았던 것 같아.(웃음)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갔었거든. 근데 진로를 정해야하는데. 연극영화과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연극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한테 먼저 얘기를 했지. 엄마가 아빠한테 이야기를 하고. 근데 어느 날 방에 와서 보니까. A4용지에 엄마가 써놨더라고. ‘연주야 너의 꿈에 대해서 아빠한테도 얘기했다.’ 아빠가 좀 무서우셔. 정말. 지금은 많이 유해지셨지만.(웃음) 아무튼 종이에 ‘아빠도 니 얘기를 듣고 대견하게 생각하신다. 열심히 해봐.’ 라고 써놓으셨더라고.
오. 정말? 아버지도 허락하셨던 거야?
연주
응. 그때는.(웃음) 근데 지금은… 싫어하시기보다는.(웃음) 싫어한다고 말씀은 안 하시는데. 아빠는 내 공연 한 번도 안보셨어. 보러오지 않으셨어. 내 생각에 아빠는 내가 연극을 취미로 했으면 하셨던 것 같아. 그래도 엄마는 내 공연을 몇 번 보셨거든. 엄마는 공연을 보시고 나서 좋아하셨어. 더 인정도 해주시고. 어쨌든 그때는 두 분 다 허락을 해주셔서 연극영화과로 진학을 한 거지.

좀 건너뛰자면 ‘극단 목화’가 너한테 아주 큰 부분이잖아. 7년을 몸담았던 극단. 처음에 어떤 점이 끌렸던 것 같아?
연주
한국적인 색깔. 굉장히 한국적인.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나봐.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가?(웃음) 나는 그런 게 좋았어. 우리 옷 입고 우리 얘기하는 게. 하하. 물론 결정적으로 극단에서 만들어내는 좋은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끌렸던 거지만.(웃음) ‘목화’만의 연극 스타일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
‘목화’에서 작업을 많이 했지?
연주
엄청 많이 했지.(웃음) 근데 ‘목화’는 레퍼토리극단이니까. 같은 공연을 많이 했어. 작품 수로 따지면 많지 않을 수 있는데. 그래도 한 10작품 이상은 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템페스트>에서 ‘미란다’ 역할로 너를 많이 기억하는 것 같아.
연주
응. 고마운 작품이지. 공연도 정말 많이 했고.
너한테 가장 기억이 남는 작품은 뭐야?
연주
나도 <템페스트>야. 왜냐하면 하면서도 재밌었고. 상도 많이 받았고.(웃음) 내가 스물여덟, 아홉 땐데. 그게 좋더라고. 하하. 시상식을 갔는데 너무 재밌는 거야. 내 옆에 되게 유명한 선배님도 앉아 계시고. 그런 사람들 속에서 우리작품이 대상을 받고 그러는 게 신기했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템페스트>로 해외에도 많이 갔는데. 외국에는 공연 끝나고 아님 중간에 리셉션을 하잖아. 그 때도 파란 눈의 외국인이 다가와서 나한테 “원더풀!” 막 이러고.(웃음)
“뷰티풀!”은 안 했어?
연주
뷰티… 푸.. ㄹ.. 하하, 했지. 했어.(웃음)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인거지? 하하.
연주
맞어.(웃음) 템페스트 마지막 해외공연이 2014년 뉴욕인데. 사람들한테 직접 듣진 않았고. 기획하는 후배가 거기서 일하고 있었어. 우리가 오기 전에 현지에 있는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서… 그 포스터가 내가 정말 웃기게 나온 포스터였거든.(웃음) 그걸 보고 현지 스태프들이…
난리가 났데?(웃음)
연주
응. 하하. 한국에서는 없는 일이지. 아무튼, 거기서는 역시 여자 주인공이라서 예쁘다고… 푸하하. 그 얘기를 듣고… 와… 나는 미국에 와야겠다.
이민 준비했구나.
연주
어. 하하.
어쨌든 작업으로 인정을 많이 받은 작품이니까 기억에 많이 남는 거 아닐까. 내 주변 사람들도 <템페스트>의 ‘미란다’로 연주를 많이 기억하고. (연극 하는)우리한테 무슨 보상이 있겠어. 작업으로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보상이 없지. <템페스트>공연을 꽤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들지는 않았어?
연주
맞어. 해외공연까지 포함해서 꽤 많은 횟수를 공연했었는데. 오태석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게 있어. 연극은 ‘생체’라고. 우리는 매일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하는 거지만 관객은 매일 다르고 그날의 모든 환경들 그리고 컨디션들이 아주 미세하게 다르니까 이 공연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나도 항상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애썼어. 했던 공연이라고 익숙하게 하는 게 아니라. 처음 만나는 것처럼 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 근데 말이 쉽지 그걸 지키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웃음)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관성적으로 하고 있는 거야. 근데 그러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긴 시간을 보내고 극단을 나올 때는 어땠어?
연주
사실 중간에 몇 번 나가려고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께서 잡아 주셨었어. 그러다가 7년째 되는 해에 극단을 나오게 됐어. 선생님께서 나를 자주 놀리시는 편인데. 뉴욕 공연 갔을 때 공연 전에 공연리뷰들을 꼭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어. 근데 어떤 기사에 내 이름 앞에만 ‘어메이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거든. 하하. 선생님께서 그거보고 또 놀리곤 하셨어. 기특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내가 극단을 나오게 된 날 선생님께서 그걸 기억 하시고 뉴욕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 있게 하라고 하시면서 격려해 주시더라고.
안 울었어?
연주
아… 울었어. 근데 선생님 앞에서는 안 울었어.(웃음) 격려해 주시고 돌아서실 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드려야 하는데. 울컥해서 입을 틀어막은 거야. 어버버, 하고 있는데. 그 상태에서 선생님은 그냥 올라가시고.(웃음) 멍하게 있다가 단원들한테 인사하고 나오는데 선배님 한 분이 내가 트윅스(초코과자)를 좋아하는 걸 알고. 편의점 가서 트윅스 7개를 사주시는 거야. 하하. 편의점 검은 봉다리에 트윅스 7개를. 먹으라고, 마지막 선물이라고 쥐어주시는데. 그게 그렇게 슬프더라고.(웃음)
오열했겠네.(웃음)
연주
어. 하하. 집에 가서도 그거 보면서 울고. 내가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어떻게 보면 나의 20대 꽃다운 시절을 보낸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그랬어.
극단을 나와 보니 어땠어?
연주
나와 보니… 음… ‘나는 이제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건가.’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프리랜서지. 백수라는 이름의 프리랜서? 하하.
연주
하하. 맞아. 나와서 보니까… 극단에 있을 땐 참 몰랐던 것 같아. 지금 대학로에 30대 연출가들, 배우들이 이렇게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이렇게 많은 사람들 특히 우리 또래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니까 좋기도 하고 그랬어. 근데 극단을 나오고 나서 한참 작업이 없었을 땐 연극이 너무 하고 싶더라고. SNS를 보면 나만 아무것도 안 하는 느낌이 들고. 좀 우울해지고 그랬지. 그러다가 작년에 ‘화학작용2’에서 <낙화>로 정식 외부작업을 시작했어. 이후로 이런 저런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사실 요즘은 좀 쉬고 싶기도 해.(웃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고 싶고. 그렇지 않은 작업들을 잘 거절하는 방법도 좀 배우고 싶고.(웃음)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
연주
옛날에는 ‘나는 끝까지 연극 할 거야.’ 하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하하. 지금도 연극이 좋아. 근데 만약 내가 연극보다 더 재미있는 걸 찾았어. 그럼 그쪽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웃음) ‘나는 끝까지 연극만 할 거야!’ 보다는 ‘뭐, 나는 언제든지 연극을 그만둘 수 있어!’ 이렇게. 하하. 너무 연극만 생각하는 것 보다 조금은 가볍게 마음을 내려놓고 하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소극장 연극의 매력에 빠졌을 때부터 오늘에 오기까지 연극을 하게하는 가장 큰 힘은 뭐였어?
연주
음… 나는 선생님. 그리고 ‘목화’. 지금도 ‘목화’ 공연 보러 가거나 선생님께 인사드릴 때. 뭔가 짠한 게 있어. 결혼은 안 해 봤지만 친정에 가는 느낌?(웃음) 극단 공연을 보러가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 같아. 나는 너무 좋아. ‘목화’의 작품이. 선생님의 연극이. 선생님이 정말 무서울 때도 많지만. 진짜… 그냥, 할아버지야.(웃음) ‘목화’연극 보면 순수하고 따뜻해. ‘목화’밖에 할 수 없는.
연주는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배우이지만.(웃음) 사람들이 어떤 배우로 기억했으면 좋겠어?
연주
저 사람은 정직한 배우구나. 꾸미지 않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내가 갖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
그래. 정연주에게 연극이란?(뜬금) 하하.
연주
사실… 지금은 연극이 막 좋진 않아. 하하. 그래도 고통스러운 순간보다 행복했던 시간들이 더 많았으니까 계속 하고 있는 거겠지?(웃음) 연극 한 편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은 늘 고통스럽지만. 내가 살아있구나. 잘 살아가고 있구나. 느끼게 해주는 여전히 고마운 존재인 것 같아.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정연주_배우

주요작품
<내사랑DMZ>,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봄봄>, <백마강달밤에>, <낙화> , <광장의 왕>

태그 뷰티풀, 정연주,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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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제123호   2017-09-07   덧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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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배우
목화에서 저 배우 누굴까 했는데
지금은 대학로예술극장 낙화를 하고있구나...
정말 결이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2017-09-07댓글쓰기 댓글삭제

아침맛있어요
목화에 계실때 인상깊게 봤었어요.
목화의 색을 벗어난 모습이 궁금하네요 ^^

2017-09-08댓글쓰기 댓글삭제

웹진 연극in
댓글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정연주 배우의 연기 기대해주세요~!

2017-09-12댓글쓰기 댓글삭제

조영욱
연주누나 화이팅 ㅎㅎ

2017-09-15댓글쓰기 댓글삭제

조영욱
연주누나 화이팅 ㅎㅎ

2017-09-15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영진
반갑습니다. 왕십리 김영진입니다. 다음 공연 알려주세요. 보러 갈께요.

2017-09-2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