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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김지수X우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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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욱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 장애인권교육센터에서였다. 인권강사 교육을 받는 다양한 장애 당사자 중에 우동욱 선생님이 계셨고 4개월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수료를 하던 날 함께 했던 수강생들에게 <수궁가>의 한 대목을 들려주셨다. 짧은 시간의 소리를 위해 쪽빛 두루마기와 북을 준비해온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천천히 작게 말씀하시던 평소와는 다르게 강의실을 가득 울리던 소리를 들으며, 우동욱 선생님의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공연 소식을 전하다가 2020년 1월, 대화 코너의 첫 손님으로 우동욱 선생님을 만났다.

삶의 이야기, 배울 게 많은 판소리

김지수
매월 공연을 하고 계시죠?
우동욱
한울 예술단에서 활동하는데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이음센터에서 공연을 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 중창단, 악기 연주가, 성악가들, 댄서도 있고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판소리를 하고 있죠.
김지수
저는 판소리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고 판소리를 하시는 분을 가까이서 뵙는 것도 선생님이 처음인데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동영상을 보고 듣고 또 인터넷을 통해 얻은 얕은 정보만 있을 뿐입니다. ‘판소리’ 하면 그저 아무나 못 하는 장르라고만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우동욱
판소리를 시작한 지 올해로 13년이 되었어요. 2007년 말쯤에 국립국악원에 3개월 단기 과정을 수강했는데 그때 만난 선생님께 계속 배우고 있어요. 저의 시각장애는 진행형이었는데 그때 눈이 급격히 나빠지는 상황이었고 미래가 매우 두렵고 걱정되는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눈이 나빠지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을 했는데 판소리는 목을 쓰는 거니까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할 수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죠. 근데 하다 보니까 이거 외에 잘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어요. 가장 중요한 건 판소리가 매우 배울 게 많아서 오랫동안 할 수 있고, 배우다 보면 세월이 잘 가겠구나 그랬어요 (웃음)
김지수
지금은 어떤 판소리를 배우고 계신가요?
우동욱
지금 전수되고 있는 판소리가 모두 다섯 바탕인데요. 유파에 따라서 시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 이 다섯 바탕을 완창하게 되면 스무 시간 이상이 걸려요. 그 시간 이상을 다 배우고 다 외운다면 몇십 년 걸리겠죠. 저는 다섯 바탕 중에 3년에 걸쳐서 2시간 20분 정도의 <흥보가> 완창을 다 뗐고요. 4년 만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수궁가>를 했고 세 번째로 <춘향가>를 하고 있는데 지금 다섯 시간 정도까지 배웠어요. 올해 3월쯤에는 <춘향가>를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지수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판소리를 계속하게 되는 힘은 무엇인가요?
우동욱
판소리는 삶의 이야기예요. 판소리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주인공이 되어서 울고 웃고 흥겹게 슬프게 소리를 하다 보면 무아지경이 돼요. 그렇게 소리를 하고 나면 몸이 확 달라져요. 희열도 있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김지수
개인 공연은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으셨나요?
우동욱
제가 올해 2월 말에 명예퇴직을 하는데 그 기념으로 첫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공무원 생활하다가 학교에서 수업을 한 시간이 30년 정도 되는데 그동안 장애도 겪고 하면서 어려운 시기도 참 많았거든요. 학교에서도 장애 학생은 있지만 장애 선생님은 없어서 교사 생활에 내가 맞추기도 하지만 내게 맞춰야 하는 것들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저를 지원해주고 사랑해 주신 분들께 소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처음으로 단독 공연을 계획하고 있어요.
김지수
그 공연에서는 어떤 대목을 들려주실 예정이신가요?
우동욱
타이틀은 ‘시각장애 소리꾼 우동욱의 판소리 사계’로 달았는데요. 판소리 다섯 바탕 안에 계절을 표현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것은 자연의 사계이기도 하고 인생의 계절을 비유하기도 하고 생로병사, 여러 희노애락을 표현하기도 해요. 그렇게 사계를 표현한 눈대목(음악적 짜임새가 뛰어난 부분)을 모아서 구성하고 있어요.
우동욱
김지수
선생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판소리의 가사를 읽어보았는데요, 어려운 말이 너무 많아서 다 읽지를 못했습니다.
우동욱
판소리의 단어들이 조어가 많고 중국의 싯구에서 모티브를 얻은 부분도 있어서 일단 말뜻도 공부를 해야 해요. 의미를 알아야 이해가 되고 그래야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은 연극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김지수
그 말을 들으니 판소리를 하고 나서 몸의 변화나 희열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부분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배우들도 그런 순간을 만날 때가 있어요.
우동욱
판소리 할 때 나도 배우가 돼요.
김지수
판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경쾌하고 즐거운 장단도 있지만 아주 슬프고 힘들게 느껴지는 소리도 많아서 쉽게 듣기는 어려운 것 같은데요. 판소리는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우동욱
우리 음악 구조는 인위적인 게 아니라 우리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과 언어에 맞게 구성되어 있어요. 말들도 봄·여름·가을·겨울, 들숨·날숨과 같은 감각에 맞게 꾸며진 부분이 많아서 우리 삶과 몸의 리듬과 맞아 들어가는 기승전결이 있어요. 흥부네 잔치가 벌어졌다면 ‘잔치네~’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면 그저 ‘어찌할거나..’ 그 느낌 정도만 갖고 들으면 아주 힘들게 쥐어짜는 소리에도 삶의 구조가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니 그저 편안하게 들으면 돼요.
김지수

천천히 그리고 감각적으로

김지수
예전에 선생님께서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그때 몸에 와 닿는 햇빛의 감각으로 시간을 알 수 있었다고 하셨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의 감각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우동욱
시간대에 따라서 이마에 와 닿는 태양의 열감이 달라요. 아침과 저녁때 또 석양에서 나오는 열기도 각각 다르고,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도 다르고... 예전에는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지나쳤는데 지금은 보는 것 외에 손끝이나 피부 그리고 소리 등 또 다른 감각으로 많은 것들이 전달되는 것을 느껴요. 시각장애가 진행되면서 많은 것을 천천히 하게 됐어요. 뭔가를 빨리하려고 하면 몸도 다치고 되지도 않고요. 그러다 보니 매사에 천천히 하는 것들에 익숙해졌어요.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생각하고요.
김지수
저는 30대 중반에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써야 글씨가 보이니까 책을 읽을 때 피곤이 빨리 느껴지고, 오래 읽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읽는 걸 좀 피하게 되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요즘은 'e북'을 찾게 되는 편인데요. 잘 듣는 방법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전자음으로 읽어 주니까 그냥 흘러가기도 해서요.
우동욱
저는 책이나 핸드폰 문자 읽어 주는 것들도 모두 천천히 들어요. 좀 천천히 듣다 보면 어떤 표현, 어떤 문장, 그런 것들이 번득 느껴지기도 하고 글 외에 상상력이 좀 채워지지 않을까 해서요. 시각장애를 갖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게 독서나 음악 그리고 상상력인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에 대해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어떤 사건에 대해서 반추해 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고 그림을 그린다거나 그걸 문장으로 써 보거나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만 돼요. 그런 걸 하지 않으면 본인뿐만이 아니라 상대와도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 것 같아요.
김지수
시각장애를 겪으면서 변하신 게 또 있나요?
우동욱
귀와 손의 감각이 틔워지는 것 같아요. 시각장애를 겪으면서 해금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걸 하면서 감각적으로 정확한 음에 대한 청음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대화를 하더라도 앞에 말했던 어떤 표현에서 감정을 읽어 내거나 단서를 파악하는 것도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잘 듣는 건 아니에요. 잘 듣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 좋아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세계를 공유하는 거죠. 2019년에 시각장애인들과 동료상담을 하면서 그렇게 감각이 잘 통하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나게 돼서 참 좋아요.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소통 하고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장애예술, 상상력을 자극하는 화면해설

김지수
장애 예술을 많이 접해 보셨나요?
우동욱
정보가 있고 기회가 되면 가보려고 해요. 지난번에도 시각장애인들 나오는 공연을 봤어요. 가끔 화면 해설이 있으면 꼭 가려고 하죠.
김지수
장애 예술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우동욱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같이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저는 장애인들만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와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 방향으로 장애 예술이 나갔으면 좋겠어요.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공연을 보러 오는 것이고 비장애인의 삶이 모두 다르듯이 장애인들도 각자가 맞닥뜨리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 다르잖아요, 그 면밀한 내면세계를 잘 표현해 줄수록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장애인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아요.
김지수
저도 장애인들이 겪는 독특한 세계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연극을 하고 싶은데 당사자의 고유 감각이 있으면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집니다.
우동욱
대중적인 지향보다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난번에 1인 무대 보고 시각장애인들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전에 애인에서 했던 것들은 어떤 주제에 충실한 공연이었다면 이번에는 개인의 내면에 충실한 공연이어서 바람직하고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다면서 동료들이 공연을 설명해 주더라고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김지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말씀하셨듯이 저희 극단에서도 이번에 처음으로 화면해설을 준비했는데요. 화면해설을 경험하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동욱
1인 무대는 정말 화면해설이 없었으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을 것 같아요.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몇 번 화면해설을 경험했는데요. 화면해설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떤 공연은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사실만을 전달하는 해설도 있고 또 어느 공연에서는 예술적인 상상력을 갖게 해 주는 해설도 있더라고요. 배우들의 동작을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들은 느끼는 거지 말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음악도 없이 움직임만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연구해야겠지요.
김지수
저희가 이번에 화면해설을 준비하면서 지인 몇 분께 연락을 드렸더니 시각장애인분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올리면 많이들 오실 거라고 소개해 주셔서 게시판에 메일을 보냈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셨죠. 가족들, 특히 자녀분들과 함께 오고 싶어 하는 분도 계셨고 단체 관람을 원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낮 공연이 하루였고 일찍 매진이 돼서 많이 못 오셨어요. 이번 경험으로 시각장애인분들의 문화 예술 관람 욕구와 필요성에 대해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께서 화면해설을 이용해보시고 피드백을 주셔야 화면해설의 내용과 표현 방법도 다양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동욱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 주세요(웃음)
김지수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장애를 겪으면서 학교생활을 하는데 저는 상상도 못 할 난관이 있으셨을 텐데 퇴직을 앞두고 마음이 어떠세요?
우동욱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두면 그만두는 거지 뭐, 여한이 없어’ 그랬거든요. 근데 막상 퇴직 신청서를 내고 나니까 마음이 허전하더라고요. 그렇기도 했는데 자유롭게 놀 게 되니까 좋잖아요, 자질구레한 일상의 고민들과 애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나를 볶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요.
김지수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예술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우동욱
소리를 해서 뭐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요. 조금 더 듣기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지경까지 올라갈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약속을 해 놓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런 연습실 같은 공간이 있으면 소리도 하고 커피도 끓이고 침도 좀 놔주고 하는, 사랑방처럼 쉬어 갈 수 있는,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들어와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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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X우동욱

김지수X우동욱
김지수_연극연출가
극단 애인 대표. 재미있는 연극하고 싶은 휠체어 탄 사람.


우동욱_고등학교교사, 소리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실명한 지 10년 된 지금은 판소리에 푹 빠져있는 고등학교 사회선생.
제175호   2020-01-2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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