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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리즘으로 ‘드림’, B급 연극으로 ‘플레이’!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작가/연출가 김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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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출가 김재엽
  • 김재엽은 프로보다 아마추어가 좋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싶은 방식대로 마음대로 해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좋아서 하는 연극인데, 못한다고 좌절하거나 못한다고 포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의뭉스럽게 되물었다. 앞으로도 잘 하려고 용쓸 일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스스로 B급 연극이라고 칭한 <서바이벌 캘린더>가 개막하던 날, 극단 드림플레이의 10년차 선장을 만났다.
    글 쓰는 연출가

  • - <서바이벌 캘린더> 첫 공연을 마쳤는데?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시간이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서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2004년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발표했던 작품인데 언젠가 고쳐서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올리게 된 거다. 완성도를 높여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여전히 숙제가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한 그릇에 비벼내지 못한 느낌이 든다. 올해가 드림플레이 10주년인데 세대교체기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 했고, 그들과 즐겁게 작업했다.

    - 8년 전에 초연한 작품을 다시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드림플레이는 지난 몇 년간 주로 사회비판이 강한 사실주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B급 만화, B급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드림플레이 초기 작품에는 그런 억지스러운, 거칠게 우기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만큼 발랄하고 실험적인 면이 있었다. 몇 년간 너무 사실적인 작품들을 진지하게 올리다 보니 옛 작업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우리 극단은 창작극을 해서 연명하는 극단인데 올해 발표할 창작극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서바이벌 캘린더>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작품들 중에서 동시대성을 가진 작품이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 <서바이벌 캘린더>가 이야기 하는 동시대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바쁘게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특히 돈 없는 사람들이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바쁘게 사는 것.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라고 굳어졌다. 열심히 노동하고 모든 기회를 향해 노력하고, 그렇기 때문에 쉬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시간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사회적 고민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시간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면서 살아간다는 우의적 아이디어가 거기서 나왔다. 자본주의의 끔찍한 현실을 유쾌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해 한번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 작가/연출가 김재엽
  • 작가/연출가 김재엽
  • - 최근 몇 년의 활동에 비해 올해는 발표작이 뜸한 느낌이 드는데?
    신작 구상이 조금 오래 가고 있어서 그렇다. 희곡집과 소설책 발간을 앞두고 있는데 그 준비에도 시간을 썼다. 희곡집은 김재엽의 첫 번째 희곡집이다. 희곡 『오늘의 책은 어디로 갔을까』를 소설로 변형하는 작업을 했다. 근년에 공연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극단도 피로가 쌓여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돌아보니 발표작이 적긴 적었다. <서바이벌 캘린더>가 <풍찬노숙> 이후 올해 두 번째로 올리는 작품이다.

    - <풍찬노숙>은 어떤 작업이었는가?
    그간 내가 연출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불모지로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었다. 내게 주어진 작업 여건이 그동안의 나랑 과연 맞느냐? 걱정이 됐지만 새로운 도전을 즐겁게 해보고 싶었다. 나랑 가장 맞지 않는 조합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다. 도전의식이 강했다. 김지훈 작가와의 만남도 처음이었고, 일부러 아는 배우를 한 명도 안 썼다. 극단을 떠나 모든 것을 낯선 상황 속에서 만나보자는 각오가 있었다. 희곡이 가지고 있는 미덕을 살리려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스스로가 글을 쓰는 연출가다 보니 해석적인 연출을 하게 되더라. 희곡을 보면, 왜 이렇게 썼을까를 앞세우게 되지, 어떤 그림을 표출하게 되지 않더라. 내가 작가주의적인 연출가라는 것을 실감했다.
    영어선생님의 늦둥이

  • - 김재엽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가?
    1973년 1월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어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내가 방학이면 아버지도 방학이셨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책을 보고 계시니, 자연스레 나도 책을 보게 되더라.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인문학적 이었다. (웃음) 2남 2녀 중 막내라서 형과 누나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들에게 문화적 수혜를 많이 받았다. 또래들에 비해 일찍 대중문화에 눈을 떴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카세트녹음기를 가지고 라디오드라마를 만들었던 기억도 난다. 늦둥이로 태어나 뭘 해도 용서 받는 분위기였다. 사랑받으며 자유롭게 컸다. (웃음)

    - 늦둥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 나이가 이미 50대셨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는 환갑이셨다. 아버지라기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까우셨다. (웃음) 아버지는 대구분인데도 정치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하셨다. 음…… 혹시 박정희의 고향이 구미 선산이라는 것을 아는가? 내가 바로 그 선산 김씨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박정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고 5.16과는 뗄 수 없는 악연을 가지고 계셨다. 2공화국 장면 내각제 당시에 국가공무원에 선발되셔서 한참 연수를 받고 계실 때 5.16이 터졌던 거다. 함석헌, 장준하 선생에게 강의를 받던 와중에 5.16 때문에 다시 대구로 낙향하셨던 거다. 내년에 발표하고 싶은 신작 <나와 대통령>은 바로 그런 아버지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들의 현대사는 다름 아닌 우리들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들의 역사가 아닌가? 무거운 화두를 던지되, 심각하지 않게, 재밌게 풀어보고 싶다.

    - 연극의 꿈은 언제부터 생겼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연극을 잘 몰랐다. 당연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공부하고 책 많이 읽는 학생이었다. 형이 서울대를 가고 나니까 자연스레 나도 서울에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92년에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 무렵 PD수첩을 좋아했다. PD가 아니면 문화부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PD나 기자가 되려면 언론고시를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접었다. (웃음)
    연극 놀이에 빠지다

  • - 연극반 출신으로 알고 있다. 연극반은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
    입학 하자마자, 온갖 데모에 참여했다. 학생회 활동이 1학년 신입생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학교 안과 신촌 거리의 이질적인 느낌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 그 차이가 혼란스러웠다. 점점 학생운동 보다는 문화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문과대 극회에 들어가게 됐다. 연극을 한번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으로 들어갔다.

    - 극회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면?
    문과대 극회에서 활동하다가 2학년 때 국문과 친구들의 제안으로 국문과 극회를 만들게 됐다. 이 때 1학년 신입생이던 성기웅 연출가와 선명균 배우를 만났다. 3학년 때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를 성기웅과 함께 각색해서 공연했던 게 공부가 많이 됐다. 원래 80년대 이야기인데 90년대 당시의 이야기로 확장했던 작업이었다. 각색, 재창작을 하면서 우리의 시점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구성해 보는 게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 그 게 큰 공부가 된 거다.

    그 무렵 학보사의 연세문학상에 응모한 희곡 『인텔리 왕국』이 당선 됐는데 상금 30만원은 당시에는 꽤 큰돈이었다. 응모작 수가 여섯 편 이었다던가? 그보다 덜했다던가? (웃음) 그런데도 그 걸 받고 나니까 마음이 동하더라. 아, 나 능력이 있는 건가? (웃음) 아, 맞다, 그 다음해는 성기웅이 받았다. <개밥그릇>이라는 작품으로 (웃음) 연극반에서 열 번 정도 공연을 했다. 카페에서도 하고, 길거리에서도 하고, 놀이처럼 했었다. 놀다보니 재밌어졌다. 계속 연극을 해볼까… 생각이 점점 굳어지더라.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한양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 혹독한 수업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최형인, 김미혜, 신일수 세분 선생님께 배웠다. 아, 숙제가 너무 많았다. 숙제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돌아보면 공부를 제대로 했던 시간이었다. 석사논문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연극의 반연극적 특성’이었다. 제목만 보면 엄청 대단한 연구를 한 것 같아 보이지만, 카바레나 카페에 모여서 연극을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웃음)
  • 작가/연출가 김재엽
  • 작가/연출가 김재엽
    드림플레이가 꿈꾸는 연극

  • - 대학로 데뷔는 언제 어떻게 됐는가?
    대학원 졸업 후에 고향에서 공익근무를 하게 됐다. 동네 도서관에서 일을 했다. 아침 9시 반에서 오후 6시까지 도서관에 앉아있으면 됐다. (웃음) 30개월 동안 책을 많이 봤다. 습작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에 2002년 『페르소나』라는 작품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그 무렵 박광정 연출가에게 전화가 왔다. 휴가 나오면 서울 한번 올라오라고 해서 만났다. 극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해보자고 하시더라. 공익근무 끝나자마자 극단 파크의 창단 공연으로 <개그맨과 수상>을 올렸다. 그렇게 박광정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운이 좋았다. 너무도 쉽게 대학로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던 거다.

    - 극단 드림플레이는 언제부터 꾸리게 되었는가?
    2003년에 <서울노트> 드라마터그를 마지막으로 극단 파크를 나왔다. 무난하고 순조롭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열려있었지만 독립을 했다. <체크메이트>와 <개그맨과 수상>을 공연하면서 뭔가 마음이 힘든 게 있었다. 박광정 대표가 모든 걸 책임지며 두 달, 석 달 장기공연을 끌고 가는데, 장기공연을 하면 관객이 많이 들어 어느 정도는 수익이 생겨야 하는데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못 하니까 스스로 극단에 부담이 되고 짐이 되는 느낌이 들더라. 무엇보다 나는 아마추어 기질이 큰데,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더라. 신촌과 홍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아마추어 연극인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다. 클럽이나 카페에서 가볍게 연극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희생을 하는 연극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내 돈을 가지고 연극의 살림을 운영하고 싶었다. 내 자본 가지고 해보고, 망해도 보고… 그렇게 하려면 독립예술가가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탄생한 드림플레이, 올해로 10년이다. 어떤 작품들을 발표해 왔는가?
    2003년 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9개의 모래시계>를 발표했는데 그 작품이 드림플레이의 시작이었다. 초기 작품들 중에는 <유령을 기다리며>를 꼽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 극단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햄릿이 등장한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을 만나야하는데 소문만 무성하고 유령을 만나지 못한다. 딴 사람들만 자꾸 나타나 엉뚱한 이야기를 해대는 코미디다. 그런 발상 자체가 아마추어리즘이다.

    <오늘의 책은 어디로 갔을까?>는 자전적인 경험이 바탕이 된 작품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신촌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오늘의 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독다방(독수리다방) 건너편에 있는, 독다방 만큼 유명한 서점이었다. 매일 가서 앉아있으니 사장님이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하더라. 그 날 일당을 돈 대신에 책으로 가져갔다.
김재엽
김재엽
김재엽
    - 김재엽은 쫑파티 때 배우, 스태프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기로 유명하다. 소장하는 책은 몇 권이나 되는가?
    글쎄…, 만권 가까이 된다. 나는 책을 너무 좋아한다. 스트레스 쌓이면 서점에 간다. 책을 만지면 기억이 살아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책도 버리면 잊어버리게 된다. 나에게 서점은 무덤과도 같다. 서점은 기억의 공간이다.

    - 드림플레이와 김재엽의 앞으로 10년, 어떻게 나갈 것인가?
  • 그동안 아마추어리즘으로 해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마음껏 해왔다.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잘 해내려는 욕심이 없는 상태로 해왔다. 드림플레이에는 연극으로 뜨거워지고, 격해지고, 너무 고통스러워지는 그런 분위기 없다. 기질적으로 극단 단원들 모두가 좀 그렇다. 앞으로도 연극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즐겁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못한다고 좌절하거나, 안된다고 포기하면 재미없다. 앞으로도 잘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재밌게 할 것이다. 다만, 재미의 깊이는 우리극단이 성숙해 지면 자연스럽게 성숙해 질 거다.

    ‘프로’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늙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가진 늙음. 나만 비장하고, 나만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늙음. 아마추어리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나와 드림플레이는 계속 즐겁게 연극의 꿈을 꿀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으로.
 
  • 김재엽 (작가/연출가)
  • 김재엽 (작가/연출가)
    극단 드림플레이 대표, 現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
    혜화동1번지 4기 동인

    대표작
    <서바이벌 캘린더> <풍찬노숙> <마호로바> <육혈포 강도2011>
    <장석조네 사람들> <여기, 사람이 있다> <유령을 기다리며>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조선형사 홍윤식>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꿈의 연극> 외

태그 김재엽, 극단드림플레이, 서바이벌 캘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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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8호   2012-09-20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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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B
저랑 똑같으신 면이 두가지씩이나 책좋아하는 거랑 아마추어리즘 웬지 친근해지네요 연출님...작품기대할게요!!

2012-09-24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좋아^^
아.. 나도 이젠 좀 책을 봐야할텐데...ㅜㅜ

2012-09-24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