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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눌 곳이 필요한 이들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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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안부 인사 후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요. 그냥... ‘연극,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연극이 얼마나 좋아요?’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현진
처음 연락주시고 나서 좀 생각을 해봤는데 무슨 질문을 하실까 어차피 질문들이 좀 뻔 할 수 있잖아요. 생각을 정리 해보고 갈까 했는데 정리가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고 와야겠다.(웃음)
저도 따로 준비해서 오는 편은 아닌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우리는 연극을 왜 하고 있는 걸까요.’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디서 이런 얘기 할 기회도 없고. 그런데 지금의 이 혼란함을 이야기를 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하는 건. 인터뷰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들이 그때 그 시기에 남기는 기록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이야기를 나눌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요즘 내가 이 일을 왜하지 이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어오는 것 같아요.
현진
얘기할 데가 없다는 그 느낌이 사실 되게 막막하더라구요. ‘이제 우리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 며칠 전에 공연을 봤는데. 그 공연이 위안부 할머니들과 라이따이한(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혼혈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것마저도 보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성폭력 뿐 만 아니라 잘못된 사회 구조와 권력,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대해서 참아오고 있던 것들이 슬픔과 분노로 터져버린 지금. 내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야기들을 또 다시 공연으로 접하려고 하니까 이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어딘가에 갇혀서 계속 이걸 봐야만 되는 느낌...
저도 요즘 매일 보는 대본인데도 다르게 보일 때가 있어요.
현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한 극단에서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입장표명한 글에 달린 댓글 중에 ‘그래도 연극은 계속되어야 된다.’ 라고 하는 댓글을 보게 되었어요. 글을 다신 분은 순수한 의도로 글을 달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왜 연극이 계속 되어야 돼? 이 지경인데? 차라리 모두가 다 멈추어야 한다고 화를 내도 모자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진짜 계속되어야 된다고 믿는 건지... 이게 다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런 것들에 대해 감정적인 해결도 잘 안되고... 요즘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저는 생각해보니까 연극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더라구요. 연극에 바친 시간이라고 할 만 큼 긴 시간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정말 연극에 자기 인생을 바친 분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의 인생이 연극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런 긴 시간을 연극인으로 살아오신 분들한테는 또 다른 충격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극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이 그 분들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연극은 계속 되어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저는 저대로 연극 한답시고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척 했던 시간들이 너무 쪽팔리더라구요. 내가 해왔던 이야기들과 내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부분들 사이에 너무 큰 간격을 느끼니까 너무 충격적이더라구요. ‘이건 애초에 내가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다른 이유라서가 아니라 내가 연극을 계속할 자격이 있는가, 부터 해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말들이 고스란히 다시 나한테 돌아오는 것 같았어요. 이건 정말 이기적인 말이지만 솔직히 갑자기 시골로 도망치고 싶더라구요. 바다보고 멍 때리고 싶더라구요.(웃음)
현진
귤 같은 거 따면서.(웃음)
갑자기 생각이 전원으로 가더라구요. 이기적인 인간이라 그런가 봐요.
현진
그런 게 좀 필요해요. 항상 꿈꾸는...
그런 삶이 가능하지 않기도 하고 그런 삶보다 훨씬 더 환상적인 무엇이 여기 있다고 믿고 그것만 보고 달려왔는데 아니었던 거죠. 거기서 확 겁이 나더라구요. 내가 연극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 내 인생이 연극을 택함으로 인해 고달파지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 그런 게 다시 떠올랐어요. 두려움이.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고 작업하면서 8년을 달렸는데 갑자기 멈춰서버린 느낌.
현진
저도. 저는 너무 행복하게 일을 시작해서. 저는 처음에 일을 시작했던 게. 저는 대학 때 전공이 완전 이쪽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원래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는데. 일이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그냥 기업이었거든요. ‘이게 아닌가. 혹시 이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되면 ‘서른 살 까지만 다른 일 하다가 서른 살 돼서 다시 이쪽으로 돌아와도 늦지 않겠지.’ 하다보니까 이제... 시간이 한참 흘러 버렸더라구요. 정신차려보니까.(웃음)

어떻게 그 다른 계기가 공연 쪽이었어요?
현진
처음에는 축제 쪽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저는 대학에서는 경영학, 경제학 이런 걸 배웠으니까 경제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조금 지나고 보니까 살면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 연극을 보고나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세상이 잘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들이 오히려 무대 위에서 더 잘 느껴지고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 주더라구요. ‘그래! 이게 진짜일 수도 있어.’ 라는 생각을 허무맹랑하게 하고 있었죠.(웃음) 그러다가 예술경영 대학원을 갔고 처음 일을 했던 게 축제 쪽 일이었어요. 처음에 두세 달 정도 일을 했는데 일이 너무 힘든데 되게 좋은 거예요. 축제가 끝나고 나서 팀장님한테 제가 그랬죠. ‘내가 좋아하는 일 하는데 돈도 주네요.’(웃음) 그 때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축제일 하면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는데 이게 되게 벅차더라구요.
처음 축제 기획했을 때. 뭐가 그리 좋던가요?(웃음)
현진
뭐가 좋았냐 하면... 제가 스무 살 때였는데 프랑스 여행 중에 ‘샬롱 거리극 축제’를 갔어요. 그 축제가 유럽에서 제일 큰 거리극 축제인데 거기에서 남긍호 선생님께서 극단 일로토피(Ilotopie)랑 공동제작을 한 공연이 초청을 받아서 그 공연을 광장에서 했었어요. 프랑스와 한국, 국경을 넘어서는 색깔을 가진 공연이었는데 그걸 보고 있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는 그때만 해도 아직 반항기어린 상태여서 ‘흥, 예술이 뭐라고.’이런 상태였거든요.(웃음) 근데 그 공연을 보면서 그런 게 다 무너졌어요. ‘와, 되게 멋있다.’ 그때 뭔가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 기억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일했던 축제에서 초청된 단체들 명단을 보고 있는데 거기에 그 프랑스 극단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당시 초짜였기 때문에 그런 큰 스케일의 팀을 맡는 게 말이 안 될 수 도 있는데 팀장님한테 약간의 뻥을 쳐가지고(웃음) 이 팀 되게 잘 알고 공연도 봤고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죠. 그래서 그 팀을 제가 맡게 되었고 그 팀이랑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내가 어렸을 때 감격해서 봤던 그 공연자들이랑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벅차더라구요. 계속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 좋은 걸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알게 하는 역할을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 팀의 공연을 우리나라 관객들이 보고 감탄하는 것을 보면서 짜릿했을 것 같아요.
현진
그런 순간이 매번 이어지진 않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몇몇 순간이 있어요. 그런 좋았던 기억들이 있었고 그게 끝까지 동기가 돼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엔 그건 거 같아요. 이 일을 하게 되는 동력. 정말 힘들 때 다시 하게 되는 힘이 되는 것. 사실 그게 공연인 건데... 제 공연이 아니더라도 작업을 하면서 힘들 때 1년에 한 번 혹은 2년에 한 번 정도라도 정말 좋은 공연을 보면 그 힘으로 꽤 긴 시간 버티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이 맛에 연극하지.’ 이러면서.(웃음) 어떨 때는 공연이 너무 좋아서 ‘와, 나는 저 팀 때문에 이제 연극 그만 둬야겠다.’하면서 괜히 시샘하고 그러면서 연극하는 게 뿌듯하고 더 잘하고 싶고 그랬던 것 같아요. 좋은 공연 한편으로 몇 년을 사는 게 우린데.
현진
맞아요...(웃음)

사이

저는 보통, 인터뷰를 하면서 또래 연극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만나서 얘기 나누다 보면 뭔가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한 배우가 그런 얘길 하더라구요. 연극을 하다보면 힘들 때가 많잖아요. 생활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근데 ‘이 일이 내 직업이다.’라고 생각한 이후에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이 굉장히 많이 기억에 남아요. 내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때라서 더 와닿더라구요. 근데 저는 사실 아직도 그렇진 못하거든요. ‘이게 내 일이고 평생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라는 생각까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잘 못 믿는 편이기도하고. 그래서 문득문득 필요한 건지도 몰라요. 이런 나를 잡아줄 무언가가. 정말 좋은 공연이든 정말 존경할 만한 연극인이든. 어떻게 보면 비겁한 거죠. 그런 ‘이상’들이 부서졌을 때. ‘내가 왜 이일을 내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야 돼.’ 이러면서 도망가고 싶어지니까요.
현진
저는 일을 하면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제가 예술가들이랑 함께 작업한다는 거(과거형)”라고 말할 뻔 했어요.(웃음) 그들의 창작 작업에 내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아직도 그런 외부인의 상태가 남아있는 것 같아요. ‘예술가의 가까이에서 그들의 창작과정에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예술가들에게 손을 보탤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이럴 때가 많았어요. 축제일을 할 때도 ‘어떻게 하면 이 창작자들이 우리 축제에 와서 관객들이랑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좋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이 모든 일련의 사태들이 벌어지고 나니 좀 어렵고 헷갈려요. 저도 이제 일 시작한지 8년 9년 정도가 되었거든요. ‘그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기인가.’ 이런 생각을 할 즈음에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은 뭐지.’ 이런 고민들도 많이 들고... 지금 좀 과도기에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내 천직이야 이런 느낌이 든다기 보다. ‘나는 언제든 이 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도리어 지금의 저한테는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게 내 전부인 것처럼 깊숙이 들어가 있으면 너무 힘들어서...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세대별로 느껴지는 감각이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젊은 우리 세대들한테는 뭔가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 같아요. 작업 자체에 대한 브레이크.
현진
맞아요.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숨 막혀서 못하겠어요.(웃음) 어떡하지. 오늘 인터뷰 안 되겠다. 한 주 펑크 내셔야겠는데요.
왜요.(웃음)
현진
내용이 너무. 안 좋은데.(웃음)
글쎄요. 현재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해결책이 아니라 넋두리가 아닐까... 피디님은 작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기준 같은 게 있으신가요?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계시잖아요. 연극만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현진
돌이켜보니까 그렇더라구요. 사실은 거리예술 작업을 제일 많이 했고. 거리예술 중에서도 극의 형태를 지닌 작품들보다는 다른 형태의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신체극 하는 극단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고 장소특정형 공연들도 종종 하고 있어요. 저는 형태가 규정되지 않은 작업들을 좀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극장 안에 갇힌 형태보다는 장소라든지 지역에 대한 리서치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작업들에 많이 끌리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관심사가 다양한 게 제 단점인데...(웃음) 장점이라고 하고 싶은데 사실 반반 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피디님 얘기를 듣다보면 설명적인 것 과 반대되는 지점에 끌리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체험이나 내가 느끼는 싶은 대로, 느껴지는 대로 감각하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왜 연극을 하고 있지 하는 질문이 다시 들어오는 이유.(웃음) 나는 정말 행복해 지려고, 아름다운 것을 마음껏 누리려고 연극을 시작했는데. 뭔가 충만하게 느끼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데. 어느 순간 옳은 얘기만 해야 하고 맞고 틀린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연극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연극을 통해서 꼭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오면 뭔가 이상해져요. ‘내가 정말 그런 옳은 이야기를 할 만큼 떳떳한 인간인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런 건가.’

현진
작업을 하다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언제냐 하면 예술의 역할이라던가, 예술가로서의 삶에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에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우리 바로 윗세대들만 해도 엄청 심각하고 뭔가 이 사회를 다 짊어질 것 같은 그런 눈빛과...
거친 생각과...
현진
사실 저는 그런 게 없거든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정말 소시민이거든요. 얄개 같은 사람인데... 주변에 또래 예술가들이나 기획하는 사람들을 봐도 이 일을 하고 있는 동기 자체가 다 다르거든요. 이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그 ‘다름’들이 자리 잡지 못하고 아직 정리가 채 안된 상태로 같이 휩쓸려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우리는 민주화를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니고 말로만 듣던 민주화에 고작 겪은 건 박근혜로 인한 어이없는 그런 시기들 그 정도...
어이없는 시기들...(웃음)
현진
...인 거여서. 선배들이 말해준 ‘연극은 이래야 돼’가 아니라 이제 내가 말하는 ‘연극은 이랬으면 좋겠어.’의 시대가 올 텐데, 아니 온 것 같은데. ‘선배들의 앵무새가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이 시대에 살아야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런 얘기를 내가 만약 내 선배에게 하면 ‘넌 정말 철이 없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하하.
맞아요. 그런 거예요. 철든 척하고 뭔가 아는 척하고 뭔가 정의로운 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나 대본이 내가 살아온 삶보다 고귀한 느낌이 들 때. 그래서 거기 뒤에 숨은 느낌이 들어요.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욕도 들어먹고 내 작업을 싫어하는 사람이랑 싸우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내 공연 욕하는 사람한테 네가 공연 볼 줄 모른다며 우기기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웃음) 벌써 많이 늙어버린 듯한 느낌. 너무 빨리 친해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요.
현진
익숙해져버린.
친분이 벌써 생겨버린 듯한 느낌. 그럼 이미 서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고. 그런 것들인가 싶어요. 우리가 기성세대라고 하는 분들을 욕 할 때도 있지만 그냥 막연히 욕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싸워온, 쌓아온 시간들이 있는 건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연극을 하면 되고 우리는 우리의 연극을 하면 되는 건데. 그런 부분들이 우리가 우리의 타이밍으로 구별해 버리지 않으니까. 여기서 부터는 (우리의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려야 되는 건데 줄줄줄 따라가다 보니 이런 일들이 벌어졌나 싶은 생각. 그런 무기력감 같은 것들이 들어와요. 그래서 무슨 토론하러가거나 회의 있을 때 가면... 빨리 답을 내야 하는 자리에 가면 솔직히 미쳐버릴 것 같아요. 뭔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그래야 되는지도 모르겠는데 뭔가를 발언해야 하는 것.
현진
그래서 어떨 때는 그런 분들이 되게 부러워요. 소속된 장르 없이 작업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어느 협회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경계가 없는.(웃음)
재야의 고수들.(웃음) ...근데 모르겠어요. 요즘 부정적인 생각만 해서 그런지 몰라도. 진짜 요즘 재야의 고수들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메인만 있는 거 아닌가. 모두가 다 욕해도 굳이 찾아가서 열광하고 볼만한 것들이 있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제 환상도 거의 다 부서졌고 재야의 고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예술적인 창작자도 아닌 것 같고... 결국에는 이런 시점에서 멈춰서 나를 보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지금이.
현진
2년 전에 검열각하를 했잖아요. 그때만 해도 시기적으로 모든 것이 명확할 수밖에 없었고. 물론 그 안에서 고민들이 깊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는 또렷한 고민들이었잖아요. 뭘 고민하고 있는지를 아는 상태였었는데. 검열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예술가로서 존재하면서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 ‘이런 때는 이런 역할들’ ‘저런 때는 저런 목소리들’ ‘이런 때는 내 고민들을 이런 방식으로.’ 이런 흐름이 있었잖아요. 근데 지금은 약간 갈 곳이 없는 상태인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때는 미션을 클리어 하는 과정 같았어요. 우리 내부의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경쟁의 의미가 아니라. 제 입장에서는 내가 내 스스로 이것을 삼켜내야지만 앞으로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지나고 보면 굳이 다음으로 갔다고 할 만 한 것 도 아니었는데. 허허벌판에서 방향성 없이 작업하던 게 방향이 한 가닥 정도 보였달까. 그런 게 좋았어요. 좋은 동료들도 많이 생기고... 근데 지금의 상황은... 지금은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연출을 하는 신진 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게) 500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에 대가리 굵은 애들 200명이 한꺼번에 그 구멍을 통과하려고 발버둥 치는 느낌이거든요. 그건 실체도 없는 치열함 인데. 정신없이 들이밀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까 ‘여기 어디야.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누더기 옷 입고 있고. 내 옆에 가족들은 울고 있고. 이런 광경인 거죠. 강제로 정신이 차려진 상태죠. 그렇다고 창작자로서 정신없이 작업을 많이 해본 것도 아닌데.
현진
그러니까요... 작업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아직 너무 많은데.
맞아요. 우리 처음 얘기했던 고민에서 조금도 못 나간 것 같긴 하네요.
현진
계속 약간 ‘답정너’처럼 계속 돌아오고, 돌아오고 그런 것 같아요.(웃음) 근데 이걸 외면하려고 하면 더 웃긴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이 좀 이기적이라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가득차면 도망치고 싶은 그런 게 좀 있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지금이 좀 그런 것 같아요.(웃음)
현진
저는 여행을 되게 좋아하는데. 제가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 저기 가보고 싶고, 새로운 세상을 아는 게 좋아서 인 것 같아요. 철없이. 거기서 돈을 번다던지 성과를 거둔다던지 이런 건 전혀 없고 마냥 좋은 거예요. 모르는걸 보고 모르는 언어를 듣고 이러면 되게 좋더라구요. 마치 새로운 노래를 들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듯이. (공연)작업도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있어요. 작업도 여행의 일환으로 하고 있나. 가끔 해외 투어 갈 때 되게 좋거든요.(웃음) 그럼 친구들이 ‘사실 너의 의도는 굉장히 불순한 것 같아. 현진아, 넌 말이야. 넌 굉장히 불순해. 비행기타고 그 나라가서 다른 세상에서 맛있는 맥주한잔 마시려고 공연을 빙자해 사기 치고 있는 거 아니야.’ 라고 하기도 해요.(웃음)
좋죠. 그게 최고죠~!
현진
그것도 저한테 되게 중요한 일이긴 해요. 맨날 비슷한 환경을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세상을 보고 싶고 너무 궁금하고 그럴 때 저한테 되게 큰 동기부여도 되고.
피디님은 계속 작업을 할 것 같으세요?
현진
저는... 하겠... 죠? 하겠죠... 근데 사실... ‘만약에 작업(공연일)을 안 하면 무슨 일 해야겠다.’ 하는 사업 구상도 나름 하고 있어요.(웃음)
어떤 사업인지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
현진
여행사... 여행사를 차리는데 약간 프라이빗 여행 코스 컨설팅 같은 걸 해주는 회사.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랑 인터뷰를 해서 원하는 스타일을 파악하고 여행 코스를 추천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요즘에 하는 곳이 좀 있긴 한데. 여행가서 생각한 것들과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엮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여행 책 만드는 일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요즘에는 사실 만인이 다 작가잖아요. 다만 그걸 정리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렇지. 그런 것들을 책으로 엮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근데 아무튼 이런 건 사업의 영역이어서... 가끔 생각만 하고 있어요.(웃음) 내가 이일을 그만두면 이런 걸 해야겠다...

피디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극을 접하는 혹은 탐구하는 행동들이랑 여행하는 느낌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것을 보려고 하는 점에서. 관심 있는 팀 간의 매칭을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표현 방법을 통해서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느낌? 그런 점에서 여행이랑 비슷한 거 아닐까.
현진
그런가 봐요. 그런가 보다 진짜.(웃음)
별로 다르게 들리지 않아요. 공연얘기 할 때랑 여행 얘기할 때랑. 그리고 공연을 그만하게 되었을 때 뭘 하고 싶은 지랑.(웃음)
현진
되게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다. 얼마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노후를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웃음)
저는 우리가 이야기를 해가면서 더 느끼는 건데. 자꾸 자기 스스로 자책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서로 잘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임감을 가지고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것 보다는... 물론 그게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죠. 자기가 해온 시간만큼의 자부심. 그걸로 인해 생긴 사명감만 가지면 되는 거지 괜히 남이 만들어 놓은 거 따라가다가 괜히 눌리고 그러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따라 끝까지 가봐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는 거지. ‘결국엔 껴 맞춰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려고 시작을 한 건데.
현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30대가 되면 뭔가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확신이 들고 되게 자신감이 있고... 그렇다고 부자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고.(웃음)
‘공연은 계속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왜 해야 할까요.
현진
근데 그건 정말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하고 싶어서’ 외에 추가 이유를 또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연출님도 연출이 좋아서 하고 있는 거고, 저도 기획 일을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거고.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 것 같고, 좀 멋있는 것 같고. 진짜 나 같으니까 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만 말하기는 좀 쪽팔리니까.(웃음) ‘예술은 말이야...’하면서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뭔가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그런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건 사실 (그냥 좋아서 이 일을 하게 된) 그 이후에 따라오는 내가 찾은 이유인 것 같아요. 결국엔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도리어 이럴 때. ‘맞아. 사실 우리 모두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이런 직관적인 이유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정말 방향을 잃어버릴 것 같아요.
맞아요.
현진
너무 웃기다. 계속 자가당착. 오늘 어떡하죠? 인터뷰가 너무...
인터뷰가 아닌 인터뷰로 가야죠 뭐.(웃음)
현진
걱정이 많이 되네요. 다음 인터뷰는 생각이 좀 정리된 분과 하시기를 제가 기원할게요.(웃음)
하하. 마지막 질문이네요. 임현진에게 연극이란?
현진
어떡하지... 순간 바로 생각났는데... 음... 골칫덩어리.(웃음)
좋아요. 좋아.
현진
골칫덩어리긴 한데 그냥 걷어 차 버릴 순 없고... 아픈 구석 같은 감정도 좀 있고. 그런데도 계속 좋고. 내 세상이고. 그래서 더 아프고 그런 것 같아요. 이게 만약 내 세상이 아니면 이렇게 아프진 않겠죠. 멋진 말을 하려고 했는데. 왜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요? 망했네요. 오늘.(웃음)
좋은데요. 선명하고.(웃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임현진(기획자)
하이서울페스티벌 2010~12,
안산국제거리극축제 2014~15
프로젝트 잠상, 극단 몸꼴.
거리예술을 좋아하는 기획자.

태그 임현진,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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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제135호   2018-03-08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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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body
잘 읽었습니다.
남궁호(x) 남긍호(o)

2018-03-08댓글쓰기 댓글삭제

웹진 연극in
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사항은 수정 반영하였습니다^^

2018-03-08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