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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연극은 ‘숙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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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
저는 (극단) 골목길 간판이 사무실에 걸린 날부터 골목길에서 작업을 시작 했어요. 한 14년? 그때는 작업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 대학로예술극장 사거리에 있는 건물 맨 꼭대기 옥탑에 컴퓨터 한 대 놓고 극단 사무실처럼 썼죠. 옥탑에 마당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공연이 없을 때는 가끔 모여서 놀았어요. 겨울에 중고 난로 들어온 날 고구마 구워먹고, 평상에 앉아서 놀고 그랬어요. 그게 2003년쯤이었어요. 누가 극장을 제공해 주면 그 때 가서 공연하고, 연습은 어떤 선배님이 운영하시는 술집에 가서 낮에 연습하고 그렇게 했었어요.
골목길의 시작을 함께 하신 거네요.
인영
그전부터도 워낙 더 오랜 세월이 있었죠. 수희언니(연극배우 고수희)같은 경우는 20살 때부터 함께 했다고 들었으니까, 간판이 걸린 날 이전에도 7~8년의 세월이 더 있는 거죠.
연극 시작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인영
학교 다닐 때 졸업하고 나서 뭘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저는 사실 전혀 딴 일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스튜어디스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외국 항공사는 키가 작아도 튼튼하면 된다더라.’ ‘스튜어디스가 되어서 외국여행을 공짜로 다녀보자.’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오빠가 시립극단 시험을 봤다는 거예요. 저는 그때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오빠가 국립극단에서도 연수단원을 뽑으니 거기에 한 번 지원해보라는 거예요.
거기에 지원해서 연수단원이 됐어요. 그때 국립극단에서 ‘가족극 시리즈’를 했었어요. 저도 한 작품에 참여했고 그 공연이 끝났는데 극단 피디가 오더니 ‘팜플렛 파는 알바 해볼래?’ 해서 ‘가족극 시리즈’ 공연들의 팜플렛 파는 알바를 하게 된 거예요. 그걸 하면서 공연도 보고 오다가다 (박근형)선생님도 보게 되었는데... 너무 괜찮은 사람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 땐 지금 보다 좀 어려보이는 편이었어요.(웃음) 그리고 애기들이 들고 다니는 그 왜 딸깍 하면 열리는 가방(?)을 맨날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거기서 소주병 꺼내고. 저는 그때 내 또래 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젊어 보이셨다구요?
인영
제가 그 때 24이었는데 (선생님이) 한 서른쯤 이라고 생각 했던 거예요. 되게 어리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작품을 봤는데 작품이 되게 괜찮은 거예요. 기울어진 집을 배경으로... 엄청 웃긴데 주제가 강한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저 친구 잘한다.’ 생각했었죠. ‘저 친구 괜찮은데?’(웃음)
그러다가 연수단원 끝났고. ‘이제 뭐하지.’ 고민하고 있을 때 몇몇 극단에서 극단에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차OO’는 가봤더니 뭔가 분위기가 너무 세련 되 보이는 거예요. 왠지 (그 분위기가) 나는 적응이 안 될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목O’에 갔더니 뭔가 기운들이 너무 센 거예요. 처음에는 온화한 분위기였는데 연출선생님께서 ‘이 친구가 들어올지 몰라.’라고 말씀하신 순간 뭔가 선배님들 기운이 바뀌는 것 같은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자신이 없더라구요.(웃음) 그러다가 친구랑 우린 그럼 뭘 하지 하다가 박근형 선생님이 생각 난 거예요. 전화해서 ‘저 국립에서 봤던 주인영입니다.’ 했죠.
그랬더니 ‘아, 네.’하시면서 되게 예의 바르게 받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같이합시다.’그랬죠.(웃음)
선배님께서? 선생님한테? ‘같이 합시다!’ 그러셨어요? 하하
인영
그랬더니 ‘아, 네네. 오세요.’ 그러셔서 찾아갔죠. 그 때 극단에서 <삼총사>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이미 연습이 진행되고 있던 상태라 연습 도와주면서 티켓팅하고 그렇게 시작했었죠.
그렇게 쭉 골목길에서 공연을 하신건가요?
인영
아니요. 그 때는 공연이 많지 않았으니까. 보통은 ‘쉬는 시간’이었죠.(웃음) 모여서 가끔 놀고. 그러다가 여행을 좀 많이 했어요. 좀 괴로웠던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도 들고... 무대에 설 기회가 잘 없는 거예요. ‘나는 프로인데. 왜 날 안 써주지.’하는 생각에 괴로웠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좀 내려놔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고행 길을 떠난 거죠.(웃음)
고행길!(웃음)
인영
하하. 티벳도 가고 오지로 막 다녔어요. 내 말도 안 통하고 그들의 말도 안 들리는 곳들 있잖아요. 그런 곳들로 여행을 다녔죠. 근데 이게 중독이더라구요. ‘내가 여행을 다녀오면 그 시간 동안 연극계가 뭔가 바뀌어 있겠지?’ 하고 돌아오면... 똑같은 거예요. 그게 못 견디겠어서 또 나가고... 이걸 3, 4년 동안 반복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들어와서 다시 작업을 하게 됐고 그 다음부터는 작업이 많아져서 여행중독을 끊고 작업을 많이 했었죠.

연극이랑 만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세요?
인영
연극이랑 만나게 된 계기가... 음...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첫째 딸(언니)은 어렸을 때 손재주가 좋아서 이쁘다, 이쁘다 했더니 미대를 갔고, 둘째 애(인영)는 네 살 때 티비를 봤던지 아무튼 뭘 보고 와서는 ‘엄마, 나는 연극배우가 될래.’ 이러길래 ‘그래, 잘하겠다.’했더니 그게 지금까지 왔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그것밖에 몰라요.(웃음)
계기라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 엄마가 ‘너는 뭐하고 싶어.’ 물어보시길래 연극과 가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이미 언니와의 싸움(미대로의 진학)에 지치셨는지... ‘그래.’(웃음) 하시더라구요.
대학입시 볼 때 면접 보러 갔을 때 선배들이 서 있길래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무조건 연출한다고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팁을 몇 가지 주더라구요. 지금은 생각도 안나요. 러시아 무슨 연출인 것 같은데. 무슨 ‘스키’였는데... 아무튼 그 ‘스키’를 면접 보는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굉장히 많이 말씀하시니까 그 사람하고 한국 어떤 연출가를 알려주면서 ‘면접 볼 때 그분들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라.’ 라고 알려주더라구요. 시키는 대로 했더니 ‘음!’ 하시면서 되게 마음에 들어하시더라구요.(웃음)
그래서 합격하셨나요?
인영
네.(웃음)
선배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뭔가 목적이 정해지면 그냥 돌진하는 스타일이신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날 때도 그렇고.(웃음)
인영
아니요. 고민도 하고. 되게 겁도 많아요. 근데 겁내면서 일단 발을 넣어 봐요. 약간 그런 쪽인 것 같아요.
혹시 혈액형이 어떻게...?
인영
A형...
제가 가끔 연극인데이트 진행할 때 ‘혈액형토크’를 좀 하거든요.(웃음)
인영
제가 양자리예요.
...별자리까지는 아직...
인영
저도 별자리(에 대해서) 잘 몰랐다가 작년에 너무 힘들어지면서 이것저것 하다가 별자리를 연구하게 됐는데, 옛날에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갔잖아요. 그때 시작된 거래요. 사람마다 별을 갖고 태어난다는 거예요. 사람도 결국은 ‘씨’ 라는 거죠. 사람도 작은 씨앗처럼 태양, 달에 영향을 받아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양자리. 양은 뿔을 갖고 있잖아요. 얘는 벽에 박을 때까지 일단 달린데요. 겁이 있건 없건 일단 부딪힐 때 까지 달려서 쾅 부딪히면 다시 방향을 바꿔서... 또 달린데요.(웃음) 그러니까 얘는(나는) 달릴 곳이 없으면 불행한 거예요. 양자리는 일단 달려야 된데요. 근데 그걸 들어보니까... 비슷한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내 존재에 대한 고민들, ‘내가 왜 이렇게 무모했지? 내가 왜 그랬지. 내가 고민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무식하게 했지.’ 괴로워했던 게 해결이 되는 거예요. 내가 양(자리)이라서 그랬구나.(웃음) 앞으로는 내 행동이 객관적으로 보이겠구나.
가끔 그렇게 단순하게 정해지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인영
가끔 운명론이 되게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그래, 이건 신의 뜻이야.’ 별자리가 어떻게 되세요?
저요? 게자리요. AB형 게자리.
인영
게자리요? 아. 힘들겠다. 게가 CANCER(암)잖아요. 암.(게자리 [Cancer, the Crab])
그래요?(화들짝)
인영
CANCER. CANCER. C.A.N.C.E.R. 암이에요. 게는 CANCER. 암.
듣기 만 해도 암 걸릴 것 같네요.
인영
미안해요. 그건 아닌데.(웃음) 게자리 사람들 보면... 괴로워해요. 왜냐하면 겉은 딱딱하게 감싸고 있는데 안은 너무 야들야들 해서 안에서 지지고 볶는 거예요. 영혼이 너무 여린 거예요.
네! 맞아요... 제가 그래서 맨날 속이 썩어요. 항상 피곤하고.(울적) 저도 이제부터는 별자리를 탐구해 봐야... (정신 차리고) 선배님은 지금까지 작업을 몇 개 정도 하셨어요?
인영
결혼하고 휴식을 많이 해서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진 않아요. 극단 작업을 하다 보니 재공연이 많았고... 사실 적어 왔어요.(웃음. 세어 본다)하나, 둘, 셋.... 스물한 개.
오늘 인터뷰하고 나서 제가 대표작 5작품 정도를 요청을 할 건데요. 지금 그 중에서 5작품을 골라보시면 어때요?(웃음)
인영
네?! 아, 그거 어렵다. 저 그런 거 진짜 어려워해요. 어... 관계도 있고...
그런 거 상관없이요. (웃음)
인영
음...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는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음... <반신>... <야끼니꾸 드래곤>...음...
자 2개 남았습니다. (웃음)
인영
음... 음...
너무 괴로워하진 마시고.(웃음) 3개만 하셔도 되고 6개 하셔도 되요.
인영
<맨드라미꽃>... <그 때 각각>...

그럼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을까요?
인영
헉... 너무 어렵다... 사실 그 중에서 의미로 따지면...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인데. 박근형 선생님 작업 특성상 각 인물마다 배우 본인들이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 작품에는 내가 많이 들어가 있고... 그 작품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고 좋아하는 작품은... <반신>인 것 같아요. 그때 그 작업을 했을 때가 2014년인데요. 제가 연극을 시작한지 12년이 됐을 때거든요. 근데... 까먹고있었어요. 왜 내가 연극을 선택 했는지. 왜 연극을 하려고 했는지... 어렸을 때 엄마랑 친구랑 많이 했던 이야기 ‘너 연극 왜 해? 그렇게 고생하는데.’ 그 때 늘 내가 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걸 다 까먹었던 거예요...
‘난 그게 너무 좋아. 재밌어. 다른 건 내가 아닌 것 같아...’
<반신>을 할 때 노다 히데끼 연출님이 나이가 되게 많은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 만난 순간부터 (연습에 참여한) 모두가 그걸 잊어렸어요. 연습할 때도 놀이처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만들고 그러다보니 다른 배우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역할의 크고 작음 없이 모든 배우들이 오랜 친구처럼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그런 모습에서 리더쉽을 느낀 거죠. 보통 연습을 하러 갈 때 어떻게 잘 해 낼 수 있을까 부담을 느낀 적은 있어도 즐기는 느낌을 갖기는 힘든데 그때는 항상 연습하러 갈 때마다 놀러가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웃음) 모두가 신나하고. 그 때 모두가 했던 말이. ‘아, 맞아. 우리가 이래서 연극을 했던 건데. 연극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하는 이유가 ’재밌어서‘ 인데...’ 그렇게 모두가 느낀 거예요.
저도 <반신>을 봤는데요. 사실 너무 지쳐있을 때이기도 하고... 너무나 대단한 연출가라고 소개가 되니까 괜히 ‘얼마나 대단한지 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보기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배우들의 화법이나 극의 진행이 전형적인 스타일처럼 보였어요. 심지어는 오케스트라까지 너무 어설프게 느껴지고.
근데... 그러다가... 같은 구조가 다시 한 번 순환되기 시작하는데... 너무 좋았어요. 아니 신기했어요.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광경이 환상적이었어요. 하잘 것 없어 보였던 것이 위대해 보이고 생명이 없던 것이 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말로는 잘 설명 못하겠는데... 너무 멋졌어요.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고민도 많았고 많이 지쳐있을 때였는데. 엄청나게 큰 자극을 받았었죠. 작업하는 과정에서 느끼셨던 큰 행복감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어떤 것도 다 담아낼 수 있는 거구나.’하고 확신을 주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냥 관객일 뿐이지만 저에게도 큰 힘을 준 작품 이예요.
인영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힘들고 길도 안 보이는 것 같고... 내가 이걸 왜 붙잡고 있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그 작업을 하면서, 놀면서 ‘아, 내가 이래서 연극을 했었지.’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시간이었어요.

그렇다면... 주인영에게 연극이란?(웃음)
인영
헉. 우와...! 어렵다... ... 뭘까요...?
그냥 딱 떠오르는 걸 말씀하시면 됩니다.(웃음)

긴 사이

인영
음... 숙제.
숙제! 좋네요. 왜 ‘숙제’ 일까요?
인영
젊은 시절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연극을)하게 됐을까... 근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 네 살 때 갑자기 엄마한테 ‘나 연극배우 할래.’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냥 그렇게 하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어딜 찾아가거나 그런 편도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케이스이기도 하고. 이걸 운명론으로 보자면 ‘(어차피)할 거 였으니까 이쪽으로 왔겠지.’ 라는 생각도 드는데... 사실 저는 여행이 더 좋아요. 어렸을 때도 혼자 결론을 냈던 게 ‘나는 연극을 하려고 살진 않는다.’ ‘연극을 하면 내 삶이 행복하니까 하는 거다.’ ‘나는 내 삶이 더 중요하니까. 연극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니까. 내 삶을 위해서 연극을 하는 거지 연극을 위해서 죽고살고 하고 싶진 않다.’ ‘삶에서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연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게 지금도 변함은 없구요.
근데 제가 (공연을) 쉬는 기간이 있었잖아요. 그때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다 끊겼으니까. 연극이고 여행이고 모든 게 다. 그냥 동네에선 ‘누구엄마’잖아요. 아니면...새댁.(웃음) 그러다 보니까 내가 붕 뜨면서 사라져 있는 거예요. 나중에 애까지 다 커서 날 떠나면 난 아무것도 안 남게 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되게 무서웠어요. 그러다가 2년 반 만에 다시 나와서 작업했던 게 <별무리>였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하게 되었고 해석이 어떻고 그런 것 이전에 너무 좋았어요. 무대 위에 내가 있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근데 또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는 거예요. 정치적인 문제(- 연극인인데 연극인으로만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보게 되고), 거기서 내가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노선을 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나 혼자 고고한 척 할 수도 없고, 이제 나는 뭔가 보여줘야 할 나이가 된 거예요.
가끔 연극이 팔자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팔자에) ‘업’이 많아서 이걸 다 갚아야 하는 거라고, 니가 벗어날 수 없는 거라고. 가끔 연극이 ‘업’같아요. 너무 무거워요. ‘왜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얻어지는 게 없는 무거운 일을 하게 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한 몸 서 있기도 힘든데 ‘내가 뭐라고 만인들한테 교훈을 주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나라도 어지러웠고 사회는 불안한데 연극을 하고 있는 내가 시대 속에 살고 있지 않는 느낌도 들고.
아마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은데... 아니 언제까지 할지 모르죠. 할지 말지. 이걸 어떻게 해 나갈지... 계속 ‘숙제’ 일 것 같아요.
그리고 할수록 너무 어려워요. 다른 일은 할수록 나아지잖아요.(웃음) 근데 너무 어려워요. 어떨 땐 지금 까지 한 게 다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속인 것 같아요. 내가... 관객을. 그런 느낌이 들어서 ‘내가 너무 어리고 철딱서니 없으면서 잘난 척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이 들고. 되게 부끄러워 질 때가 많아요. 옛날에 내가 했던 장면이 생각나면 ‘왜 내가 그렇게 생각했지?’ 잘난 척 하면서 그게 맞다고 했던 게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앞으로 (그런 고민들을) 풀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어요. 포기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근데 ‘양자리’가요. 앞으로 3년 간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데요. 양자리는 원래 도움 받는 걸 싫어 한데요. 혼자 달려야 된데요. 근데... 앞으로 3년간은 최대한 (도움을) 받으래요.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얘기하면 답을 줄 거래요. 그래서 말인데.... 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네?? 저요? 음... 음... 근데 제 생각에는... 그런 질문이 없으면 연극하는 의미도 없어지는 세상인 것 같아요... 지금이. 너무 어지럽고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연극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없으면 작가들 연출가들 모두 없어질 것 같아요.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공연을 올릴 수밖에 없는 거죠. ‘관객도 없고 뭔가 모자라지만 나에겐 의미가 있어.’ 다 자기한테만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럼 연극이 왜 있어야 될까요. 끊임없이 냉정하게 질문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연극으로 뭘 내밀어 보일 수 있는지를 고민을 하지 않으면 쉽게 없어져 버릴 것 같아요. 연극이... 우리가...
인영
저는 이제 진짜 제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 인 것 같아요. ‘진짜 내가 누구지? 나는 착한 사람일까. 사실은 속은 되게 못 된가. 꿍꿍이가 있나.’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걸 알게 해주는 작업을 만나게 되면 좋지 않을까요?(웃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이 다시 찾아온 거잖아요.
인영
(웃음)그렇죠. 제가 사춘기를 안 겪어서 그런 가 봐요.
그게 지금 왔나 봐요.(웃음)
인영
질풍노도의 시기. 하하
질풍노도의 시기. 하하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주인영(배우)

대표작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반신> <야키니꾸 드래곤> <맨드라미 꽃> <그 때 각각> 외 다수

태그 주인영,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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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제129호   2017-12-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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