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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우는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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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기? 시작하시게 된 얘기 좀 해주세요.
선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돈 벌러 올라왔다가 일하는 가게 앞에 ‘단원 모집’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우연히 봤어요. 전화만 해보고 못 갔어요. 부끄럽더라고요. 그러고 한 3년 흘렀나? 놀고 있는데 벼룩시장에서 단원 모집 광고를 봤어요.
벼룩시장에서요?
선철
아동극 하는 극단이었어요. 연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때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구가 미쳤다, 그랬죠. (웃음) 그렇게 연극을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저런 걸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도 별로 없으셨고요?
선철
저도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그걸 보는 순간 그냥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동극을 하다가 연극을 하는 곳이 대학로라는 걸 알게 됐고요. 거기가 좀 믿음이 안 가는 곳이어서 관두고 대학로로 나가야겠다, 생각을 했죠. 예전에 연극도 하고, 개그 공연도 하는 극장이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 극장에서 일을 했어요. 근데 거기도 연극판에서 인식도 별로 안 좋은 거 같고, 좀 외딴 섬이더라고요. 포스터 붙이고, 이런저런 고생은 하는데 뭔가 앞이 안 보이길래 학교에 들어가야겠다 싶었어요. 어디 사회교육원에 공연예술과정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2년 배우고, 나와서 한 1년 프리로 있다가 ‘극단 작은 신화’에 들어갔었죠.
보통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연극을 해보거나, 그렇던데, 미스터리네요.
선철
그러니까요. 공연을 시작하고 연극을 처음 봤어요.
정말요?! 하긴 연극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선철
그렇죠. 광주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올라와 가지고 뭐 연극을 봤겠어요? 제가 성격이 막 활발하다거나 그렇지도 않은데, 왜 하고 싶었을까, 정말 잘 모르겠어요.
작은신화에 계신 지가 꽤 오래 되셨겠어요.
선철
2000년도에 들어갔으니까 햇수로 17년, 18년 되죠.
이게 내 데뷔작이다, 하는 작품은 뭐예요?
선철
작은 신화 들어가기 전에 ‘노뜰’이라는 극단에서 <맥베드> <한여름밤의 꿈>을 했는데 그게 데뷔작이에요. 스타일이 있는 작품이라 어떤 역할 하나를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요. 한 1년 정도 작업하고, 집에 일이 있어서 6개월 정도 쉬었어요. 다시 하려고 하는데 공연도 안 들어오고, 오디션을 한 번인가 봤는데 떨어지고. 좀 안정적으로 작품을 하고 싶어서 극단에 들어가게 된 거죠. 사실 제가 연극에 대해서 뭔갈 막 추구하거나 그런 게 없어요. 배우로서 연극, 영화, 드라마, 뭐 그런 걸 따지지도 않았고요. 뭘 몰랐죠, 세상 사람 다 아는, 연극배우하면 배고프다더라, 그거 하나 알고 있었어요. (웃음) 극단 색깔 같은 것도 몰랐고요.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작은신화 작품을 본 적도 없었는데, 아는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손잡고 들어간 거예요. (웃음)
내 역할을 제대로 맡았다 싶었던 작품은 뭐였어요?
선철
연기를 제대로 하지는 못 했지만 박근형 선생님의 <대대손손>에서 아버지 역할을 했었어요. 우연히 박근형 선생님을 만났는데 쉬고 있다고 했더니 잠깐만 와보래요. 정보소극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한번 읽어보라고 하시더니 내일부터 나오라고. 그게 공연 1주일 전이었나? (웃음) 원래는 그 역할을 맡으셨던 선배님의 언더캐스트 같은 거였는데, 무슨 일인지 선배님이 안 나오셔가지고 제가 한 달 공연을 다 했어요. 소화를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은 아니어서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비중이 있는 역할이었거든요. 그때는 좋기도 했고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어요. 연습양도 진짜 부족했고, 계속 남이 하는 연기를 보면서 익숙해진 게 있으니까,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어정쩡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한 달 공연을 끝마칠 때쯤엔 좀 달라져 있었을 것 같은데요.
선철
초반에는 커튼콜 할 때 좀 부끄러웠는데 2주 정도 지나니까 마음의 평화가 오더라고요. (웃음)

아까 어릴 땐 연극, 영화, 드라마나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셨어요?
선철
사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굳이 영화나 드라마를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인생의 목표가 그냥 꾸준히 연극 하면서 살면 좋겠다, 였어요. 근데 작년에 우연한 계기로 영화를 한 편 했어요. 그전에는 단역으로 잠깐씩 하다 보니까 영화라는 게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먹고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처럼 생각했는데, 조연을 맡아서 하다 보니까 영화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기회가 되면 영화도 하고 싶어요.
생각의 변화가 좀 있으셨는데, 연극만 하고 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왜 하시게 됐던 거예요?
선철
매력을 잘 느끼질 못했어요. 어떤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저걸 해보고 싶다, 그런 게 없었던 거죠. 연극이 좀 더 가치있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웃음)
예전엔 그런 분위기가 좀 있었죠.
선철
선배들의 그런 생각에 영향을 받았던 건지, 연극은 내가 하고 있는 거고, 영화는 주로 보기만 했던 거니까, 그랬던 건지 모르겠어요. 근데 먹고살려면 영화를 해야 된다고 하니까 일 없고 그럴 때 하기는 했는데,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모든 일에는 항상 열정이 있어야 되잖아요. 무대에서도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열정이, 표현을 하지 않아도 보이는 건데. 오디션을 보러갔을 때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그런 마음이 좀 있었거든요. 맨날 보는 사람한테는 그게 다 보였겠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막상 해보니까 뭐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새로운 걸 접한다는 것도 있었고요. 지금은 어쨌든 연극을 십몇 년 하다 보니까, 직장인은 아니지만, 비슷한 틀 안에서 하루하루가 가잖아요. 제가 막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면서 삶을 살아오질 않았어요. 내일 살고, 모레 살고, 베짱이처럼 좀 살았어요. 일 없으면 놀고, 일 들어오면 하고, 막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인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목적을 잃어버린 어떤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있어요.)
연극판이 되게 좁잖아요. 비슷한 사람이랑 계속 작업하게 되고. 지겨울 수도 있겠어요.
선철
지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연극을 해도 되나, 그러면 안 되는데, 솔직히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해요. 불과 4년 전만 해도 집에 일이 있어서 연극을 못 했는데,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배우들은 항상 캐스팅에 대한 불안감이 있잖아요, 그랬는데, 지금은 그때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싶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 이렇게 연극을 해도 되나, 싶죠. (웃음) 결혼으로 치면 권태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하나 끝나면 좀 쉬었다가 공연하고, 또 끝나면 쉬었다가 공연하고, 뭔가 반복되는 거 같고 활력이 그렇게 (없어요.) 어렸을 때는 뭘 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나 행복하고 값진 시간이었는데… 배가 불러서 그런가? (웃음) 요즘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혹시 비슷한 역할이 자꾸 제안이 와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연극이라는 작업의 형태 때문인가요?
선철
후자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극단에서는 감초 역할, 재밌는 역할을 많이 했고, 밖에 나오면서는 진지한 역할도 많이 했고, 다양하게 했어요. 요즘엔, 맡는 역할 중 한 80퍼센트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배우에 따라서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도 있잖아요.
선철
한때, 노역이 자꾸 들어와 가지고, 내 액면이 있으니까 (웃음) 연달아서 한 3, 4번 들어왔을 땐, 정말 미안했지만 안 한다고 그랬어요. 배우들은 항상 배역에 대한 욕심이 있잖아요. 어렸을 땐 극단 작업에서 감초 같은 역만 하다 보니까 목마름은 있었죠.

겉은 안 그러신 것 같은데 속에 단단한 뭔가가 있으신 거 같아요.
선철
오해예요. 별로 생각이 깊지 않아요. 어떨 때는 좀 단점인 거 같고. 배우로서 사실 좀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것도 고정관념일 수 있지만, 한 인물과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에 대해서 포기하지 말고 자꾸자꾸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기본적으론 생각은 하는데, 삶이 그러질 못해서 그런지, 항상 안 되면 안 된 만큼 하고, 좀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럼 작업할 때 뭘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선철
어렸을 때 잠깐씩 나오는 역할을 했을 때는 경쾌함이라든지 재미있는 걸 많이 추구했어요. 나이도 들고, 인물을 딱 맡아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람에 대해서, 무대에서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요즘엔 배우로서 정체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더 뭔가를 찾아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요.
리프레쉬할 수 있는 시간이 좀 필요하신 것 같아요. 연극 작업 자체에 대해서도 그러시고.
선철
많이 쉬었는데. (웃음)
그럼 뭔가 자극이 필요한 걸까요?
선철
공부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배우는 무대에서 잘 하고 싶고, 역할 잘 해내고 싶고, 그렇잖아요. 그런 욕심이 계속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요?
선철
김동현 연출이랑 했던 <영원한 평화>요. 제가 그 전에 했던 역할에서는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까, 그런 생각만 했었어요. 사실 배우는 자신과 배역의 영혼이 만나서 어떤 한 역할을 창조해내야 되는 건데, 인물의 깊이를 고민해볼 일이 없었던 거죠. 역할이 안 정해졌을 때, 대본을 봤는데 너무 하고 싶은 역할이 있었어요. 근데 그런 역할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동현이 형이 안 줄줄 알았죠. 첫 리딩을 하면서 배역 발표를 하는데 그 역할을 딱 주는데, 처음이었어요, 심장이 너무 두근두근거리더라고요.
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선철
정말 맡고 싶었던 역할을 맡아서 잘하고 싶었는데, 안 해보던 걸 하려니까 많이 힘들기도 했죠. 나한테는 외형적인 포장을 먼저 하는 게 익숙한데, 길거리에서 아주 힘든,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인물한테는 안에서 만들어진 게 있어야 외적인 게 도움이 되잖아요. 연기라는 게 진실이 없으면 꾸미게 되는데, 전형적인, 꾸며서 하는 악역 연기한다고, 초반에 형한테 욕을 많이 먹었죠. (웃음) 나중에 형이 그랬어요. “저거 그때 눈에 독기가 가득 차 가지고” (웃음)
또 어떤 터닝포인트가 됐던 작품이 있으세요?
선철
기국서 선생님하고 <목화밭 속의 고독>이라는 작품을 했었어요. 그때가 작업이 없어서 쉴 때였어요. 후배들한테는 배우가 책도 많이 보고 그래야 한다고 말은 막 하면서도, 원체 잘 안돼요. (웃음) 정말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보는데, 커피숍에 앉아서 너덧 시간씩 책을 보다 보니까 한 6개월이 됐더라고요.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여행이라도 가자, 싶더라고요. 집에서 가방 싸서 나와서, 제 유일한 취미가 당구거든요, 당구 한 게임 치고 가자,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공연하자고. 짐 싸 들고 다시 들어갔죠.
그 작품 너무 어렵잖아요.
선철
한 달 연습 기간이었어요. 대본을 보는데,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구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웃음) 제가 배우로서 항상 문학성이나, 숲을 보는 눈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 작품은 숲이 아니라 나무도 못 보겠더라고요. (웃음) 입 열었다 하면 대사가 4, 5페이지 되잖아요.
엄청 길었던 기억이 나요.
선철
대사가 12개 밖에 안 돼요. 말도 어렵고, 내용도 모르겠고, 한 달 안에 외워서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했어요. 사실은 별 얘기는 아닌데, 작가가 관념적으로 풀어놔서 그렇게 어려웠던 거죠. 결국 보면 “나는 당신이 원하는 걸 알고 있어” 이 말을 1시간 내내 하는 거죠. 그때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거기다 액션도 별로 없었어요. 딱 서서 대사 쭉 하고, 링에서 살짝씩만 움직이는 거예요. 내가 말하고 있을 때는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은데 (웃음) 한 5분에서 10분을 가만히 서서 듣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좀 오묘한 건, 사실 그 작품을 하고 나서 칭찬을 여기저기서 좀 받았는데… 모르겠더라고요.
뭘요?
선철
왜 칭찬하는지. (웃음) 그런 작품을 처음 해봐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첫 공연 때는 바지가 파르르 떨릴 정도로 긴장을 하고 공연을 했어요. 공연은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배우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칭찬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역할을 했을 때는 칭찬을 못 들을 때가 많아요. 근데 이거 어떻게 하지, 모르겠다, 하는 역할은 의외로 잘 봐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고… 사실 잘 모르겠어요. 연기를 요즘에 더 모르겠어요. 묘한 거 같아요. 내가 만족한다고 해서 보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내가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보는 사람도 불만족스러운 건 아닌 것 같고, 참… 그 차이를 언제쯤인지 알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정선철한테 연극이란?
선철
지금은 사실, 오히려 연극이 나한테 뭘까, 고민하는 시간이고요. 어렸을 때는, 처음 연극을 시작하면서, 저한테는 꿈이 됐죠.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꿈이 없었어요. 항상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게 제일 큰 꿈이었는데, 연극을 시작하면서 배움의 즐거움도 느끼게 되고 꿈이 생겼던 거죠, 배우라는.. 아는 형이 항상, 정배우, 라고 부르는데 그 말을 듣기 좋아해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나이가 먹어서 든 생각인 거 같기도 한데, 어떻게 살아야 되나, 삶이 뭔가, 잘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들을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막 초등학교 때부터 하고 그러잖아요. (웃음) 전 이제 해요.
정말 여러 갈래로 나눠진 어떤 길에 서 계신 거 같아요.
선철
작업하면서 정말 항상 성실했던 거 같은데, 요즘에 너무 불성실해진 거 같아서, 안 되겠다, 이런 나태한 정신으로 연극을 하면 안 된다, (웃음) 라는 생각을 요즘에 하고 있어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정선철(배우)
주요작품
<쥐가 된 사나이> <암전> <죽음과 소녀> <떠도는 땅> 외

태그 정배우,배우,정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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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140호   2018-05-24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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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깊은 정선철 배우 항상 응원합니다

2018-05-2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