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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구자하X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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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라는 한국예술가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브뤼셀의 한 축제에서였다. 구자하 작가는 ‘영앤이머징’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축제비평레지던시에 참여하고 있었고, 나는 뭐든 새로운 예술에 호기심이 충만했던 기획자였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그는 “밥솥을 해킹할 만한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고, 난 좀 당황했었다. 한국에 돌아와 몇몇에게 물어보긴 했지만, 결국 별 도움은 되지 못한 채 3년이 흘렀고, 구자하 작가는 해킹한 밥솥으로 만든 <쿠쿠>라는 제목을 단 ‘다원예술’ 공연으로 서울로 투어를 왔다.
연극과 연극의 거리
고주영
네덜란드에서 예술학교를 나오고, ‘혼자서’ 공연을 만들어 직접 무대에 서고, 해외에서 신작을 발표하고 투어를 다니는 방식이, 소위 ‘연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쿠쿠> 공연을 실제로 봤을 때는 ‘음, 연극인데...’라는 인상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연극을 전공했다는 정보를 이후에 알게 됐다. 게다가 이번에 <한국 연극의 역사>(가제)라는 신작 준비를 위해 서울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연극적’이지 않은 작가가, ‘연극’의 프레임 바깥에서 다뤄지는 작가가, 연극을 다룬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구자하
연극이 하고 싶었다. 연극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스무 살 무렵, 한국에 파티문화, 디제잉문화가 막 확산될 무렵이었고, 관객참여 연극이나 프레젠테이션 방식의 연극을 ‘혼자’ 만들어 공연하는 상상을 했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커리큘럼 밖에서 혼자 연극작업을 했다. 배우가 나오지 않는 연극이 가능할까, 사운드와 영상만 가지고 연극이 성립될까, 뭐 그런 작업들.

연극계 내에서 통용되는 ‘연극’에 대해서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불신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연출의 역할이 지나치게 권위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동시대 연극에서 ‘연출가’라는 역할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도 가지고 있었다. 연극은 단체작업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과 분위기도 내성적이었던 당시의 나와 맞지 않았다.

혼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연극학교에서 이론 전공을 한 것. 선택의 폭이 좁고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선택하라고 하면 연극뿐 아니라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가지는 않을 것 같다(웃음).
구자하
고주영
연극의 범위, 경계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일렀던 것 같다. 내 경우, 워낙 공연을 많이 보는 편이었지만, 페스티벌 봄(이하 페봄, 2007-2013)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아, 연극이 이럴 수 있구나, 이래도 되는구나, 충격이었고 깨달음이었고, 공연을 보는 쾌감이 달라진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호기심의 범위도 확장되고. 지금도 스스로를 ‘페봄 키드’라고 자청한다.
구자하
나 역시 페봄을 보면서 굳건해졌다. 한국에서 연극학교에 다니던 무렵에 모다페를 거쳐 스프링웨이브에서 페스티벌 봄이 본격 궤도에 올랐다. 근데 학교에 페봄을 같이 보러 갈 친구가 없었다. 페봄에서 공연을 보고 비평워크숍에 과제를 내기도 했는데, 정말 아는 사람도 없고 관심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아무도 오지 않는 극장에 갇혀서 작업하기보다는 페봄에서 공연하는 작가들처럼 작업해서 내가 해외로 관객을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걸 지금 실제로 하고 있으니까. 울컥하기도 한다(웃음).

페봄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긴 했지만, 학생인 내가 당장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연극적이지 않은 것’을 ‘연극’이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진이 다 빠졌던 것 같다. 학교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유럽여행 때 알게 된 1인 작업형 연극창작자 양성기관인 네덜란드의 학교에 진학했다. 그 학교에 가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연극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국과는 다른 환경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들 역시 교육기관이다 보니 그들만의 연극에 대한 선입견, 원하는 바가 한국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명확했다. 사회적 이슈에 매체실험을 많이 했는데, 너무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 아니냐는 피드백을 항상 들었다. 한국에서 들었던 피드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으려고, 내 색깔을 지키려고 많이 싸웠다. 다행이었던 것이 그래서 학교 바깥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페봄에서 작업을 선보였던 유럽 작가들 역시 유럽의 교육기관이나 기성 연극계에서 정의하는 연극과는 거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주영
무대와 현실의 거리
고주영
밥을 매개로 자기 세대의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쿠쿠>, ‘R’과 ‘L’ 발음을 능숙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비영어권 출신자의 영어 배우기 <롤링 앤 롤링> 등, 국적을 포함한 자기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계획 중인 <한국연극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이나 다른 문화권의 관점에서는 이방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럽에서 수용 가능한 형식으로 발표한 셈이다(<롤링 앤 롤링>은 어느 나라에서든 자막 없이 영어로만 공연된다).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서사를 작업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구자하
세 작업 모두 2014년에 기획됐다. ‘하마티아 3부작(Hamartia Trilogy)’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비극적 결함을 뜻하는 ‘하마티아’란 단어는 시학에서 따왔다. 하마티아 3부작은 나 또는 내 주변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특정 현상이나 사건을 포착하고, 관련 역사의 비극적 기원을 찾아보는 프로젝트이다. 형식적으로 세 작업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큰 이야기로 확장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내 정체성에 대한 테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업의 맥락을 스스로 검증하면서 점차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 발현된 것 같다. 해외에 있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어떤 곳인지 등.

그런데 사실, 자기 서사를 가지고 작업을 어떻게 만들지 보다는 나 자신과 작업 간의 경계나 거리감을 어떻게 유지할지 이런 것들을 더 고민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쿠쿠>는 2011년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업을 만들 때, 내 이야기나 친구의 이야기를 가지고 ‘연극을 위한 연극’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책임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작업이 한 시간짜리 공연으로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작업이 또 다른 맥락에서 사회적 운동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논문처럼 일련의 담론화 과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 스스로 본인의 이야기, 그리고 실제 친구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감정적인 소비나 감정에 얽매이는 소통방식은 지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쿠쿠(Cuckoo)> ⓒRadovan Dranga
고주영
몇 년 전부터, 작업을 할 때, 어떻게 하면 거짓말의 요소를 줄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정교하게 쓰인 드라마희곡을 훌륭한 역할 연기로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론, 어떻게 해도 여러 차례의 발표를 지나다 보면 대사가 굳어지고, 역할 연기에 가까운 퍼포먼스의 루틴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혹여 완성된 희곡으로 공연을 만들 경우에라도, 나/우리의 현실, 일상과의 괴리, 간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물론 본인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거짓말이 없는 방식이겠지만, 창작자 자신의 얘기가 관객에게 얼마나 가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정도는 다 다른 것 같다. 거리두기를 위해 ‘배우’와 같이 작업하는 것을 고민한 적은 없나.
구자하
하마티아 3부작의 경우에는 배우를 기용하는 것이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 내 이야기니까 당연히 내가 무대에 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배우가 무대에 서는 순간 일루션이 생기고, 결국 텍스트 재현 연극이 되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술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물론 고전 드라마나 현대 연극의 경우에는 연기술이 필요하겠지만, 동시대 독립 연극에서 배우의 출연이나 연기술이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배우의 연기술이 작업의 표현 양식 중 하나로 사용될 경우, 그것에 대한 당위성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의 요소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하셨는데 매우 공감이 된다. 사실 <쿠쿠>는 최근 3년간 유럽에서 제작된 연극 가운데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업 중 하나이다. 여러 차례 공연을 하다보면 드라마의 메소드 연기처럼 고착될 수도 있다. 실제로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주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쿠쿠>뿐만이 아니라 내 작업 대부분이 소극장이나 중극장에서 공연되는데, 작가로서 작업을 직접 선보일 때 관객과의 관계(engagement)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작업이 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드라마터지 작업을 통해서 텍스트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한다는 마음으로 관객과 관계의 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연이 끝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의 무대나 연기 또는 연출력이 아니라, 그날 저녁만큼은 관객들이 작업의 메시지를 곱씹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롤링 앤 롤링(Lolling-and-Rolling)> ⓒThomas-Lenden
한국과 유럽의 거리
고주영
포스트드라마틱씨어터, 다큐멘터리 연극만 해도 이제 올드한 느낌이 들 정도로, 버베이텀, 이머시브, 디바이징, 코플로팅(co-ploting) 등등 수많은 새로운 연극 만들기의 방법론, 혹은 개념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예전에는 이것이 비평이나 이론의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기획서에 혹은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물에까지 그런 개념들이 작업의 목표이자 의도로 내세워지는 상황을 보면서 조금 의아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소위 다원예술, 즉 ‘새로운’ 작업이라고 분류되는 구자하 작가의 경우 이러한 작업의 정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구자하
이상하게 약간 창피함이 들지만, 그런 새로운 개념, 용어들을 이전엔 들어본 적이 없었고, 한국에 와서 배웠다. 물론 포스트드라마틱씨어터는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개념이라 누구나 알고는 있겠지만, 막상 유럽 현장에서 어떤 작업에 대해 ‘포스트드라마틱씨어터다’라고 칭하거나, 자기 작업을 포스트드라마틱씨어터라고 말하는 이도 없다. 아마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평론가나 연구자가 아니고서야 쉽게 정의를 내리지도 않는 것 같다. 관극평을 공유할 때 장르를 따지는 것도 상당히 무의미한 것 같고, 동시대의 작업들이 어떤 사조나 개념에 국한되는 것도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어떤 작업인지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하다. 나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을 설명해야 할 때, 가족이나 연극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렉처 퍼포먼스 합니다”라고 말한 적은 있다(웃음).

내 작업의 경우 ‘렉처 퍼포먼스’나 ‘다큐멘터리 씨어터’ 또는 ‘씨어터 퍼포먼스’로 분류되는 편인데,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초청하는 극장이나 페스티벌 측에서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 12월에 파리에서 공연할 예정인데 내 작업은 씨어터 파트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실 유럽에 있을 때는 내 작업의 장르나 사조 분류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다. 당연히 연극으로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 오면 “내 작업은 연극”이라고 백번은 말하는 것 같다.

사담이지만, 2014년경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작업 아이디어를 프리젠테이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당신의 작업은 다원예술로 명명/소개되어야 한다”는 주최 측과 “연극이다”라는 나의 주장이 부딪힌 적이 있다. 결국, 작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재미있게도, 그 다음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것이 2017년에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이었다. 근데 내 작업이 ‘다원예술’ 프로그램에서 선보여지는 것과 ‘다원예술’이라고 명명되어 소개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다원예술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작업 대부분이 유럽에서는 그냥 연극으로 분류된다. 한국에서 연극은 상당히 좁은 의미에서 통용되기 때문에 작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미사여구처럼 이런저런 수식어가 붙는 것이 아닐까.

유럽에서는 오히려 작업의 개념이나 장르적 구분보다는 작업의 성향이나 스타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 젊은 작가들의 ‘프레자일리티(fragility, 연약함, 깨지기 쉬움)’가 부각되고 주목받는 것 같다. 작업의 완성도에 있어서 기술적 완성도가 딱히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까 말했던 무대 위의 연기술도 마찬가지다. 연기력을 보기 위해서 연극을 찾는 시대는 끝났다는 듯이, 어설프거나 미완 혹은 미숙 그 자체로 미학적 성과를 내는 것 같다. 젊은 예술가들이 굳이 그것을 의식한다기보다는 시대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느낀 그대로 자기들만의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보다는 그런 프레자일한 작업을 받아주는 연극의 품이 훨씬 넓은 것 같다. 그런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과 관객도 분명히 존재하고.
고주영
워낙 예술가뿐 아니라 누구든 국가 간, 지역 간 이동성이 일상화된 유럽이긴 하지만, 어쨌건 한국인,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작가로서 유럽을 기반으로 살고 작업을 해나가는 것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비단 벨기에에서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아시아를 막론하고 워낙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있지 않나.
구자하
나는 한국과 유럽의 경계에 있지는 않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활동의 중심은 명확하게 유럽이다. 해외에서는 한국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벨기에 작가나 네덜란드 작가로 소개된다. 심지어 네덜란드 공공기관에서 네덜란드의 신진예술가 몇 명을 영국에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나도 그때 네덜란드 작가로 소개되었다. 3년 전부터는 벨기에 기관들과 주로 작업을 해왔는데 이제는 대부분 한국 국적의 벨기에 아티스트로 이해하는 것 같다. 인종이나 국적이 최소한 동시대 예술씬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굳이 나라를 표기해야 할 때는 둘 다를 쓰지만, 스스로 한국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벨기에 작가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사실, 내가 뭐라고 소개되든 별로 상관없다. 다큐멘터리 씨어터라고 세분화해서 소개할 필요도 없고, 연출가도 아니고, 그냥 연극 만드는 사람(theatre maker)이다.

다양한 곳을 여행하다 보면, 아시아 예술이 얼마나 부각되고 있는지, 주목받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유럽에서도 더 이상 유럽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전의) 아시아예술극장이나 홍콩의 서구룡문화지구 등, 아시아의 거점, 프로듀서 그룹들이 각각의 색깔로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아시아 예술에 대한 믿음은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아시아 기관들의 교류와 활동 안에 한국, 한국 연극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근데 정작 한국 연극계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고주영
실제로 아시아 간의 네트워크에서도 한국이 상당히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을 최근에 종종 받는다. 동남아시아, 중동, 서아시아 등 새롭게 발굴되어 가시화되는 지역들이 있는데, 그곳들과의 네트워크에 한국만 없는 일이 많다. 여전히 우리가 유럽의 것이라고 배우고 싶어 하는 ‘이동성’이 이미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자주 목격하고 실감한다.
프로듀서-예술가의 거리
고주영
기획, 제작을 하는 입장으로서, 프로듀서, 혹은 다른 크리에이티브 스태프와 어떤 협업 관계로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구자하
내 작업의 책임 프로듀서는 캄포(CAMPO, 벨기에 겐트에 소재한 공연장 겸 제작사, 에이전시, 레지던시 기관)다. 이전에도 캄포의 레지던시나, 기술/제작, 작업 피드백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은 바가 있어, 그들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알고 있었고, 신작 제작을 맡아줬으면 했다. 내가 먼저 캄포에 제안해 기획부터 향후 3년간 어떤 작업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캄포 역시 자신들의 비전을 제시해줬고, 그게 맞아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예술감독 역시 자신들의 예술적 비전을, 재정 감독은 제작 지원 규모에 대해 직접 프레젠테이션해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주기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예술감독은 물론이고, 담당 매니저, 홍보팀, 기술팀, 프로덕션팀 등 모든 스태프가 참석한다. 프로듀서가 비즈니스만 관여해서는 작업의 아이덴티티가 제대로 발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피드백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케어하며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내년에 유럽에서 초연할 신작 <한국 연극의 역사> 역시, 올해 캄포에 2차례의 비공개, 1차례의 공개 프리젠테이션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한국에 리서치 오기 전에 한차례를 가졌고, 돌아가면 한국 리서치에 대해, 12월에는 워크인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로 공동제작자들에게 발표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면 스스로도 정리가 되고, 프로듀서들은 바깥에 나가서 나의 작업을 설명하는 사람들이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개인팀으로는 드라마터그와 시노그래퍼가 있다. 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 드라마터그와 시노그라퍼를 스튜디오로 초대해서 작업을 공유하는데, 사실 엄청 싸운다. 생산적인 싸움이랄까? 내가 만든 것에 대해 둘을 설득시키지 못할 경우, 작업을 폐기, 보류, 재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드라마터그와 시노그라퍼 그리고 프로듀서 간의 업무 분담과 협업이 체계적으로 짜여 있는 편이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의 방향을 맞춘다. 제작비를 마련하고 투어를 유치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사실 프로듀서 역할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인과 연극 바깥의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코너의 취지인데, 어쩌다 보니 연극과 연극 아닌 것(이라고 불리는 것)의 경계에 선 두 사람이 주야장천 연극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연극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품이 좁을까, 왜 자꾸 선 긋기를 할까로 이어지던 대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것도 ‘연극’이라고 관철시키고 싶은, 연극이 신앙인 사람들보다 더 뿌리 깊은 연극 모태신앙인임을 인정하는 간증으로 끝났다. 큰일이다.

[인물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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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X고주영

구자하X고주영
구자하
동시대 독립 연극과 퍼포먼스를 제작하는 씨어터 메이커이자 전자음악 작곡가이다. 음악, 영상, 텍스트, 설치와 같은 다양한 매체들을 다루며, 정치와 역사 또는 사회적 쟁점들을 탐구한다. 대표작으로는 <롤링 앤 롤링(Lolling and Rolling)>과 <쿠쿠(Cuckoo)> 등이 있다.
www.gujaha.com

고주영
몇몇 공연예술 축제, 지원기관을 거쳐 2012년부터 공연예술 독립프로듀서이자 한-일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연극·극장·예술과 그 바깥의 사이에 있고자 한다.
breeeeze@naver.com
제165호   2019-08-08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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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