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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성이라 쓰고, 고래라고 읽는다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연극인 이해성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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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작 <전하의 봄> 뒷담화

    -다방면에서 활동이 많으시다. 바쁘실 텐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원주에 있는 창작집필실 토지문화관에서 지내고 있다. 주변 환경도 좋고 함께 묵고 있는 작가들도 좋다. 책과 영화를 보면서 재충전하고 있다. 마음 편하게 건강 챙기며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은 재창작 대본을 쓴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전하의 봄>의 마지막 공연이라 잠시 올라왔다. 내일 다시 원주로 간다.

    -<전하의 봄> 잘 봤다.
    그래? 나는 조금 섭섭한 게 많았는데 (웃음) 아쉬운 점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대극장을 배우들이 뜨겁게 채워줘서 기분이 좋았다.

    -신명순 작가의 60년대 작품 <전하>를 재창작 했는데?
    작년에 김승철 연출가가 만들었던 공연을 잘 봤는데 작품이 가지고 있는 논조를 한번 꼬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이 시대에 꺼내볼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판단도 들었고 작품의 굵직굵직한 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승철 형한테 그랬지. 형, 이거 재공연 하세요. 제가 각색하겠습니다.

    -원작 <전하>는 어떻게 읽었나?
    처음에는 읽고 약간 위험한 대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나온 희곡인데 박정희를 두둔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선생님 말씀이 당시 대학생들 비롯해서 청년층에서 박정희에 반하는 정서가 팽배했는데 그런 문화가 획일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싫으셨다고 하더라. 중립적인 상태에서 정치를 보는 시선의 균형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내가 봤을 때는 선생님의 작의랑은 다르게 박정희의 쿠데타를 강하게 옹호하는 것처럼 읽히더라. 재창작 하는 동안 그 지점을 예리하게 짚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공연이 정치색이 강한 편이더라. 현재의 시대적 상황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현 정권에 대한 작가로서의 부정적 감정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진보와 보수, 양쪽을 다 건드리는 대본을 썼다. 좌, 우 양쪽 모두에게 칼질을 하고 싶은 대본을 썼다. 진보가 가지고 있는 입진보라고 해야 하나? 너무나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말들과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판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공격들이 아쉽다. 보수 쪽은 굳이 말할 것도 없고 (웃음)
배우 우미화와의 인터뷰

-진보와 보수 양쪽을 깊이 있게 다루고 싶었던 것 같은데, 조금 놀랍다. 왜냐면, 연극을 보는 내내 좌우의 문제가 심층적으로 논의되기 보다는 현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어조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하던데, 극중 객석을 향해 "씨발!" 외치는 장면은 본인이 쓴 장면인가?
아니다. 내가 쓴 대사가 아니다. 작가로서 조금 못마땅한 부분이 있다면 정치적 상황을 대놓고 말하려고 쓴 대본이 절대 아닌데 공연을 통해 한쪽의 색깔만 드러났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정치적인 문제를 소재로 다룰 뿐이지 전면적인 주제로 다루는 작품은 쓰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쓴 작품이 전반적으로 다 그렇다. <고래>, <살> 등을 봐도 얼핏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실은 개인적인 실존의 문제, 욕망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전하의 봄>을 통해서 나는, 오늘날의 권력과 직접적으로 조우했을 때 어떨까? 내 속에는 어떤 권력이 숨어 있는가? 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공연에서 그런 고민이 잘 드러나지 않더라. 하지만 그게 연극작업의 묘미 아니겠는가? (웃음) 연극은 협업이다. 작가가 써놓은 것이랑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공연에 대한 큰 불만은 없다. 특히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안티고네>를 연출한 김승철 아르케 대표와의 작업은 처음이었나?
작가와 연출로는 처음이다. 내 작품에 형이 배우로 출연한 적은 있었지. (웃음) 연극원 학생이 내 작품을 연출한다기에 배우로 추천한 적이 있었다. 승철 형하고는 편하고 친하다. 호흡도 잘 맞는다. 죽도 잘 맞는다. 그런데 추구하는 연극적 색깔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특히나 연기적인 측면은 극명하게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나는 연기하지 않는 것 같은 연기를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배우들의 연기가 숨구멍 하나 정도에서 묻어나오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형은 그러니까 대놓고 확 샤우트 하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그 지점에서 형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웃음) 개기기도 많이 했다.

  • 닥치고 멀티! 모든 작업에 최선을 다한다

    -배우, 작가, 연출을 넘나들고 있다. 주업이 어떻게 되시는지?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는 69년에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꿈이 영화감독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영화동아리가 없었다. 연극과 영화가 가까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근데 그때부터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계속 배우만 시키네. 허우대 멀쩡하다 그거지. 처음부터 주인공을 맡았다. 그래서 하다 보니 계속 배우를 하게 되고 대학로 무대에도 배우로 데뷔했는데, 내 속에 든 이야기에 대한 욕망, 무언가 말하고 싶은 욕망은 끊임없이 따라다니더라. 어렸을 때는 분출하는 에너지가 강해서 배우가 재밌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 삶의 호흡이 조금 가라앉더라. 결국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게 행복하더라. 그래서 희곡을 썼는데 그걸 또 내 꼬라지대로 연출해주는 연출이 없네. (웃음) 그러다보니 에이씨, 내가 하고 말래. (웃음) 그래서 연출까지 하게 된 거지 뭐.

    -배우, 작가, 연출 중에 뭐가 가장 좋은가?
    지금은 다 열어둔 상태다. 연극작업 뿐만 아니라 요즘 내 인생의 모토가 닥치는 모든 일에 있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다. 연기를 하게 되면 연기를 하고, 글을 써야 되면 글을 쓰고, 연출을 해야 되겠다 싶으면 연출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땡기는 작업이 있을 텐데?
    음...... 땡긴다기 보다는 글을 더 성실하게 쓰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서 작가로서 조금 더 깊어지는 과정을 가지고 싶은데...... 사실 연출을 하게 되면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긴다. 제작까지 겸하는 입장이라 프리프로덕션, 공연 후 정산기간까지 합치면 4-5개월이 그냥 날아간다. 작업의 깊이와 성과를 따지자면 확실히 한 가지 작업에 열중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성공적인 결과에 대한 부담을 버릴 수 있다면 여러 파트를 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배우를 해봤기 때문에 배우의 마음을 잘 알고, 작가를 해봤기 때문에 작가 마음도 잘 알고, 연출을 해봤기 때문에 연출 마음도 잘 안다. (웃음)

    -부럽다. 사실 나는 연출을 전공했는데 연출가의 꿈은 갈수록 사라진다.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연습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각기 개성이 다른 배우들과 만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에 불쑥 배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스스로 놀라고 있다.
    오!

    -궁극적으로 연극은 배우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무엇보다 무척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
    맞어! 맞어! 해봐, 해봐.

    -그냥 꿈이다, 꿈. 작가로서 배우들하고 말하는 것도 벌벌 떨리는데 어떻게 무대에 서겠나?
    (웃음) 배우는 떨림의 미학이다. 무대 위에 서서 안 떨리면 그건 배우의 자격이 없는 거야. 연기는 떨림의 미학이야. (웃음)
배우 우미화와의 인터뷰
  • 연극으로 풍성한 이름, 고래

    -프로무대에는 어떻게 데뷔하게 됐는가?
    군대에 다녀온 후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한씨연대기>를 봤다. 이런 연극이 있구나, 이런 극단이 있구나, 완전 뻑 갔었다. 공연을 본 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정동숙 배우를 우연히 만난 거다. 훗날 연희단거리패 대표도 역임했던 누나인데 그분을 딱 만난 거다. 너무 반가워서 공연 잘 봤다고 말을 붙였지. 사실 저도 대학교 때 연극반을 했었습니다. 말을 하게 됐는데 누나가 극장에 한번 놀러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찾아갔지. 찾아가니까 그냥 아무 소리도 안하고 단원처럼 일을 시키기 시작하는 거야. (웃음) 그날 극장에서 오달수 형도 만났지. 늙어보여서 대표인 줄 알고 인사했더니만 알고 보니 나보다 한 살 밖에 안 많더라고. (웃음) 이후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대학로 무대에는 95년 조광화 작, 김광보 연출의 <오필리어>의 햄릿으로 데뷔했다. 20대 중반 한참 힘 좋을 때였지.

    -극단 백수광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10년 정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30대 중반에 극단대표인 연출가 이성열 형이 같이 해보자고 해서 백수광부에 들어갔다. 성열이 형과 재밌는 작업들을 많이 했다. 배운 게 참 많다. 연습과정, 배우들을 대하는 태도 등 좋은 점이 참 많은 연출가다. 또 백수광부 단원들은 일단 너무 착하다. 다 굉장히 착해. 어떻게 보면 순하다고 해야 하나? 단원들하고도 가족처럼 잘 지냈다.

    -친정 백수광부를 떠나 극단을 창단했다. 이유를 듣고 싶다.
    언젠가 내 극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고래’라는 극단 이름도 이미 지어놨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는 내가 계획했던 것 보다는 조금 일찍 나오게 됐다. 더 내공을 쌓고 독립하고 싶었는데, 음... 작품 욕심 때문이다. 내가 쓴 작품을 올리고 싶은 욕망은 점점 커지는데 한 극단에서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의 수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신생극단을 이끌어 가다보면 힘든 일이 많을 텐데 그럴 때 생각나는 연극적 동지라고 할까, 힘이 되어주는 친구, 선배는 누군가?
    그때그때 다르다. 지금 함께 작업하고 있는 동료가 가장 좋은 친구다. 음... 열정이 식지 않는 형들을 보면 대단해 보인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해왔던 선배들이 더욱 멋있게 보인다. 내가 연출을 해보니까, 제작을 해보니까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옛날에는 욕도 많이 했거든. (웃음) 형들이 대학로를 잘 끌고 왔구나... 다시 보게 된 게 있다.

    -라이벌이 있다면?
    라이벌이라고 할 수는 없고 박근형 선배의 연극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자극을 많이 받는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 겹 더 들어가거나 한 번 더 꼰다.

    -차기작은?
    배우로는 9월에 예술의전당 명품연극 시리즈 윤영선 작, 이성열 연출의 <여행>에 출연한다. 연출로는 10월에 한국공연예술센터가 기획하는 <봄작가 겨울무대>의 한 작품을 맡게 됐다. 작,연출로는 12월에 남산예술센터에서 <사라지다>를 올릴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에만 예술의전당에는 배우로, 대학로예술극장에는 연출로, 남산예술센터에는 작,연출가로 뛴다. 이렇게 욕심 많은 연극인은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한다. 혼자 다 먹는 거 아닌가?
    내가 만든 극단 이름이 ‘고래’다. (웃음) 말했지 않은가? 어떤 역할이든 닥치고 열심히 할 뿐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다만, 바로 지금 시켜주는 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연극이 좋다. 연극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영화감독의 꿈은 버린 지 오래다. 누가 시켜줘도 안할 거다. 연극으로 풍성한 이름 ‘고래’를 기억해 달라.

 

  • 공연 포스터
  •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 / 작·연출)
    주 요 작 품 l <고래><살><빨간시><전하의 봄> 외
    주요수상경력 l 2010 창작팩토리 대본공모 선정<살>
    2008 밀양연극제 희곡상<고래>(작/연출)
    2007 제10회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고래>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남편을 빌려드립니다>

 

태그 이해성, 전하의 봄, 극단 고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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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창간준비 2호   2012-05-03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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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재미있네요.

2013-08-12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