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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뱉어내는 말투 속에 숨은 그만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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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말 공연 많이 하셨는데, 지금도 작품 올라가있죠?
보람
<네가 있던 풍경>이요
이것도 신작이에요?
보람
지난 4월에 서울시극단 창작플랫폼에서 공연을 했었어요.
어쨌든 올해 발표한 신작이네요.
보람
그렇죠. 10월에 뉴스테이지로 <기억의 자리>라는 공연을 했고, 11월에 남산예술센터에서 <두 번째 시간>을 공연했고요. 트라이아웃 공연은 얘기 안 해도 되죠?
헉, 이 사이에 트라이아웃도 있었어요?
보람
4월인가, 5월에 <네 번째 사람>이라는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데 제가 <소년B가 사는 집> 이후로 공연한 작품이 없어요. 2015년 이후에 1년에 한두 개씩 썼는데 낭독공연만 하고 묻혀 있다가 올해 다 올라간 거예요. <네가 있던 풍경>은 15년, <두 번째 시간>은 16년, <네 번째 사람>은 17년, <기억의 자리>는 18년에 쓴 작품이에요. 사람들이 제가 되게 빨리 쓰는 줄 아는데, 아니에요. (웃음)
쉬고 있을 때는 생각을 못 하니까, 올해 이보람 작가가 왜 이러지? 원래 이렇게 빨리 쓰는 스타일이었나? 독기를 품었나? (웃음)
보람
저도 그랬어요. 왜 이러지? 그때그때 빨리 공연으로 올려주지, 왜 올해에 다 몰아치지? (웃음)
그래도 기분은 되게 좋겠어요.
보람
기분이 좋고 이런 걸 잘 모르겠어요. 정신이 없고 아쉬워요. 공연이 1년에 한 편 올라가게 되면 되게 사랑하게 되잖아요. 근데 사랑이 분산돼서. <두 번째 시간> 할 때는 일정이 겹쳐서 다음 공연 연습실도 잘 못 가고, 하고 있는 공연도 별로 못 보고, 아쉬웠죠. 좋은 배우님들이 많았거든요. 계속 옆에서 연습을 지켜봤으면 대본에 있는 구멍을 더 빨리 찾아서 공연 전에 해결했을 텐데, 공연 올라간 후에 알게 될 때가 많았어요. 속상하더라고요.
그리고 뉴스테이지 <기억의 자리>나 트라이아웃 <네 번째 사람>은 권지현이라고 친한 연출 언니랑 작업을 했어요. 연출이랑 친하니까 연습실에 더 자주 가게 되고 붙어서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기억의 자리> 때는 만날 가서 소품 만드느라고…
소품도 직접 만들었어요?
보람
제작비가 적어서, 소품도 만들고, 티켓 관리도 하고. (웃음) 그런 게 되게 재밌고, 작업 분위기도 좋았어요. 사람들하고 노는 게 재밌어져서 연습실에 있는 게 점점 좋아져요. 그게 약간 고민이에요.
왜 고민이에요?
보람
연습을 하는 동안 리프레쉬를 하고 또 다른 글을 쓸 준비를 해야 되는데 올해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연습 구경하느라. (웃음) 희곡을 쓸 시간이 없었어요.
꼭 희곡이 아니더라도 제일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생각한 게 언제예요? 아니면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된 때?
보람
어릴 때부터 상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만화가가 꿈이었고 계속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대학 진학 후에 일을 좀 하다가 우연히 희곡쓰기 수업을 듣게 됐어요. ‘라푸푸’라고 최원종 작가님이 운영하셨던 사설 희곡 쓰기 수업 같은 게 있었어요. 재밌더라고요. 희곡이 재밌다기보다는 연극하는 사람들이 참 좋더라고요. 연극을 오래 하자, 이런 생각보다는, 하다 보니까 재밌고 사람들도 좋고, 그랬어요.
이를 테면 문학소녀는 아니었던 건가요?
보람
네, 전혀. (웃음) 만화를 좋아했고, 막연하게 만화가가 되고 싶다, 그런 거였어요. 어릴 때부터 사는 게 힘들었나 봐요. 현실도피형으로 공상을 많이 했어요. 재밌잖아요.
저는 보람씨가 문예반 출신에 청소년 문학대회에서 상도 막 받고, 그런 사람 아니었을까, 상상했어요.
보람
제가 작가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요. (웃음) 성격이나 취향, 말하는 것, 지적 능력 같은 것들이 작가 쪽은 아닌 거 같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만나는 배우들도 “작가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그러고. (웃음)
전공은 뭘 했어요? 그리고 아까 직장을 다녔다고 했는데?
보람
심리학과 졸업하고, 국가보훈연구원이라고 국가보훈처 산하에 퇴역한 군인이나 고엽제 피해자, 참전군인 대상으로 교육하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일을 했어요. 그 와중에 희곡쓰기 수업을 듣게 된 거예요.
갑자기 왜요?
보람
회사가 너무 무료했던 거예요.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나는 이런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뭔가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만화가를 다시 꿈꿔볼까 했는데 제가 작법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잖아요. 근데 연극이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거예요. 기초부터 시작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글쓰기, 희곡쓰기’를 검색했는데 그 희곡쓰기 수업이 나온 거죠.
검색으로 극작가가 되는 사람도 있군요. (웃음) 창작하는 일이 음악이나 그림이 될 수도 있었는데 글쓰기를 검색했던 건 왤까요?
보람
어쨌든 이야기를 만드는 것, 지금의 세계랑은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게 좋았어요. 만화가를 꿈꿨던 건 만화가 제일 접근하기 쉬운 장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희곡을 써야겠다, 연극이 하고 싶다, 라고 시작한 경우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대중을 휠씬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다른 극 장르로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계속 희곡을 쓰고 있어요?
보람
희곡 쓰는 게 재밌다 정도였지, 저도 스스로 연극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소년B가 사는 집> 끝나고 나서 드라마 각색이나 시나리오 같은 매체 작업을 했었어요. 그것도 다 재밌고 할 수 있는데 그 쪽 세계에 있으면서 ‘내가 연극인이구나’ 라는 정체성을 처음 느꼈어요. 작업을 바라보는 가치관, 관점이 다른 것 같아요. 연극은 일단 저한테서, 창작자한테서 시작하고 집중을 하게 되잖아요. 드라마 같은 경우는 주제나 의미에 관심이 없고, 소외된 사람들에 관해 쓰는 것도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저랑 안 맞더라고요. 다른 작가 언니랑 공동작업을 했는데, “언니가 메인플롯이랑 주연 가져가고 저는 조연 주세요” 그랬어요. (웃음) 주연들한테는 정이 안 가는 거예요. 재미도 없고. 그리고 뭔가 매체 쪽에 있는 사람들이 연극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었어요. 많은 배우들, 창작자들이 매체로 가기도 했지만, 왜 이렇게 연극을 무시하지? 연극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연극이은 더이상 시대에 맞지 않다, 연극을 요즘 누가 보냐?, 이럴 때 자기들 딴에는 저한테 좋으라고 한 말이란 걸 알았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빴어요. 이쪽 판에 들어온 이후에 연극으로 돌아가는 사람 하나도 못 봤다, 라는 말이 제일 기분 나빴고. 왜 연극 무시하냐? (웃음) 그때 알았어요. 내가 연극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구나.
만화와 공상을 좋아했다, 그러면 뭔가 판타지한 작품을 쓸 거 같은데 보람씨는 무겁고 어두운,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다루잖아요. 직장도 보훈처에 있었다고 하고, 관심사가 그쪽을 향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보람
사회적인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소설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사회, 문화, 심리에 관한 책이 재밌었어요. 그리고 제가 영상 세대잖아요. 소설 같은 비유나 은유의 세계가 저한테는 맞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이 낯간지럽고 잘난 척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커피를 마신다’하면 커피를 마시면 되지, 구구절절하잖아요. (웃음) 논문 같은 거 보는 걸 더 좋아했어요. 어떤 통계나 실험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의 행동이 인간을 더 잘 드러내고 설명한다고 생각했고, 재밌어했어요.
심리학과를 나온 것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한 교수님은 상담기록, 일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쓰게 하셨어요. 어떤 사람이 현재 어떤 문제를 겪고 있다, 그 원인을 찾아보자, 그러면 제일 먼저 태생에서부터, 가정환경부터 살피게 돼요. 그 선생님은 모든 인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 거죠. 상담을 받으러 올 정도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인데, 그걸 들여다보면 개인의 문제로 보기는 좀 어려운 것들이 많았어요. 몇 번의 상담이나 개인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고, 사회적 이슈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들여다보면 연결이 돼있는 거죠. 예를 들어 가정폭력의 문제가 있는데, 폭력적인 아버지, 그 아버지의 전사를 들여다보면 참전 군인이었다든가, 그 가족이 한국전쟁 때 어떤 일을 겪었다든가 하는 문제와 만나게 되는 거죠. 그 이전부터 문제가 다 이어져 오더라고요.
보람씨 작품 스타일이 여기서 만들어진 것 같네요. 심리학과에서 극작을 할 많은 것들을 배우셨네요.
보람
그런 것 같아요. <소년B가 사는 집>도 그랬고 <여자는 울지 않는다>도 그랬고, 이야기에 결론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나한테는 있는데 왜 없다고 그럴까,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상담사례와 비슷하구나, 싶었어요. 자신의 문제를 알았다면, 그때부터가 그 사람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의 시작이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그 인물의 현재의 완결성인데, 이야기적으로는 완결이 되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
심리학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셨나 봐요.
보람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구나, 라는 걸 보게 되고, 인간성이라는 게 뭘까?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 묶이는 하나의 개체인데, 어쩌면 이렇게 스펙트럼이 넓을까? 하는 행동, 드러내는 표현 방법, 감정들이 사람들마다 어쩌면 이렇게 다 다를까? 인간이란 정말 재밌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보람씨 작품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폭력이나 범죄와 관련된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보람
폭력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불행이 있잖아요, 어떤 큰 상처는 회복을 할 수가 없는데, 그걸 안고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좋아요. 성폭력이든 교통사고든, 안 좋은 부모를 만났든, 그런 것들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잖아요, 신의 영역이지. 그런데 그런 상황을 겪고 나서도 내가 살아가겠다, 라는 게 인간의 영역인 것 같고, 거기서 보이는 모습이 ‘인간성’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사람들이 좋아요.
관심이 간다, 가 아니라 ‘좋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보람
멋있어서 동경하게 돼요.
그걸 버텨내고 있는 모습이?
보람
대단하고 멋있어요. 안 그런 사람들도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죠. (버텨내고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 순간들을 가끔씩 만나게 되면 되게 멋있어요.
지금 쓰려고 계획하고 있는 작품 있어요?
보람
많아요. (웃음) 항상 뭔가를 쓸 때마다 쓰기가 싫거든요. 그래서 딴 짓을 막 해요. 인터넷 검색하거나 뉴스를 보거나, 그러면 세상에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재밌어 보이는 것도 너무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요. (웃음)
어떻게 쓰기 시작해요?
보람
보통은 뉴스나 단신을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짧게 메모를 해놔요. 그러고선 잊거든요. 근데 아주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틈틈이 생각이 나고, 그게 제 안에서 점점 발전이 되는데, 그 기간이 몇 년이 돼요. 그러고 나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보람
성실한 거요. 직장 다닐 때,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그리고 방송작가 일할 때는 왕복 4시간을 출퇴근했어요. 밤늦게까지 일할 때도 많았고 사무실에서 잘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일하고 월급을 받잖아요.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게 성실함이라고 생각을 못 했거든요. 이쪽 일을 하게 되면서 성실함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성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희곡이든 연극이든 작품이 잘 나왔나? 라는 부분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관객이 어떻게 봤느냐의 문제니까요. 근데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무섭긴 하죠. 그래서 제가 정한 나름의 기준은 진짜 내가 성실하게 열심히 했는가, 예요. 만약 그랬다면 그 이상은 제가 더 잘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재미없게 봐도 어쩔 수 없는 거죠. 성실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변명의 여지가 없죠. 너무 부끄럽잖아요. 회사 가고 가족 부양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쪼개서 공연을 보러오는데, 그 가치만큼 노력을 했는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연극하면서 힘들었던 적 있었나요?
보람
2015~16년도에 블랙리스트 문제를 비롯해서 이슈가 엄청 많았잖아요. 그 시기에 이슈를 다루지 않는 창작 희곡을 쓰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었어요. 희곡은 몇 년 동안 작가 안에서 자라나서 쓰이는 건데, 쏟아지는 이슈에 빨리빨리 대응하기에는 희곡작가는 너무 적합하지가 않은 거예요. 내가 연극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맞는가? 내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너무 보수적이거나 회피하는 건 아닌가? 그런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사실 희곡을 쓰기에 제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죠. 왜냐하면 저는 인물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게 좋지, 주장을 소리 높여 내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런 고민을 하는 창작자들이 많았을 거예요. 젊은 연극인이시잖아요. 연극계 이런 거 좀 변화했으면 좋겠다, 이런 거 있나요?
보람
연극은 이래야 한다, 어떤 가치가 있다, 어떤 의미가 있다, 이런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혼자 생각하시든, 아니면 ‘제 생각에는’이라는 전제를 붙이시든지, 하면 좋겠어요. 너무 싫어요. 이런 게 연극이 관객을 내치는 방식 중의 하나인거 같아요. 연극이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다양한 관객이 들어올 수 있는데, 연극은 이래야 한다, 라는 하나의 가치관으로 좁아지다 보면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만 관객이 되잖아요. 그게 좀 답답해요.
어떤 오만함일 수 있죠.
보람
<소년B가 사는 집>을 할 때 PC방 알바를 했었는데, 저한테 되게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PC방에는 사회적 계층이 정말로 낮은 사람들이 많이 와요. 월세방을 얻을 돈이 없어서 지내는 분들도 많고, 밖에서 씻는 건 해결하고 저렴한 가격에 푹신한 의자에서 쉴 수 있으니까요, 밤늦게 일 끝나고 새벽에 일 나가시는 분들이 게임하다 자고 가는 경우도 많고요. 그때가 <상속자들>인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할 때였는데, 그 아저씨들이 다 그걸 보고 있는 거예요. 자기들 얘기가 아닌, 너무 부잣집 얘기를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분들 중에 살면서 연극을 본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거예요. 근데 연극은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게 되게 부끄러웠어요. 제가 하려는 이 작업이 오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거잖아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쓰지만, 혹여나 대상화하는 거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무언가를 비판하려고 하면 인간이 대상화될 가능성이 엄청 크거든요.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려요. 그때 가치관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앞으로 꿈이 뭔가요?
보람
공연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운이 좋아서 공연을 많이 하긴 했지만, 하나의 희곡이 공연으로 올라가는 건 되게 힘든 일이더라고요. 만드는 과정이 힘들다기보다는 공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게 녹록지 않아요. 많이는 못 해도, 꾸준히, 1년에 하나라도 공연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이보람한테 연극이란?
보람
그 질문은 참, 왜 사라지지 않는 거죠? (웃음) 정체성 같은데요, 뭔가 작업을 하는 가치관? 모르겠어요. 남들이 나한테 연극을 욕하면 화난다? (웃음)
어렸을 때 남매 같네요. 우리 오빠 너무 짜증 나지만 누가 욕하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웃음)
보람
그런 거 같아요.
덧붙여,
필자가 진행한 마지막 인터뷰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셨던 연극인분들과 독자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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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154호   2018-12-20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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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이런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런 말 정말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 부새롬 연출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8-12-20댓글쓰기 댓글삭제

ㅇㅇ
인터뷰 꿀잼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2018-12-24댓글쓰기 댓글삭제


정말 공감. 제발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라느니 질문해야 한다느니,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으면 해요. 그 프레임 때문에 관객은 멀어지고 소외되고, 고고한 늙은 예술가들만 대학로에 넘쳐나요.

2019-01-0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