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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연극마을을 꿈꾸는 혜화동 노총각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작가/연출가 이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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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출가 이양구
  • 꼬마 이양구가 살던 마을은 충주호 안에 잠겨있다. 수몰지구에서 자란 그는 나무며 집이며, 온 마을이 파괴되어 물속에 잠기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며 컸다. 그래서일까, 그는 마음에 슬픈 호수 하나씩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프리카 우간다까지 대학로를 기반으로 세상 음지를 싸돌아다니는 혜화동 노총각을 몇 번의 인터뷰 거절 끝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 잃어버린 우리 마을, 평택에서 만나다

    왜 그토록 인터뷰를 사양했는가?
    부끄럽다.
    내가 과대포장 되는 것이 나는 두렵다. 나는 정말 부끄러운 사람이다.
    인터뷰를 통해 좋은 사람으로 잘못 알려 지는 거, 그런 거 정말 싫다.
    음…… 제발 표현을 소박하게 해 달라. 소박하게.

    나는 듣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쓸 것이라고 답했고, 그리고 그렇게 쓰고 있다.

    <일곱집매> 공연을 앞두고 있다. 어떤 작품인가?
    평택 안정리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죄인이라고 자책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편견 속에서 상처받은 기지촌 여성들이 자존감을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그 할머니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제목 ‘일곱집매’는 무슨 뜻인가?
    안정리 마을의 옛 이름이다. 일곱 집이 다정한 자매처럼 살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과거에 기지촌 클럽에서 미군을 대상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독거노인이 되어 방치된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일곱 개의 작고 허름한 방을 뜻하기도 한다.

    평택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평평할 평(平)에 못 택(澤)자를 쓰는 평택을 좋아했다. 평택, 평등한 연못, 그것은 평등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일 거다. 그 이름이 너무 좋아 언젠가는 평택이라는 제목으로 희곡을 쓰려고 했었다.
    우리 극단 이름이 해인이다. 바다 해(海), 도장 인(印), 그러니까 바다에 찍힌다는 뜻이다. 해인사의 그 해인인데, 그러니까 무슨 의미냐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찍힐 정도로 바다의 물결이 평화롭고 잔잔하다는 거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았던 순간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그 평화로운 순간과 깨끗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극단 이름으로 했다.(웃음) 극단 이름으로 조금 거창하긴 하다.
작가/연출가 이양구
  • 평평한 연못과 평화로운 바다, 그 수평의 세계에 매료된 이유가 궁금하다.
    음…… 고향은 강원도 영월인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충북 제천에서 살았다. 남한강가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런데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곧 수몰 예정지역이 되었다. 동네의 나무들이 다 잘리고 집들은 모두 폭파되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이사를 갔는데, 이사를 못간 우리 집은 수몰 예정지역 위에 가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았다. 그 물가에서 물속에 잠긴 옛 마을을 보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마을이 천천히 파괴되고 사람들이 떠나가는 모습, 우리 동네가 낚시터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나한테는 그 물이 그냥 물이 아니었다. 눈물의 호수였지. 평택이라는 평평한 호수가 나에게는 유년기의 우리 마을인 거다.

    평택, 그곳에서 잃어버린 동네를 찾았는가?
    음…… 글쎄…… 평택이 좋아서 무작정 평택에 자주 가게 됐다. 그리고 기지촌의 현실을 보게 됐다. 미군기지, 혼혈아, 흑인, 백인, 클럽여성들,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다. 공간의 이미지가 뭔가 부조리한 느낌으로 오더라. 그러던 중에 우연히 햇살사회복지회를 알게 됐다.

    햇살사회복지회?
    안정리에서 10년째 기지촌 여성들을 돌보고 있는 단체다.6,70년대 미군기지 앞 클럽에서 직업여성으로 살아가던 20대들, 그녀들이 이제 독거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방치되어 버려져 있는 할머니들의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봉사단체라고 보면 된다. 매주 화요일 공동식사, 도시락배달, 할머니들과 30분씩 대화하기 등의 일을 한다.
    그분들을 찾아가 연극 공연을 올리기도 했었지만 애초에 그분들 이야기를 가지고 연극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복지회 우순덕 원장께서 공연을 만들어 달라고 하시더라. 3년이 지나면 한번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까먹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이제 3년이 지났으니 해봐라. 하시는 거다. 그래서 <일곱집매>를 준비하게 됐다. 대본을 쓰다 보니 평택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이 들어가더라. 3시간이 넘는 대본이 나왔다. 할머니들이 많이 보시러 오실 텐데 너무 길면 고생하실 것 같아서 문삼화 연출과 많이 줄이기로 이야기가 됐다. 문삼화 누나는 2008년 ‘봄작가 겨울무대’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주관하는 차세대 극작가·연출가 발굴을 위한 기획 프로젝트 로 처음 만난 절친한 동료다. 여자들 이야기니 여자 연출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연출을 부탁했다.
  • 늦깎이 고학생

    연극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원래 전공은 법학이었다. 몸이 좀 좋지 않아서 3년간 장기휴학을 하다가 4학년 때 자퇴를 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스물여덟에 중앙대 연극학과에 연출전공 입학했다.

    왜 연극이었는가?
    고3 때 연극영화과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가 있었다. 연극영화과 가고 싶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렸는데 "미친놈 니 얼굴에 무슨" (웃음) 그때는 그 한마디에 접었었다. 그런데 연극이 참 좋았다. 극장에 들어가 객석에 앉아 있는 걸 너무 좋아했다. 객석에 앉아있으면 그냥 마음이 너무 편하다. 지금도 그걸 좋아한다. 무대를 보고 있으면 꿈결 같다. 배우들이 무대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든다.
  • 작가/연출가 이양구 작가/연출가 이양구
  • 연극을 보는 게 꿈결 같다고 말하는 표정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 달라.
    막이 열리면 무대 위에는 영원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잠시 시간의 문이 열리면 영원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가 잠시 보는 느낌. 연극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다. 아마도 내가 현실세계에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연결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물여덟에 연출전공 신입생이 됐는데, 어땠나?
    너무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형이 조금씩 도와주기는 했지만, 늘 학비 걱정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계속 뛰어야 했는데 연극학과 다니면서 알바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 등록금의 압박이 너무 컸다. 공연 할 때는 후배들 연습을 시켜놓고, 나는 알바 뛰고 오고, 새벽까지 연습하고! 그렇게 지냈는데 사실 힘들면서도 즐거웠다. 너무 즐거웠다. 4학년 되니 걱정도 되더라. 졸업하면 공연이나 한 편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할 무렵에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다.
  • 별방에서 핼리혜성까지

    대학로 데뷔는 언제?
    서른넷에 했다. 졸업과 동시에 했다. 신춘문예 공연 <별방> 이후에 ‘봄작가 겨울무대’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2009년에 ‘아르코 영아트 프론티어’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집중지원사업 에 선정되어 <핼리혜성>을 준비하게 됐다. 당시에 연우무대를 만난 게 큰 힘이 되었고, 연우무대의 제작지원을 받아 <핼리혜성>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2011년에 혜화동1번지 5기 동인이 되면서 그때부터는 동인 작업을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돌아보니 운이 좋아 순탄하게 걸어왔다. 고비마다 일이 잘 풀렸다.

    데뷔작 <별방>과 <핼리혜성>은 어떤 작품인가?
    별방은 강원도 영월 고향마을 이름이다. 태어나 곧 떠나온 공간. 내가 태어난 곳인데 내 기억에 전혀 없는 공간이다. 그 공간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핼리혜성>은 2007년에 졸업작품으로 시작했던 작품인데 2010년에 아르코 소극장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올렸다.

    또 물이 나온다. 수몰된 마을 이야기인가?
    그렇다. 나에게는 <핼리혜성>이 연극이기 이전에 치유다.
    음…… 공연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다. 수몰이라는 사회적 사건을 다루면서 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개인의 가족사가 사회와 만나지 못한다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연극으로 발언을 한다는 건, 내가 그 문제에 책임을 질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책임질 생각이 없으면서 사회문제를 소재로 가져와 쓰는 건 싫었다. 문제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질 생각이 없으면서 연극으로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별방>과 <핼리혜성>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 봉하에서 우간다까지

    그 이후에는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봉하마을에 그가 남긴 비석이 있었다. 그 비석은 "이제 더 이상 이 뒤로는 못가!" 바로 그 선이다. 나는 그렇게 봤다. 부끄러운 사람도 발언해야 한다는, 심리적 마지노선. 연극하는 일을 개인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했다.

    그 변화의 시기가 혜화동1번지 동인이 된 시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그간 어떤 작품들을 발표했는가?
    첫 작업은 <유년의 뜰> 이었다. 한국인들은 자기만 바라본다,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다, 우리 사회가 전체, 타인의 삶에 관심이 사라진 사회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쓴 작품이다. <유년의 뜰>은 혜화동에서 출발한 내가 4대강을 따라, 수몰지구가 된 우리 집을 찾아 가는 그런 이야기였다.
    두 번째 작품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이었다. 혜화동1번지 동인 페스티벌 <시심詩心> 에서 올린 작품이었는데, 나는 시심이 전체를 통찰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마태복음 5장 3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고등학교 복도에 걸려있던 구절이었는데…… 그 말이 늘 궁금했었다.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이야기를 통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는 작업이었다. 시심을 꿈꾸던 사람들이, 한때 시를 꿈꾸던 사람들, 지금은 시적인 마음을 잃어버린 나와 우리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작가/연출가 이양구
  • 우간다 돕기 프로젝트 공연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스물일곱 먹은 존 보스코 라는 우간다 친구가 강원도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공부하고 우간다로 돌아가 작은 학교를 만들었다. 그 학교를 연세대 김장생 교수가 혼자서 지원해 왔었다. 그 사정을 알게 된 서른 명 정도가 작년 3월에 우간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화장실 만들어주고, 양계장 만들어주는 작은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우간다에서 돌아와서 후원행사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 공연을 올리게 된 거다.
    <비잔틴 레스토랑> 이라는 제목으로 한 지붕 아래 살았던 두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공연이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한 사람이 욕심을 내면 다른 사람이 파괴된다. 우간다가 파괴된 건, 영국이 파괴 시킨 거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 우회적으로 이야기한 작품으로 보면 된다. 900만원 모금해서 보스코에게 보냈다. 우간다 말로 내 이름 양구는 ‘심플’(simple)이라는 뜻이다. 우간다에 있을 때 별명이 심플맨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보스코에게 전화가 왔다. "양구! 심플맨!" 하면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감동적이었다.

    최근작이 <그날은 오다> 였는데?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봄 페스티벌 ‘해방공간’에서 올린 작품이다. 작가 김송 선생은 윤동주 시인이 학교 다닐 때 하숙집 선생님이었는데, 유명한 대중 소설가였다. <그날은 오다>는 1946년 정도에 나온 작품 인데 친일파 아버지가 독립운동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면서 아들에게 열쇠를 주고 자살로 결말을 맺는 작품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당시의 강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지금 동시대가 꿈꾸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무관하지 않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봤다.
  • 연극은 만남이다, 연극은 마을이다.

    <일곱집매> 이후에 준비하는 작품은?
    혜화동1번지 1인극 페스티벌이다. 최소한의 예산과 규모로 해보자고 동인들끼리 뜻이 모아졌다.
    음…… 그리고 내년 초에 재능교육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중이다. 혜화동 로터리 부근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게 벌써 1700일이 넘었다. 그들은 대학로 동네의 친구들이다. 대학로 공연 중에 사회비판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정작 혜화동 로터리 천막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에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 이야기를 해보자고 혜화동1번지 동인들에게 제안했고, 함께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일단 극장 혜화동1번지를 내년 1,2월 두 달 비워뒀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공연, 어떻게 준비 중인가?
    끝까지 부당함과 싸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들은 해고자 복직문제,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를 자세하게 들어보면서, 그 요구가 너무나 정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바라는 바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노동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론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다. 연극하는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로에 100개가 넘는 극장이 있는데, 연극이 이들을 침묵하고 있다는 게 좀 의리가 없는 것 아닌가? 이건 우리 동네, 연극 동네인 대학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 동네 구석에서 누군가가 계속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지 말고 관심을 좀 가져 보자, 그런 의미로 추진 중이다. 혜화동 1번지 동인들을 중심으로 총 여섯 팀이 꾸려질 예정이다. 현재 공연일정은 나왔고, 연극인들과 관객들이 어떻게 동참하느냐, 현실적으로 필요한 제작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 고민 중이다.
  • 작가/연출가 이양구 작가/연출가 이양구
  • 일 만들기를 좋아한다. 다른 공연 계획은 없는가?
    내년 봄에는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작품을 해보려고 한다. 국가보안법은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신동엽 시인의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 나오듯 우리가 보고 있는 건 하늘이 아니라, 솥뚜껑이다. 국가보안법이 바로 솥뚜껑이다. 그 솥뚜껑이 지금 우리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싶다.

    연극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연극은 만남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연극은 인간과 인간이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자리인 것 같다. 연극을 ‘만남’이란 한 단어로 말하고 싶다. <핼리혜성>까지는 나를 만나는 작업이었고, 그 이후에 나는 타인의 삶을 만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극으로.

    10년 후에 어떤 연극인으로 남고 싶나?
    거기까지 생각을 못해봤다.
    얼마 전에 어떤 연극을 하는데 그곳에 십년 전에도 만나던 사람들이 몇 있었다. 십년 후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십년 후에도 만나고 싶다. 연극으로.


  • 작가/연출가 이양구
  • 이양구 (작가/연출가)
    극단 해인 대표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주요작품
    수상 l 2008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
    작/연출 l <별방> <핼리혜성> <유년의 뜰> 등 작/연출

태그 이양구, 일곱집매, 극단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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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7호   2012-09-0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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